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법인 자법인 허용, 의료민영화 때문일까?
의료민영화 이슈가 뜨겁다. 최근 정부는 의료법인의 자법인 설립을 허용하고 자법인이 할 수 있는 부대사업의 종류를 늘리는 내용의 투자 활성화 정책을 발표했다. 이를 통해 더 나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정부의 시각에 동의하지 않으며, 이 정책이 의료기관의 영리화를 가속하고 결국에는 의료가 민영화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그러나 이 우려에는 어폐가 있다. 한국 의료기관의 약 5%만이 국가 또는 지자체가 운영하는 공공의료기관이다. 병원급 의료기관도 딱히 사정이 다르지 않아서, 병상의 약 10%만을 공공의료기관에서 책임지고 있다. 나머지 의료기관은 모두 민간에서 운영한다. 즉, 다시 말해, 한국 의료는 이미 민영화됐다.
의료민영화는 없다. 왜냐하면 이미 민영화됐으니까.
(사진: phalinn CC BY)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공성 지킬 수 있는 이유
이처럼 한국의 의료는 거의 전적으로 민간에서 운영을 책임지고 있으며, 그 민간 병의원끼리의 경쟁도 자유롭게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료의 공공성은 매우 높은 수준으로 실현되고 있는데, 이를 유지하기 위한 장치가 몇 가지 있다.
1. 전 국민 건강보험 및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모든 국민은 국가가 운영하는 건강보험에 가입하며, 모든 의료기관은 의무적으로 이들을 진료하고 그 진료비를 국가가 정한 바에 따라 국가에 청구하여야 한다.
이를 통해 민간에서 운영하는 의료기관의 의료행위를 국가에서 통제할 수 있다. 정부는 어떤 의료행위에 얼마의 진료비를 받을 것인지, 어떤 질병에 어떤 의료행위가 적절한지를 정한다. 그리고 의료기관이 어떤 질병에 어떤 진료를 했는지 알리면, 국가는 그 진료의 적절성을 심사하고 평가하여 진료비를 지급한다.
2. 의료기관 개설 자격의 제한
의료기관은 국가와 지자체, 준정부기관을 제외하면 오직 의료인과 의료법인 또는 비영리법인만 설립할 수 있다.
여기에 개천에서 용 난 가난한 의사 ‘닥터 후’ 씨가 있다고 해 보자. 그에겐 의료기관을 개설할 만한 돈이 없다. 이에 등장한 엔젤 투자자 ‘우는 천사’ 씨가 자신이 의료기관을 설립할 돈을 투자하겠다고 제안한다. 그러나 ‘닥터 후’ 씨는 ‘우는 천사’ 씨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닥터 후’ 씨가 알아서 개설해야 한다.
일견 비합리적으로 보이지만, 이를 통해 자본이 의료기관을 지배하고, 수익을 추구하거나 그 이익을 자본가에게 다시 돌려주는 일을 막을 수 있다.
3. 의료법인의 영리 목적 행위 금지
의료법인은 병원 운영과 관련된 일부 부대사업만을 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한 수익은 의료기관에 재투자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병원이 의료행위 그 자체보다 이익사업 위주로 운영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사업의 종류 자체가 연구나 의료인 양성, 복지시설이나 장례식장, 주차장이나 음식점 영업 등 병원 운영상의 부대사업으로 명백히 제한되어 있을 뿐 아니라, 그로부터 일정 수준 이상의 수익을 거둔다 해도 이것이 누군가의 사익으로 이용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나라가 ‘의료공공성’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가 있다.
(Contando Estrelas, CC BY SA)
건강보험 문제: 비정상을 비정상으로 틀어막기
그런데 의료의 공공성을 지키기 위한 이 세 가지 제도 중, 건강보험에 가장 먼저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대체 무슨 균열이 생겼다는 것일까? 사실 일반 대중 입장에서 한국의 건강보험은 대단히 훌륭한 제도처럼 보인다. 국가의 통제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주머니에서 나가는 의료비(이를 환자 본인이 부담하는 비용이라는 뜻에서 ‘본인부담금’이라 한다)는 매우 적다. 반면 의료기관을 민간이 운영하며 의료기관끼리의 무한 경쟁이 끊임없이 이뤄지기 때문에 의료서비스의 질은 대단히 훌륭하다. 어쩌면 민영화 모델의 가장 모범적인 사례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의료비가 너무 적은 나머지, 의료수가의 원가보전율이 70% 수준으로 추산되고 있다(의협, 심평원 보고서 인용). 정부가 정한 진료비가 실제 의료행위에 드는 원가의 70%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정상적으로 진료하고 정상적으로 국가로부터 진료비를 받으면, 의료기관은 그 어떤 경영상의 묘를 발휘하더라도 무조건 적자가 난다. 비정상적인 구조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비정상적인 구조에도 불구하고 의료계가 유지될 수 있었으며, 심지어 의사들은 사회 평균 이상의 고소득을 올릴 수 있었는가? 이견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많은 보건의료 관계자들은 이것이 의료 시장의 비정상적인 관행 덕분이라고 이야기한다.
의료공공성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 시작점은 ‘건강보험’이다.
(사진: howzey, CC BY NC ND)
1. 박리다매
흔히 말하는 ’3분 진료’ ’5분 진료’가 바로 이것이다. 한정된 시간 동안 한 사람의 의사가 최대한 많은 환자를 봄으로써, 원가 중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인건비를 비정상적으로 아끼는 것이다. 박리다매뿐 아니라, 일반의와 전공의, 즉 인턴과 레지던트가 겪는 – 산업혁명기 착취를 연상케 하는 고강도 노동 역시 이런 인건비 절감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한국의 국민 1인당 의사에게 외래진찰을 받은 횟수는 연 11.8회로 OECD 평균(6.8회)을 크게 상회하나, 의료비 지출은 GDP 대비 6.0% 수준으로 OECD 평균인 9.0%보다 낮다(OECD Health Data 2007). 진료비가 낮은 대신 더 많은 진료를 본다는 얘기다. 그렇게 더 많은 진료를 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의료비 총액은 낮은 수준. 전형적인 비정상적 박리다매 구조다.
2. 선택진료비, 상급병실료
병원을 이용해보면 이 두 가지는 환자가 선택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 부담 때문에 6인실 이용을 원하지만 어쩔 수 없이 상급병실을 이용한다. 6인실의 병상 수가 적기 때문이다. 선택진료는 병원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이미 선택의 영역이 아니다.
3. 약의 할증
이는 병의원이 제약회사로부터 약을 주문한 양보다 많이 공급받던 관행이다. 물론 이는 의약분업으로 이미 오래전에 불가능해졌다. 제약회사로부터 받는 리베이트가 남아있었으나, 이 역시 리베이트를 받은 의사를 함께 처벌하는 쌍벌제가 시행되며 불법의 영역으로 넘어왔다.
4. 건강보험에서 진료비가 지급되지 않는 진료, 즉 비급여진료.
엄밀히 따져 비급여진료를 비정상이라 볼 수는 없으나, 병원은 수익 보전을 위해 비급여진료를 더 적극적으로 환자에게 권장해야 했다. 그러나 과거 비급여 항목이었던 것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급여 항목으로 전환될 수 있으므로, 이 또한 영원히 유지될 수 있는 관행은 아니다.
여전히 낭떠러지 앞에 있는 의료
이런 다양한 비정상적 관행이 역시 비정상적인 건강보험의 구조를 어떻게든 유지해왔지만, 인구의 노령화 등 여러 요인은 자연히 국가 전체의 의료비를 계속 증가시켰고, 보험재정은 압박받았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포괄 수가제 등 다양한 대책이 시행되었으나, 이는 사실 근본적인 대책은 될 수 없었으며, 오히려 저수가 구조를 고착화해 비정상을 더욱 비정상으로 만드는 것이기도 했다.
나아가 이런 비정상적인 관행은 정부와 시민사회가 칼을 들이대며 점점 그 자리를 잃어갔고, 비로소 숨어있던 건강보험의 비정상적인 저수가 구조가 문제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건강보험 제도에 공공연히 불만을 표하는 의사들의 목소리 또한 점점 높아지기 시작했다.
사실 의협이 파업까지 선언하는 등 반대에 나서면서 의협이 의료민영화 저지의 선봉장처럼 인식되고 있지만, 사실 그렇지는 않다. 의협의 당면과제는 사실 비정상적인 수가구조의 개선일 것이고, 건강보험제도의 해체는 이를 개선하기 위한 대단히 좋은 방법이다. 그 부작용이 심대하고, 국민들 또한 반대하는 상황에서 이를 실제로 요구할 수는 없을 테지만 말이다. 의사 사회 내부에서 의협의 입장이 의료민영화 반대로 비치는 것을 경계하는 것도 이런 까닭일 것이다.
건강보험제도를 해체하지 않고 이 비정상을 타파하는 방법은 단 한 가지다. 저수가 구조의 타파를 위해 건강보험료를 극단적으로 높이는 것이다. 가장 보수적으로 계산해도 GDP 대비 의료비 지출을 OECD 수준으로 맞추기 위해 50% 정도 인상해야 하며, 급진적으로 계산하자면 진료행위당 진료비를 OECD 수준으로 맞추기 위해 200% 정도 인상해야 한다.
물론 이는 불가능하다. 건강보험에 대한 지지가 아무리 굳건하다 해도, 매달 통장에서 빠져나가는 건강보험료에 대해서도 사람들이 열렬한 지지를 보내는 건 아니다. 건강보험료가 실제로 3배 오른다면 아마 정부는 지지도를 수십 % 이상 까먹을 것이다. 50%만 올린다 해서 딱히 사정이 나을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결국, 꼼수가 필요하다. 건강보험을 이대로 두면서도, 의사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꼼수 말이다.
의사들의 반대를 잠재울 ‘꼼수’가 필요하다.
(그림: Truthout.org, CC BY)
정부의 묘책 혹은 꼼수 ‘의료법인 자법인 설립 허용’
의료법인의 자법인 설립 허용. 이는 정부의 보건의료분야 투자 활성화 대책의 하나로, 의료법인이 자법인을 설립하여 의료관광, 의료연관사업 등 한정된 영리행위를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단, 자법인이 이를 통해 얻은 수익을 의료서비스에 다시 재투자해야 한다고 한다.
이는 적자에 시달리는 병원들에 돈을 벌 수 있는 활로를 열어줄 것이며, 자연히 의료수가를 인상해야 한다는 압력은 줄어들 것이다. 정부로서는 꽤 괜찮은 묘수다.
일반적으로, 국가가 운영하던 사업이 영리화의 길에 들어서는 것을 민영화의 초석으로 보곤 한다. 따라서 일부 사람들은 이 정책이 종국에는 의료민영화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하지만 이 우려가 현실화될 가능성은 낮다.
우선 의료민영화의 의미부터 정리할 필요가 있다. 의료기관은 이미 국가가 경영하지 않으며 민간에서 운영한다. 이미 민영화된 것이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의료민영화란 사실 사전적 의미에서의 민영화가 아니라, 이 민영화된 의료기관에 대한 국가의 통제장치를 벗겨 내는 것, 즉 전 국민 건강보험 및 당연지정제 폐지를 의미한다. 민영화의 의미 자체가 다른 만큼, 그런 일반적이고 뭉뚱그려진 의심은 의료민영화 문제에서는 통용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조치가 건강보험과 연관되어 있는가? 그렇게 보기도 어렵다. 건강보험은 ‘의료행위’를 국가가 통제하기 위한 것이고, 이번 대책은 병원에게 ‘의료행위 외’의 사업을 벌일 수 있는 권한을 주는 것이다. 서로 다른 부분에 대한 것이며, 양자를 연결하는 연결고리는 매우 미약하다.
또한, 끝내 정부가 전 국민 건강보험과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를 폐지할 수 있다는 우려 또한 시기상조다. 여기는 미국이 아니며, 이미 건강보험이 자리 잡은 나라다. 이를 폐지하는 것은 엄청난 국민적 저항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정당성도 없고 정부가 얻을 수 있는 이득도 없는데 굳이 이런 무모한 정책을 추진할 이유가 없다. 늘 상상 그 이상의 것을 보여주는 모 정부라 해도.
이 정책의 진짜 문제는 민영화가 아니라 다른 데 있다. 이 정책은 사실 전 국민 건강보험과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를 유지하기 위한, 그러면서도 건강보험의 비정상적인 수가구조를 얼렁뚱땅 때우기 위한 대안에 가깝다. 병원으로 하여금 의료행위로부터 충분한 수익을 거두지 못하는 대신, 그 외의 연관사업을 통해 돈을 벌 수 있게 해 주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자법인의 영리사업이 병원 고유의 의료행위보다 우선시될 가능성, 자법인이 사실상 의료법인(모법인)의 영리추구를 위한 통로로 기능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 때문에 환자의 부담도 늘어날 것이다. 별생각 없이 피부과에 갔다가 양손 가득 병원에서 내놓은 기능성 화장품을 들고 오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설령 당신이 쓸모도 없는 화장품을 병원에서 잔뜩 사왔다고 해서, 전 국민 건강보험이 없어진 건 아니다.
의료민영화의 실질적인 의미는 건강보험과 당연지정제의 폐지다. 하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적어도 당분간은 불가능하다. 문제는 ‘자법인’이다.
(사진: cidadevazia, CC BY NC SA)
진짜 문제: 왜 병원은 찬성하고 의사는 반대하는가?
사실 이 정책의 진짜 문제는 전 국민 건강보험이 당면한 문제, 비정상적인 수가구조를 가려버린다는 점이다. 꼼수를 동원해 병원의 적자를 틀어막을 수는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꼼수일 뿐이다. 누군가가 병원에서 쓸모없는 화장품을 사가야만 다른 누군가가 싼값에 의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자본의 여유가 있고 규모가 큰 대형 병원이라면 자법인을 세우고 영리 추구 사업을 벌일 수 있겠지만, 작은 병원이나 의원급 의료기관은 얘기가 다르다. 충분한 자본과 기획력, 그리고 이를 실행할만한 규모가 갖춰지지 않은 그들은 여전히 건강보험의 저수가 구조에 골머리를 앓아야 할 것이다.
이는 정부의 정책에 병원협회가 찬성하는 반면 의사협회가 반대하는 현실을 그럴듯하게 설명한다. 병원은 이 정책으로 수혜를 받지만, 의사협회의 주축인 개원의들은 이 정책의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건 일종의 대기업 밀어주기 정책이다. 의료계의 대기업인 대형병원들에는 수혜가 돌아가지만, 의료계의 자영업자라 할 수 있는 개원가의 의원급 의료기관에게는 아무 이익도 없는 것이다. 오히려 대형병원으로의 환자 쏠림 현상을 고착화할 뿐이다.
질문이 정확해야 답이 나온다. “왜 병원은 정부 정책을 찬성하고, 의사는 반대하는가?”
(사진: James Jordan, CC BY ND)
느린 변화
건강보험이 사라지고 맹장 수술에 몇천만 원이 드는 디스토피아는 오지 않을 것이다. 사실, 오히려 대중은 만족할지도 모른다. 현재의 저수가 구조가 굳어진다고 했지만, 이는 곧 대중은 적은 보험료를 내고 높은 질의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동네 의원이 고사하며 의료전달체계*는 더 심하게 무너질 것이지만, 많은 사람들은 사소한 병도 일단 큰 병원에서 진료받는 걸 오히려 선호하지 않던가.
의료전달체계: 병·의원의 배치, 기능, 병·의원간의 상호관계를 망라하는 체계. 일반적으로 의료전달체계하에서는, 환자가 일단 소규모의 의원(1차 의료기관)에 내원하고, 여기에서 질병의 경중을 판단하여 의원에서 그대로 진료를 받거나 의사의 판단에 따라 병원(2차 의료기관) → 종합병원 및 대학병원(3차 의료기관)으로 옮겨가 진료를 받게 된다. 이는 한정된 의료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고,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맞는 최선의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한다.
의료기관이 돈 되는 영리행위에 골몰하게 되긴 하겠지만, 이 또한 의료행위 자체의 기반을 무너뜨릴 정도로 심각한 것은 아니다. 모든 의사가 양심을 전부 팔아버리고 중증환자에게 화장품부터 들이밀지는 않을 테니까 말이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의료기관의 영리행위는 점점 더 중요하게 여겨질 것이다. 다만, 체감할 수 있을 정도로 극적으로 모든 것이 뒤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변화는 느리게 찾아올 것이다.
따라서 어느 정책이 아니 그러겠느냐마는, 정부가 실제 이 정책을 밀어붙인다 해도, 그리고 끝내 실행된다 해도, 국민들은 큰 불편을 체감하지 못할 것이다. 소형 병원과 의원들은 더 힘들어지고 1차 의료기관의 붕괴는 끝내 국민들의 부담으로 돌아오겠지만, 실제로 그 부담이 실제가 되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릴 것이다.
결국, 이게 진짜 문제다. 세간에 도는 의료민영화 괴담처럼 극적인 변화는 오지 않는다. 하지만 의료의 공공성은 아주 느리게 훼손될 것이다. 부정적인 변화는 느리게 찾아오는 법이다. 느끼지도 못할 정도로 말이다.
하나 더 ‘원격의료’
원격의료 허용 정책은 대체 왜 나온 건지 모르겠다. 이건 대형병원, 그리고 떨어지는 떡고물을 받아먹을 수 있는 일부 기업 외에는 모두가 손해를 보는 정책이다.
나는 원격의료로 대체 무슨 진료가 이뤄질 수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 물론 환자의 말을 듣고 증상을 판단하는 문진은 아주 중요한 진단 기술 중 하나다. 그러나 그건 진료의 일부일 뿐이다. 1080p 해상도에 60fps를 지원하는 초고화질 카메라라 해도 환자의 상태를 정확히 시진(視診)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촉진이나 이학적 검사는 말할 필요도 없이 불가능하다. 가장 기본적인 진단조차도 이미 손발이 꺾인 채 시작해야 한다.
원격의료로 무언가 의료행위가 가능하다 해도, 나는 이것이 사실 네이버 지식인 상담의사(이쪽도 물론 의료인이지만)의 조언을 듣는 것보다 크게 낫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으로 진찰받을 수 있다’는 정부의 항변은 코미디에 가깝다. 그 수준의 기기로는 진단할 수 없다. 그건 웹캠으로 컴퓨터 본체를 비춰주며 컴퓨터를 수리해달라는 것보다도 무모한 요구다. 적어도 인체는 컴퓨터보다는 복잡하니까.
그렇다면 이 정책은 대체 왜 나온 것일까. 다시, 이건 대형병원, 그리고 떡고물을 받아먹을 수 있는 일부 기업 외에는 모두가 손해를 보는 정책이다. 특히 의사와 환자에게는 더 말할 필요 없는 손해다. 이 정책이 소수 대기업을 위한 것이라는 음모론이 설득력을 갖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