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자본 투기로 그 파산을 유예시키는 ‘살육하는 괴물’

용미(用美)론 위험천만한 허구

최근 보수주의자들이 애용하는 단어 중에 ‘용미’(用美)라는 것이 있다. 종전처럼 미국에 대한 ‘의리’를 강조해 봐야 젊은이들의 비웃음을 사게 되고 대중의 자긍심마저 커졌으니, “우리가 미국을 이용하고 있다”면서 대미 예속의 현실을 호도하는 것이 가장 호소력이 있다고 판단한 듯하다. 부시 치하 미국의 ‘민주적 가치’ 등을 운운해 봐야 믿을 사람도 없으니 그들이 내세우는 것은 미군 주둔의 ‘필요성’과 미국 자본 유입의 ‘혜택’ 등이다. 그럼 과연 그들의 말대로 미국의 ‘주먹’과 ‘호주머니’를 우리가 원하는 대로 ‘이용’할 수 있을까 그 답을 찾기 위한 방편으로 한·미 관계사를 한번 조감해 보자.
세계적 헤게모니를 확보한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 미국은 한반도를 ‘상리(商利) 추구’와 ‘기독교 포교’(종교적 세력 확충)의 차원에서 인식했다. 미국은 미국을 이용해 보려 했던 고종과 그 측근의 후의로 운산금광을 비롯한 알짜배기 이권도 챙길 수 있었고, 또 미국의 힘을 독립운동에 이용하려 했던 수많은 ‘신지식인’들의 기독교적 열성으로 조선의 지도계층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다. 그 시기에 한국을 이용할 만큼 이용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고종이나 조선의 기독교적 민족주의자들이 과연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던가 천만의 말씀이다.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에 대한 고종의 ‘눈물의 호소’가 일소에 부쳐졌고, 친일적이었던 미국 선교사들에게 절망한 이동휘와 같은 일각의 민족주의적 기독교인들은 아예 공산주의로 개종()하기도 했다. 현재의 ‘용미론자’들은 왜 이 쓰라린 역사적 교훈에서 배우지 못하는가.

그후, 한반도의 남반부가 미국의 영향권에 편입된 1945년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는 미국을 ‘이용’할 여유도 없이 북한에 대한 미국의 ‘보호’를 원했던 토착 통치자들과 동아시아에서 군사 거점이 전략적으로 필요했던 미국 사이에 일종의 ‘운명 공동체’가 이루어졌다. 그때의 남한의 군벌·관벌(官閥)·재벌들이 ‘오야붕’ 미국의 자본·기술 등의 혜택을 받기도 했지만, 그 ‘이용료’를 지불한 방식이 한국의 소중하고 앳된 젊은이들을 베트남의 악몽 같은 사지로 보낸 것이었음을 염두에 둔다면 이를 진짜 ‘용미’로 보기가 힘들다. 그러다가, 1990년대 후반부터 상황은 본질적으로 변했다. 한편으로는 남한에서 북한과의 평화 공존을 지향하는 중도 부르주아 세력들이 집권함으로써, 미군 주둔의 명분, 곧 ‘북한 위협론’이 붕괴하고 말았다. 또 한편으로는 미국 자본주의의 본격적인 위기로 인해 군산복합체와 달러 남발에만 의존하는 미국 제국은 전쟁과 자본 투기로 그 파산을 유예시키는 ‘살육하는 괴물’이 되고 말았다. 이와 같은 말기의 제국으로서 군사 보호령 남한의 이용가치란 북한(또는 중국)에 대한 침략의 잠재적인 교두보와 잉여 자본의 투기의 장으로서의 가치일 뿐이다.

남한의 부르주아 ‘온건파’에게 전쟁광인 부시와 시장을 교란시키는 미국계 투기 자본은 버거운 존재일 것이다. 그러나 부르주아 온건파는 자유주의적 투지·자주성을 결여한 주변부형 부르주아 정객의 보수성과 미숙성에다 독재 시절 때부터 그대로 온존해온 군·관·학계의 숭미파의 무게가 가미돼 탈미(脫美)를 시도하기는커녕 미국의 ‘총알받이 공급자’로 전락하고 말았다. 시대적 요구와 국익에 역행하고 이미 벗어나야 할 -그리고 능히 벗어 날 수 있는- 독재 시절 식의 대미 예속을 강화시키는 정책의 어리석음을 호도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것이 바로 ‘용미론’이다.

파산 직전인 강도 조직의 행동대원이 되어 살인 현장에 뛰어 드는 일은 그 조직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용을 ‘당한’ 뒤에 별다른 보상도 못 받은 채 그 조폭의 괴롭힘을 당한 이웃의 신용을 잃어 난처한 상황에 직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박노자/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