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지난달 23일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의료 민영화 정책 폐기와 진주의료원 재개원을 촉구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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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답으로 풀어본 쟁점들
의료 영리자회사 들어서면
정부 “자회사만 영리 속성 지녀”
의사들 “외부 투자자본 압력에
자회사 제품 권장해 의료비 폭등”
자회사 상품 환자가 거부할 수 있을까
정부 “환자가 합리적 선택 하면 돼”
시민단체 “의사권고 누가 거부할까”
의사들 “양심팔며 의료기기 못팔아”
신약·새 의료기기 환자에 이득 있나
정부 “환자들 새 기술 치료 빨라져”
의료단체 “부작용 검증 안됐는데
환자에 비싼 임상시험 하는 꼴”
영리법인약국 허용 영향은
정부 “약국 경영 효율화” 주장에
약사 “법인약국 허용한 노르웨이
약값 뛰고 동네약국 사라져”
정부가 의료법인의 영리 자회사 허용 등을 담은 투자활성화 대책을 내놓은 뒤 ‘의료 민영화(영리화)’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정부는 의료법인의 경영 악화를 막기 위한 조처일 뿐이라고 하지만, 이를 위해 자회사를 설립해 영리 활동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의료비 폭등이나 진료 부실 등의 피해가 나타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는 게 보건의료 관련 단체들의 주장이다. 이 과정에서 의료의 공공성이 근간부터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관련 쟁점을 문답 형식으로 정리해본다.
Q: 병원 등 의료기관의 수지를 맞추기 위해서는 영리 자회사를 세워 돈을 벌 수 있도록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A: 정부는 현재 병원이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부대사업의 범위가 지나치게 제한돼 있어 의료 연관 산업이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의료법인이 자회사를 설립해 할 수 있는 부대사업의 종류를 건강식품·화장품 판매, 온천·숙박업 등 영리사업으로 크게 늘리겠다는 것이다. 이런 수익이 경영 개선 및 새로운 일자리 창출로 이어진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의료법인의 설립 주체는 여전히 비영리 법인이기 때문에 ‘영리화’는 아니라고 한다.
보건의료 시민단체 쪽은 이런 해결책이 결국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격’이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영리 자회사의 부대사업이란 게 ‘배보다 더 큰 배꼽’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정형준 무상의료운동본부 정책위원장은 “정부 발표대로 진료에서 수익을 보지 못한다고 하면, 의료법인은 진료보다는 수익을 크게 남기는 부대사업에 열을 올리게 될 것이다. 게다가 자회사에 투자된 외부 자본 역시 병원이 수익을 내기 위해 몰두하도록 압력을 넣을 것이다. 화장품이나 의료기기를 파는 부대사업을 하는 병원이 환자들에게 이를 사실상 강매하게 돼 환자들의 의료비 부담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 병상이나 고가의 검사 장비가 과잉 공급돼 있을 정도로 심각하게 왜곡된 한국의 의료 현실에서 영리 자회사와 같은 해결책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권장하는 해법에도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은 “2013년 오이시디 보건의료 자료를 보면 인구 1000명당 병상 수는 우리나라가 9.6개로 오이시디 평균인 5개의 거의 2배에 이르고, 국민의료비 증가율은 우리나라가 2000~2011년 한해 평균 9.1%로 오이시디 평균 4.1%에 견줘 2배가 넘는다. 이 수치들은 오이시디 최고 수준이다. 오이시디 보고서에서도 과잉 공급된 병상과 각종 고가의 검사 장비를 줄이라고 권고하고 있다. 이처럼 과잉 공급된 병원의 경영 상태를 환자의 호주머니를 터는 방식으로 만회하라는 것은 비상식적인 일이다”라고 말했다.
Q: 이번 조처로 의료비 부담이 크게 올라간다는 건 괴담 아닌가? 영리 자회사의 각종 상품을 환자가 거부하면 되는 것 아닌가?
A: 병원의 자회사가 아무리 건강식품이나 화장품, 의료기기나 약 등을 더 팔고 싶어도 환자들이 이를 거부하면 문제가 크지 않을 수 있다. 예를 들어 피부과에서 아토피 치료를 받는 환자가 일상생활에서는 아토피 치료에 좋다는 로션이나 화장품을 쓰는데, 이를 병원의 자회사에서 바로 구매하면 더 편한 것 아니냐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물론 이를 구입하기 싫으면 다른 곳에서 사도 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환자가 이를 거부하는 게 불가능에 가깝다는 게 시민단체의 지적이다. 박용덕 건강세상네트워크 정책위원은 “아토피 치료에 좋다고 의사가 권하는 연고나 화장품을 사지 않을 환자가 어디에 있겠나. 현재 의사가 처방하는 검사나 권하는 수술을 거부할 수 없는 것처럼, 병원이 수익을 내고자 만든 자회사에서 권하는 상품 역시 더 많이 사면 샀지 거부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의사들도 이렇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송형곤 대한의사협회 대변인은 “의사들은 자신의 존재 이유인 진료에 전념하고 싶지, 자신의 양심을 팔아 아직 의학적인 근거도 충분하지 않은 화장품이나 의료기기를 팔거나 온천 치료 등을 권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Q: 이번 투자 활성화 대책을 보면, 신약의 건강보험 적용 과정을 간소화하거나 새 의료기기의 허가 일정을 단축한다고 한다. 환자에게 이득 되는 것 아닌가?
A: 관련 전문가들은 이전에 나온 약이나 의료기기에 견줘 신약이나 새 의료기기의 효과가 더 좋다는 근거도 없는 상태에서 단지 신약이고 새 의료기기이기 때문에 환자들이 사용하게 되고 그로 인해 의료비 부담이 크게 올라가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환자가 수천만원을 내야 하는 로봇 수술의 경우 기존의 수술법에 견줘 비용이나 효과 측면에서 더 낫다는 의학적인 근거가 없지만 현실에서는 엄청나게 쓰이고 있다. 참고로 로봇 수술을 하게 되면 수술 비용은 부위에 따라 500만~3000만원가량이며, 이는 기존 수술 비용의 4~5배에 해당한다. 하지만 새 의료기술을 평가하는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의 연구 결과로는 수술 뒤 생존율, 재발이나 합병증 발생 가능성 등에서 로봇 수술이 기존의 개복 혹은 내시경 수술 등에 견줘 더 낫다는 근거는 없다.
우석균 정책실장은 “신약이나 새 의료기기의 경우 비용도 문제지만, 합병증이나 부작용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환자에게 적용돼 더 큰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 더 큰 문제다. 신약이나 새 의료기기를 만드는 대형 회사를 위해 환자들을 대상으로 값비싼 치료비를 내게 하면서 임상시험을 하는 격”이라고 비판한다.
Q: 기존에 약사 개인만 약국을 열 수 있게 하던 데서 나아가 법인도 약국을 만들게 하면 대형약국에 약사들이 여러 명 근무하면서 휴일에나 야간에도 교대근무가 가능해져 환자들이 더 편리해지지 않나?
A: 정부는 영리 법인약국 허용으로 대형약국이 생기면서 환자들의 편의가 좋아질 것이라고 하지만 약사들은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우선 외국 사례에서도 영리 법인약국의 폐해는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는 것이다. 박석동 대한약사회 부회장은 “2000년대 초반에 영리 법인약국을 허용한 노르웨이의 경우 10년 만에 3개 법인이 전체 약국의 85%를 점유했다. 그사이 법인약국만 거대해지면서 동네약국이 사라졌으나 정부의 기대대로 의약품 가격은 낮아지지 않았다. 또 약국에서 경영 효율성이 강조되면서 인건비를 낮추기 위해 약국당 평균 근무자 수는 오히려 이전보다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환자들의 약국 이용이 편리해지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경영이 어려운 동네약국이 더 망하게 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법인약국의 약사가 약의 효능이나 효과를 따지기보다는 제약사가 더 많은 이윤을 보장하는 약을 환자들에게 권하고 파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 돼, 제약사의 리베이트 영업 관행이 더 기승을 부리게 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는 결국 약값의 상승으로 이어져 환자 및 건강보험 재정에 모두 부담을 주게 된다는 결론이다.
Q: 환자가 내는 비용이 더 올라가겠으나, 이것만으로 의료 민영화라고 부를 수는 없지 않나?
A: 정부는 절대 의료 민영화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이창준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과장은 “의료법인 병원의 소유 주체는 그대로 비영리법인이고 단지 부대사업을 하는 자회사만 영리 속성을 지닌다. 공공병원이 민간병원이 되거나 건강보험이 민간보험으로 대체되는 것이 아니므로 의료 민영화라는 말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시민단체들은 결과적으로 형식상의 민영화보다 더 심한 ‘내용상의 민영화’ 결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우려한다. 정형준 무상의료운동본부 정책위원장은 “영리병원 허용보다 더 큰 문제는 병원에서 외부 자본을 투자받은 자회사를 만들어 수익을 내는 부대사업을 해도 환자 입장에서는 병원이 하는 사업이라고 생각해 더 믿고 이를 구매한다는 것이다. 결국 소유 주체만 비영리법인이지 실제로는 수익을 남기는 부대사업에 열중하게 돼 내용상으로는 더 심각한 민영화”라고 말했다.
또 병원 자회사들이 영리사업으로 판매하게 될 화장품이나 의료기기에 대해서는 건강보험 혜택이 없기 때문에, 환자들이 병원에 가서 써야 하는 돈은 큰 폭으로 늘어나지만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부분은 크게 적어지는 결과가 된다. 국민들은 지금보다 더 많은 민간보험에 가입하게 되고 의료 공공성은 더욱 훼손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이는 결과적으로 의료체계의 민영화를 강화하게 된다는 것이다.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himtra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