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 본인부담률 증가는 의료복지축소정책이다
의료민영화를 전면 추진하던 정부가 이제는 건강보험 내의 의료비 부담 확대까지 추진하고 있다. 지난 2월 5일 보건복지부가 입법예고한 ‘국민건강보험법 시행령 일부개정안’이 그것이다. 개정안을 통해 정부는 불필요한 장기입원 유인을 줄이기 위해 입원일수가 15일이 넘으면 현행 20%인 법정본인부담금을 30%로 올리고, 30일이 넘으면 40%까지 올리겠다고 밝혔다. 환자 부담을 늘리는 방식으로 빠른 퇴원을 종용하겠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건강보험 흑자가 12조 8천 억 원에 달하는 상황에서 입원비를 늘리는 정책으로 간다는 점 또한 문제다.
현재 우리나라의 건강보험 내 본인부담금은 20%인데, 높은 수준이다. OECD에 속한 대부분의 국가들은 국가의료제도(NHS)를 도입해 입원에 대한 본인부담금이 없다. 영국이나 스웨덴, 스페인, 이탈리아 등이 이에 속하는데 우리나라처럼 사회보험을 사용하는 프랑스, 독일, 일본 등의 상황도 우리나라보단 나은 상태다. 프랑스나 일본도 입원법정본인부담금 요율이 우리나라와 같이 20%지만, 프랑스는 30일이 넘으면 면제가 되고 일본은 총 금액이 6만엔이 넘으면 면제다. 대만의 경우도 총의료비 본인부담이 전년도 소득의 6%를 넘을 수 없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에선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사람들은 장기입원이 어렵다. 최근 정부가 제출한 자료만 봐도 상황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우선 16일에서 30일 동안 입원하는 환자의 비율이 전체 입원환자의 10% 정도이고, 30일 이상 입원하는 경우는 4%도 되지 않는다. 이들 대부분은 치료가 필요한 사람들이다.
특히 경제위기와 더불어 소득감소가 가팔라진 최근엔 비용이 저렴한 요양병원을 찾거나 조기 퇴원을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을 증가시켜 적정입원일수를 유도하겠단 정부의 시도는 아파도 돈 때문에 치료받지 못하는 현실을 악화시킬 것이다. 지금 한국에 필요한 것은 입원시 법정본인부담금 인상이 아니라 전면 인하다. 기존의 부담금을 낮춰 의료보장성을 높여야 한다.
정부가 예로 든 대만과 비교해도 한국 현실은 암담
정부는 이번 발표를 하면서 입원일수에 따라 본인부담금이 올라가는 해외 사례를 들며, 미국과 대만을 언급했다. 입원일수에 따라 본인부담금이 올라가는 나라들이 많지 않은 이유는 사회보험이나 국가의료제도를 운영하는 나라들에선 장기입원문제를 환자들의 부담 차등화로 해결하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예로 든 미국, 대만과 비교해도 한국의 현실은 암담하다.
대만의 경우 원래 비급여진료가 불가능하다. 또 입원을 하더라도 총액예산제 등의 지불제도로 사실상 법정본인부담금 외에는 의료비를 지불하지 않는다. 거기다 우리나라와 달리 입원본인부담금조차 10%이다. 비급여문제를 차치하고라도 한 달 이상 입원해야 20%로 인상되어 한국의 입원부담금 수준이 된다. 이외에도 대만에는 총 의료비 본인부담상한제가 존재하는 등 한국하고는 비교가 불가능한 의료 보장수준을 갖고 있다. 미국도 만 65세 이상 전액 무상의료인 메디케어에서 그것도 60일 이상 입원 시 추가부담이 발생한다.
찾기 어려운 외국의 예와 비교해 이미 높은 수준인 기본본인부담금(20%)이나 만연한 비보험진료 문제를 외면하는 것은 후안무치한 자세가 아닐 수 없다. 거기다 불필요한 장기입원의 경우에도 병원이 아니라 환자들에게 고스란히 그 부담을 지우려는 것은 반서민적 정책이나 다름없다.
▲ 4대중증질환 진료비 전액 국가부담 관련, 박근혜 선본 공약집. | |
ⓒ 박근혜 선거본부 | 관련사진보기 |
이 개정안은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사항에도 역행하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시절, 2015년까지 4대 중증질환 보장성을 비급여 포함 95%까지 높이겠다고 밝혔다. 약속대로라면 차등병실료와 선택진료비 그리고 비급여진료, 법정본인부담금 모두를 포함해서 5%를 넘기면 안 된다. 물론 2013년에 발표한 계획에 따르면 4대중증질환에 대해서도 환자 부담을 이전보다 25% 정도 경감하는 수준으로 변경하는 등 공약을 누더기로 만들면서 이런 기대는 무너졌다(관련기사 : ‘박근혜 공약’ 이래서 사기다). 근데 이제 망가졌다고 완전히 망가뜨리겠다는 것인가?
이번 정부의 안대로 하면 30일만 산정특례(희귀난치성 질환과 중중질환자들을 대상으로 본인부담금을 경감해주는 제도)가 적용되는 뇌혈관질환, 심장질환 환자도 한 달 이상 입원하면 본인부담금이 40%까지 올라간다. 정부가 보장성을 올린다고 했던 4대 중증질환에서도 환자 부담이 늘어나는 괴이한 정책이다.
게다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뇌졸중환자의 경우 재활치료 등으로 대부분 한 달 이상 입원을 한다. 물론 국민들은 잘 몰랐지만, 박근혜 정부가 약속한 ’4대중증질환’에는 애초 뇌수술을 하지 않는 뇌졸중 등은 포함돼 있지 않았다. 4대중증질환의 보장성을 높이겠단 박근혜 정부의 말만 믿고 장기간 입원했다가는 입원비 증가로 의료비 폭탄을 맞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정부는 환자의 입원비를 올리려고 할 것이 아니라 애초 약속한 4대중증질환 보장성 강화에 더 신경 써야 할 것이다.
건강보험재정 국고지원 축소, 진정한 복지긴축
사실 진주의료원이 폐원될 때부터 이런 상황이 예측되긴 했다. 즉 정부는 복지를 축소하고, 비용은 국민에게 전가하려는 행태를 지속하고 있다. 그 결과가 건강보험의 누적흑자다. 건강보험은 박근혜 정부 들어 무려 8조 6천억 원(2013년 4조, 2014년 4조 8천억 원)의 흑자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마땅히 지출해야할 의료복지를 제공하지 않았음의 반증이다. 거기다 수입과 지출이 일치해야 하는 건강보험재정계획을 고려할 때 박근혜정부의 의료정책이 완전히 실패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정상적인 정부라면 이를 매우 부끄럽게 생각하고 빨리 시정해야 했다. 그런데 도리어 국민의료비를 증가시키는 입원비 인상정책을 내놓다니… 더구나 정부는 건강보험이 흑자를 기록하는 와중에도 건강보험료는 계속 올렸다. 즉 증세는 하면서, 복지는 축소하는 게 의료복지영역에서는 명확히 드러난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서민증세, 반복지를 추구하고 있다는 것을 이보다 명확히 보여주는 증거는 없을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정부는 막대한 건강보험 흑자를 빌미로 정부가 충당해야 하는 국고지원금을 2016년 이후 축소할 요량인 듯하다. 건강보험재정의 국고지원 축소야 말로 진정한 복지긴축이다.
한국의 허술한 복지제도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들을 건강보험에 의지하도록 만들고 있고 재가요양이나 지역재활센터 등도 턱없이 부족하다. 즉 전체적으로 복지의 확충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장기입원 등을 논의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란 말이다.
그리고 환자부담을 올리기에 앞서 병원 개혁과제인 병원인력충원, 병상규제, 지불제도개선등이 우선 선행되어야 한다. 아울러 당장 정부가 추진해야 하는 것은 비급여 문제해결과 입원 법정본인부담금을 현재 20%에서 10%이하로 경감해 국민의료비 부담을 경감시키는 정책이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복지확충이 아니라, 복지축소를 획책하고 있다. 그리고 의료복지 축소를 재정절감의 문제로 치환하려 한다. 만약 이런 주장이 틀렸다면 왜 12조 8천억 원이나 남는 건강보험재정을 뒤로하고 의료비를 올리려는 시도는 무엇인가? 정부는 지금이라도 입원료 인상시도를 철회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서민증세’와 ‘반복지’의 끝에 결국 국민적 ‘정권퇴진’ 요구를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정형준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 인의협 정책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