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어사 한국지사 홈페이지 화면 | |
ⓒ 고어사 홈페이지 갈무리 |
고어사 인공혈관 공급 중단 사태는 결국 임시 공급 재개 결정으로 봉합됐다. 선천성 심장병은 수술만 하면 거의 완치가 가능함에도 재료공급 중단으로 수술을 못하게 돼 많은 사람들이 참담함을 느꼈을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비판의 대상과 해결방법을 둘러싸고 의견이 크게 엇갈렸다.
첫째는 고어사의 비윤리적 행태를 비판하는 주장이 있었다. 이런 반응에 힘입어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5월에 열릴 세계보건기구(WHO) 총회에서 의약품·의료기기 독과점 횡포에 대해 문제제기 하겠다고 했다. 둘째는 정부의 저수가 정책과 과도한 규제에 주된 책임이 있다는 주장이었다. 이런 입장을 조직적으로 밝히고 있는 곳은 의료계다. 심지어 바른의료연구소라는 단체는 독과점이 아니라 정부 횡포가 문제라며 WHO에 서한을 보냈다.
과연 환자를 위한 대안은 무엇일까? 독과점 횡포 규제와 수가인상으로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이번 일을 두고 기업이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 왜 잘못이냐는 주장이 보수적 의료인과 의료기기 회사들에서 횡행했다. 적정 수가가 어느 수준이어야 하는지는 어려운 문제다. 하지만 고어사 인공혈관 가격(2017년 10월 한국 시장 철수 당시 약 46만 원)은 우리와 보험제도가 비슷한 대만 수준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또 제조공정 관리 체계는 유럽보다 훨씬 느슨했다. 따라서 취득한 허가를 취소하면서까지 아이들의 심장수술을 중단시킨 고어사의 행태는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되기 어렵다.
특히 독점기업은 ‘저수가’일 때만 가격협박을 하지 않는다. 한 달에 300~450만 원의 약값을 요구한 글리벡 사태, 기존가격 대비 500% 인상을 요구한 리피오돌 사태가 그랬다. 미국에서는 전 헤지펀드 매니저가 지난 60여년 간 에이즈 환자에게 사용된 항생제 특허를 구입해 한 알당 1만 6천 원이었던 약을 90만 원에 판매한 사건까지도 있었다. 이는 ‘더 많은 이윤’만이 생명 산업의 목적이라는 것을 보여줘 왔다.
이번 경우만 봐도 한국은 미국과 의료보험 체계가 근본적으로 다르고 구매력 차이가 큰 데도 고어사는 미국시장과 동일한 가격(약 80만 원)을 요구했다. 결국 ‘인질극’에 성공한 그들은 임시가격이지만, 미국보다도 2배 가까이 높은 개당 137만 원을 챙겼다.
‘이윤보다 생명’ 그걸 무시할 수 있나
일부는 ‘이윤보다 생명’이라는 주장을 조롱한다. 그러나 의약품의 경우 ‘강제실시’가 전 세계적으로 인정된 고려사항일 정도로, 기업 이윤보다 생명권이 우선이라는 것은 상식이다. WHO ‘무역관련 지적재산권 협정’에 따르면 공공적 목적을 위해 특허권을 침해하는 것이 허용된다.
문제는 생명권을 무시하는 이런 기업 옹호 논리의 핵심 진원지가 의료계였다는 점이다. 일각의 의료계는 이 불행한 사태를 한국 의료제도 전반의 ‘저수가’가 문제라는 해묵은 주장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했다. ‘낮은 의료비 때문에 의료기관들이 경영난을 겪는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한국은 가처분 소득의 10% 이상을 병원비에 쓰는 ‘재난적 의료비’ 가구가 44만 세대다.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는 거다. 의료비가 낮아 의사들이 살기 어렵다는 주장에 많은 국민들은 귀를 의심할 것이다. 무엇보다 특정 치료 재료의 가격 논란과 한국의료의 ‘저수가’ 주장을 결부해 기업의 어린이 인질극을 옹호해서는 곤란하다.
수가논쟁은 향후 이런 사태를 막는 일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본질적인 질문은 국가에 기업이윤을 제한할 수 있는 장치가 있느냐에 던져져야 한다. 고어사라 할지라도 강력한 ‘강제실시’와 같은 의료규제를 가지고 있는 유럽 국가들에 차마 이런 협박을 벌이지는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즉 보상금액이 아니라 기업이윤을 제한할 수 있는 장치가 존재하는지가 핵심 문제였다.
▲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교육·사회·문화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참석해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
ⓒ 유성호 |
정부는 심각한 자기모순에 빠져있다. 동네 깡패들의 온갖 횡포에는 유착해 지원하면서 옆 마을 깡패 하나가 들어와 벌이는 인질극에는 타협할 수 없다고 목청 높여 원칙을 외치고 있는 셈이다. 스스로 보여준 무능과 모순적 정책방향을 감추기 위해 국민들을 향한 의도된 연출이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든다.
정부가 진정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위한다면 희귀질환을 치료하기 위한 의약품과 의료기기 개발을 위해 공공적 투자로 필요한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이것이 진정 ‘독과점 기업의 횡포’에 맞설 길이다. 또한 보건의료에서 정부가 그토록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혁신을 이룰 방법이다. 근거 없는 의약품과 의료기기를 ‘혁신’과 ‘첨단’으로 포장하는 일은 그만둬야 한다.
근거 없는 ‘혁신’과 ‘첨단’
사태가 진행되는 동안 정부와 이해당사자들의 발언에는 정치적 의도가 담긴 프레임만 무성했고 그 결과 해결을 위한 진지한 논의는 가로막혀 왔다. 진정 시민들이 주체가 되는 공론장이 열려야 대안 논의가 시작될 수 있다. 물론 쉬운 문제는 아니다. 강제실시와 공공제약사 설립이라는 대안이 있는 의약품 접근권 문제와 달리, 치료재료는 손쉽게 재현해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게다가 갈수록 심각해지는 세계적 의료 상업화 드라이브 속에 새로운 의료기술을 어떻게 적용하고 누가 통제할 것인지에 대한 어려운 질문에도 우리는 계속해 맞닥뜨릴 수밖에 없게 되었다. 평범하지만 답은 하나다. 시장만능주의를 거부하고 우리의 삶을 지켜내기 위한 공공적 기반을 끊임없이 요구하는 것, 그리고 세계 시민들과의 연대를 추구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당장은 전 세계 환자들의 생명을 함께 위협할 의료기기 규제 파괴 정책에 맞서는 것이 시민들의 당면한 과제다. 나아가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강한 의료규제를 마련하도록 정부에 요구해야 한다. 그래야 돈벌이 기업의 독점권에 맞서 우리의 생명을 지켜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