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생명 산업 이윤 축적의 일반적 구조와 전략 : 의료와 정보기술 융합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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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0년대 이후 지난 140년간 전지구적으로 평균수명이 늘고 사망률이 줄어들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물론 이는 평균적인 것이고 신자유주의가 휘몰아친 1980년대 이후 지역간, 국가간 격차는 오히려 증가하여 사망 불평등은 증가하였다는 주장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지구적으로 평균수명이 향상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와 같이 극적인 사망률 감소가 가능했던 것은 생산력 발전에 따른 소득 증가와 ‘공중위생운동’ 덕분이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드라마틱했던 이 상황에 의료 혹은 생의학이 기여한 바는 극히 적다.

제2차 세계대전 전인 1950년대까지 사망률 감소에 있어 가장 큰 기여를 했던 것은 공중위생운동이다. 소득이 오르고 그에 따라 영양상태가 나아진 것이 주된 이유라는 설명이 최근까지 우세했지만, 다른 역사 연구결과에 따르면 이 역시 사망률 감소에 기여했던 바는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망률이 급격히 감소한 것은 1870년대 이후 공중위생운동이 본격화되면서 하수 처리를 통한 깨끗한 상수도 보급, 더 나은 주거 환경과 오염되지 않은 음식물이 공급되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은 질병에 대한 예방적 접근 수단의 발전에 따른 것이지, 치료 방식의 변화 때문이 아니다.

하지만 1950년대를 전후하여 소위 ‘치료 혁명’이 일어났고, 이 이후 의료와 생의학에 대한 집중적 투자와 발전이 있었다. 하지만 이 시기에 발전한 현대 의료와 생의학의 효과 역시 논란이 있다. 엄청난 규모의 자본과 인력이 투입되었지만 전체 사망률 감소에 기여한 비율은 10~15%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추정된다. 192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 과학 분야의 공공 및 민간 연구개발비는 총 GDP의 0.2%에 불과했고, 생의학 연구는 이 중에서도 지극히 일부를 차지했을 뿐이다. 오늘날 생의학 연구 규모는 상당히 커졌으나, 그로 인한 사회적 효용은 그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자본주의적으로 판단하더라도 비효율과 낭비가 극심하다.

잘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현대의료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발달한 자연과학, 특히 물리학과 화학을 적극적으로 의료와 접목시키면서 효과를 극대화시켜 왔고 몸집을 불려왔다. 하지만 이는 엄밀히 말해 사망률 감소와 같은 ‘순수한’ 의료적 효과보다는 생산력 발전과 이윤 추구라는 가치와 이러한 경향이 합치했기 때문이다. 특히 1980년대 이후 유전학, 생명공학 등과의 결합을 적극적으로 추구하며 이제는 다른 산업에 대한 연관 부문으로서만이 아닌, 독자적 이윤 창출 부문으로서 ‘건강/생명’ 산업으로 부상하기에 이르렀다.

다소 투박하게 정의하면 건강/생명산업이란 ‘질병 치료/예방, 건강 증진, 생명 연장, 삶의 질 향상 등을 위해 사용되는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는 기업들로 이루어진 산업’이다. 이러한 산업 부문은 의료기관, 제약기업, 의료기기기업 등과 같은 전통적 행위자들 외에도 민간의료보험기업, 치료재료 생산 기업, 치료기술 생산 기업 등으로 이루어져 있고, 광의의 의미로 보면 식품기업, 화장품 등 미용 관련 기업까지 포함한다고 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러한 건강/생명산업은 독자적 이윤을 창출하고 이윤율을 극대화하기 위해 각종 과학기술과의 융합을 적극적으로 시도하여 왔고, 이제는 물리학, 화학, 유전학, 생명공학과 더불어 나노기술, 줄기세포기술, 정보통신기술 등 소위 ‘첨단기술’과의 융합을 적극적으로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여느 과학기술 영역과 마찬가지로 의료와 이러한 첨단과학기술의 융합 역시, 그 효용의 크기보다는 이윤 창출의 크기 및 가능성의 관점에서 취사·선택되어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이 글에서는 이러한 융합 중 최근 들어 활발해지고 있는 의료와 정보통신기술의 융합에 초점을 맞추어, 그러한 융합이 시도되는 범위와 영역을 개괄하고, 의료와 정보통신기술 융합 드라이브의 주된 동력이 무엇인지를 밝힌 다음, 의료와 정보통신기술 융합의 현장에 시민사회와 노동운동이 개입해야 할 필요성을 역설하고자 한다.

의료와 정보통신기술의 융합, 그 범위와 영역

의료와 정보통신기술이 융합되는 영역은 서비스 대상이 환자냐 건강인이냐에 따라 두 가지로 나뉘고, 서비스 방식에 따라 네 가지로 분류된다.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의료서비스냐 건강인을 대상으로 하는 질병 예방 및 건강관리 서비스냐에 따라 두 가지 구분이 존재한다.

그리고 서비스 방식에 따라, 첫째, 환자/건강인과 의료/건강관리 서비스 공급자 사이의 상호작용을 위한 영역이 있다. 이는 이른바 ‘원격진료’, ‘원격의료’, ‘원격건강관리’ 라고도 불리는 영역이다. 환자의 진단, 상담, 치료 과정에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환자들의 생체정보를 모니터링하는 기술, 그렇게 모니터링된 정보를 전송하는 기술, 그에 따라 적절한 처방과 지시를 의료인이 환자에게 전달하는 기술, 환자와 의료인간 상호 소통을 도와주는 기술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이에는 불특정 다수의 의료인과 환자가 서로 소통하는 체계인 의료정보 포탈 등도 포함된다.

둘째는 의료기관 혹은 건강관리 서비스기관간 정보 교환 및 전달을 위한 기술이다. 이는 환자 혹은 건강인의 의료 혹은 생체정보를 표준화된 방식으로 디지털화하여, 서로 다른 기관간에 공유하고 소통을 증진시키기 위한 기술의 영역이다. 전자의무기록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셋째는 환자간 혹은 건강인간 상호 소통을 위한 영역이다. 이는 의료/건강 정보 네트워크 및 정보 포탈 등이 해당된다.

넷째는 의료인간 상호 소통을 위한 영역이다. 각종 검사나 생체정보를 디지털화하여 전송하고 이를 공유하는 시스템과 더불어 원격 교육, 원격 의료 자문 등의 영역이 여기에 속한다.

이러한 의료와 정보통신기술과의 융합을 통한 새로운 의료/건강 서비스 모델을 창출하려는 노력은 미국에서 가장 활발하고 최근 들어 일본, 영국, 호주 등에서도 그러한 시도가 진행되고 있다. 한국도 발전한 정보통신기술 인프라를 여기에 접목시키려는 노력이 2000년대 중반부터 지속되고 있다.

이 중 의료와 정보통신기술 영역 모두 역점을 두고 추진하고 있는 부분은 전자의무기록, 원격의료, 원격건강관리서비스,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한 의료/건강정보 신상품 개발 등의 영역이다.

전자의무기록은 의료기관에 존재하는 방대한 양의 의료/건강 정보를 표준화, 디지털화하여 집적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의료 시스템 자체를 규격화, 표준화하려는 시도와 더불어 진행되고 있다. 초창기에는 개별화된 의료/건강 정보에 대한 공유 및 소통의 중요성, 이용자의 편의 등을 내세우며 도입되었지만, 의료/건강 정보의 특성상 표준화되거나 디지털화하는데 있어서의 한계, 의료/건강 정보 보안 문제 및 정보 유출에 따른 사생활 침해의 가능성, 이를 매개로 의료기관의 구조조정이 이루어거나 노동강도 강화 및 노동통제가 이루어지는 것에 대한 반발 등으로 미국을 제외한 각국에서 여러 가지 반발에 직면해 발전이 더뎌지고 있다.

원격의료는 주로 의료인의 수가 부족하거나 의료서비스의 가격이 비싸 접근성이 문제가 되는 미국, 제3세계 등에서 적극적으로 도입이 시도되고 있다. 더불어 고혈압, 당뇨병과 같은 만성질환이나 노인성 질환을 관리하기 위한 방식으로 검토되고 있다. 이는 물리적 거리와 잦은 의료기관 방문으로 인한 비용을 절감하기 위한 방편으로 시도되고 있다. 상시적으로 환자의 의료/건강 정보를 모니터링하여 그 정보를 의료기관 혹은 의료인에 전송하고 그 결과에 따라 의료인은 적절한 처치를 원격으로 전달하고 꼭 필요한 경우에만 의료기관에 방문하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서비스 역시 아직까지 그 효과가 증명된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영국의 경우처럼 보편적 의료서비스 제공을 기반에 깔고 일부 사례에 대해 그것에 부가적으로 이를 활용했을 경우 효과가 있는 것이 보고되었지만, 이마저도 비용대비 효과는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기존에 존재하는 직접 대면에 의한 환자-의사 관계에 의한 의료 및 진료를 대체하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기기 오작동 및 전력 문제로 인한 정보 손실 및 소통 왜곡 등으로 발생할 수 있는 안전성 및 안정성 문제도 늘 지적되고 있다.

원격 건강관리서비스 영역은 아직까지 널리 상용화되고 있지는 않지만, 그 확장성과 상품성에 대해서는 더 많은 장밋빛 전망이 제출되고 있다. 이는 기본적으로 ‘건강한 사람을 더욱 건강하게’ 만들기 위한 목적으로 현재도 이루어지고 있는 각종 상담, 교육, 운동처방, 식단관리, 생활습관 교정 등의 서비스에 정보통신기술을 접목하여, 보다 대규모로 보다 표준화된 방식으로 이를 상품화하려는 전략이다. 일상생활 중에 생체정보를 모니터링 하는 기술을 바탕으로 집적된 건강/생체 정보에 근거하여 상담, 교육, 운동, 생활습관 교정 등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증가하는 의료비를 절감하기 위한 목적으로 기업 차원에서 민간의료보험회사와 더불어 이러한 서비스를 실시하는 경우가 늘고 있고, 한국에서도 이러한 경향을 모방하려 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건강’ 혹은 ‘웰빙’을 매개로 한 과도한 생활세계의 식민화라는 비판과 더불어 원격 의료와 마찬가지로 그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발달한 의료/건강 정보 확인 및 진단 기술을 바탕으로 이러한 정보를 취득하여 제공하는 것으로 새로운 상품을 개발하는 영역 역시 활성화되고 있다. 이는 의료기관을 매개하기도 하고 독자적인 실험실 혹은 진단실을 통해 이루어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유전자 검사, 고가의 영상진단 장비 검사 등을 해주고 이에 대해 별도의 돈을 받고 파는 일들이 많아지고 있다. 언뜻 보면 이는 정보통신기술과 관련되어 있지 않아 보이기도 하지만, 이러한 상품 수요에 대한 마케팅과 홍보, 정보 전달이 주로 온라인 등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측면에서 간접적으로 정보통신기술과 관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건강/생체 정보는 아직까지 의료적으로 그 의미가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검사 과정에서 오히려 건강에 해가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적극적인 규제가 필요한 영역임에도 불구하고 점점 더 그 시장은 넓어져 가는 실정이다.

건강/생명 산업 이윤 축적의 일반적 구조와 전략

효과에 대한 의문과 더불어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지속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료와 정보통신기술의 융합이 적극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서는 건강/생명 산업의 일반적 생산력 발전의 경로와 이윤 추구의 경향과 방식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1960년대 이후로 OECD 국가의 의료비 지출은 지속적으로 증가해 왔다. 그 결과 1960년대에 GDP 대비 4% 수준이던 의료비 지출이 2010년에는 10%에 달했다. 이는 대락 42조 달러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규모다. 한국의 GDP 규모가 1조 달러 규모인 것을 감안하면 한국 전체의 GDP 규모의 42배에 달하는 액수가 매년 OECD 국가에서만 의료비로 지출되고 있다. 이 중 미국에서만 2010년 한 해에 약 2조 5천억 달러가 의료비로 지출되었다.

1980년대 이후 병원과 제약기업이 매출과 생산을 늘릴 수 있었던 주된 원동력은 물리, 화학기술과의 접목을 통한 진단 및 영상기술의 발전, 신약 개발 등이었다. 병원과 제약기업은 신기술을 적극적으로 자신의 산업 부문에 접목시킴과 동시에, 그것을 통한 이윤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방안을 사회적으로 고안해 냄으로써 지속적으로 초과 이윤을 창출해 왔다.

그것은 연구개발, 특허, 전매, 독과점, 상업적 의료서비스 제공 등의 일련의 과정을 한 축으로 엮는 과정이었다. 건강과 생명을 위한 것이라는 명목으로 연구개발 시에는 대규모 공적 자금으로 연구를 진행한 후, 성과가 나타나면 그것을 특허란 형태로 사적으로 전유하여 이를 통해 초과이윤을 달성해온 것은 비단 제약기업만이 아니다. 각종 의료기기 및 진단시약 등도 같은 과정을 통해 사유화되고 전유되었다.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 사유화되고 전유된 과학기술은 상품 생산 이후 소비의 과정에도 독특한 방식으로 개입하여 대량생산과 소비의 순환 구조를 만들었다. 상품을 만들어내도 사용하는 이들이 없다면 이윤 축적은 어려울 수 있다. 의료의 특성상 상품 구매 결정에 있어 소비자 혹은 환자보다 더 큰 영향을 가지고 있는 행위자가 있으니 바로 의료인과 정부다. 이에 의료인들에게는 각종 경제적 인센티브과 학술적 동기 부여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정부에게는 보험 및 정부 지출 적용 결정 과정이나 보험가격 및 전매 가격을 결정하는 과정에 개입하여 영향을 행사하는 방식으로 상품 소비를 촉진했다. 제약기업 등 건강/생명 관련 기업의 마케팅 비용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클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의료 영역의 특성상 상품 구매/소비에서 정부/의료인의 역할이 결정적이지만 이들은 소비자/환자에게도 적절한 영향을 미치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각종 환자단체의 스폰서를 자임하고, 어떨 때는 환자의 자기 결정권 및 선택권을 강조하며 정부/의료인의 결정에 반기를 들라고 부추기는 것 역시 이러한 기업들의 잘 알려진 마케팅 전술이다.

이들의 이윤 창출 전략은 매우 유연하고도 실용적이다. 이들은 자신을 규제하는 정책이 도입되지 못하도록 하거나 있는 규제를 완화하려 노력하기는 하지만, 그것에 목매지는 않는다. 오히려 있는 규제와 제도를 적극 활용하여 자신에게 이로운 구조를 만드는데 천부적인 재능을 발휘한다. 보험제도, 전매제도, 의약품 허가 및 가격 결정 제도 등에 관련 기업이 어떻게 개입하고 이를 활용하여 자신의 이해를 관철시키는지는 별도의 논의가 필요하지만, 여하간 그러한 제도를 활용하여 제도의 빈 곳 혹은 제도의 약한 고리를 통해 자신의 이윤을 극대화 하는 전략을 구사해 왔다. 더불어 ‘혁신과 발전에 장애가 되는 규제’ 혹은 ‘의료의 질 향상에 방해가 되는 규제’로 공격하며 관련 규제를 무력화시키거나 신규 규제 도입을 막아왔다. 자신의 이윤 추구를 사회 및 과학기술 발전, 환자의 이해관계 등과 등치시키고, 자신의 이윤 추구에 제동을 걸려는 세력을 과학기술 발전을 거부하는 수구 보수세력, 환자의 이해에 반하는 세력으로 규정짓고 약화시키는 전술 역시 흔히 쓰는 방식 중 하나다. 하지만 이와 같은 상황이 폭로되어 기업에 대한 비판이 강해지면 바로 고개를 숙이고 거액의 후원금을 내놓아 비판을 잠재우거나, 비판의 화살이 의료인이나 정부쪽으로 향하도록 교묘히 비트는 등 사회 여론에도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언뜻 보아 이해되지 않는 이와 같은 상황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이유는 건강/생명 산업이 다루는 ‘건강’ 혹은 ‘생명’이라는 가치가 가지는 특수성 때문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다른 재화나 서비스도 광고나 마케팅에 의해 소비를 극대화시킬 수 있지만, 건강/생명 영역은 그 한계를 무한대로 확장할 수 있는 특성이 있다. 얼마나 건강해야 하고 얼마나 오래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개인마다 기준이 다를뿐더러 그것에 대한 기준을 사회적으로 결정하여 강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더 건강하게 더 오래 살기를 원하는 이들의 요구는 늘 있게 마련이고, 이러한 요구에 부응하기 위한 상품 개발 및 생산의 동력은 끊임없이 재생산될 수 있다.

또한 의료의 특성상, 개인의 신체적 상태나 변화를 의료적 개입이 필요한 것으로 얼마든지 새롭게 규정하고 개입할 수 있다는 것 역시, 건강/생명산업이 끊임없이 발전할 수 있게 하는 기폭제가 된다. 새로운 질병을 명명하고 이전에는 치료가 필요하지 않던 상태를 치료가 필요한 상태로 만들면서 의료기관과 약품의 역할을 증가시켜 온 것이다. 여성의 몸의 자연스러운 과정인 임신, 출산, 폐경을 의료화하여 의학적 개입이 필요한 영역으로 만들어 온 과정이나, ‘하지불안 증후군’, ‘과잉행동주의력결핍장애’라는 새로운 환자를 양산하는 과정, 그리고 기존 질환 진단의 기준을 더 엄격하게 하여 더 빨리, 더 광범위하게 약물 치료나 의료적 처치가 필요한 상태로 만드는 과정 등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한편, 건강권을 개인의 기본적 권리로 주장하며 그러한 서비스를 원하는 개인들이 있다는 논리로 위와 같은 상황을 얼마든지 정당화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이에 대한 대응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다. 이윤만을 추구하는 기업이 개인의 건강권 내지는 선택권을 주장하며 얼마든지 과다한 이윤 창출에 대한 비판을 비껴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방식으로 무한정 증가할 것으로 생각된 의료비 증가의 속도는 미국, 한국 등 일부 국가를 제외한 대부분의 OECD 국가에서 둔화되고 있다. 이는 일정 정도 정부의 개입 때문이기도 하지만 의료 관련 자본 자체의 성장률 둔화도 한몫했다고 볼 수 있다. 의료비는 병원 진료비, 약제비, 노인요양 서비스비, 예방 및 건강증진을 위한 비용, 의료관련 인프라 투자비용 등이 포함되는데, 이 중 의료기관 서비스 및 의약품 매출과 관련된 영역에서 의료비 증가 속도가 둔화되고 있다.

이는 정부 규제가 엄격한 유럽 여러 나라의 경우 경제성장률 둔화로 의료비 지출을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규제를 더욱 엄격히 한 까닭이지만, 미국 등의 경우 의료기관간 혹은 제약자본간 경쟁이 극심해짐에 따라 그에 따른 비효율이 발생한 결과이기도 하다. 더불어, 제약기업의 경우 최근 대부분의 신약들이 특허가 만료되고 있는데 반해 새로운 신약 개발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상황도 한 몫 하고 있다. 미국의 병원과 제약기업은 이러한 과당경쟁으로 인한 비효율을 적극적인 기업간 인수합병, 비용절감 노력 등으로 헤쳐 나가고 있지만, 상황이 그리 녹록치만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새로운 시장 창출을 통한 초과 이윤 달성을 위해 나노기술, 유전자학, 줄기세포 등 생명공학기술, 정보통신기술이 적극적으로 의료에 접목되고 있고, 정보통신기술의 경우 의료서비스 생산 과정을 합리화하고 표준화, 규격화하여 이윤율을 높일 수 있다는 측면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도입되고 있다.

의료와 정보통신기술 융합의 동력

다른 신기술 혹은 첨단기술과는 달리, 정보통신기술은 자기만의 별도의 시장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최근 의료와 융합되고 있는 다른 영역과 차이가 있다. 다시 말해, 이 융합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기만 한다면 그 시장 확대 가능성이 증폭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보통신기술 영역에서도 현재 망 산업 등 인프라 관련 산업 외에 개인 소비 시장에서 활성화되고 있는 것은 개인 통신 혹은 미디어 영역에 한정되어 있다. 그런데, 이것에 더해 의료 혹은 건강 생활에도 이러한 서비스 영역이 접목될 수 있는 시장을 만든다면 그 시장 규모가 더욱 커질 것을 기대하고 있다. 의료 영역에서도 단순히 환자에 대한 치료 서비스를 넘어 건강인들을 더욱 건강하게 만드는 새로운 시장이 창출되는 기회가 제공된다. 기존에 존재하지 않던 서비스 수요 계층을 새롭게 창출할 수 있는 것이다.

이에 한국의 경우만 보더라도 KT, LG, SK 등 망산업 및 휴대용 기기 생산 기업들 모두가 이러한 서비스 모델을 개발하고자 혈안이 되어 있다. 더불어 이들 기업은 아산병원, 삼성병원,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서울성모병원 등 이른 바 한국의 빅5 병원과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있고, 정부 재정으로 진행하는 지역사회 서비스 모델 역시 눈독을 들이고 있다. 해당 기업 입장에서는 망을 깔고 관련된 정보통신기기를 팔 수 있을 뿐 아니라 관련 소프트웨어를 통한 추가 이윤까지 기대할 수 있다. 병원 등 의료기관 입장에서는 새로운 서비스 모델과 시장으로 인해 신규 수요가 창출되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의료기관 입장에서는 이와는 별도로 정보통신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려는 동기가 형성되어 있다. 이는 의료기관 서비스를 표준화, 규격화, 기계화하기 위해 이러한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의료기관 서비스를 표준화, 규격화, 기계화하려는 시도는 의료의 다양성을 줄여 질 향상을 꾀하려 진행되고 있다. 테일러리즘적으로 규격화되고 기계화되어 투입과 생산에 따른 이윤이 창출이 예측 가능한 시스템과 병원 현장은 거리가 멀다. 환자는 기계의 부품이 아니기에 표준화되기 힘들고, 사람인 의료인에 의해 행해지는 의료 행위 역시 단순화되고 규격화되기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이윤을 더욱 극대화시키려는 요구는 관철되어 병원 현장도 제조업 생산 공장처럼 표준화, 규격화, 기계화되어 가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이런 것이 가능하도록 하는데 정보통신기술이 꼭 필요하다.

정보통신기술에 의해 가능하게 된 전자의무기록, 전사적자원관리 시스템, 진단 및 치료기술의 기계화는 점점 더 병원을 흡사 공장과 같은 환경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자본 입장에서는 이러한 상황은 이중의 효과를 낳는다. 표준화, 규격화, 기계화에 따른 생산의 합리화에 따른 이득과 별개로, 중앙집중적인 노동 통제가 가능해 짐과 동시에 병원 노동자의 노동 강도를 높이고 노동자에 대한 의존도를 낮춘다.

이와 같이 병원 자본이나 정보통신기술 관련 자본 모두 서로가 윈-윈하는 전략이고, 병원 자본 입장에서는 꿩 먹고 알 먹는 계기이기에 의료와 정보통신기술과의 결합은 적극적으로 추동되고 있고, 특히 한국의 경우 두 자본의 발전 정도와 성장 잠재력이 세계적 수준이라는 특수성과 맞물려 더욱 강하게 추진되고 있다.

시민사회 및 노동운동이 개입해야 할 필요성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윤 추구 과정에서 일정한 한계에 다다른 건강/생명 산업은 신기술, 첨단기술과의 접목을 통해 이러한 난관을 극복하려 애쓰고 있고, 그러한 ‘신세계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추진되고 있는 것이 의료와 정보통신기술의 융합이다.

의료와 정보통신기술의 융합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특정 과학기술 활용 자체가 문제라거나 의료에 있어 새로운 과학기술의 접목을 문제 삼는 전략은 부적절하다. 의료와 정보통신기술의 융합 역시 필요한 부분이 있고 효과적인 부분이 있다. 예를 들어 제1세계 의료인과 제3세계 의료인 간 정보통신기술을 이용한 교육과 정보 전달 등은 효과적이기도 하고 불평등을 완화시킬 수도 있다. 앞서 언급했던 바와 같이 보편적 의료서비스 제공이 전제된 상태에서 부가적으로 제공하는 원격 의료서비스가 만성질환이나 노인성질환 관리에 유용할 수도 있다. 일부 영역에서 전산화된 의료 정보는 의료인간 상호 소통을 증진시켜 환자 치료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문제는 이윤 중심의 접근이다. 의료와 정보통신기술의 융합을 효과의 측면에서 바라보지 않고, 새로운 시장 창출이나 이윤 창출 가능성의 측면에서만 보고 접근하는 자본의 단견이 문제다. 이윤만을 목적으로 이러한 융합이 이루어진다면 의료적 효과는 없지만 개인 효용을 증대시키기 위한 허구적 사용가치를 창출에 이러한 융합 기술이 쓰일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침해당하고 안전과 건강이 위협당할 수도 있다. 이윤만을 위해 이러한 융합이 이루어진다면 환자를 단순화하고 표준화하여 기계의 부품처럼 취급하고, 전산화, 기계화된 과정을 통해 의료서비스를 전달하게 함으로써 병원 노동자의 노동 강도가 강화되고 노동 통제가 심해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을 막기 위해 시민사회 및 노동운동이 의료와 정보통신기술의 융합 과정에 개입하여 통제력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이상윤(연구공동체 건강과대안 책임연구원)

* 글 전문은 연구공동체 건강과대안 홈페이지를 참고하세요. http://www.chsc.or.kr/xe/?document_srl=11222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