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mbc
정부는 코로나19 의료공백에 책임있는 조사, 재발 방지 대책 마련, 의료공공성 강화와 공공병원 확충 약속하라.
오늘은 정유엽 학생 사망 1년이 되는 날이다. 지난 3월 18일 정유엽 학생은 꼭 필요한 시기에 제대로 된 응급조치를 받지 못해 17살 나이로 사망했다. 유가족은 아들의 사망 원인을 규명하고자 아들의 치료를 호소했던 병원에서, 대구시내에서 왜 내 아들이 죽을 수밖에 없었는지를 알려달라며 꼬박 1년을 싸워왔다. 그러나 고열에 시달리던 아들이 병원 문 밖에서 방치될 수 밖에 없었던 사태에 대해 그 어떤 책임 있는 이들의 설명도, 사과 한마디도 들을 수 없었다. 문제는 의료공백으로 인한 안타까운 인명손실이 정유엽군의 문제만으로, 그리고 대구경북 지역의 문제만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2차, 3차 파고에서도 수도권과 전국의 의료공백과 병상부족이 심각한 문제가 되었다. 그러나 정부는 이러한 의료공백과 공공병상 부족을 공개적으로 인정하고 대책을 세우는 대신 케이(K)방역을 내세우며 문제를 덮는데 급급했다.
‘정유엽과 내딛는 공공의료 한걸음 더’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건강했던 아이의 갑작스런 죽음이 너무 비통해서, 의료공백으로 인한 희생자가 유엽이만이 아니라는 사실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케이(K)방역으로 이런 고통들을 외면하고 있는 정부 때문에, 아버지는 370km를 유엽이와 함께 걸어 유엽이의 1주기에 여기에 왔다.
지난 1년 유가족과 함께 시민사회단체가 요구하는 내용은 변함이 없다. 정유엽 학생을 비롯한 의료공백 사태에 대한 책임 있는 진상조사와 이에 대한 입장과 대책을 마련하라는 것. 의료공백 사태의 구조적 문제인 공공병상을 확충하고 의료공공성 강화 방안을 내놓으라는 것.
고 정유엽 학생은 대구경북 지역에서 코로나19가 대유행하던 시기 국가가 마련한 ‘국민안심병원’을 찾아갔다가 코로나 환자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필요한 응급치료를 외면당해 사망했다. 그 시기 대구지역에서만 초과사망자가 338~900명 가량 발생했다. 공공병원이 충분했고 공공의료가 제대로 갖추어졌더라면 잃지 않을 수 있었던 안타까운 생명들이다. 대구에서 유독 초과사망자가 많았던 것은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 대유행 등의 국가적 재난 상황 발생 시기에 국가나 지자체가 신속하게 동원할 수 있는 공공병상이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 주된 원인이다. 국내 전체 병원의 병상 중 공공병상은 9.6퍼센트 수준으로 10퍼센트에도 못 미친다. 전체 의료기관 중 5.5퍼센트 밖에 안 되는 공공의료기관으로 세계적인 팬데믹을 대응하고 있는데 어떻게 의료공백이 발생하지 않을 수 있는가? 정부가 의료공백 문제를 외면하고 실태 조사에 나서지 않고 있는 것은 이 턱없이 부족한 국가 책임의 방기, 즉 공공의료의 부족 문제를 가리고 이윤 중심의 시장화된 케이(K)의료의 진실을 가리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사람 중심의 의료공공성이 아니라 돈벌이와 시장화로 내맡겨지 ‘케이(K)의료’의 문제를 ‘케이(K)방역’이라는 행정권력 강화로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 정부의 대응 방식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케이(K)방역으로 죽음을 가릴 수는 없다. 케이(K)방역의 포장지로 의료공백을 지우고 메꿀 수도 없다. 공중보건의 위기는 총체적인 의료공공성 강화와 함께 충분한 공공병원과 의료인력 확충을 통해서야 겨우 대응 가능하다. 의료공공성 강화 없는 케이(K)방역 강화는 의료공백이라는 누군가의 불안과 공포 그리고 마침내 누군가의 죽음을 통해 버틸 수 있는 차별적 조치들과 행정권력 독점으로 이어질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의료공백을 겪고 있는 이들이 사회적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조건에 놓여져 있을 수 있다는 정부 차원의 인식이다. 의료공백은 팬데믹 시기에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기도 하지만 언제나 모든 사회적 제도의 ‘공백’은 불평등한 위치에 놓여 있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게 더 우선적으로, 더 치명적이다. 공공병원을 코로나전담병원으로 지정하면서 공공병원을 이용하던 노숙인, 쪽방 주민, 미등록 이주노동자 등 경제적 취약계층들은 자신이 이용하던 공공병원을 국가가 빼앗아가도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가난한 환자들은 그나마 의지했던 공공병원들에서 떠밀려나 비싼 민간병원을 이용해야 했거나, 아니면 아파도 참았고, 아파서 참다 병이 악화되거나 죽음에 내몰렸다. 이런 일은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사회적 자원이 부족한 이들에 대한 정부의 보호조치가 전무하기 때문에, 이들의 고통이 상대적으로 사회적으로 주목을 덜 받기 때문에, 5.5퍼센트 밖에 안되는 공공병원의 이용권리를 이들로부터 국가가 먼저 빼앗을 수 있었다. 공공병원 소개령은 대통령이 명할 수 있으나, 대통령은 5.5퍼센트의 공공병원 밖에 의지할 수 없는 가난한 국민들이 그럼 어디가서 치료를 받을 수 있는지 대답해야 했다. 해결해야 했다. 실태를 조사하고 대책을 마련하도록 해야 했다.
다시 정유엽의 이름으로, 그리고 정유엽과 함께 공공의료 한걸음을 내딛은 시민들의 이름으로 우리는 요구한다. 문재인 정부는 고 정유엽 학생의 죽음을 진상 조사하고, 코로나19로 인한 의료공백에 대해 실태 조사에 나서라. 또한 5.5퍼센트 밖에 안되는 공공병원을 가난한 환자들로부터 빼앗는 것으로 케이(K)의료를 해결하려 하지 말고 공공의료를 확충하고 의료공공성 강화의 방안을 마련하라.
오늘 우리는 고 정유엽 1주기를 맞아 유가족과 함께 정유엽 학생을 추모하며, 슬픔을 딛고 함께 내딛은 이 소중한 공공의료 한걸음 한걸음으로 더 힘차게 나아갈 것을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