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수미(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회원)
2002년 12월.. 신촌 거리의 한구석에서 친구들과 함께 대선결과를 보고 환호 했던 기억이 참담함으로 바뀌는 것은 한 순간이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한미 FTA추진, 미국의 전쟁동맹으로서의 파병과 반복되는 파병연장, 폭발적인 비정규직의 양산, 시간이 지날수록 심각해지는 사회 양극화.. 그날의 환호를 정당화해주는 일이 지난 5년간 무엇이 있었던가.
5년이 지난 지금, 노무현을 통해 얻은 것이라고는 더 이상 ‘짝퉁 진보 개혁 세력’을 통해서는 우리의 정치적 주장을 관철시킬 수 없다는 것과, 우리 운동으로 통제 받지 않는 후보로는 아무것도 이루어낼 수 없다는 사실 뿐. 사람들과 술잔을 기울이면서, 그나마 ‘더 이상은 속지 않겠다’는 학습효과라도 얻은 것이 다시 대선을 맞는 우리에게 남겨진 성과물이라고 자위를 했었다. 그러나 또 다시, 실질적인 권영길 후보의 사퇴를 전제로 한 범여권 단일후보론이 대안으로 부상되고 있는 현 상황을 도대체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 진보개혁 세력을 표방하고 있는 기존 정치세력을 통해 우리의 정치적 주장을 관철시키자는 논리는 노무현의 실패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입증된 것이 아닌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의 운동에 기반하고, 우리의 정치적 지향을 대변하며, 운동으로 통제 받을 수 있는-받아야 하는- 진보 정당이다. 지난 5년간의 쓰라린 경험을 통해 명확해진 것은, 독약이 약이 아니듯, ‘차악’은 공을 들여본들 결코 ‘선’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번 17대 대선에서 나에게 ‘진보정당’을 지지한다는 것은 의료 산업화에 누구보다 앞장 섰던 정동영도, ‘국익’에 부합한다면 FTA도, 파병도 찬성할 수 있는 문국현도 아닌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