[디엔에이신원확인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안(정부 발의안)]에 대한 인권시민사회단체 의견
- 범죄자 뿐 아니라 모든 시민의 권리에 관한 문제, 성급한 입법 하지 말아야
- 17대 국회에서도 각계가 우려했던 각종 문제점이 개선되지 않아
DNA 신원확인정보 데이터베이스 제도는 강력범죄를 저지른 사람의 DNA 신원확인정보를 미리 확보ㆍ관리하는 제도이다. 경찰과 검찰은 1990년대부터 경쟁적으로 개인 유전정보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대한 사업을 추진해 오다가 서로의 유전정보 데이터베이스를 연동하여 활용하는 방식으로 합의하여 2006년 <유전자감식정보의 수집 및 관리에 관한 법률안>을 국회에 발의하였다. 그러나 사회 각계의 반대에 부딪쳐 추진이 잘 되지 않다가 마침내 회기 만료로 폐기되었던 법률이 다시 부활하였다.
그간 인권시민사회단체들이 줄기차게 지적해 왔듯이 수사과정에서 특정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하여 DNA 정보를 활용하는 것은 제한적으로 가능하다. 그러나, 국가가 개별 사건 수사를 넘어서서 방대한 DNA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것은 그 효과도 의문스러울뿐더러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더구나 흔히 알려진 바와 달리 이 법안은 범죄자 뿐 아니라 그 가족에도 관련된 문제이며, DNA 데이터베이스 입력 대상으로 형이 확정된 기결수 외에도 소년범과 피의자, 수형인에게까지 소급 적용하고 범행 현장에 머물렀던 일반 시민이나 피해자도 포함하고 있어 국제적으로도 드문 광범위한 입법 사례에 속한다. 또한 검찰과 경찰의 조직이기주의로 인해 DNA 데이터베이스의 관리를 이원화한 것은 이 법률이 추구하고 있는 범죄수사의 효율성과도 배치될 뿐 아니라 오남용과 유출에 대한 우려를 한층 높이고 있다.
이에 우리 단체들은 18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공청회를 앞두고 다음과 같은 의견을 발표하는 바이며, 국회가 이 법안에 대하여 신중한 심의와 현명한 판단을 내릴 것을 바란다.
DNA 정보는 민감한 개인정보이다
이 법률이 가지고 있는 강력한 대외명분에도 불구하고 각계에서 반대에 나선 것은 DNA 정보의 민감성 때문이다.
이미 17대 국회에 발의되었던 같은 법률에 대한 법제사법위원회 검토보고서에서는 “개인식별 정보인 유전자감식정보는 채취하는 순간부터 사생활의 비밀의 불가침 등이 제한될 수 있고, 그 정보 유출의 위험도 항존한다”고 보며 “유전자감식정보의 수집 및 관리는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될 가능성, 유전자정보의 오․남용 및 무단 유출의 위험성 등을 감안하여,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엄격한 절차 아래에서만 가능하도록 하여야 할 것으로 봄”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DNA 정보의 민감성이 거론되는 이유는 일차적으로 DNA 정보가 개인과 그 가족의 고유한 신체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또한 마음만 먹으면 신원확인 이외의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있다. 비록 신원확인과 질병정보를 알아낼 수 있는 DNA 상의 위치가 다르더라도 개인의 유전체는 하나의 책과 같아서 5페이지에서 신원확인 정보를, 10페이지에서 질병정보를 알아낼수 있다. 또한 최근 유전학 연구의 동향을 보면 과거에는 기능이 없었던 DNA 상의 부위가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실제로 영국 경찰은 유전자 감식 목적으로 추출한 혈액을 이용해 용의자의 인지나 동의 없이 HIV 검사와 같은 의료적 목적의 유전자 검사를 실시해 문제를 일으킨 바 있다. 질병명은 내밀한 사적 영역에 근접하는 민감한 개인정보로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타인의 지득, 외부에 대한 공개로부터 차단되어 개인의 내밀한 영역 내에 유보되어야 하는 정보이다. 이러한 성격의 개인정보를 공개함으로써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제한하는 국가적 조치는 엄격한 기준과 방법에 따라 섬세하게 행하여지지 않으면 아니된다 (헌재 2007. 5. 31). 이러한 이유에서 유전자 검사를 할 경우 민감? ?개인의 질병정보 등이 분석될 수 있으므로, 지문의 채취나 혈액형의 확인을 위하거나, 혈중 알코올 농도의 측정을 위한 혈액의 채취에 비하여 훨씬 더 심각한 개인정보의 침해가 될 수 있다. 법안에서는 그간 제기된 문제제기를 일부 수용하여 DNA 신원확인정보를 데이터베이스에 수록한 때 그 시료를 폐기하고 입력된 신원확인정보의 검색 및 회보의 목적을 제한하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질병정보는 데이터베이스 입력 전에 시료 단계에서 충분히 수사에 활용될 수 있으며, 법안은 이를 명확히 제한하고 있지 않다. 특히 타액이 아니라 혈액을 채취한다면 이러한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시료 분석 단계에서 알게 된 대상자의 성별이나 유전질환에 대한 정보를 수사기관이 수사에 활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을 것이고, 이러한 일이 일반화된다면 국가가 수집한 DNA 감식시료에서 질병정보를 추출하는 일이 곧 관행처럼 널리 퍼질 것이다.
또한 유전정보는 그 가족의 정보를 포함하고 있다. DNA 데이터베이스는 범죄자의 유전자 정보와 많은 부분 같을 수밖에 없는 가까운 친족들의 DNA 정보도 이들의 동의 없이 수집하고 공개하는 것이다. 범죄자의 가까운 친족들은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는 것으로서 이는 연좌제 금지에 위배된다. 실제로 우리보다 앞서 DNA 데이터베이스를 도입한 국가들에서는 비슷한 유전형을 가진 가족 검색을 수사에 활용하는 예가 등장하면서 논란을 빚고 있다.
죄가 없으면 DNA 정보가 보관되는 것에 대해 전혀 두려워할 필요가 없을까? 다른 나라의 사례를 보면 DNA 정보도 오류를 낳으며 위조 및 조작 또한 가능하다. 다른 알리바이가 있었음에도 DNA의 오염이나 해석상 오류로 수년 간 억울하게 복역한 후 석방된 사례가 보고되고 있으며, 법의학 기술자가 DNA 기록들을 변조한 사건도 있었다. DNA 정보에 오류가 발생하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우리보다 먼저 DNA 데이터베이스 제도를 도입한 국가들에서도 우려하는 분위기가 증가하고 있다.
수집대상에 대한 인권 침해가 발생할 것이다
국가가 민감하고 위험한 DNA 정보를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하는 과정에서 채취자의 권리가 광범위하게 제한되어 있다.
법안에서 시료채취는 피채취자의 동의 하에 이루어지도록 하되, 동의확보가 불가한 때에는 법관이 발부한 영장에 의하여 이루어지도록 하였다. 이는 영장주의에 위배된다. 수사기관이 구체적 증거도 없이 개인의 고유한 물질인 DNA의 감식시료를 채취하는 것 자체가 문제인 만큼, 수사상의 이유라도 DNA 감식시료 채취는 법률이나 영장에 기초해서, 꼭 필요한 경우에 한해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채취과정에서 대상자가 불응하였을 때 강제적인 방법을 취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으며 실제 이 법안에서 그 부분이 불명확하다는 점이 지적되어 왔다. 채취 대상자에게 고지할 때도 채취 요구에 불응할 수 있는 권리를 고지할 의무가 명시되어 있지 않은데, 특히 구금상태에 있는 대상자는 위축되어 있는 상태이기에 자발적인 동의가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다. 즉 데이터베이스 입력 전에 개별 수사를 위해 DNA 감식시료를 채취할 때라 하더라도 영장주의의 전면적 도입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 채취와 수사에의 활용이 매우 편의적이고 강제적으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다.
특히 이번 법안이 아직 형이 확정되지 않은 ‘구속되어 있는 자’에게서까지 DNA 감식시료를 채집하는 것에는 중대한 문제가 있다. 이는 헌법상 무죄추정의 원칙에 반하는 위헌적인 처분이다. 현재 우리 형사소송법에서 구속영장의 발부는 범죄의 중대 여부에 대한 판단이 아니라 증거인멸 및 도망의 염려 등을 요건으로 하고 있을 뿐이다. 유럽인권재판소에서도, 피의자에 대한 유전자정보 보관이 범죄인 낙인을 가지고 올 위험이 있다고 보고 유럽인권협약에 위반된다고 판시하였다.
특히 소년범의 경우 데이터베이스에 입력된 후에는 평생을 감시받으며 살아야 할 것이다. 또한 사회적 편견과 낙인이 강화되고 그에 따른 차별이 확산될 우려가 있으며, 이는 데이터베이스 운명론으로 발전하여 정직하게 살기 보다는 감시를 피해 더욱 더 고도화된 범죄가 모색될 수도 있다.
우연히 범행현장에 머물렀던 일반 시민이나 피해자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법안에 따르면 범행현장에서 발견되었거나 피해자 신체의 내외부 등 현장에서 입수한 시료도 입력 대상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법안에서는 무고한 사람이나 피해자의 DNA라 하더라도 일단 데이터베이스에 포함된 후에는 어느 경로로 입수된 것인지 판별할 수 있는 방법을 규정하고 있지 않으며, 이 점에 대하여 법원도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물론 법안에서는 본인의 신청이 있으면 삭제가 가능하다고 하였지만 당사자가 자신이 입력대상이 되었는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이에 대한 삭제를 요청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처럼 일단 DNA 데이터베이스의 입력대상이 되면 그 삭제가 매우 어려운데, 이 법안은 법률에 따른 삭제를 하지 않으면 처벌하는 규정도 두고 있지 않다. 삭제가 거의 없이 몸집만 불리는 데이터베이스는 수년 후 전국민을 대상으로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데이터베이스의 필연적 확장이 우려스럽다
DNA 데이터베이스가 일단 구축되고 나면 기입력대상으로 부족한 검색의 실효성을 추구하기 위해 입력 대상을 지속적으로 확장할 것이라는 점이 이를 찬성하는 전문가들의 주장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외국의 사례를 보더라도 처음에는 사회적 정당성을 쉽게 얻을 수 있는 살인, 아동 성범죄 같은 흉악범에서 나중엔 비폭력 범죄와 사소한 절도 및 교통법규 위반자에 이르기까지 그 대상이 확대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먼저 범죄자 유전자정보은행을 구축했던 영국 경찰은 최근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유전자정보은행 구축을 제안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이미 이 법안은 그 입력 대상을 늘리기 위해 법안 발효 이전에 발생한 범죄의 수형인에게 소급 적용될 예정임을 밝히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외국과 단순히 비교할 수 없는 특수한 상황도 존재한다. 모든 국민에게 출생시부터 고유한 식별번호인 주민등록번호가 부여되고 만17세부터 전 국민의 열손가락 지문이 국가에 전산등록되어 경찰에 의해 관리되고 있다. 이렇게 세계적으로 드문 특수한 식별제도가 있는 상황에서 이미 시설 아동, 정신장애인, 치매노인, 이산가족, 군대 등 다양한 목적의 DNA 데이터베이스가 구축되어 있는데 여기에 범죄자와 피의자, 범죄 현장에 관련된 모든 사람의 DNA 데이터베이스마저 구축된다면, 이러한 식별 정보와 데이터베이스가 서로 연동되면서 거대한 규모의 국가 감시 데이터베이스로 발전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더구나 일부 전문가들이 주장하는 대로 보관된 DNA 정보를 이용하여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은 사람의 유전자형을 규정하는 연구가 진행된다면, 이는 현대판 인종주의로 이어지는 위험한 결과를 낳을 것이다.
DNA 정보의 활용은 데이터베이스가 아니라 개별 수사에의 활용으로 국한되어야 한다
DNA 데이터베이스 제도가 도입되면 강력범죄가 발생하였을 때 범인을 조기에 검거할 수 있다지만, 이는 일반적인 유전자 검사/수사로도 충분히 달성할 수 있는 목표이다.
법안은 수사단계에서의 유전자감식의 정도와는 달리 미리 수집된 유전자감식정보의 검색을 통하여 범죄 수사에 활용한다는 것이므로 논의 초점을 달리 해야 한다는 지적이 이미 17대 국회 검토보고서에서 지적된 바 있다. DNA 수사에 대한 적법 절차를 마련하는 것이 반드시 데이터베이스화로 귀결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법안이 대상범죄로 삼고 있는 12개 유형의 범죄가 입력 대상으로 적절하다고 평가되기 위해서는 이 범죄를 저지른 수형자나 피의자의 재범 확률이 다른 경우보다 높거나 유전자감식시료를 범죄현장에 남길 확률이 높다는 등의 합리적 이유가 존재하여야 하지만, 법안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정작 재범율에 대한 실증적이고 통계적인 검증은 매우 허술하다는 점이 17대 국회 검토 과정에서 제기된 바 있다. 또 이 법안이 유전자 분석 없이도 범인을 특정할 수 있거나 재범률이 높지 않아 보이는 범죄나 강력 범죄가 아닌 절도죄까지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 이미 법원 등에 의해 문제점으로 지적된 바 있다.
DNA 데이터베이스가 일부 도입된 국제사회에서도 이에 대한 비판과 회의론이 만만치 않다. 특히 우리처럼 대상 범죄의 범위가 포괄적이고, 미결수 및 소년범까지 포함되는 경우는 일반적이지 않다. 상당수의 국가들이 시료의 채취 단계서부터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요하고 있으며, 데이터베이스에 입력하려면 별도의 법원 명령을 필요로 하는 국가도 많다. 소년범을 포함하는 경우는 특히 예외적이다.
검찰과 경찰의 권력 남용을 막을 수 있는가?
최근 검찰과 경찰의 권력 남용에 대한 사회적 우려가 증가하는 가운데, 두 기관의 조직이기주의로 인하여 이 법안의 입법 취지가 이미 훼손되고 있다.
법안은 데이터베이스의 관리주체를 경찰과 검찰로 이원화하고 있다. 피의자와 현장 시료의 채취 및 관리는 경찰이, 수형인 시료의 채취 및 관리는 검찰이 관리하도록 한 것인데, 이는 그간 계속되어온 경찰과 검찰의 관할 다툼을 조정하기 위한 방책이다.
러나 DNA 데이터베이스의 채취와 관리에 대한 이원화는 국제적으로 유례가 없을뿐더러 그만큼 DNA 정보의 오남용 및 유출의 위험이 커진다는 점이 17대 때부터 법원, 대한변호사협회, 국회 검토 의견에서 공통된 문제로 지적되어 왔다. 수사기관의 DNA 확보경쟁으로 경찰과 검찰에서 2중으로 DNA 감식시료의 채취를 당할 우려가 있는 것이다. 검찰과 경찰의 조직이기주의로 그 채취와 관리가 편의적으로 규정된 점이 이 법률이 추구하고 있는 범죄수사의 효율성과도 배치되는 것은 물론이다.
또한 법안에서는 중립적인 감독기구로 국무총리 산하에 디엔에이 신원확인정보 데이터베이스 관리위원회를 설치하였다. 그러나 이 기구가 수사기관으로부터 독립성과 전문성을 갖추고 제대로 활동하게 될 것인지 의심스럽다. 그 인적 구성에 있어 독립적이고 권한에 있어 경찰과 검찰을 통제할 수 없으면 사실상 경찰과 검찰을 지원하는 역할에 머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우리 단체들은 DNA 데이터베이스에 대한 법률이 17대 때로부터 제기되어온 여러 문제점들을 여전히 해결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확인하였다. 우리는 개별 수사과정에서 DNA 정보를 활용하는 것에는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국가가 민감하고 위험한 DNA 정보를 범죄자 뿐 아니라 소년범과 피의자, 일반 시민의 것까지 수집하여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하려는 것에 반대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DNA 활용에 있어 검찰과 경찰의 권력 남용을 막는 것이며, DNA 수사가 사회적 차별로 이어지는 것을 방지하는 일이다. 따라서 현재 영장 없이 무분별하게 이루어지는 DNA 채취와 수사과정에의 활용을 적법하게 규율할 수 있는 대안 법률의 마련이 필요하다.
2009년 11월 19일
건강권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건강사회를 위한약사회,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노동건강연대, 참의료실현청년한의사회), 구속노동자후원회, 동성애자인권연대,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불교인권위원회, 인권과 평화를 위한 국제민주연대, 인권운동사랑방, 진보네트워크센터, 참여연대, 천주교인권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