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AEA·UNSCEAR, 핵마피아의 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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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C: IAEA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에도 불구하고 국내 핵마피아는 여전히 핵발전소의 안전 신화를 앞세워 기득권 유지 및 확대에 혈안이 돼 있다. 핵발전소의 증설 및 사용후핵연료의 재처리 사업의 경우, 국가가 추진한다는 구태의연한 권위(?)와 공공성을 앞세워 국민의 건설적인 이견 또는 비판을 철저히 무시하고 있다. 심지어 국내 핵마피아는 이러한 권위에 덧칠하려고 유엔 산하기관 등 국제기구의 보고서와 성명서를 내세워 국민을 현혹해왔다. 이들이 자주 인용하는 출처에는 유엔 산하기관인 국제원자력기구(IAEA), 유엔과학위원회(UNSCEAR), 세계보건기구(WHO), 그리고 민간단체인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ICRP) 등 4개 기관이 있다. 특히 각국의 방사선 피폭 방호 기준을 권고하는 ICRP는 의료 피폭, 핵발전소 사고시 시민의 건강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미친다.

허가 없이는 방사능 연구 못하는 WHO

WHO를 제외한 세기관은 핵발전 추진국의 핵마피아들과 상호협력하는 ‘국제 핵마피아’의 중심이다. 특히 이들은 미국과 프랑스의 핵연료 산업을 주축으로 하는 다국적기업들의 이익 확대를 꾀한다. 이 기관들의 핵심적인 몇몇 전문가는 ‘회전문 인사’를 통해 체르노빌·후쿠시마 사고에서 피폭 영향의 저평가 작업, 즉 사고 피해를 축소하려 한다.
인류의 건강 수준 향상을 목적으로 하는 WHO도 핵마피아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1959년 5월 WHO가 IAEA와 맺은 협정 때문에, WHO는 IAEA의 ‘동의 없이’ 방사능 관련 공중위생에 관한 독자적인 연구를 할 수 없는 상태다. 협정문(제1조 3절)에는 “두 기관이 상호 협의해 조정하는 것”으로 돼 있다. 그러나 1988~98년 WHO 사무총장을 지낸 나카지마 히로시는 2001년 스위스·이탈리아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1995년 당시 체르노빌 사고의 보고서가 출판되지 않았던 이유로 ‘협정의 존재’를 언급했다. 현재 WHO 사무국은 조직적인 은폐 의혹과 IAEA의 영향력을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지만, 해외에는 ‘WHO 독립을 위해서’(Independent WHO)라는 시민단체 연합조직이 있을 정도다.
1955년에 설립된 UNSCEAR도 핵무기를 개발한 ‘맨해튼 계획’에 참가했던 이들이 조직한 미국원자력위원회(AEC·1974년 원자력규제위원회(NRC)와 에너지연구개발국(ERDA)으로 분리)가 중심이었다. 따라서 설립 때부터 핵실험 같은 정치적 문제는 거론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가지고 있다. 미국산 핵발전소의 수출을 주목적으로 한 IAEA의 설립(1957년)과 함께, UNSCEAR는 각국 대표들이 모여 방사선 영향에 관한 과학논문을 심의·선택하는 임무에 집중했다. 핵발전소 확대에 기여하는 성격의 자료를 수집·정리해 ICRP에 전달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하고 있다. 또한 UNSCEAR는 영어로만 작성된 자료를 선택하므로 비영어권 자료와 소수 의견은 배제되는 근본적인 약점을 안고 있다. 예를 들어 체르노빌 사고 뒤 현지인들에 의한 실태 조사 결과도 러시아어 또는 우크라이나어로 작성됐지만 UNSCEAR는 처음부터 이를 철저히 무시했다.
UNSCEAR가 체르노빌 사고의 피해 사례로서 갑상선암 발병을 유일하게 인정하는 이유도, 갑상선암이 다른 질병보다 발견과 치료(수술)가 상대적으로 용이하다는 장점(?) 때문이다. 그러나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때는 사고 12년 뒤인 1998년이었다. 게다가 현지인들의 피해 조사에서 갑상선암 이외의 각종 질병의 발생률·사망률 및 장애아의 출산율에서 ‘유효한 증가’가 드러나고 있음에도, UNSCEAR는 ICRP의 주장을 인용해 방사능과의 인과관계를 부정하고 있다. 단, 백혈병 발생에 대해서는 UNSCEAR도 2008년과 2010년의 회의에서 인과관계를 인정한 바 있다.

‘핵산업 길 닦기’로 성격 바뀐 IXRPC

영국에서 비영리단체(NPO)로 등록돼 있지만, 정작 사무실(본부는 없고 직원은 2명)은 캐나다 오타와에 있는 ICRP는 방사성물질을 취급하는 기술자들이 방사능 피폭에 따른 직업병 연구를 목적으로 세운 조직이다. 방사능 연구 초창기에 베크렐과 퀴리 부인 등도 방사능 피폭을 피할 수 없었는데, 제1차 세계대전 중 X선 장치 및 라듐의 이용이 늘어나면서 방사능 피폭으로 X선 연구자 수백 명이 사망했다. 또 전쟁 중에 유행했던 야광용 시계 문자판에는 방사성물질인 라듐을 사용했는데, 이를 만드는 미국 여성노동자들은 문자를 그리는 붓끝을 다듬기 위해 입속에 붓을 자주 넣어 턱의 골육종 및 재생불량성빈혈로 사망하는 경우가 끊이지 않았다.
1928년 문을 연 ‘국제 X선 및 라듐 방호위원회’(IXRPC)는 6년 뒤 최초로 허용 선량(방호 기준)을 발표했다. 그 뒤 AEC의 주도로 IXRPC는 ICRP로 재편됐다(1959년). 방호 기준도 초기의 핵무기 개발·확산에 따른 피폭자의 관리에서, 핵발전소의 보급과 함께 핵산업의 추진을 위한 보완 수단으로 그 성격이 바뀌어왔다. 즉, 방호 기준의 결정은 안전성보다는 사업자의 안전 대책비 경감에 중점을 두는 형식적인 ‘리스크와 편익’ 비교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경제적 효율성 우선의 방호 기준을 1958년부터 적극적으로 제창하기 시작한 ICRP는 국제적인 비영리 학술단체지만, IAEA를 비롯한 각종 원자력 추진 단체들의 조성금을 받아 운영되고 있다. UNSCEAR가 제공한 자료의 범위 안에서 작성한 ICRP의 보고서(권고)가 IAEA를 통해 실행되는 구조다. 1956년 UNSCEAR가 ICRP에 의료 분야의 방사선 피폭에 관한 보고서의 작성을 의뢰한 이후, 핵발전소 추진을 위한 방사선 피폭의 국제적 협력체제가 형성된 것이다.
이 국제기구 전문가들의 ‘회전문 인사’ 병폐를 지적해온 ‘유럽방사선위험위원회’(ECRR·1997년 설립)는 ICRP의 방호 기준 및 피폭 평가와 다른 견해를 발표해왔다. 특히 내부 피폭 및 저선량 피폭의 영향을 경시해온 ICRP를 향해 ‘선전포고’를 했다고 일컬을 정도다. ICRP의 방호 기준을 설정하는 위원들은 군사 및 의료방사선 관련 단체에도 속한 경우가 많지만, WHO는 위원을 낼 수 없는 폐쇄적인 구조로 운용되고 있다. 덧붙이면, WHO는 약 3년 전에 ‘방사능과 건강’ 분야를 폐지해 ‘공중위생과 환경’ 분야에 통합했다.
일본에서는 전력사업자들이 방호 기준의 완화를 꾀해온 사실이 드러났다. ‘전기사업자연합회’가 일본인 ICRP 위원들의 국제회의 참석 비용을 방사선영향협회를 통해 오래전부터 부담해온 사실이 일본 국회의 후쿠시마 사고 조사보고서를 통해 밝혀졌다. 일본은 ICRP의 권고(1990년)를 따라 핵발전소 노동자는 연간 50밀리시버트(mSv), 일반 대중은 연간 1mSv의 방호 기준을 법적으로 정하고 있다. 그러나 후쿠시마 사고 이후 일본은 법적 기준으로 아직 채택되지도 않은 ICRP의 2007년 권고를 적용하고 있다. 핵발전소 사고시, 주민의 피난 지시를 해제하는 기준(20mSv 미만) 등 긴급(사고)시 높은 기준을 적용해 도쿄전력의 오염제거·배상 부담을 줄이려는 것이다.

일본 전력사업자, 배상 피하려 기준 자체 높여

저선량 피폭의 위험을 과소평가하고 방호 기준을 뒷걸음질치게 만드는 방사선 관련 전문가의 행보는 ‘부패한 과학’의 전형적인 사례다. 범죄적 행위를 ‘과학적’이라는 수식어로 정당화하려는 현재의 방호체제, 특히 ICRP는 핵산업의 유지·확대에 불가결한 구성원이다. 전염병의 예방 및 방호 기준의 설정처럼, WHO와 ICRP의 공헌을 완전히 부인할 수는 없겠지만, 이들은 방사선 피폭 영향의 저평가 또는 은폐의 동조자이기도 하다.

장정욱 일본 마쓰야마대학 교수·경제학(원자력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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