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조 건보 흑자…1000억 아끼려고 입원 막나?”
병원에 치이고, 정부에 치이는 환자…”정부, 입원료 인상 철회해야”
김윤나영 기자 2015.03.20 18:20:44
정부가 장기 입원 환자의 입원료를 올리는 ‘국민건강보험법 시행령 일부개정안’ 입법예고를 17일 마쳤다. 개정안이 시행되면 장기 입원 환자의 본인 부담률이 현행 20%에서 30~40%까지 최대 두 배 오른다.
구체적으로 정부는 오는 8월부터 16일~30일 장기 입원 환자의 본인 부담률을 현행 20%에서 30%로 올리고, 31일째부터는 40% 올릴 예정이다. 상급종합병원 5인실을 기준으로 보면, 지금은 하루 입원료가 9400원이지만 16일째부터는 1만4000원으로, 31일째부터는 1만9000원으로 오른다.
정부는 재활치료 환자 등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 모든 입원 환자에게 이를 일괄 적용하겠다는 방침이다.
보건·노동·시민단체는 강력히 반발했다. 중증 환자 등 장기 입원이 꼭 필요한 환자에게조차 ‘입원료 폭탄’을 안길 우려가 크다는 점에서다. 시민의 반발도 거세다. 무상의료운동본부는 입원료 인상 반대 의견서 제출 운동을 벌여 단기간에 1만3000명이 넘는 시민의 서명을 받기도 했다.
상급병실료에 치이고, 장기 입원료 인상에 치이는 환자들
입원료를 인상하는 이유에 대해 정부는 “지난해부터 4인실에도 건강보험을 적용하면서 입원료 부담이 완화됐기 때문”에, 이른바 ‘나이롱 환자’들이 늘어날 것을 우려해 이번 시행령 개정안을 추진했다고 밝혔다.
4인실 건강보험 적용으로 환자 부담이 줄었다는 정부 주장과는 달리, 환자들이 입원료 건강보험 혜택을 체감하는 정도가 크지 않다는 반박이 제기됐다.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일반 병실에 가기 전에 상급병실(1~3인실)에 입원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대형병원의 관례인 탓이다.
지난 1월부터 약 2주일간 대학병원에 할머니를 모신 장희은(30) 씨는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할머니를 옮기려고 했지만, 병원에서 1인실 아니면 안 보내준다고 했다”며 “4인실이 없는 탓에 결국 3인실로 가서 입원료 부담이 늘었다”고 말했다.
장 씨는 “장기 입원 환자는 단기 입원 환자보다 오히려 병원비 부담이 큰데, 장기 입원 환자의 입원료를 올리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상급병실료 부담도 버거운데, 장기 입원 환자의 병원비를 올리면 환자 부담이 더 늘어나리라는 것이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4인실 건강보험 적용으로 실제로 늘어난 4인실은 전국에 800병상에 불과하다”며 “정부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는 극히 적게 하면서, 환자에게 돈을 더 물려 입원을 못하게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병상 수 2배 늘려놓고, 환자 부담 늘리는 건 최악의 정책”
정부는 한국 환자의 입원 일수가 OECD 회원국 평균인 8.5일보다 높은 14.2일이라는 점도 입원료 인상의 근거로 제시했다.
이에 대해 무상의료운동본부는 ‘장기 환자 입원료 인상’ 방안을 논의할 예정인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이하 건정심) 개최를 앞두고 20일 서울 서초동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지난 10년간 병상 수가 두 배로 늘어난 것과 민간 병원들 사이의 과당 경쟁을 통제하지 않은 정부가 그 책임을 환자들에게 떠넘기고 있다”고 반박했다.
한국 의료기관의 병상 수가 많은 탓에 병원들이 환자에게 장기 입원을 유도할 확률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우석균 정책위원장은 “입원 일수를 줄이기 위해서는 정부가 병상 수를 통제하고, 타 지역에서 서울로 올라온 환자들이 퇴원 후에 지역 의료기관과 연계해 통원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하는 등의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며 “그런 다양한 시도도 없이 대뜸 환자 부담을 올리는 것은 최악의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김준현 건강세상네트워크 공동 대표는 “복지부는 장기 입원 환자의 입원료를 올린다고 환자의 도덕적 해이가 줄어든다는 객관적인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며 “우려나 가능성을 근거로 정책을 입안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13조 건보 재정 흑자…1000억 아끼려고 환자 입원 막나”
건강보험 누적 재정 흑자 규모가 사상 최대치인 12조 8000억 원에 달하는 가운데, 정부가 입원료 인상 정책을 추진한다는 점도 논란거리다.
건강보험 재정 흑자가 생긴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지속적인 경제난과 낮은 건강보험 보장성 때문에 서민들이 아파도 병원 이용을 줄여왔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 관련 기사 : “건강보험 ‘나쁜’ 흑자 13조, 박근혜는 답하라”)
우 정책위원장은 “정부는 이번 장기 입원 환자 본인부담률 인상 정책으로 약 1000억 원의 재정 절감 효과를 볼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며 “13조 원 흑자를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에 써도 모자랄 마당에, 단돈 1000억 원을 아끼려고 아픈 사람에게 병원을 못 가게 한다”고 꼬집었다.
무상의료운동본부는 “정부는 입원료 인상을 철회하고 건강보험 흑자를 건강보험 보장성을 높이는 데 사용하라”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