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정부여당 이명수 의원이 대표 발의한 ‘국제의료사업지원법’ 제정안이 지난 23일 보건복지위원회에 상정되었습니다. 이 안은 사실상 정부 입법안으로, 그동안 의료민영화 법안으로 알려져 있던 의료법 개정사항들을 의료관광 및 의료기관 해외진출을 명분으로 하여 한 번에 처리하려는 법안입니다.
2.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회는 ‘국제의료사업지원법’의 제안이유와 법 내용을 분석하여 이슈페이퍼를 발간합니다. 정부여당이 발의 근거로 제시한 국내 의료관광 및 의료수출 전망이 과장되었고, 법안의 주요 내용인 보험사 해외환자 유치 허용, 외국인 환자 대상 광고 허용, 해외환자 대상 원격의료 허용, 해외환자 유치업자 및 의료진출 기관에 대한 금융, 세제, 재정 지원 등은 기업과 병원자본의 특혜 정책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이슈페이퍼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ISSUE PAPER |
‘국제의료사업지원법’무엇이 문제인가? |
1. 서론
새누리당 이명수 의원이 대표 발의한 ‘국제의료사업지원법’ 제정안이 지난 23일 보건복지위원회에 상정되었다. 이 법안은 정부와 여당에서 주장하는 ‘경제활성화’ 중점 법안 중 하나로 강조되어 왔다. 특히 지난 달 박근혜 대통령이 여야 대표와 만난 3자 회동 자리에서 자신의 중동 순방의 핵심 성과 중 하나로 의료 분야를 꼽으며 통과를 주문하면서부터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정부·여당이 추진 중인 국제의료사업지원법안 제정안에 따르면 ‘국제의료’란 “외국인환자 유치사업과 의료 해외진출사업 등 국내외 외국인환자를 대상으로 하여 보건의료서비스 및 이와 연관된 제품 또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체의 사업”을 뜻한다. 즉 ‘의료 관광’과 ‘의료 수출’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박근혜 정부는 국제의료를 ‘미래 성장 동력’으로 강조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해외 환자를 지난 2009년부터 5년간 약 63만명 진료하여 총 1조원의 진료비 수입을 올렸고 이것이 소형자동차 9만5천대를 수출한 액수와 같다고 홍보하고 있다. 또 2017년까지 150만 명의 해외환자를 유치하면 2만8천개의 청년 일자리도 생길 수 있으며, 외국인 환자를 유치하는 병원은 운영이 튼튼해져 환자에게 더 좋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의료로 대외적 경제성과를 내고 의료 기술 발전을 자극할 것이라는 정부의 주장은 그럴 듯하게 들린다. 그러나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국제의료지원법안의 주요 내용들은 사실 국내 규제 완화책일 뿐이며, 자본이 그간 추진해왔던 의료민영화 정책과 같음을 알 수 있다.
‘국제의료’ 활성화는 현재 의료 체계 전체를 상업적으로 재편하려는 자본의 요구로 인하여 추동되고 있다. 우리는 국제의료사업지원법안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파헤치고 이것이 한국의 의료 체계와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미칠 문제점이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2. ‘국제의료사업지원법’ 제안이유 검토
(1) 과장된 근거로 제시된 국제의료사업지원법의 필요성
이명수 의원은 국제의료사업지원법의 ‘제안이유’에서 “2013년에만 21만명의 해외환자가 우리나라에서 진료를 받았으며, …… 5년간 약 63만명의 해외환자 진료로 총 1조원 진료비 수입을 올렸[고] …… 약 8,000조 규모의 세계 글로벌 헬스케어 시장을 선점하는 것이 매우 시급”하다고 주장하였다.
그런데 제안이유에 나오는 국내 해외환자의 통계는 의료관광이나 국제의료사업과는 개념이 다른 국내거주 외국인의 의료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정부가 외국인 진료가 20만명을 넘었다고 이야기하지만 여전히 그 규모는 크지 않다. 예를 들어 한국의 2011년 의료관광 1위 병원은 우리가 생각하는 빅5대형병원이나 유명 전문병원이 아니라 통일교 산하 청심국제병원이었다. 즉 아직도 의료관광 목적이 아닌 종교적 이유에서 특정 병원을 이용한 병원이 ‘의료관광 1위 병원’인 것이다. 이는 의료관광의 규모가 정부가 과장하는 만큼 크지 않다는 것을 뜻한다.
더구나 8,000조 규모의 헬스케어 시장이라 함은 IT, 의료기기, 제약, 건강관리산업 등을 포함한 서비스산업의 전체규모에 대한 추정치로 국제의료사업과 직접적인 관계를 찾기 어려운 과장된 측면이 있다.
또한 “국제의료사업은 우리나라의 우수한 의료 인력과 가격 대비 높은 의료 서비스 질을 바탕으로 막대한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미래의 성장 동력”으로 규정하면서, 우리나라가 가격 대비 의료의 질 면에서 우수하여 법적・제도적 지원을 통해 수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실제 한국과 아시아 의료관광 주요 국가 간의 의료비를 비교해보면 이러한 근거가 빈약하다는 사실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위 표에서 보듯이 태국, 싱가포르, 인도 등의 의료비는 항공료, 체류경비, 1인 병실료를 모두 포함한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의료비와 비슷하거나 더 낮다. 따라서 한국의 환자들이 의료비 문제로 외국으로 나갈 수 있다면 모를까, 가격경쟁력 때문에 외국의 환자들이 한국을 찾을 가능성은 낮다.
결국 이번 국제의료사업지원법의 제안이유로 제시된 것들은 국내 외국인 환자 진료 증가와 세계 헬스케어시장 증가에 대한 확대해석과 다른 아시아 국가와 비교한 한국의 의료시장 경쟁력에 대한 과대평가일 뿐으로 현실 가능성이 낮다. 따라서 이러한 과장된 명분으로 포장된 이면에 있는 법안 추진의 실질적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재고해보지 않을 수 없다.
(2) ‘국제의료’는 의료민영화 우회로였던 의료관광의 다른 이름
국제의료 사업, 즉 의료관광 및 의료수출이 정부정책으로 등장한 것은 이명박 정부에서다. 이명박 정부는 정권 초기부터 의료산업을 신성장동력 산업으로 부각시키면서 영리병원 허용과 민영의료보험 활성화 등 사립병원 및 민영보험의 활성화와 각종 규제완화를 시도하였다. 그러나 이것이 의료비 폭등을 초래하고 국민건강보험을 무너뜨릴 것이라는 국민적 비판에 부딪히면서 제대로 진척되지 못하였고, 현재도 이러한 의료민영화 정책들에 대한 국민들의 반대는 높다. 직접적인 의료민영화 정책이 장벽에 부딪히자 이명박 정부가 내세운 것이 바로 의료관광 또는 해외환자 유치라는 우회로였다. 이를 통해 이명박 정부는 경제자유구역의 영리병원 허용을 추진하고 법을 바꾸어 경제자유구역 내 사실상 ‘국내 영리병원’을 허용하였다.
박근혜 정부도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의료기관의 해외진출을 포함하는 의료관광을 일명 ‘국제의료사업’이라 명명하고 의료민영화 정책들을 우회적으로 진척시키고 있다. 최근에는 의료기관 해외 진출이 국내 의료기관들이 영리병원 형태로 역수입되는 통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제주도에 첫 해외투자 외국인 영리병원으로 들어오려는 ‘녹지 국제병원’이 국내 유수의 성형외과가 중국자본과의 합작하여 영리병원으로 탈바꿈하여 역수입된 것이라는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례는 의료관광 혹은 국제의료사업이라는 것이 사실상 의료민영화의 우회로라는 주장을 증명하는 명백한 증거다.
3. ‘국제의료사업지원법’ 주요내용 검토
국제의료사업지원법은 지난 8월 정부의 ‘제 6차 투자활성화대책’에서 처음 등장하였다. 정부는 투자활성화대책에서 ‘현행 의료법 체제에서는 의료수출을 체계적으로 지원하는데 한계가 있어 별도의 법 제정 필요’하다며 외국인 환자 대상 국내 의료광고 허용, 보험사의 해외환자 유치 허용 및 금융‧세제‧재정지원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이번 국제의료사업지원법안에는 해외 환자 대상 원격의료 허용까지 추가되었다.
그런데 이 내용들은 사실 그간 의료민영화 추진 세력들이 통과시키려 했지만 국민들에게 의료민영화 법안들로 잘 알려져 쉽사리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는 것들이었다. 보험사의 해외환자 유치를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은 2013년 5월에, 의사-환자 원격의료 허용 의료법 개정안은 2014년 2월에, 그리고 외국어 의료광고를 허용하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안은 2014년 3월에 국회 제출되어 계류 중이다. 이번 국제의료사업지원법 제정안은 그간 통과시키지 못했던 국내 의료민영화 법안들을 한꺼번에 해결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1) 보험사 해외환자 유치, 병원-보험사 직계약 허용은 미국식 의료민영화 발판
외국인 환자 유치업은 2009년 의료법 개정으로 허용되었지만 보험회사 등에 대해서는 제외되었다. 지난 정부는 이러한 예외조항을 없애는 조치를 지속적으로 추진하였으나 국회에서 무산되었고, 박근혜 정부 역시 의료법 개정으로 이를 도입하고자 시도해왔다.
보험자본이 해외환자 유치 허용을 정부에 요구하는 이유는 이것이 곧 병원과의 직접계약 체결을 통하여 의료공급체계를 지배할 수 있는 발판이 되기 때문이다. 보험사가 환자를 유치하고 병원에 직접 지불하게 되면 보험사가 갑, 병원은 을이 될 수밖에 없다. 이것이 허용되어 있는 미국에서는 보험회사들이 수익을 많이 남기는 방법으로 병원 진료에 간섭을 하여 온갖 진료왜곡과 과소의료를 통한 의료의 질 저하 등의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미국식 의료민영화의 핵심인 보험-병원 복합기업(HMO)은 바로 이러한 과정을 거쳐 형성되었다. 한국에서 HMO의 등장하게 되면 국민건강보험은 무너지고 그 자리를 민간보험이 대체하게 될 것이다. HMO는 보험회사가 병원을 통째로 사서 운영하는 형태다. 미국에서 민영의료보험은 병원을 소유하며 의료 체계 전체를 마음대로 주무를 뿐 아니라 공적 의료보험이 담당해야 할 영역을 잠식하였다. 이는 현재 전 국민의 6분의 1이 의료보험조차 없이 치료비를 부담하지 못해 사람이 죽어가는 미국의 상황을 초래하였다.
한국의 보험사들이 미국식 의료체계 형성과 국민건강보험 무력화를 목표로 한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2005년 삼성생명내부전략보고서에 따르면 삼성생명은 ‘정부의 건강보험 대체’라는 계획을 갖고 있다. 이 보고서는 민영의료보험의 발전방향으로 “보험금 직불 시스템 도입”(병원-보험사긴 직접계약), “요양기관 계약제도 시행”(요양기관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폐지) 을 주장하였다. 또한 2007년 삼성경제연구소는 ‘의료산업고도화와 과제’라는 보고서에서 “보험자가 공급자에게 다양한 재정적 인센티브를 제공하여 효율성을 제고하는 관리의료형 민간의료보험(HMO) 도입”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2011년 보험연구원의 보고서도 관리형 의료서비스의 효율성을 주장하며 관련한 법적 토대 마련을 주문했다. 해외환자 유치라는 것은 허울뿐, 사실 이 조치는 다음 단계로 국내 환자대상의 병원-보험사 직계약 허용을 위한 민간 보험사를 위한 규제완화 정책이다.
국내보험사가 외국환자를 직접 모집한다고 외국환자의 대규모 유치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국내보험사의의 매출규모에 비교하여 외국환자유치의 보험매출액 상승은 너무 적어 국내보험사가 외국환자유치에 나설 경제적 유인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즉 외국환자유치를 내세우지만 실제목적은 병원과의 직계약 규제완화에 맞추어져있다고 볼 수 있다.
(2) 외국인 의료광고, 병원 광고 규제완화
현행 의료법은 의료광고와 관련하여 최소한의 공공성을 담보하기 위한 일정한 규제를 두고 있다. 의료법인‧의료기관, 또는 의료인만이 의료광고를 할 수 있고, 치료효과를 보장하는 등 소비자를 현혹하거나 객관적 근거가 없는 내용을 포함하거나 부작용을 누락하는 등의 광고를 금지하고 있다. 또한 방송 등의 매체를 사용해서는 의료광고를 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외국인환자 유치와 관련하여서는 과도한 광고행위를 우려하여 국내에서의 광고가 전면 금지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규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도 성형‧미용 등을 중심으로 의료기관과 의약품에 대한 무분별한 의료광고가 범람하고 있다. 이런 광고들은 이미 상당히 과장되어 있으나 적절하게 규제되지 않고 있다. 의료기술은 복잡성으로 인해 다른 전문 분야에 있는 사람이 판단하기 어렵고 그만큼 규제도 어렵다는 점에서 규제 조항이 더욱 명확하고 엄격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번에 국제의료사업지원법에 삽입된 ‘외국인환자 대상 의료광고’ 조항은 의료광고의 주체와 내용에 대한 규제를 더욱 완화하는 것으로 과도한 광고로 인한 의료의 상업화를 부채질 할 조치이다. 특히나 의료광고를 민간 보험회사에까지 열어주는 것으로 이는 매우 심각한 문제를 낳는다.
먼저 외국인 환자 유치를 위한 광고 허용은 의료기관의 과잉 광고경쟁을 유발하여 불필요한 의료비 상승효과를 낳고 국민들의 의료 이용을 왜곡할 우려가 있다. 외국인 광고 규제는 2009년 외국인환자 유치를 허용하는 의료법개정 시 국내 유치·알선행위로 인하여 의료전달체계가 파괴되고 환자 몰이 현상이 일어날 우려가 있다는 지적에 따라 신설된 것이다. 의료기관의 과잉 경쟁과 대형병원으로 환자 쏠림이 점점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이러한 우려는 과거보다 심각하다.
또한 의료법인‧의료기관, 또는 의료인만 가능하였던 광고를 ‘유치업자’ 즉 민간 보험회사까지 열어준다는 조항은 더욱 문제다. 보험사의 의료기관 광고는 ‘삼성생명-OO병원’ 광고가 등장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력한 보험사의 브랜드와 연계하기 위하여 병원은 민간보험회사와의 계약에 매달리게 될 것이다. 보험사의 외국인환자 유치 허용과 더불어 민간보험사의 병원 지배는 강화될 수밖에 없다.
법안은 외국어로 표기된 의료광고만을 허용한다고 하지만 외국인만을 대상으로 하는 의료광고가 따로 존재할 수는 없다. 배경화면에 삼성병원 건물을 보여주면서 ‘SAMSUNG Hospital’이라고 쓴다고 해서 내국인이 못 알아볼 수는 없다.
이런 광고를 외국인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한다고 하면 사실상 그 장소는 무제한이 된다. ‘국제공항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장소에서’ 허용한다고 하나, 지난 4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회의록에 따르면 문형표 복지부 장관은 이에 대해 ‘국제공항이나 명동 거리나 지하철 이런 식의 외국인들이 많이 볼 수 있는 곳’을 상정하고 있다고 말한 바도 있다.
(3) 해외환자 원격의료, 우회적 원격의료 도입 눈속임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 허용은 박근혜 대통령이 주장하는 창조경제의 핵심이자 국내 의료기기 및 통신 기업들의 숙원 사업이다. 그러나 이는 다음과 같은 문제로 지난 해 2월 국회에 제출된 이후 통과되지 못하고 있다.
원격의료의 가장 큰 문제는 개인 질병정보 유출 문제다. 최근 20억건 이상의 국민 질병정보를 수집하여 해외로 빼돌린 IMS헬스코리아 등이 문제가 된 것처럼 의료정보 유출은 이미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삼성 등 민간기업들은 개인질병정보의 영리적 활용을 제안해왔다. 민간 기업이 개인의 건강‧질병정보를 수집할 경우 이것이 민간보험사 가입 및 지급 거부에 이용되거나 기업의 채용에 영향을 미치는 등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또한 원격의료는 안전성과 비용-효과성이 입증되지 않았다. 원격의료는 얼굴을 맞대는 대면진료에 비하여 오진 가능성이 높고, 비용은 높은데 효과는 없다고 알려져 있다. 복지부는 원격의료 도입 시 환자는 마이크, 웹캠 등과 생체 측정기 비용으로 150~350만원의 돈이 소요된다고 추정하였다. 복지부 예상대로 만성질환자 585명에 최대 350만원을 대입하면 국민들은 20조 이상을 부담해야 한다. 결국 국민 의료비는 폭등하고 원격의료 관련 기업만 이익을 보게 된다.
국제의료사업지원법안에는 해외에 있는 의료인 또는 외국인 환자에게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해외환자로 한정하고 있으나 이는 국내 원격의료 허용을 위한 발판이 될 수 있다. 외국인 환자를 대상으로 한다던 영리병원이 결국 국내 환자용이 된 것처럼 한번 규제가 완화되면 그 완화의 범위를 확장하는 것은 훨씬 쉽다. 해외 환자를 대상으로 원격의료가 허용되면 국내 환자는 왜 안 되냐는 논리가 등장할 것이다. 또한 개인정보 유출, 안전성과 비용-효과의 문제는 외국인 환자도 겪어서는 안 될 일이다. 따라서 국내에서 원격의료 자체가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해외 환자 대상 원격의료가 국내 허용을 위한 명분이라는 것은 정부의 2차 원격의료 시범사업 확대계획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정부는 2차 시범사업의 핵심과제 네 가지 중 하나로 ‘해외환자 원격협진 활성화’를 꼽았다. 서울대병원이 위탁운영하기로 한 UAE 셰이크칼리파 전문병원과 서울대병원 본원 간 원격협진을 실시하고, 국내 송출 UAE 환자에 대한 사전‧사후관리를 위한 원격협진 센터를 개소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한국에서 허용되어 있는 의료인-의료인 간 원격협진으로 의료인-환자 간 원격의료의 효과성을 판단할 수는 없다. 결국 해외 환자 대상 원격의료는 해외진출 성과를 명목으로 국내의 원격의료 허용 명분 쌓기에 불과하다.
(4) 의료관광·해외진출 기관에 대한 국가 지원, 지역불균등을 심화시키고 의료상업화를 부추길 정책
국제의료사업지원법은 해외 환자 유치를 위해 민간보험사를 비롯한 유치업자와 의료기관에게 금융, 세제, 재정 지원 및 정보제공을 하겠다는 내용도 담겨있다. 국가 및 지방자체단체가 나서서 조사연구와 해외마케팅 및 홍보활동도 할 수 있도록 허용하며 의료수출 전문인력 양성에 지원한다는 내용도 포함된다.
그러나 이는 현재 가뜩이나 편중되어있는 대형병원중심-대도시 중심의 병원 지역불균등을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 의료관광 유치 의료기관의 경우 대도시에 집중되어있고 대형병원이 대부분이다. 또한 소형병원의 경우 피부 미용 등 영리적 목적으로 진료를 하는 병원들이다. 이들에게 세제혜택을 준다는 것은 상업화되고 영리화 된 국내의료체계의 왜곡을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
정부가 국내의 공공의료에 대한 투자는 게을리하고 의료복지 확대에 대한 국민의 목소리는 외면하면서 해외환자 유치 기관에만 혜택을 몰아주는 것은 황당한 일이다. 정부가 금융 세제 지원을 강화해야 할 대상은 지방의료원 등 적정진료와 소외계층 및 재난의료를 담당하는 공공의료기관이다. 또한 한국의 보건의료 학생들은 국가와 지자체가 의료교육에 투자하지 않고 전적으로 민간에 맡겨 높은 등록금에 시달리고 있는데, 이는 보건의료인들의 졸업 후 영리 추구의 한 계기가 된다. 따라서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의료수출 인력 양성이 아니라 국내 공공의료기관에 복무할 보건의료인들의 양성이다.
4. 결론
‘국제의료사업지원법’의 본질은 국내 규제완화이며 전면적 의료민영화 법안이다. 사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모든 의료민영화 법안들이 의료관광 및 의료수출이라는 명분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다. 국제의료사업지원법안에 포함된 내용 외에도 경제자유구역 영리병원에 규제완화 및 제주도 영리병원 도입 추진, 의료법인의 자회사 허용과 부대사업 확대, 의료관광호텔(메디텔) 허용, 그리고 줄기세포 및 유전자치료제 연구 규제완화 등이 그렇다. 박근혜 정부가 의료로 돈을 벌겠다며 내세우는 장밋빛 전망의 실체는 국내의 전면적 의료민영화를 위한 눈가림이다.
또한 의료 관광과 의료 수출에 보건의료 자원을 집중하는 것은 그 자체로 국가 의료체계 전체의 상업화를 가져오고 공공의료를 왜곡·마비시킬 수 있다. 돈벌이가 되는 해외환자 유치 산업으로의 우수한 보건의료 인력의 두뇌 유출이 일어나고, 민간의료 부분의 팽창으로 인하여 의료비가 증가하고, 결국 공공의료 및 의료이용의 경제적 접근성 저하가 일어나게 된다. 이는 의료 관광을 국가적으로 장려한 해외의 사례들이 보여주는 한결같은 결과다.
의료는 상품이 아니다. 의료로 돈벌이를 하기 위해서 국내 보건의료체계를 상업화시키는 것 자체도 문제이고, 과장된 근거와 전망으로 국민들을 현혹하여 국내 의료민영화를 밀어붙이려는 계획 또한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국제의료사업지원법’은 즉각 폐기되어야 한다. 한국에 필요한 것은 ‘국제의료’가 아니라 무너진 공공의료를 바로 세우고 발전시키기 위한 정부의 실질적인 노력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