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강 피해 가능성을 넓히고 피해 가능성이 있는 이들의 신고를 기한을 정해놓지 않고 받아야 한다.
- 보상과 구제에 필요한 재원은 100% 국가가 관련 기업에게 구상권을 청구하여 해결하도록 해야 한다.
- 석면피해구제법과 같은 특별법 제정과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도입이 필요하다.
-기업의 보이코트와 반대로 누더기가 된 채로 입법된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과 ‘화학물질관리법’이 보완되어야 한다.
옥시레킷벤키저가 생산, 판매한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건강 피해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지난 5년간 무대책으로 일관해 오던 국가가 뒤늦게 검찰 수사를 시작했고, 수사가 확장되는 국면에 이르자 지극히 부적절한 처신을 보여 오던 옥시레킷벤키저도 대표의 공식 사과문을 발표했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부터다. 이 사건의 성격을 정확히 규정하고 적절한 대응을 하지 않으면 문제의 근본은 건드리지 못한 채, 악덕 기업의 일탈 행위에 의한 희대의 스캔들 정도로 정리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번 사건이 기업의 생산물에 의한 건강 피해 일반의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우리 사회의 허술한 화학물질 관리 시스템이 낳은 참사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그러므로 향후 진상 조사, 피해자 배상 및 구제, 재발 방지 대책도 보다 큰 시야를 가지고 진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자 한다.
옥시레킷벤키저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건의 성격은 기업의 생산물에 의한 소비자 건강 피해 사건의 한 전형이다. 기업의 생산물에 의한 소비자 건강 피해 사건은 미국, 유럽, 일본 등지에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석면, 담배, 디젤배기가스의 유해성 논란, 플라스틱의 환경호르몬 유해성 논란부터 최근 미국에서 벌어진 팝콘 향료로 쓰인 디아세틸에 의한 폐질환 논란까지 기업은 한결같은 문제를 일으키며 사회적 대응을 늦추거나 무마하는 식으로 대응을 해오고 있다.
기업의 생산물에 대한 위험이 발견되었을 때 해당 기업의 전형적인 반응은 기업이 후원하는 과학자들로 하여금 반대 의견을 개진하게 하고, 확실한 사실을 모호하게 만들어 논란을 일으켜 관련한 사회적 대응을 막거나 최대한 연기시키는 전략을 구사한다. 담배회사로부터 시작된 기업의 전형적 방어 전략은 “우리 상품이 위해하다는 ’확정적인‘ 증거가 없다”는 방식으로, 기업의 생산물과 건강 피해와의 관련성 내지 인과관계를 부인하는 것이다. 인과관계를 모호하게 만들면 그 어떤 후속 대책도 불가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초기부터 너무나 명확해 보였던 가습기 살균제가 폐질환을 일으켰다는 사실을 옥시래킷벤키저는 아직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질병관리본부의 역학조사 결과에 반하는 결과를 내고자 과학자들을 고용하고 연구를 시켰다. 질병관리본부의 역학조사 결과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며 그것에 근거한 사회 대책 수립을 방해했다. 추가적인 정부의 대응이나 규제가 있으려면 더 많은 확실한 증거가 필요하다는 방식으로 보건복지부, 환경부를 압박했을 것이다. 지난 5년간 옥시레킷벤키저에 대한 사회적 대응이 지지 부진했던 것도 이러한 전략에 휘말려 들어간 결과다. 검찰 조사 결과 이러한 과정의 일부가 밝혀지고 있지만, 추가적인 조사를 통해 더 확실히 이를 드러낼 필요가 있다.
옥시레킷벤키저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건의 성격은 우리 사회의 허술한 화학물질 관리 시스템이 낳은 참사이다. 이번 논란을 통해 밝혀진 바대로, SK케미칼의 전신인 유공이 1996년에 가습기 살균제 원료인 PHMG 제조 신고서를 환경부에 제출했지만, 환경부는 추가 독성 자료를 요구하거나 유독물로 지정하지 않았다. 옥시는 2001년부터 가습기 살균제 성분으로 PHMG를 쓰기 시작했지만 흡입 독성 실험을 하지 않았다. 정부 당국도 이에 대해 문제 제기하지 않았다. 이번 사건은 우리 사회 화학물질 생산, 유통, 관리 체계에 치명적 허점이 있음을 드러내 보이고 있는 것이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문제를 제대로 조사하고 해결해야 한다. 무엇보다 먼저 최초 문제 제기가 있은 이후 지금까지 옥시래킷벤키저가 취한 행동들에 대해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 어떠한 방식으로 정부 기관의 행동을 막아섰는지, 어떠한 방식으로 관련된 전문가들을 회유하거나 압박하였는지, 어떠한 방식으로 자신에게 불리한 증거들을 인멸하려 하였는지 등에 대해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 보건복지부와 환경부의 늦은 대응에 대해서도 조사가 필요하다. 옥시의 전략에 휘말려 왜 이렇게 무능하게 관련 대응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서 보다 근본적이고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
또한 국가는 옥시 뿐만 아니라 동일 성분의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건강 피해 가능성을 넓히고 피해 가능성이 있는 이들의 신고를 기한을 정해놓지 않고 받아야 한다. 인과관계를 엄밀히 따져 PHMG와 PGH에 의한 폐질환만을 보상하는 체계로 간다면 선의의 피해자들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원인 물질과 건강 피해를 최대한 넓히는 방안을 구체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당사자들의 경제적, 시간 비용을 고려하여 피해자 개인이 재판 과정에서 인과관계를 입증해 손해배상을 받는 방식이 아니라, 정부가 조건을 정해 그 조건을 충족하는 이들 모두에게 포괄적으로 보상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 보상과 구제에 필요한 재원은 100% 국가가 관련 기업에게 구상권을 청구하여 해결하도록 해야 한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에 대한 제대로 된 조사와 보상 및 구제를 위해서는 석면피해구제법과 흡사하지만 내용적으로 더 포괄적이고 종합적인 특별법이 필요하다.
기업의 생산물에 의한 소비자 건강 피해와 화학물질에 의한 건강 피해는 앞으로도 발생할 수 있는 문제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문제를 예방하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 제대로 된 대응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관련 제도의 정비가 필요하다. 기업을 상대로 한 소비자들의 집단소송이 가능해져야 한다. 기업의 고의가 입증될 경우 기업이 망할 정도의 손해배상액을 법원이 산정할 수 있도록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자연인이 아닌 기업이라는 법인이 관련된 살인죄 혹은 업무상과실치사죄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은 현행 형법 제도를 보완하기 위해 시민사회에서 제안된 ‘중대재해 기업처벌법’을 도입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기업의 생산물에 의한 건강 피해를 입증하고, 그 과정에서 기업의 전략이나 입김에 휘말리지 않은 상태에서 빠른 결정과 대책을 집행할 수 있도록 하는 정부 체계와 제도의 개편이 필요하다. 기업의 보이코트와 반대로 누더기가 된 채로 입법된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과 ‘화학물질관리법’이 보완되어야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