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과 좌파를 비판하는 말중에 대안부재라는 표현을 자주 듣고는 한다. 무상의료 무상교육의 재원마련이 비현실적이라는 수구언론 뿐만이 아니라 오히려 함께 운동을 하는 동지들 스스로를 지식인이라 생각하는 사람들로부터 더욱 많이 그런 말이 들려왔다. 그 평가를 무조건 거부하자거나 그런 것은 모두 집권후에 만들어갈 투쟁의 대상일 뿐이다라는 대답보다 어쩌면 내 마음 속에도 있을 그 불안한 마음을 살펴보고 싶다.
왜 우리는 그 대안을 자신의 안쪽에서 찾으려 하는게 아니라 바깥에서 찾는 것인지 되물어 보고 싶다. 투표제도에서의 승리란 과연 내가 투표한 후보의 당선으로만 표현 될 수 있는 것인지? 아니 당선여부를 떠나서 투표행위 자체로 모든 의무와 책임과 권리와 인권을 일임해 버리는 ‘현실’의 제도와 그 제도에 의한 지배는 무조건 옳은 것인지? 선거에서 우리는 스스로 투표이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니 자신을 그대로 들어다 바칠 어떤 영웅을 기다리는 심리가 있는 것은 아닌지 물어보고 싶다. 지난 선거에서 지금의 대통령에게 투표한 일부의 사람들(나를 포함하여)의 심리에서는 다분이 그런 면이 있었다. ‘바보’ 노무현을 민중의 ‘영웅’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그들은 그가 가진 계급적 기반이나 신자유주의 김대중 정부의 계승자라는 명백한 사실을 잊고 그에게 노동자와 농민과 서민과 스스로의 운명을 바꿔줄 기대를 집중시켰다. 그리고 지금의 상황을 맞이한 것이다. 지금 다시 맞이한 선택의 시간에 우리는 아직도 민주노동당에게 “현실성 부재” “대안 부재” “희망 실종”이라는 표를 달아 놓은 채 또 다른 무엇인가를 찾고 있는 대! 중을 만날 수 있다. 물론 대중의 정치적 상상력에 부응하지 못한 민주노동당의 실책도 있지만 그 전에 다시금 스스로를 돌아보자. 대안이나 희망이라는 에둘러 말하는 바깥에 아직도 우리는 어떤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고 있지는 않은가? 어차피 우리 밖에서 우리의 선택을 완벽히 책임져줄 영웅이란 없습다. 전위당은 없다. 이명박을 선택하는 대중은 박근혜를 지지하는 대중은 속았을 지언정 자신의 바람을 속이지는 않았다.
우리가 원하는 세상을 위해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해야한다. 기정 사실 따위는 없다. 아무리 수구보수 정권의 탄생가능성이 높다하여도 그에 대항하여 차악을 선택할 정치정 상황따위는 없다. 아무리 민주노동당내의 분파투쟁이 심하다 하더라도 당선가능성 때문에 민주노동당이 한미에프티에이 반대, 비정규직철폐, 반전평화 실현이라는 당의 선거 정책을 뒤집을 만한 개연적인 필연성 따위는 없다. 오직 우리가 포기하는 순간 우리에게 있어 미래는 끝난 것이지만 지금은 아니어도 다음의 그 다음의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현재의 자신의 실천만이 중요한 것이다.
내가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 우리가 원하는 한미 에프티에이 반대, 비정규직 철폐, 반전평화의 실현을 위해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민주노동당과 권영길을 지지하는 것이고 다른 가능성을 막아내기 위해 민주노동당의 바른 길을 지키고 제시하는 것이다. 그것은 권영길을 ‘영웅’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영웅이 희망이 대안이 되어가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