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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케어’ 약속 파기에 대한 사과가 아닌 자화자찬은 낯부끄러운 수준
정부가 오늘(12일)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 4주년 성과 보고대회’를 열었다. 많은 사람들이 ‘문재인케어’에 대한 이 정부의 자료에 기반한 진지한 평가를 들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 보고대회는 사실상 아무 내용 없는 자화자찬의 자리에 불과했다는 점에서 실망스럽다.
정부는 2022년까지 보장률을 70%까지 올리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이미 지난 해 말에 정부가 발표한 대로 2017년 62.7%였던 보장률이 2019년 64.2%로 1.5%p 오른 데 불과한 상황이고 이번에 새로운 자료를 제시하지 않았다. 약속했던 70%를 지키는 것은 불가능해졌는데 여기에 대한 설명과 사과가 아니라 스스로 잘했다고 박수치는 자리를 가졌다는 점은 의아하다.
정부가 일부 비급여 항목들을 급여화한 것은 물론 잘한 일이다. 그러나 성과에 비해 포장은 과도하다. 정부는 ‘지난 3년간 국민 3,700만명에게 9조2,000억 의료비 혜택’을 줬다고 강조했는데, 1인당 월 7천원 미만 경감에 불과하다. 보험료 인상 폭에 비해 대단치 않다. 무엇보다 정부는 4년 전에 ‘비급여의 점진적 축소’가 아니라 ‘의학적으로 필요한 비급여를 완전히 해소’하는 패러다임으로 전환하겠다고 약속했었다. 하지만 결국 이전 정부들과 마찬가지로 비급여를 점진적으로 일부 줄이는 데 그치면서 늘어나는 비급여 때문에 보장성이 답보상태인 상황이다. 시민사회가 주장해온 대로 혼합진료 금지 등 비급여 통제, 민간중심 의료공급체계 개혁 없이 점진적 급여화는 한계가 분명하다는 점이 또다시 반복돼 드러난 것이다. 이전 정부들과 별 차이 없는 건강보험 정책이었던 셈이다.
시민들은 여전히 낮은 건강보험 보장성 때문에 고통 받고 있다. OECD 보건의료 데이터에 따르면 2017년 기준 한국에는 가처분 소득의 40% 이상을 의료비로 쓰는 재난적의료비 지출가구가 7.5%나 되고 이는 미국(7.4%)보다도 높은 수치다. 오직 코로나19 기간 확진 환자들만 무상으로 치료받을 수 있었는데 코로나19가 의심돼 치료받다가 결국 음성으로 확인되면 수백만원의 치료비를 본인이 지불해야 했다. 또 백신 접종 후 이상반응이 발생해도 정부가 피해를 인정하고 지원하지 않으면 수천만원의 치료비를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는 점이 드러났다. 이런 일은 대부분의 OECD 국가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의료비는 기본적으로 국가가 책임지고 부담하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의 건강보장이 얼마나 부족한지 드러난 사례들이었고, 이는 백신접종 불안으로도 이어졌다. 또한 한국은 OECD 회원국 가운데 상병수당이 없는 단 4개 나라 중 하나이다. 아파도 쉴 수 없다는 점이 코로나19 방역에도 영향을 미쳤다.
또 정부는 이번에 2020년도 재정이 17.4조원 남았다며 재정수지를 자찬하였다. 그러나 매년 시민의 건강보험료율을 올려 확보한 건강보험 재정은 쌓아놓는 것이 아니라 그 때 그 때 적극 활용해 의료비 절감과 상병수당 도입에 써야 했다. 상병수당은 1년에 8천억~1조7천억만 있으면 전국민에게 즉각 도입할 수 있는데도 꼭 필요한 이런 정책은 재정이 부족하다는 핑계로 지지부진이다. 그러면서도 재정흑자를 자랑거리로 내세우는 것은 문제가 크다. 또 정부는 건강보험에 대한 정부지원을 확대했다고도 밝혔지만, 여전히 법정 국고지원 비율 20%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13.2%만을(2019년 기준) 지원하고 있는 상황이다. 법 위반사항까지 ‘성과’로 포장하는 것은 지나치다. 게다가 문재인 정부는 이명박(16.4%), 박근혜(15.3%) 정부 평균보다도 지원율이 낮다.
마지막으로 정부는 비급여를 축소하기는커녕 대폭 늘리는 정책을 펴고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진단검사, 신의료기술, 신약의 안전과 효과를 평가하는 규제는 완화되었고 또 대폭 완화를 예고하고 있다. 이는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비급여를 양산해 환자 부담을 늘릴 정책이다. 또한 민간의료보험에 ‘공공데이터’를 넘기는 등 민간보험 활성화정책을 펴고 있다. 민간보험과 비급여 의료행위는 서로를 강화시키는 관계다. 이런 점을 볼 때도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정책이 진지하다고 평가하기 어렵다.
우리는 정부가 건강보험 보장성 정책을 다시 평가하고 남은 임기 동안이라도 의료보장에 매진하기를 바란다. 감염병과 기후위기 시대 ‘모두를 위한 의료’는 절박한 과제가 되었다. 내년 대선에 나서는 후보들도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하고 공공의료를 강화하기 위한 진지한 정책들을 내놓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