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가 보수에게4 변호사 문광영 -> 국회의원 임종석

386이 386에게    

[진보가 보수에게④] 변호사 문광명→국회의원 임종석

퇴근하여 집에 들어오니 막내는 지 엄마 옆에서 쌔근쌔근 자고 있고, 다른 두 놈은 지들 방에서 이불 다 걷어차고 장롱 옆에까지 굴러가 뒹굴고 자고 있습니다. 참, 임의원님의 귀염둥이 동아도 지금 꿈나라를 여행하겠군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만나거나 콩쥐언니하고 놀고 있겠지요. 세월이 많이도 흘렀습니다.  


△저는 386정치인 중 원칙과 소신을 양보하지 않으리라 믿었던 마지막 잎새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밤을 꼬박 넘기고 어슴푸레 동이 터 올 때에야 전대협 중앙상임위원회 회의를 마치고 다시 내려가는 부산, 대구, 광주 동료들을 보면서 구치소가 아니라 학우들이 있는 학교로 무사히 돌아가야 할텐데 하면서 오죽 마음을 졸였습니까. ‘구국의 강철대오 전대협’을 함께 했던 우리들의 20대는 벌써 먼 옛날이 되었고, 이제 임 의원과 저는 불혹의 나이를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구국의 강철대오는 ’2% 당원’와 ‘노빠 당원’으로 갈라지고

그런데 살다 보니 어떻게 나는 ’2%’ 당원, 임 의원은 ‘노빠’ 당원이 되어 있습니다. 이거는 작년에 유행하다 사라진 별명이니 웃자구요. 3월 12일 “이러면 안 됩니다”는 임의원의 오열 소리, 몸싸움 속에 백두 대낮에 겁대가리 없이 작당하여 국민주권을 짓밟아 버린 한민자 3당의 의사당 폭거를 보면서, 정말이지 우리가 21세기에 살면서까지 아직도 저런 지역주의 부패세력의 횡포를 계속 보면서 살아야 하는가 하고 열이 받쳐 그 날 써야할 ‘소장’은 1페이지를 넘기지 못하였습니다. 곧 민심의 심판이 내려지겠지요.

임의원님보다 내가 1년 정도 앞선 1993년에 출소를 하였지요. 전대협이나 교도소에서 내가 만난 사람들 대부분 학생 운동하느라 취업준비는커녕 뒤늦게 졸업학점 채우기도 버거웠습니다. 어떤 이는 졸업을 포기하고 주물공장에 취직했다가 어설픈 프레스작업으로 애꿎은 손가락이 잘려 병원에 누워 있고, 어떤 이는 아파트단지를 돌아다니면서 싸구려 팬티 ‘땡처리’ 행상을 하고 있었으며, 어떤 이는 불안한 수배생활 중에 얻은 병으로 명예도 이름도 없이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민주주의와 조국통일에 혼신을 쏟아 부은 20대가 지나면서 80년대를 살아온 대부분의 사람들이 남겨진 것 없는 무방비 상태로 컴퓨터와 토플이 지배하는 환경에서 다시 생존을 위한 힘겨운 진화투쟁을 해야 했습니다.

밭갈이를 멈추면 순식간에 잡초로 뒤덮인다고 하면서 임 의원이 누군가는 밭갈이를 해야 한다는 심정으로 청년정보문화센터를 설립하여 다시 활발하게 움직일 무렵이었죠. 내가 사법시험에 합격했을 때, 당시 누구보다 기뻐하면서 임 의원은 텅 빈 지갑에 담겨진 몇 푼으로 축하주를 쐈죠.  

’386 의원’들의 이상한 행각과 분노감에 대한 기억들

서로 터널 속에서 헤매지 않고 성실한 자세로 헤쳐나간다는 안도감이 컸죠. 이제 평범한 시민이 되어 민주화를 이뤄냈다는 자부심 하나만을 가슴 한 켠에 간직하고 있을, 바로 우리가 늘 집회장 단상에서 내려보던 수많은 깃발 밑의 이름 없는 선후배들의 대명사로 여겨질 수밖에 없는 학생운동 대표자라는 멍에의 신분을 잊지 않고 임 의원이 나름대로 현실과의 긴장을 유지하려는 모습이 참 좋았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386의 이름으로 정치권에 들어가 광주에서 5.18 전야에 벌어진 불미스런
NHK나이트클럽 사건, 공적인 자리에서 큰절을 올리는 이상한 일, 일관성 없이 철새행각을 벌이거나 도저히 허용될 수 없는 크고 작은 비리에 연루되는 사건을 보기도 했죠. 나는 임의원이 그나마 자세를 꼿꼿이 하여 “휴∼우” 하고 가슴을 쓸어 내리곤 했습니다.  

청와대 386비서관들이 공적인 업무용 헬리콥터에 가족을 동반하여 관광하는 공사분별 없는 작태나 비리연루자들까지 검정양복 차림에 도열하여 5.18묘지를 찾아 광주항쟁의 희생까지 정치적 이미지작업에 동원할 때는 역겹다 못해 분노감마저 일었습니다.  

그때마다 나는 ‘과거의 숭고했던 집합적 기억을 정치자산으로 선점한 당신들이 비틀거리면 어쩔 수 없이 당신들 이름과 얽혀 있는 우리 모두의 진심은 나중에 드러나지도 못한 채 불신 받게 된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혔습니다.  

하루동안 일한 내용과 소요시간을 한시간을 6분 단위로 나눠 근무일지에 적어 제출해야 하는 ‘법률회사(로펌)’에서 일하면서, 한국은 우리가 흔히 단순하게 선동하듯이 단지 수구꼴통들이 무식하게 지배하는 사회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수구세력 퇴출 연대’의 정치공학 폐기돼야

임 의원도 16대 국회에서 사학재단의 부패와 교무행정의 파행을 바로잡고자 사립학교법 개정을 시도하면서 여러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을 청취하고 상당한 시간의 정책연구를 하면서 꼼꼼히 준비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듯 촘촘한 법망, 상당한 노하우가 축적된 산업들과 세계 12위의 발달한 자본주의, 그 속에서 자꾸만 죽어나가는 노동자들과 빈번하게 발생하는 가족동반자살사건.  

불안한 직장마저 잃는 순간 전 가족이 벼랑 끝에 내몰릴 수밖에 없는 야만, 갯벌의 생태적 가치를 포크레인으로 밀어 부치는 개발, 학생의 정보인권이 행정편의에 무릎 꿇리는 개혁정부의 퇴행이 공존하는 대한민국. 저 수구꼴통 한나라당을 정치권에서 퇴출시켜야 한다는 단순한 정치공학만으로는 치유될 수 없다는 것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전에 당시 한나라당, 민주당에 있는 386들이 함께 모여 ‘제3의 힘’을 만들었습니다. “어라, 한나라당하고 잘도 노네”,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정치권의 현실이 또 있었겠지만 솔직히 쓴웃음이 나오더군요. 수구세력의 극복은 선거 때마다 정치공학적 현실론으로 군중들 줄 세우기가 아니라 평소에 의미 있는 정책이나 양보할 수 없는 인권의 가치들을 철저히 지켜갈 때 국민들 속에서 수구세력의 비이성적 논리가 약화됨으로써 비로소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개혁은 이미지로 이룰 수 없고, 수구세력은 바람몰이로 사라지지 않는다고 믿습니다. 명색이 개혁 참여정부에서 침략전쟁을 부인하는 헌법에 위배해 이라크파병을 추진하다니, 도저히 믿기 힘들었습니다. 국민들 대다수가 반대하였습니다. 그때 임 의원은 이라크 파병에 반대하여 의원직 사퇴를 내걸고 단식투쟁을 결행한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파병 반대 단식 이후 그리고 마지막 잎새의 ‘떨어짐’

그런데 수구한나라당의 공조를 받아 대규모 파병이 결정되었습니다. 나는 임 의원을 주시했습니다. 마치 앞선 4.19세대나 김민석씨처럼 민중들의 고난에 찬 투쟁과 소망을 자신의 일회용 정치적 치장을 위해 소품으로 쓰다가 버리는지, 아니면 현실적 입지를 따지지 않고 엄중한 사태에 맞서 양보할 수 없는 가치와 양심을 지켜낼 것인지….

나는 실제로 임 의원은 의원직을 버려 스스로의 명운을 건 약속과 평화를 살려낼 것으로 믿었습니다. 실망스럽게도 후에 약속을 다시 철회하였는지 그저 아무 일 없었던 듯이 지나갔고, 아 임 의원도 김민석과 같이 대권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나보다 짐작했습니다. 아니면 노무현에 이르러 절정에 이른 최신 고감도 미디어정치 기법을 체득한 것으로 체념한 체, 저는 386정치인 중 원칙과 소신을 양보하지 않으리라 믿었던 마지막 잎새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임 의원이 엊그제 텔레비전에 나와 80년대 군사독재정권에 맞선 집합적 기억을 감성적으로 자극하면서 민주수호를 위해 의회쿠데타 세력에 맞서 열린우리당의 지지를 호소하는 선거광고방송을 보았습니다. 한민자는 심판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이 민주주의 하려다가, 인권과 평화를 지키려다가 탄핵사태에 이르렀다면 촛불뿐만 아니라 생업을 중단하고 어미, 아비가 된 40살 아저씨, 아줌마 체면 나이 다 무시하고 뛰쳐나왔을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민주주의 역사, 많은 희생들이 재야인사 또는 보수정치권 386들이라는 불법가설된 전선을 통하여 보수정당으로 방전되어 왔습니다. 임 의원의 선거광고방송을 보면서도 역사의 밧데리는 계속 방전되어 엉뚱한 곳에서 소모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대로 된 경쟁 한번 해봅시다”

최근 임 의원이 소속된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이 표방하듯이 시장친화적인 정당이라 함은 경제자유구역법과 같이 곧 국가가 노동자들에 대한 법적인 보호를 중단하자는 개혁세력의 폭탄선언처럼 들립니다. 자연스럽게 자유무역협정을 통과시키는데 한나라당과 당론 상 이견이 없어진다는 것으로도 여겨집니다.  

달리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나는 한국의 보수세력을 대표하는 선수가 한나라당에서 임 의원의 열린우리당으로 교체되는 커다란 사건이 지금 진행되고 있다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전경련이나 보수계층이 굳이 ‘경상도 자민련’으로 전락할 한나라당에 연연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나는 변화된 17대 국회에서 보수적 여당의 위치를 떠맡을 열린우리당 소속 의원으로서 임 의원이 참 난감할 때가 많겠다고 괜한 걱정도 해봅니다. 아시다시피 민주노동당이 처음으로 원내 진출하여 진보야당이 등장하게 됩니다. 전대협 시절, 임 의원과 내가 지원투쟁을 마다 않던 전노협을 이끌었던 단병호 의장도 임 의원과 함께 의사당에 있게 됩니다.  

임 의원이 초보딱지를 뗄 때 이분들은 진보정당 소속 초보의원으로서 대한민국 서민의 호민관으로, 한반도 평화의 전령으로 나서게 됩니다. 많이 도와주시고, 정책적 경쟁도 빡시게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애들이 커서 깨끗한 환경, 평화로운 나라, 공정한 기회가 보장되고 부당한 차별이 사라진 환경을 일구기 위해 연구하고 경쟁하는 임 의원과 민주노동당 의원들을 생각하면 전대협의 열정이 헛되지 않았음을 느끼게 됩니다.  

민주노동당 당원 문광명

문광명 변호사는 1989년 서울대 총학생회장, 서총련, 전대협(3기) 부의장을 거쳤고, 1990년부터 1993년까지 국가보안법, 집시법 등 위반으로 3년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1996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1999년부터 법무법인 세경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당 인권위원이고, ‘함께하는 시민행동’ 공익소송위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