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계화의 논리 – 윌리엄 K 탭, 말//차승일
카타르 도하에서‘뉴 라운드’출범을 위한 WTO 회담이 열렸다. <조선일보>는 이번 회담을 “반세계화의 도전에 대한 지구촌 사회의 대응”이라고 추켜 세우며 “세계 경제가 앞으로도 개방화·세계화를 통한 지속적인 발전의 길을 걸을 것인지, 아니면 폐쇄적·배타적 경제 블록화 속에서 그 동안의 성과를 부정하는 퇴행의 길로 나아갈 것인지를 가름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코노미스트〉는 “무역이 없다면 남아시아의 어린 소녀는 교육이나 의료 보장을 받지 못할 것이다. 그녀로 하여금 일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그녀를 전혀 돕는 것이 아니며, 무역은 소수의 특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수백만에게 더욱 큰 기회를 주는 것이다.”라고 시애틀 시위에 대해 논평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2000년 4월 워싱턴에 있었던 세계은행과 IMF에 반대하는 시위에 대해서“이번 주 워싱턴 DC에서 수천의 부유한 사람들이 대중의 가난이 지속되는 것을 지지하는 시위를 벌일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과연 세계화가 대중을 가난과 질병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을까? 윌리엄 K 탭이 쓴 ≪반세계화의 논리≫는 위와 같은 세계화의 허구적 논리에 대한 생생한 비판을 담고 있다. 이 책은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낳은 끔찍한 현실을 폭로한다.
가진 자를 위한 세계화
남아프리카는 인구의 8분의 1이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에 감염돼 있지만 변변한 약조차 써보지 못한 채 죽어가고 있다. 남아프리카에서 이미 수백만 명이 에이즈로 사망했다.
에이즈 치료 약품은 보통 1만2천 달러가 넘지만 남아프리카의 평균 연간소득은 3천 달러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1997년 남아프리카 정부들은 기존 약보다 90퍼센트 더 싼 약을 만들어 공급하려 했지만 미국의 제약회사들은 이것이‘지적재산권’위반이라며 WTO에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이 2년이 넘게 진행되는 동안 30만 명의 남아프리카 에이즈 환자들이 약을 먹어보지도 못하고 목숨을 잃었다. 결국 WTO는 미국 제약회사의 손을 들어주어 생명이 아니라 이윤을 구했다.
세계화는 부의 불평등을 더 심화시켰다. 제너럴 모터스의 1992년 매출액은 전 세계에서 단 21개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의 국내총생산(GDP)보다 더 큰 규모였다. 도요타의 매출액은 포르투갈과 폴란드의 GDP보다 크고, IBM은 베네수엘라보다 크며, 유니레버는 뉴질랜드보다 크다. 세계 상류층 20퍼센트가 세계 GDP의 86퍼센트를 가진 반면, 하위 20퍼센트는 고작 1퍼센트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세계 최고의 부자 3명의 재산이 가난한 48개국의 소득을 합한 것보다도 더 많다.
WTO의 의사결정 방식은 민주주의와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1981년 설립 이후 세계무역체제를 좌지우지하고 있는 것은 비공식 위원회인 4자무역장관모임(QUAD)다. 미국, 유럽연합, 일본, 캐나다로 구성된 QUAD는 WTO의 공식 회의 전에 사적으로 만나서 다른 나라 대표들의 참여 없이 주요 결정을 내린다. QUAD의 정책결정자문위원회는 중요한 몇몇 기업에 의해 주도된다. WTO는 대중의 이익보다 기업들의 이익을 대변한다. 저자의 말처럼 WTO는“각국이 자기네 기업의 요구를 대표하여 모이는 포럼의 역할”을 할뿐이다.
대중 운동
윌리엄 K 탭은 평범한 사람들을 가난과 질병에 빠뜨리는 세계화를 막기 위한 대중 운동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세계인권선언의 내용은 매우 감동적이지만, 그것은 사실 헌장이라기보다는 선언이며 그 자체로는 큰 영향력이 없다. 무엇이 필요한지를 인식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투쟁할 수 있는 것은 계급의식에 기초한 정치 운동이다. 순수한 의도를 지닌 정부의 노력보다 이러한 운동의 조직화가 훨씬 중요하다.”최근 전 세계적으로 반자본주의 운동이 반전 운동으로 모아지고 있다. 전쟁에서 미국이 별 볼일 없는 성과를 거두는 반면 저항이 더욱 커진다면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기세도 꺾을 수 있다. 반전 운동의 한가운데에서 ≪반세계화의 논리≫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비판의 칼날을 더욱 날카롭게 해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