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 쓰나미’가 남긴 참상 / 아프리카의 석유

‘신자유주의 쓰나미’가 남긴 참상  
  [먼슬리리뷰: 아프리카의 석유(2)] ‘개발’의 실패  

  
  아프리카를 놓고 새로이 전개되고 있는 쟁탈전의 배경에는 아프리카의 빈곤이라는 재난이 자리 잡고 있다. 영국의 토니 블레어와 고든 브라운의 주도로 작성된 <우리의 공동이익: 아프리카위원회 보고서(Our Common Interest: The Report of The Commission on Africa)>(2005)는 아프리카의 빈곤을 “우리 시대의 최대 비극”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2005년은 ‘아프리카의 해’였다. 2005년 6월 ‘라이브 8′ 콘서트(G8 국가들이 아프리카를 돕는다는 명목으로 연 일련의 콘서트. 2005년 7월에 G8 국가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린 행사로 전 세계에 중계방송됐다-옮긴이)가 전 세계적으로 20억 청중을 끌어들인 지 1주일 뒤에 선진8개국(G8)은 아프리카에 제공되는 원조액을 두 배로 늘리고(2010년까지 250억 달러 추가), 아프리카 14개국의 빚을 탕감해주기로 서약했다. 국제사회는 보노(아일랜드의 록밴드 U2의 리드싱어 폴 데이비드 휴슨의 애칭-옮긴이)에서부터 제프리 삭스와 교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박애주의자들의 지지와 부추김에 따라 아프리카의 빈곤에 관심을 집중시켰다.
  
  사실 아프리카의 위기는 여러 계기들을 통해 국제무대에서 가시화됐다. 그러한 과정에서 이정표가 된 사건들로는 2000년 유엔 새천년 선언, 새천년 도전계정(MCA, 미국의 해외원조 기금-옮긴이) 도입, 미국 대통령의 에이즈 퇴치 긴급 프로그램 수립, 아프리카의 성장과 기회에 관한 법률 제정 등을 꼽을 수 있으며, 이것들은 모두 부시 대통령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밖에 최근에 세계은행은 ‘아프리카 행동계획’을 새로이 내놓았다. 이 모든 일시적 유화조치들은 20년이 넘도록 세계화, 개혁, 지배구조 개선이라는 성배를 탐색해 온 과정 자체의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얼굴에 대한 뒤늦은 보완에 불과하다.
  
  아프리카 대륙 안에서는 ‘아프리카의 개발을 위한 새로운 경제 파트너십’(2001)과 과거의 아프리카단결기구(OAU)를 쇄신한 지역기구인 ‘아프리카연합(AU, African Unity)’이 미래의 가능성을 제시해 왔다. 이런 지역기구는 정치적 이행기였던 1990년대의 격동을 통해 등장한 민주적 세력의 대표 격인 신흥 아프리카 정치계급이 가산제, 녹봉제, 약탈, 유사국가, 식민지 이후 시기, 탐욕의 정치 등으로 다양하게 묘사되는 아프리카 탈식민지 국가의 병폐인 ‘허약한 지도력’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될 가능성에 기대를 걸고 있다.
  
  아프리카의 위기를 국제사회의 관점에서 도덕적 실패 내지 윤리적 실패로만 받아들인다면, 특히 2015년까지 아프리카의 빈곤을 절반으로 줄인다는 내용을 담은 ‘새천년 개발목표(Millenium Development Goals, 2000년 9월 유엔의 191개 회원국들이 채택한 2015년까지의 세계 개발목표-옮긴이)’의 서약이 이행되지 못한 결과로만 본다면, 그것은 진실의 일부만을 이해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진정한 아프리카의 위기는 가차 없는 신자유주의적 개혁 및 세계은행의 구조조정 정책과 국제통화기금의 경제안정화 정책과 같은 야만적인 정책이 시행된 지 25년이 지난 오늘날 아프리카의 개발이 파국적인 실패에 이르렀다는 점에 있다.
  
  세계은행의 고위 관료를 지낸 윌리엄 이스털리는 “4반세기 동안 이어진 경제적 실패와 정치적 혼란”인 구조조정을 낱낱이 파헤치면서, ‘계획적인 개혁’이라는 무책임한 모험 전체의 ‘불합리함’을 과감하게 고발하고 있다(http://www.nyu.edu/fas/institute/dri/Easterly). 결국 아프리카는 1970년대에 개발경제학 분야를 휩쓸었던 하이에크의 반혁명적 이론의 실험장이 된 셈이다. 이 실험은 세계은행이 기획한 연속간행 보고서 가운데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개발 문제에 초점을 맞춘 첫 번째 보고서이자 세간에는 ‘버그 보고서(Berg Report)’로 알려진 <사하라이남 아프리카의 가속개발: 행동의제(Accelerated Development in Sub-Saharan Africa: An Agenda for Action)>의 발간과 더불어 시작됐다.
  
  세계은행의 이 보고서는 시카고학파의 이론을 적용했던 아옌데 이후 칠레의 경험을 아프리카 대륙 전체에 적용해보려고 한 최초의 체계적인 시도였다. 이 보고서를 작성한 엘리엇 버그와 그의 동료들의 착상은 경제문제연구소(IEA), 몽펠르랭 협회와 같은 통화주의 싱크탱크 및 일찍부터 모습을 드러낸 시카고학파의 레오 스트라우스와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의 놀라운 부상에 의해 든든한 뒷받침을 받는 가운데 피터 바우어, H. G. 존슨, 데팩 랄과 같은 이들이 세계은행을 비롯한 개발기관을 통해 전개해 온 ‘행군’이 승리했음을 상징한다.
  
  동유럽에 적용된 충격요법이나 라틴아메리카에서 시행된 ‘빚에 의한 구조조정’보다 훨씬 전부터 사하라이남 아프리카 지역은 신자유주의의 공격무대가 됐다. 유엔에 따르면 1988년에 사하라이남 아프리카의 32개국 중 26개국이 자유경제 체제를 표방하고 있었다. 이들 나라의 대부분은 버그 보고서가 출간된 후에 어떤 형태로든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경험했다.
  
  1980년대가 1차산품 가격의 붕괴, 교역조건의 악화, 국제통화기금의 긴축 프로그램이라는 거센 파도를 처음으로 경험했던 ‘아프리카의 잃어버린 10년’이라면, 개혁의 결실을 거두어야 했지만 그렇게 되지 못한 그 후 15년간의 성격은 뭐라고 규정할 것인가? 이 기간 동안 해외로부터의 공적 개발원조 순증가액이 187억 달러에서 100억 달러로 40% 이상 하락하는 가운데 아프리카 주민들의 기대수명은 줄어들고 일인당 소득은 정체됐다.
  
  아프리카에서 신자유주의의 재판은 종결되고 평결만 남았지만, 현재의 아프리카 상황은 그리 좋지 않다. 지난 30년 이상 아프리카 서민들의 소득은 증가하지 않았다. 기대수명은 46세에 불과하다. 현재 47개에 이르는 사하라이남 아프리카 지역 국가들 가운데 23개국의 국내총생산(GDP)은 30억 달러도 안 된다(엑손모빌의 2006년 1분기 순이익은 80억 달러였다). 2005년까지 ‘새천년 개발목표’를 향해 나아가지 못한 59개 우선지원대상국 중 38개국이 사하라이남 아프리카 지역 국가들이었고, <2004-2005년 만성적 빈곤에 관한 보고서>에 따르면 ‘가장 절망적으로 빈곤한’ 16개국 모두가 이 지역 나라들이다.
  
  사하라이남 아프리카에서는 현재 3억 명 이상이 하루 2달러 미만의 소득만으로 생계를 꾸려가고 있고, 2015년에는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 수가 4억 명으로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프리카 대륙 인구의 3분의 1이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고, 발육부진 상태의 인구도 거의 40%에 이른다. 유엔 식량농업기구가 2006년 1월에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 지역의 27개국은 긴급 식량원조가 필요한 상태다. 소말리아의 기아는 1980년대 중반 이 지역을 황폐하게 한 파국적인 식량위기와 같은 수준이다. 다르푸르의 악몽(수단의 서부지역에 있는 다르푸르에서 벌어지고 있는 내전을 지칭-옮긴이)은 차드로 번져가, 10여 년 전 중앙아프리카 위기(르완다 내전을 이름-옮긴이) 당시처럼 수많은 피난민들이 거대한 차드호 주변으로 내몰릴 것으로 예상된다.
  
  신자유주의의 쓰나미는 아프리카 도시들, 특히 도시의 빈민지역들에 공포의 만행을 저질렀다. 기업에 막대한 이윤을 가져다 준 공공서비스의 민영화, 도시지역 사회서비스의 삭감,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궁핍화, 제조업과 실질임금의 붕괴, 종종 중산계급의 소멸과 같은 의미인 ‘개혁’은 마이크 데이비스가 <빈민굴 지구(Planet of Slums)>(Verso, 2005)에서 서술한 대로 사실상 가혹한 도시 파괴의 효과를 낳았다. 그 결과 아프리카의 도시들은 연간 최대 10%의 인구성장률이 지속되는 가운데서도 매년 2~5% 정도 경제가 위축되는 끔찍한 현실에 직면했다.
  
  1990년대에 짐바브웨의 도시 노동시장은 매년 30만 명씩 확대됐지만, 도시지역의 실제 고용은 이렇게 증가하는 노동인구의 3%를 소화하는 수준으로 늘어나는 데 그쳤다. 1980년대에 다르에스살람(탄자니아의 수도-옮긴이)의 일인당 공공서비스 지출은 매년 10%씩 축소됐고, 하르툼(수단의 수도-옮긴이)에서는 구조조정으로 100만 명이 빈민으로 전락했다. 나이지리아의 도시지역 빈곤층은 1980년대와 1990년대 중반 사이에 세 배로 증가했다. 1980년대와 1990년대 사이에 나이로비(케냐의 수도-옮긴이), 킨샤사(콩고민주공화국의 수도-옮긴이), 누악쇼트(모리타니의 수도-옮긴이)의 도시지역 성장 중 85%가 마구잡이로 확산되어 통제가 불가능한 도시 빈민촌의 증가라는 사실은 이제 놀라운 일도 아니다.
  
  누구나 도시 최악의 악몽으로 꼽는 라고스(기니만 연안에 있는 나이지리아 제1의 항구도시-옮긴이)의 인구는 50년 사이에 30만 명에서 1300만 명으로 불어났고, 2020년이 되면 베닌시티(나이지리아 남부 벤델 주의 주도-옮긴이)에서 아크라(가나의 수도-옮긴이)에 이르는 600km의 해안 회랑지대에 6000만 명의 빈민들이 가득차면서 이 지역이 광범한 기니만 슬럼의 일부가 될 것이다. 그 전인 2015년에는 ‘검은 아프리카(사하라이남 아프리카 지역을 지칭-옮긴이)’에 3억3200만 명의 빈민들이 살고 있을 것이고, 이런 빈민의 수는 매 15년마다 두 배씩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어느 아프리카 국가가 어떤 종류의 아프리카 특유의 병폐를 지니고 있든 간에 외부세력이 그런 국가와 함께 아프리카의 공동자산을 약탈하고 사유화하는 일을 벌인다면, 그것은 해외원조라는 미명 아래 자행되는 ‘강탈에 의한 축적’이며 참상을 빚어내지 않을 수 없다. 데이비스가 기록한 대로, 아프리카 도시들이 겪는 퇴행적 혼란은 소요를 일으키는 부랑자들을 낳기보다는 이슬람교나 펜테코스트파(근본주의 기독교의 일파-옮긴이)가 활동할 수 있는 폭넓은 정치공간을 낳을 것이다. 카노(나이지리아 북부 카노 주의 주도-옮긴이)의 인민주의적 이슬람이건 소웨토(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 외곽에 있는 흑인 거주구역-옮긴이)의 주술이건, 보이지 않는 권력이 지배하는 초자연적인 세계가 가장 강압적인 신자유주의적 유토피아주의의 이데올로기적 유산을 아프리카에서 대변하게 될 것이다.
  
  로버트 카플란 같은 논평가들이 주장하는 파국설을 입증해주기라도 하듯 그 자체로 재난인 아프리카 개발은 HIV/에이즈의 만연이라는 또 다른 재난으로 직접 연결되고 있다. 에이즈 발병률 증가와 이것이 아프리카의 서부 및 동북부 지역에 끼치는 인구학적, 사회경제학적 파장이 그동안 과장됐음을 최신의 전염정보가 시사해주고 있음(<가디언> 2006년 4월 21일치 보도)을 감안하더라도, 에이즈가 아프리카의 일부 지역에 죽음의 장막이 드리우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아프리카에서는 성인의 8%가 보균자이고 2800만 명이 감염되어 있으며 에이즈로 인한 사망자 수가 연간 230만 명에 이른다. HIV/에이즈가 미치는 파급효과로 인해 남아프리카와 동아프리카에서는 기대수명이 달라졌다. 20년 전에 보츠나와에서 태어난 남자아이는 60세까지 살 것으로 기대할 수 있었지만 현재는 기대수명이 30세에 불과하다. 2010년이 되면 아프리카에서는 고아가 5000만 명 이상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