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에 밀려난 ‘일반 응급환자’ 지침은 어디에?

등록 :2020-05-21 20:42수정 :2020-05-21 20:55

 ‘사회경제위기 대응 시민사회대책위’ 토론회·간담회

고열로 병원 찾았지만 치료 못받아 숨진 17살
사후 코로나19 검사에서 끝내 ‘음성’ 판정
부친 “5분 거리 선별진료소만 안내했어도…”
전문가 “일반환자 위한 의료기관 내 시설 확보 필요”
21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의료현장 증언을 통한 교훈-2차 확산대비,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라는 주제로 긴급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코로나19로 오인되어 제대로 된 치료를 적시에 받지 못해 사망한 정아무개 학생의 아버지(맨 오른쪽)가 아들이 숨진 사망 경위와 의료 대응의 문제점을 증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21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의료현장 증언을 통한 교훈-2차 확산대비,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라는 주제로 긴급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코로나19로 오인되어 제대로 된 치료를 적시에 받지 못해 사망한 정아무개 학생의 아버지(맨 오른쪽)가 아들이 숨진 사망 경위와 의료 대응의 문제점을 증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월20일 국내에서 처음으로 코로나19 환자가 나온 지 4개월이 넘었다. 정부는 성공적인 방역을 이야기하지만, 코로나19가 아닌 환자 진료 등 ‘2차 코로나19 유행’에 대비한 의료 대응 체계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1일 보건·의료 시민단체들로 구성된 ‘코로나19 사회경제위기 대응 시민사회대책위’는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토론회를 열어, 이런 국내 의료 대응체계를 보완할 방법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는 지난 3월18일 목숨을 잃은 정아무개(17)군의 부모가 참석해, 코로나19가 아닌 환자가 겪은 의료 공백 문제를 호소했다. 정군의 가족의 말을 종합하면 정군은 3월12일 오후 7시30분 41도가 넘는 고열 증상으로 경북 경산시 경산중앙병원을 찾았지만, 선별진료소의 문을 닫혀있었다. 이후 응급실을 찾았지만, 항생제와 해열제 처방과 ‘다음날 코로나19 검사를 받으라’는 권유만 받고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다음날인 13일 아침 경산중앙병원을 찾아 폐 엑스레이 촬영과 독감·코로나19 검사 등을 받은 결과 담당 의사로부터 ‘폐에 염증이 군데군데 보인다’는 소견을 들은 뒤 더 강한 약을 처방받고 귀가했다. 이후 계속 40도가 넘는 고열과 호흡곤란에 시달렸지만 ‘코로나19 의심환자’라는 이유로 링거주사를 개인의 자동차 안에서 맞아야 했다.

검사 결과를 기다릴 수 없었던 정군의 부모는 경산중앙병원에 연락했고, 의료진으로부터 갑작스럽게 “오늘을 넘기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다. 서둘러 대구 영남대병원으로 이동한 뒤 격리실에서 혈액 투석과 에크모(인공 심폐 장치) 치료를 받았지만 18일 목숨을 잃었다. 정군은 코로나19 환자로 의심돼 수차례 코로나19 검사를 받았지만, 19일 최종 음성판정을 받았다.

정군의 가족과 보건의료 시민단체들은 정군이 처음 병원을 찾은 12일부터 목숨을 잃은 18일까지 ‘의료공백’이 있었다고 보고 있다. 정군의 아버지는 이날 토론회 전 간담회에서 “당시 경산중앙병원에서 5분 거리인 밤 10시까지 하는 다른 병원의 선별진료소를 소개했어야 했는데, 다음날 병원으로 오라고 해서 골든타임을 다 놓쳤다”며 “코로나19가 아닌 일반 응급환자 지침이 없어 이런 사태가 벌어졌다”고 지적했다.

이상윤 건강과대안 책임연구위원은 토론회에서 “정군의 사례는 호흡기나 발열 증상으로 온 환자가 코로나19 유행 시기 확진되기 전까지 어떤 의료기관에도 갈 수 없었던 상황으로 발생한 아픈 사고”라며 “당시 지역사회 선별진료소는 24시간 운영도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한 “코로나가 대유행했던 지역이나 공공병원밖에 의료자원이 없는 외지는 호흡기나 발열증상 환자, 출산을 앞둔 임신부 등을 받을 수 없다”며 국민안심병원을 포함한 지역사회 의료기관 내 치료를 위한 공간과 시설 확보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이날 현장에서 환자를 진료하는 간호사와 보호장비 등이 추가로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전진한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국장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부분은 병원 간호사 1명이 평균 6∼8명의 환자를 간호하는 반면, 한국 병원 간호사들은 평균 15∼20명의 환자를 간호한다”며 “간호사들은 하루에 10∼12시간을 일하고 이 중 식사와 화장실을 이용하는 시간은 평균 21분에 그친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안으로 “코로나19 치료 간호사 배치 기준을 만들어 간호인력을 확충하고 국공립 감염병전문병원을 설립해 감염병을 치료할 수 있는 간호사를 교육하고 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 3월 한 달간 계명대 대구동산병원 중환자실에서 근무한 김수련 간호사는 “보호복이 지급되지 않고 과로에 시달리는 열악한 노동환경에 3∼5년차 간호사들이 그만둔다”며 “천사, 영웅이라는 추상적 이미지 아래에 이런 문제들이 많이 가려져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시민단체들은 제2의 정군 사례가 나오지 않도록 조기에 환자를 선별하고 진료할 수 있는 정부의 ‘치료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방역과 별개로 치료를 위해선 의료현장에서 병상을 조정하고 인력과 장비를 필요한 곳에 배분할 수 있는 역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형준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질병관리본부를 질병관리청으로 승격하고 공공보건의료청을 만들어 방역과 치료에 대응하는 각각의 컨트롤타워를 만들어야 한다”며 “공공보건의료체계를 만들면 현재 공공 대학병원은 교육부가, 지방 공공의료원은 지자체가 나눠서 관리하는 의료시스템을 통합해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권지담 기자 gonj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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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society/health/945989.html#csidx10b01772ad1fd08a60a38c1d25cf10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