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차보건의료 공공성 더욱 약화시키고, 국가가 책임져야 할 통합돌봄 무력화할 것
정부가 지난 10/7(금) 12개 업체에 비의료 건강관리서비스 시범 인증을 부여했다. 우리는 7월에 정부가 참여기업을 모집한다고 했을 때부터 심각한 의료민영화 정책이라고 규정하고 중단을 요구했었다.
그런데 정부는 이번에 삼성생명 가입자 대상 서비스, KB손해보험 자회사가 운영하는 서비스 등 대기업 보험사 대상으로 이를 허용했다. 그리고 이 영리업체들에 ‘일차의료 만성질환관리 사업’의 환자 관리 케어코디네이터 역할까지 부여한다고 발표한 것이다.
점입가경이다. 우리는 건강관리서비스야말로 가장 심각한 의료민영화 정책이라고 보며, 이대로 추진할 경우 의료 시장화는 돌이킬 수 없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첫째, ‘비의료 건강관리서비스’는 심각한 의료민영화라는 점을 다시 밝힌다.
이는 영리기업의 의료행위를 사실상 합법화하는 것이다. 진단과 치료 뿐 아니라 건강증진, 질병예방, 질병악화방지 등은 일차보건의료의 일부이다(WHO). 이런 연속선상의 행위를 의료와 비의료로 임의로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특히 만성질환은 관리가 곧 치료이다. ‘비의료 건강관리’라는 말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정부 가이드라인은 아예 노골적으로 만성질환 ‘직접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경우에도 영리기업이 직접 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다시말해 정부는 영리병원을 금지하는 규제를 허물어 삼성생명과 KB손해보험 같은 대기업 등이 ‘만성질환 치료’ 등 의료행위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하려는 것이다.
특히 정부는 지난 달에는 ‘비의료 건강관리서비스 가이드라인 및 사례집’을 개정해 영리업체들의 사업범위를 ‘포괄적 가능’으로 대폭 확대해주기까지 했다. 정부가 기업들이 거리낌 없이 의료시장에 진입하도록 하는 데 물심양면이다.
둘째, 영리기업에 ‘케어코디네이터’ 역할까지 허용한 것은 문제의 심각성을 잘 보여준다.
윤석열 정부는 이번에 ‘일차의료 만성질환관리 사업’의 환자관리, 즉 케어코디네이터 역할을 건강관리서비스 기업들에게 맡기겠다고도 발표했다. 이 사업의 핵심인 케어코디네이터는 원래 주로 간호사로, 동네의원에 고용돼 환자와 오랜 시간 밀접하게 상담하며 건강상태를 점검하고, 교육하고, 치료방향 설정을 의사와 함께 논의하는 치료의 동반자다. 이 자리를 영리업체들에 넘긴다는 발표는 바로 이 ‘비의료 건강관리서비스’가 일차의료에 대한 직접적 민영화라고 하는 본질을 잘 보여준다.
‘일차의료 만성질환관리 사업’은 건강보험 재정을 활용해 ‘동네의원, 보건소, 건강보험공단이 지역사회의 촘촘한 건강망을 만든다’는 취지로, 원래는 공적 일차의료 강화의 의미가 있었다. 이 사업조차 윤석열 정부가 건강관리서비스 도입으로 민영화하려는 것이다. 이는 건강관리서비스가 도입됐을 때 일차의료의 공공성이 어떻게 더욱 약화될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셋째, ‘건강관리서비스’는 건강증진과 돌봄 영역의 민영화이기도 하다.
정부는 만성질환 치료·관리 뿐 아니라 비(非)질환자 대상 질병 예방과 건강증진도 영리기업에 허용했다. 이 부분도 국민건강보험법 상 건강보험 적용대상으로 병의원 약국과 보건소가 해야 할 공공의 영역이다. 윤석열 정부는 기업 건강관리가 ‘국민건강을 증진하고 의료비를 절감한다’고 말하지만 근거는 없다. 오히려 민영보험이 활성화되면 의료비는 증가하지 줄지 않을 것이다. 민영보험사는 오히려 수집한 개인정보를 보험료 인상이나 보험금 지급거절 등에 활용할 것이다.
또 지역 주민들의 건강증진은 보건의료 시스템 외에도 국가가 공공성이 담보된 돌봄 인프라를 확충해 책임져야 할 영역이다. 제대로 된 주거환경을 제공하고 마을단위 돌봄체계를 마련하고 재가 의료급여 등을 지역사회 통합돌봄 체계 하에서 구축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대답은 이를 민영화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돌봄에 대한 책임을 시장화하고 각자 도생하라는 말과 다름없다. 돌봄의 공공성이 사회적으로 강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의 민간·시장 중심의 이런 정책은 돌봄의 불평등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다.
요컨대 ‘건강관리서비스’는 민간보험사와 대기업들이 의료에 진출하게 해주는 민영화이자, 건강과 돌봄의 책임도 개인에게 전가하는 것이다. 법·절차적으로도 정당성이 없다. 의료행위나 다를 바 없는 행위를 정부가 난데없이 ‘비의료 행위’로 규정하고 영리기업에 넘겨준다니 의료법 위반소지가 높다. 그래서 2010, 2011년에는 ‘건강관리서비스법’으로 법제정을 거쳐 추진하려 했던 것이다. 물론 그때도 의료민영화라는 커다란 여론에 막혀 통과되지 못했다.
정부가 할 일은 공적 일차보건의료 시스템을 강화해 만성질환을 가진 환자들을 제대로 돌보고 사람들의 질병예방과 건강증진에 힘쓰는 것이다. 한국은 그간 민간병원이 95%를 차지하는 시스템에서 예방과 건강증진은 뒷전이고 비용이 높고 낭비성 짙은 치료영역만 비대하게 발전해왔다. 그 탓에 제대로 된 건강관리를 받고 싶다는 시민들의 욕구가 커지자 정부가 이제는 기업을 위한 민영화로 그 틈을 메우려 한다. 이는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부자와 재벌기업에게는 감세로 특혜를 주면서 공공의료기관 인력감축과 건강보험 보장성은 축소시도하고 있다. 나아가 강원도에 영리병원을 허용하고 공공병원 민간위탁 시도에 건강관리서비스라는 이름의 일차의료 민영화를 추진하는 등 공공의료에 대한 끊임없는 공격을 시도 중이다. 이는 재벌 대기업에 부를 몰아주는 것을 넘어 공공영역을 통째로 민영화해 먹거리로 넘겨주겠다는 것이다. 대다수 노동자 서민들의 삶을 팍팍하게 하며 기업주들의 이윤만 보장해주는 정책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20~30%대 지지율의 정부가 국민 무서운 줄 모른다. 정부는 의료민영화로 스스로 무덤을 파는 행위를 중단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