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신제국주의 미국

  
  ”미국은 역사상 가장 순식간에 사라질 제국 될 것”  
  퍼거슨 교수 지적, “재정고갈-자기위선-유약함이 원인”

  2004-05-14 오후 5:55:59    

  

  
  이라크 전쟁을 계기로 속성을 드러낸 미국의 ‘신제국주의’는 지속적으로 유지되기 힘든 제국주의라는 분석이 미국의 저명한 금융역사학자로부터 제기돼 주목된다.
  
  미 제국주의는 3가지 결함 지녀
  
  블룸버그 통신의 칼럼니스트 조 마이삭은 12일(현지시간) 펭귄 출판사에서 출판된 <미제국의 대가(Colossus: The Price of America’s Empire)>라는 니알 퍼거슨의 신간을 소개하면서, 이같이 퍼거슨의 결론을 전했다.
  
  저자인 니알 퍼거슨은 스코틀랜드 출신의 세계적 금융역사학자로서, 현재 옥스포드대 방문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곧 하버드대로 자리를 옮길 것으로 알려졌다.
  
  퍼거슨은 이 책에서 “신제국주의에 대한 주목할 만한 논쟁이 있으며 미국이 가장 잘 들어맞은 대상”이라고 지적했다.
  
  ’신제국주의’는 과거 영국이 구가했던 ‘제국주의’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자기결정이 자기파괴를 가져온 나라들에 개입해 투자를 촉진하는 법과 제도를 세워주는” 외교정책을 추구하는 제국주의를 뜻한다. 그러나 퍼거슨에 따르면, 신제국주의는 제국주의에 비해 취약한 제도로, 현재 미국은 3가지 치명적 결함을 가진 신제국주의 국가다.
  
  45조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잠재 재정적자
  
  첫번째는 무려 45조달러(약 5경3천조원)에 달하는 파괴적인 ‘잠재적 재정위기’이다.
  
  퍼거슨은 “미국인들은 흔히 안보를 좋아한다”면서 “그러나 그들은 국가안보보다는 사회보장을 좋아한다”고 꼬집었다. 미국인들은 테러리즘과 ‘악의 축’의 위협이 아니라 ‘늙고 병드는 위험’에 사로잡혀 있으며, 이것이 과도한 재정팽창을 초래하는 실제 원인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주정부 지출 21%가 빈곤층에 대한 의료보장에 쓰이고 있으며, 이들 의료보장비의 40%를 주정부가 떠맡고 있다. 노인과 장애인을 위한 의료보험은 연방정부가 모두 떠안고 있다. 미의료보장보험센터에 따르면 2002년 의료보장비로 2천6백70억달러(3백15조원)가 지출됐고 의료보험비는 2천5백억달러(2백95조원)에 달했다. 주정부만 의료보장비로 1천30억달러(1백20조원)을 지출한 것이다.
  
  미 클리블랜드 연방은행이 조사에 따르면 원리금과 사회보장 및 의료보험 등 경직성 지출항목을 합하면 세입과의 차이가 무려 45조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이 적자폭의 82%를 의료보험이 차지하고 있다.
  
  스스로 부정하는 제국주의
  
  두번째, 미국은 ‘자기 위선’ 상태에 있다. 오랜 세월 동안 제국주의가 ‘더러운 단어’였기 때문에 사실상 제국주의 국가이면서도 이를 스스로 부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미국은 국가건설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적절한 시간과 자금을 투입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냉전기간 동안 제국주의에 대한 구체적인 위협에 맞닥뜨렸을 때에만 미국은 일본과 독일에 장기적인 요소 투입을 했을 뿐이다.
  
  본국밖에 나가기 꺼려하는 제국주의 국민들
  
  세번째, 미국은 제국주의 국가를 유지하기 위한 인력부족 사태를 겪고 있다.
  
  퍼거슨은 “미국인들은 ‘제국주의적 마음가짐’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미국인들은 “내 집만한 곳은 어디에도 없다”는 ‘오즈의 마법사’식 정서에 빠져있다는 것이다.
  
  퍼거슨은 “거기 가지 말라”는 표현이 이 문제를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면서 “미국은 방대한 부와 막강한 무력을 갖고 있으나 가장 기본적인 활동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불가피하게 가야만 한다면 그들은 가는 순간부터 집으로 돌아갈 날을 세고 있다. 변방을 기피하고 대도시에 집착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역사상에서 가장 순식간에 사라지는 제국 될 것”
  
  퍼거슨 교수는 지난해 뉴욕타임스 매거진(4월27일자)에 기고한 ‘제국, 살금살금 뒷걸음질치다’는 기고문에서도 영국과 미국의 제국주의를 비교한 바 있다. 그는 이 기고문에서 “미국이라는 ‘제국’은 역사상 가장 순식간에 사라지는 제국이 될 것”이라며 그 이유를 국제 사회의 견제나 식민지의 반발 같은 외부적 요인이 아니라 미국 내부의 특성에서 찾았다.
  
  때문에 미군의 이라크 점령에 대해서도 퍼거슨 교수는 그리 오래가지 못할 것으로 전망했다. 1920년부터 40여년 동안 우선 이라크를 직간접적으로 ‘식민 통치’했던 영국과 비교하면 현재 미국이 월등한 경제-군사적 힘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영국과 달리 미국에는 ‘바그다드에 갈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퍼거슨 교수에 따르면 1998∼1999년도 미 명문 예일대 4만7천여명의 학부생 중 중동을 포함한 동양 관련 학문의 주전공자는 단 1명이었으며 1998년까지 13만4천7백98명의 예일대 졸업생 중 5%만이 해외에 거주하며 고작 70명만이 중동에 나가 있다. 그나마 중동 전문가를 자처하는 미국인들도 현지 정착에는 관심이 없다. 통신과 교통의 발달로 짧은 여행으로 본국을 왕래할 뿐이다.
  
  대영제국에서는 다양한 분야의 민간 엘리트들이 해외로 진출했던 것과 달리 현재 이라크에 체류하는 미국인 대부분은 군인들이다. 게다가 미국의 엘리트들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전파하겠다는 열정으로 바그다드에 가는 대신, 음악채널 MTV에서 일하거나 기업의 최고경영책임자(CEO)가 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이밖에 미국의 선거주기가 짧아 ‘식민정책’의 수명이 짧을 수밖에 없는 점도 미국이라는 ‘신제국주의’가 단명할 수밖에 없는 원인이라고 지적됐다.
  
  마이삭은 이 책과 관련, “퍼거슨 교수의 책은 주목할 만하며 풍부한 통계자료를 제시하고 있다”면서 “왜 미국인들은 전쟁에 이기고도 평화를 잃고 내야할 세금은 많아지는지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라”고 말한다.  
    
  
  이승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