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9일) 국가인권위원회가 ‘노숙인 진료시설 지정제도 폐지’를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권고했다. 우리는 인권위의 권고를 환영한다. 정부는 이를 당장 이행하라.
누구나 아플 때 가까운 의료기관에서 치료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기본권 중의 기본권이다. 하지만 어처구니 없게도 이 나라에서 홈리스에게는 이런 권리가 없다. 이들은 아무 병원에나 갈 수 없고 지정된 일부 노숙인 진료시설에서만 치료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홈리스들은 치료를 받기 위해 많은 시간과 거리 상의 제약을 받았고 의료접근권을 침해받아 왔다. 이런 제도가 존치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이 사회가 얼마나 차별적이고 반인권적지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또한 노숙인 진료시설은 대부분 공공의료기관이다. 보건소가 대부분이고, 병원급 의료기관도 대체로 공공병원이다. 안 그래도 민간병원은 수익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가난하고 취약한 환자들을 돌보지 않고 있는데 아예 홈리스의 경우는 정부가 제도적으로 이런 차별을 용인하고 장려해 온 것이나 다름 없다. 민간병원이 돈벌이에 혈안이 돼 취약계층 진료를 꺼리는 데 이 지정제도는 면죄부를 줘 왔다.
특히 이는 코로나19 시기에 커다란 문제가 되었다. 코로나 첫 해인 2020년 말에도 노숙인 진료시설인 서울시 공공병원 6곳이 모두 코로나19 전담병원이 되면서 홈리스들이 이용할 수 있는 병원급 의료기관이 사라졌다. 비슷한 일은 반복되었다. 지난 해 12월에도 국립중앙의료원과 서울의료원이 소개되면서 홈리스들이 이용할 수 있는 응급실은 단 한 곳 밖에 남지 않았다. 인권위가 짚었듯 팬데믹 속에서 홈리스들은 기존에 가지고 있던 한 줌의 의료자원마저 박탈당했다.
정부는 몇 안 되는 공공병원을 쥐어짜며 홈리스와 가난한 환자들을 희생시켜 재난에 대응해왔다. 노숙인 지정제도 폐지는 이를 반성하고 되돌리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일 것이다.
복지부는 인권위 권고를 당장 이행해 홈리스들에게 차별적인 진료시설 지정제도를 폐지해야 한다. 이를 시작으로 가난하고 취약한 계층에 대한 보호와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가장 어려운 사람들을 희생시키는 재난 대응은 이제 멈춰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