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헬스, ‘낡은 질서’의 새로운 귀환

첨부파일 : 성남시의료원 팍스로비드 재택치료 모니터링

코로나19 출구에서 힘 받는 원격의료 등의 밑바탕은 차별과 배제 강화하는 ‘올드노멀’

 

사진: 한겨레21

 

2022년 4월18일 ‘사회적 거리 두기’가 전면 해제됐다. 2020년 1월8일 한국에서 최초의 코로나19 환자가 확인되고, 2020년 2월23일 한국의 감염병 위기 경보가 ‘심각’ 단계로 격상된 지 2년여 만이다. 코로나19의 법정 감염병 등급을 기존 1급에서 2급으로 낮추는 것을 논의하면서 ‘일상 회복’ 기대도 늘고 있다.

대안적 질서 없는 ‘다시 제자리’

코로나19 유행 초기, 우리의 일상과 사회 운영을 더는 기존 방식대로 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 많았다. 과거와 같은 일상 회복이 불가능하리라는 예측에 기반했지만 코로나19 발생의 근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기존 정치경제, 사회 운영 방식과 결별할 필요가 있다는 인식이 반영된 것이기도 했다. 기존 체제가 감염병 확산을 증폭하는 사회 불평등에 기반하고 이런 체제를 바꾸지 않으면 코로나19보다 더한 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 그러한 초기의 기대와는 거리가 멀다. ‘회복’은 없는 ‘다시 제자리’ 복귀는 아닐까.

수많은 사람의 생계가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막막해졌고, 빈곤선 이하 인구집단이 큰 폭으로 늘었으며, 공급사슬 중단으로 제조업 생산라인에 문제가 생겼음에도 빅테크 기업들은 승승장구했다.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알파벳(구글) 등 빅테크 기업들의 수익이 증가했다. 재난을 기회로 삼은 비대면에 기초한 ‘디지털자본주의’의 성장은 정치적 포퓰리즘을 강화했고, 권위주의에 기댄 차별과 배제를 합리화하는 동력으로 토론과 합의라는 민주주의의 최소 조건을 흔들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는 민주주의의 반대 방향에서 ‘확증편향’과 ‘거짓선동’ 도구가 돼 ‘탈진실의 시대’로 명명되는 라이프스타일의 하나가 됐다. 2008년 경제위기 이후 헤게모니를 상실할 것 같았던 ‘신자유주의’는 감염병의 세계화 충격에도 여전히 ‘괜찮은 상식’으로 통용된다.

코로나19 유행 이전에 등장한 4차 산업혁명은 ‘산 노동’으로 공공적 가치를 생산하던 영역, 즉 먹거리(농업)·의료·교육·돌봄을 인공지능(AI), 데이터, 정보통신기술(ICT) 등 ‘죽은 노동’으로 바꿔 새로운 이윤 창출 영역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방향은 한때 ‘창조경제’라고도 불렸다. 코로나19 대유행이라는 재난은 이들에게 ‘비대면 서비스 시장’이라는 제대로 뛰어놀 수 있는 발판을 합법적으로 제공해준 셈이다.

코로나19 유행을 겪으며 여러 나라에서 원격의료를 비롯한 ‘디지털헬스 솔루션’의 급격한 활용이 늘었다. 특히 원격의료는 광범위한 사용에도 우려했던 부작용이나 단점이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아, 코로나19 유행 이후에도 기존 대면의료를 보완하는 형태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점쳐진다.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디지털헬스 주창자들은 더 광범위한 규제완화로 기술혁신이 일어날 토양을 마련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하지만 각국 정부가 유례없이 많은 규제를 완화했음에도 더 명확해진 한계가 드러났다.

인프라·리더십 등 디지털헬스 한계 뚜렷

첫째, 디지털헬스의 가능성과 성공 여부는 전적으로 적절하고 접근 가능한 데이터베이스 인프라 구축에 달려 있다. 현재는 그런 인프라가 구축된 나라가 없다. 의료 데이터는 표준화돼 있지 않아, 무질서하고 빈 공간이 너무 많다. 둘째, 기술 발전뿐 아니라 데이터 인프라, 거버넌스(협치), 인력 등을 총괄적인 비전 내에 통합하고 이끌어가는 리더십이 구축되지 않았다. 셋째, 비즈니스 솔루션이 없다. 원격의료조차 코로나19 이후 과연 경제적 성과 모델을 창출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넷째, 사이버보안 문제가 심각하다. 해킹 등 사이버보안에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다면 대중의 신뢰를 얻기 힘들다. 다섯째, 소득·인종·연령·젠더에 따른 디지털 격차의 형평성 문제가 심각하다.

이런 한계에 직면하자 디지털헬스 주창자들은 의료와 건강관리에 사용되는 ‘도구’일 뿐이라고 강조하지만, 사실 디지털헬스는 그 기술의 특성과 그것을 위해 요구되는 규제완화 때문에 더 광범위한 사회구조 변화의 계기로 작동한다. 디지털헬스에 새로 뛰어든 행위자들의 역할 증대를 보라. 전통적 의료 영역에서 주된 행위자는 의료인, 의료기관, 제약회사, 의료기기 회사, 보험회사 등이다. 세계적 규모에서 디지털헬스의 효용을 강조하며 뛰어든 새로운 행위자는 바로 거대 규모의 테크노, 데이터 기업들이다.

새로운 행위자의 등장은 전통적 의료 영역에 새로운 ‘가치’를 주입하며 새로운 ‘실행’이 필요하다는 주장으로 확대된다. 의료인과 환자의 인간적 접촉으로 의료가 이뤄지고 그 공급은 사회가 책임진다는 공공적 모델을 넘어, 데이터에 근거해 데이터 전문가와 기계가 의료를 제공하고 그 공급은 기업과 시장이 책임진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디지털헬스 실행은 기존 공공의료 체계를 민영화하고 시장화하는 기제로 작동한다.

또 다른 측면은 ‘생활세계의 의료화’ 경향의 확대다. 질병이 아닌 것을 질병화하고 문제화해 관리 대상으로 삼는 현상이다. 수면, 체중, 식단, 운동 등을 ‘건강관리’ 명목으로 문제화하고 해결책을 제공하는 서비스가 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기존 의료정보뿐 아니라 다양한 건강정보와 개인의 생활습관 데이터를 수집해 관리한다. 의료정보와 건강정보의 상업적·경제적 가치화가 이뤄지고 개인의 프라이버시·정보인권이 침해될 가능성도 커진다.

의료 민영화, 불평등 악화로 가는 길

마지막으로, 의료·사회 영역에서 개인을 새로운 범주로 ‘구별 짓기’ 하는 경향이 확대된다. 광범위한 개인정보와 데이터를 바탕으로 개인을 다양한 방식으로 범주화하고 구분한다. 이런 개인정보를 바탕으로 금융기관의 대출 신용 평가, 보험회사의 위험 평가 등이 이뤄진다. 디지털헬스 도구가 차별과 배제를 증가시키고, 사회·건강 불평등을 악화하는 방향으로 기능하게 된다.

코로나19 유행으로 우리는 세계의 불평등과 기존 체제의 모순을 ‘대면’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신기술’로 무장하고 새로움을 표방하지만 사실은 ‘올드노멀’인 정치·경제·사회적 질서의 귀환을 목격하는 것일까? 슬라보이 지제크는 전환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주체가 실재와의 트라우마적 만남을 겪어야 하고 대안적인 상징적 질서를 얻기 위해 이데올로기의 ‘환상을 횡단해야’ 한다고 말한다. 알랭 바디우는 변화의 주체는 ‘사건’으로 만들어진다고 한다.

코로나19가 우리에게 특별한 ‘사건’도 ‘실재와의 트라우마적 만남’도 아니었던 걸까? 그러나 코로나19를 큰 전환의 ‘사건’으로 경험한 이들은 분명 있다. 감염병 위기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기후위기는 대안적인 정치경제적 구성을 낳는 ‘전 지구적 사건’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사건들과의 만남으로 형성된 실재하는 주체들의 의지적 실천이 세상을 바꿔나갈 것이다.

이상윤 의사·건강과대안 책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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