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 1인당 환자수 법제화를 위한 국민동의청원이 시작되었다. 청원의 주체로 나선 것은 간호사 당사자들이다. 코로나19 재난적 의료현장을 지난 1년 반 넘게 버텨오다 이제 직접 이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것이다.
시민사회단체 역시 오래 전부터 간호인력 부족이 한국 의료 시스템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이고, 간호사 1인당 환자 수를 법제화 해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우리 모두는 이 운동을 적극 지지하고 함께할 것이다.
첫째, 전 세계 최저 수준의 간호인력 문제를 방치하고 모두가 안전할 수 없다.
한국의 인구당 간호사 수는 OECD 평균의 절반이고, 병상당 간호사 수는 5분의 1도 되지 않는다. 코로나19로 이 문제가 전면에 드러났을 뿐 평소에도 의료현장은 비상사태였다. 간호사들은 이전부터도 적은 인력으로 열악한 노동조건 속에 온갖 질병에 시달리고 스스로 생명을 끊기도 했었다. 그러다 팬데믹이 발생하자 더 이상 버티지 못하게 된 것이다.
적은 간호사 수는 환자 안전에 치명적이다. 간호사가 담당하는 환자가 늘어날수록 환자 사망과 합병증이 늘어난다는 연구가 수없이 많다. 따라서 한국처럼 간호사가 적은 나라에서 평소에도 보이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이 인력부족이라는 구조 속에서 사망하거나 건강을 잃었을 것이다. 이는 코로나19 같은 재난 시기에는 환자를 담당할 간호사가 없다는 눈에 보이는 극명한 문제가 되고 있다. 간호인력을 확충할 제대로 된 대안 없이는 계속될 감염병과 기후재난 시기에 살아남을 수 없다.
둘째, 정부는 그간 왜곡되었거나 역효과만 낼 대안들에 의존해왔다.
정부는 간호대 정원을 늘리는 것을 대책으로 삼아왔다. 하지만 현장에서 일하는 간호사 부족 문제는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민간의료중심 공급체계에서 병원이 인건비 절감을 위해 고용을 늘리지 않는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다. 돈벌이만 추구하는 병원들에 고용을 강제하지 않고 배출 간호사만 늘리는 것은 아무 효과가 없고 오히려 노동 시장에서 간호사들의 처지만 악화시켜왔다.
‘간호등급제’라는 재정적 인센티브 역시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제도가 시행된지 20년이 넘었지만, 간호관리료보다 인건비를 절감하는 것이 더 이익이 되는 병원들은 여전히 적은 수의 간호사를 쥐어짜는 선택을 하고 있다.
한국에 간호사 인력기준이라고는 60년 전 제정된 시행규칙이 전부다. 그 기준은 현실에 맞지 않고 사문화되어 있다. 명시된 기준을 지켜도 외국보다 2배나 많은 환자를 봐야 하고, 그나마도 지키는 병원이 매우 적고 어겨도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는다.
셋째, 간호사 1인당 환자 수를 법제화하는 것이 해법이다.
이 모든 상황을 고려하면, 필요한 것은 병원에 간호사 고용을 강제하고 이를 어기는 병원에 제재를 가하거나 처벌을 할 제대로 된 법률이다. 이는 가장 효과적인 해결책이고, 아무런 추가 재정이 필요하지 않으며 오로지 병원들이 벌어들이는 막대한 이윤을 사회적으로 적절히 통제하면 가능한 명확한 조치다.
외국에서도 간호사 1인당 환자수를 법제화한 사례들이 많다. 미국만 해도 캘리포니아주에서는 20년 전 제도를 도입한 뒤 현재 99%의 의료기관이 이를 준수하고 있고 이로 인해 환자치료의 조건이 향상되었다. 메사추세스 주는 중환자실 간호사 최소 인력기준이 존재하며, 간호사가 참여하는 병원 인력위원회가 최소인력을 결정하도록 하는 주들도 많다. 이처럼 최소 간호인력 법제화는 심지어 의료상업화 천국이라는 미국에도 있는 제도이며 코로나19 이후 이는 점점 더 강화되는 추세이다. 한국처럼 민간의료기관이 대부분이면서도 정부 개입이 없다시피 해 간호사들을 지옥 같은 노동현장에 고스란히 방치하는 나라는 없다.
이번에 의료노동자들이 청원한 ‘간호인력 향상을 위한 법률’에는 간호사 충원 법제화 뿐 아니라 적정임금, 안전 및 보건대책, 수련환경 개선, 인권센터 설치 등 간호사의 노동권을 보장해 결과적으로 환자의 건강과 안전을 지킬 조치들이 담겨 있다. 이는 모두 즉각 시행되어야 할 정책들이다.
간호사는 아픈 이들을 위해 헌신하기를 선택한 사람들이지만, 최소한의 노동권도 보장되지 않는 지금 현실에서는 환자를 위해 제대로 일하지 못하고 병원 이윤을 위해 쥐어짜이듯 착취당하다가 버려지는 공장 부품이나 다름 없는 처지이다. 그리고 이런 ‘돈벌이 공장’에서 환자들도 안전하지 않다. 감염병과 기후 재난 시대, 간호인력 확충 법제화는 필수적 요구이다. 우리 시민사회단체는 이 법이 제정될까지 함께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