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서한·유럽연합 FTA 협정문 재검독 결과에 대한 성명서

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
성 명 서

[한·유럽연합 FTA 협정문 재검독 결과에 대한 성명서]

● 협정문 국어본의 오류에 대한 책임을 지고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물러나야 한다.
● 국회의 성실한 조약 심사권 행사를 촉구한다.

1.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이번 사태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

오늘 통상교섭본부는 금년 2월 28일 제출했던 한․유럽연합 FTA 비준동의안을 철회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이미 한 차례 철회했던 비준동의안에서 무려 200개가 넘는 오류가 더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협정문의 국어본은 2009년에 외교부 공무원 6~7명이 한 달도 안 돼 번역을 끝냈다가, 숱한 오류가 지적되자 지난 달 부랴부랴 재검독 작업에 들어갔는데, 이것도 2주간 외부 의견을 받은 다음 1주일 만에 검토를 마치고 유럽연합과 정정 조치까지 끝낸 졸속의 전형을 보여주는 절차로 진행되었다. 결국 통상교섭본부는 무려 700 쪽에 달하는 방대한 법률 문서를 두 달 만에 뚝딱 해치운 다음, 국회에 다시 비준동의를 요청하는 셈이다.

이런 오류와 졸속 행정이 반복되는 이유는 통상협정의 발효 그 자체를 성과로 삼는 통상관료들이 과도한 권한을 갖기 때문이다. 특히 통상교섭본부는 제멋대로 유럽연합과 합의하여 국회의 비준동의 시점을 올해 6월 30일로 정해 국회의 조약 심사권마저 침해하려고 한다.

통상교섭본부의 이러한 행태는 행정조직의 민주적 편성과 책임 행정에 관한 심각한 고민을 하게 만든다. 정부조직법에 따르면, 통상교섭본부는 한국을 대표하여 외국과 통상교섭을 수행하며 한국의 대외 경제와 관련된 외교 정책을 책임진다. 이번 사태는 외국과의 통상교섭을 위해 행정 각 부처를 총괄․조정하는 권한을 통상관료들로 구성된 통상교섭본부에 주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여실히 드러내었다. 소위 국격 운운하는 이명박 정부에서 무더기 번역 오류로 국제적 망신을 자초하였고, 조약의 비준동의안 제출을 위해 국무회의를 무려 3차례나 반복하는 한국 정치사에서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겼다. 이런 일이 생겨도 통상교섭본부장을 문책하지 않는다면, 이명박 정부는 책임 행정을 포기한 정부란 오명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2. 국회도 이번 사태에 책임을 져야 한다.

협정문 국어본의 오류는 정부만 책임질 일이 아니다. 국회도 책임을 져야 한다. 외교통상통일위원회는 금년 2월 28일 비준동의안이 다시 제출된 지 이틀 만에 검토보고서를 내는 신속성만 자랑했을 뿐, 200개가 넘는 무더기 오류 중 단 하나도 발견하지 못하는 부실함에서는 정부에 조금도 뒤지지 않았다.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역시 검토보고서를 철회하고 비준동의안을 다시 검토해 보고서를 새로 작성해야 한다.

비준동의안이 맨 처음 국회에 제출된 2010년 10월 25일 이후 외교통상통일위원회는 형식적인 공청회를 단 3차례 했을 뿐 제대로 된 검토 작업을 하지 않았다. 수박 겉핥기식의 공청회는 상품, 원산지, 무역구제 분야를 2010년 11월 22일 반나절 만에 끝냈고, 서비스, 투자, 지적재산권 분야는 11월 26일, 경제적 효과와 보완대책은 12월 6일 오전에 마무리한 사실에서 잘 드러난다. 해당 분야의 전문성이 없는 위원회에서 협정문의 문구와 내용을 제대로 검토도 하지 않고 요식절차로 공청회를 진행한 다음, 정부가 제시하는 통과 시점에 맞춰 상임위 논의를 끝내려고 하였기 때문에, 국회에서도 협정문 국어본에 존재했던 오류를 전혀 몰랐던 것이다.

한․유럽연합 FTA의 소관 상임위인 외교통상통일위원회는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느끼고 행정부의 재검독 작업과는 별도로 협정문에 대한 정밀 재검토를 해야 한다. 이 재검토 작업에는 협정문의 형식적인 문제 뿐만 아니라, 정부가 한․유럽연합 FTA의 성과라고 일방적으로 포장한 실체적인 쟁점에 대한 평가와 검토가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3. 국회의 제대로 된 심의없는 비준동의안 처리는 있을 수 없다.

올해 2월 28일 제출된 한․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 비준동의안은 8개의 관련 상임위원회(법제사법위원회, 정무위원회, 기획재정위원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농림수산식품위원회, 지식경제위원회, 보건복지위원회, 환경노동위원회)에도 회부되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관련 상임위에는 비준동의안이 상정조차 되지 않았고, 소관 상임위인 외교통상통일위원회에서 2차례 법안심사 소위원회만 열렸을 뿐이다.

한·유럽연합 FTA는 자동차나 전자제품의 수출을 늘리려는 그런 간단한 협정이 아니다. 우리 생활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줄 수 있는 매우 포괄적인 법률 문서이다. 정치인이라면 누구나 얘기하는 그야말로 민생과도 밀접하게 관련된 협정문이다. 이런 협정문을 충분한 시간을 갖고 제대로 검토도 하지 않은 채 통과시킨다면 그런 국회를 누가 민생국회라고 하겠는가?

3백여 개 단체로 구성된 우리 범국본은 국회가 주권자인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조약 심사권을 성실하게 행사하는지 철저하게 감시할 것이다. 그리고 통상관료에 의한 일방적이고 비민주적인 조약체결 과정을 바로잡기 위해 통상절차법을 제정하여 헌법에 부여된 조약에 대한 행정부와 입법부의 권한 배분을 현실 제도로 구현하기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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