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석유를 지배하는 자들은 누구인가? – 엔써니 샘슨

석유를 지배하는 자들은 누구인가? – 엔써니 샘슨, 책갈피// 안진형

“걸프전쟁은 석유전쟁이었다.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이번 (테러와의) 전쟁도 마찬가지다.”지난달 25일 영국 텔레비전‘채널 4’의 7시 뉴스에서 리엄 핼리건 기자는“(테러 외에) 아프가니스탄 공습의 또 다른 동기”를 묻는 앵커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아프가니스탄은 약 3조 달러어치가 매장돼 있는 중앙 아시아 지역의 원유를 서방 시장으로 연결하는 중요한 통로다.(<한겨레> 11월 6일치)앤써니 샘슨의 ≪석유를 지배하는 자들은 누구인가≫는 1973년 오일쇼크 직후 쓰여진 책이다. 저자는 석유산업의 발원지인 미국 펜실베이니아에서 출발해 7공주의 발자취를 따라 석유의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앤써니 샘슨은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각 회사의 중역들, 아랍 국가들의 석유장관을 직접 만나 인터뷰하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그 이후를 다룬 책이 출판되지 않았다.

석유산업

제1차 세계대전 직후 원유 부족으로 허덕이던 서방의 선진국들과 7공주(엑손, 모빌, 셸, 소칼, 텍사코, BP, 걸프)는 새로운 유전을 찾아 나섰고 중동은 세계의 화약고가 됐다. 미국은 이미 석유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석유 의존국이었고 영국 해군은 1920년 에너지원을 석탄에서 석유로 바꾸기로 결정했다.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그들의 주 에너지원을 석탄에서 석유로 바꾸고 있었다. 석유를 지배하는 자들이 세계를 지배할 판이었다. 석유 외교는 해체 과정을 밟던 오스만제국에서 불꽃 튀는 전쟁을 벌였다. 오스만제국이 전쟁에서 패하자 영국과 프랑스는 제국을 분할 통치했다. 양국은 메소포타미아(이 곳은 곧 이라크가 됐다)의 티그리스 유역에 있는 바그다드와 모술(후에 이라크에 병합된다) 두 지역에 특별한 관심을 쏟았다.
미국은 대전에서의 성과를 내세워 영국에 부단히 압력을 넣어 이라크에 진출했고 이라크 신정부는 7공주가 참여하고 있는 터키 석유회사의 석유 이권을 1925년부터 2000년까지 75년간 보장한다는 협정을 마지못해 조인했다.
곧이어 7공주와 프랑스계 회사 1개, 그리고 터키 석유회사의 지분 5퍼센트를 소유하고 있던 걸벤키안은 1928년 7월 석유 회사 사상 가장 획기적인 이권분할을 했다.‘적선(赤線) 협정’이라 불린 이 협정으로 이 회사들은 터키, 이라크, 시리아, 요르단, 사우디아라비아를 포함한 옛 오스만제국의 영토에 컨소시엄을 만들어 참여하기로 했다. 그들은 자신들 외의 다른 회사의 참여를 일절 배제했다. 그 후 약 50년 동안 중동의 산유국들은 사실상 거대 석유회사들과 그들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미국의 손아귀에 놀아났다. 석유회사들과 미국, 영국 정부는 이제 막 국가의 틀을 갖추기 시작한 아랍 국가들을 교묘하게 분열시켰고 터무니없는 조약과 회계 관리를 통해 엄청난 이득을 얻었다. 미국은 이스라엘에 경제·군사적 지원을 했지만 동시에 아랍 국가들 사이에는 석유회사라는 완충지대를 만듦으로써 중동 지역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었다. 그러나 50년만에 중동의 산유국들은 석유회사들이 그들에게 한 짓을 그대로 놔둬서는 안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7공주 카르텔의 자리를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차지했고 이스라엘에 대한 아랍 국가들의 분노는 폭발했다.  더 이상 미국은 이스라엘과 아랍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없었다. 미국의 선택은 전쟁이었다. 이스라엘에 대한 군사 지원은 더 노골적으로 바뀌었고 중동 국가들에 대한 갖가지 악선전과 협박이 난무했다.

7공주

OPEC에 그 왕좌를 내주고 단순한 석유회사로 전락한 7공주의 역사는 19세기 말 미국 펜실베이니아에서 시작된다. 석유가 발견된 지 겨우 6년 뒤, 석유회사의 경리였던 26세의 록펠러는 걸음마 단계의 석유산업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는 다른 석유회사를 합병하거나 아예 싹을 잘라버리는 것만이 석유 지배를 보장해 줄거라 확신했다. 주기적인 생산 과잉으로 파산하여 떨어져 나간 석유 생산자들과는 달리 유통망을 주로 지배했던 록펠러의 스탠더드 오일은 공황을 피해갔다. 30년 동안 이 독점은 유지됐다. 미국에서는 스탠더드 오일이 반독점법에 걸려 넘어져 엑손, 모빌, 걸프, 소칼이라는 4명의 딸로 분리됐다. 네덜란드와 영국계 회사인 셸과 영국 정부가 절반 이상의 지분을 소유한 BP는 정부 관료들 간의 이견(완전히 국영화할 것인가 민영화할 것인가)에도 불구하고 미국 회사인 텍사코와 함께 7공주의 반열에 올랐다.
본사 안에 전 세계 석유의 수요와 공급을 (거의 정확히) 추정하는 컴퓨터 장치와 5대양을 떠다니는 자신들의 유조선의 위치와 송유관을 통한 석유 이동을 위성을 통해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시스템을 갖고 있을 정도로 7공주는 지배자로 군림했다.
그들은 경쟁 대신 담합을 선택했다. 많은 사람들은 엄청난 규모의 유전이 중동에서 발견됐다는 뉴스 보도를 듣는데도 석유 값이 오르는 것을 이상하게 여겼다.
석유회사는 곧 사라질 자원인 석유를 아껴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고 정부는 대체 에너지 개발 촉진을 위해 높은 유류세를 부과한다고 했다. 그로부터 수십 년 후 미국 정부와 석유회사들이 OPEC의 유가 인상을 비난했을 때 아랍 국가들은 이전에 그들이 하던 말을 똑같이 반복했을 뿐이다.
중동의 수많은 사람들이 전쟁의 공포에서 영구히 벗어나기 위해서는 세계 경제의 핵심 부분인 석유산업을 쥐고 있는‘석유의 지배자’들과의 투쟁에서 승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