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우석균 : 샤일록의 탐욕과 한미FTA

샤일록의 탐욕과 한미FTA

우석균 의사 /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

△ 대형할인마트 앞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기자회견을 하는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 – 노무현 정부는 몇 차례나 말을 뒤집어 가며 광우병 쇠고기 수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 ≪베니스의 상인≫의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은 대출기한을 넘긴 돈의 이자 대신 돈을 꿔간 사람의 살 1파운드를 받겠다고 주장했다. 목숨을 대가로 받겠다는 것이다.

주인공들은 결국 살 1파운드를 가져가되 피는 한 방울도 안 된다고 주장해 이 곤경을 벗어난다. 피 한 방울 없이 살코기만 가져가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샤일록은 결국 살점을 떼어가는 것을 포기하고 만다.
그러나 오늘날 샤일록이 다시 태어난다면 어떤 주장을 할까?

지난 7월 27일 수입 미국산 쇠고기에서 광우병 특정위험물질(SRM)인 등뼈가 발견됐다. 광우병 위험물질은 뇌와 척수, 등뼈에서 나오는 신경(배근신경절, 변형프리온 3.8퍼센트 포함), 등뼈 등의 광우병전달물질이 고농도로 포함돼 있는 부위를 말한다.

그런데 미국은 등뼈도 안전하다고 말하고 있다. 척수, 배근신경절은 광우병 특정위험물질이지만 이를 등뼈에서 완전히 뽑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국제수역사무국(OIE)에서도 최근 미국과 EU의 주장을 받아들여 광우병 위험물질에서 등뼈를 제외해 버리고 말았다.
그렇지만 한번 생각해 보자. 등뼈에서 척수는 물론 배근신경절까지 완전히 쏙 뽑아낸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광우병은 1그램 미만의 척수나 배근신경절만으로도, 즉 설탕 한 알갱이 정도로도 감염된다. 공들여 처리해도 척수나 배근신경절을 1그램도 남기지 않는다는 것은 아예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최저임금도 안 되는 임금을 받는 비정규직 도축·가공 노동자들은 몇 분만에 소 한 마리를 처리해야 한다. 검사관들은 하루에 수천 마리의 도축소를 검사해야 한다. 안전한 도축과 가공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다.
6월 한 달 동안 수입 건수 64건 중 48퍼센트가 수입 위생 조건을 어긴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한 방울

샤일록은 시대를 잘못 태어났다. 만일 샤일록이 미국의 거대 농축산기업 사장이라면 ‘척수와 신경을 단 1그램도 포함시키지 않고 등뼈만 분리할 수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피 한 방울 없이 살만 분리할 수 있다’고 말이다.
미국은 이번에 등뼈가 통째로 발견되자 또 한번 “인간적 실수”라고 해명했다. 그리고 한국 정부는 이를 받아들여 검역 및 수입 재개 결정을 내렸다. 한마디로 코미디다.

한국 정부는 SRM이 발견될 경우 수입중단조처를 취하겠다고 말해 왔지만 아무 해명도 없이 이 말을 뒤집었다. 미국 정부는 수입위생조건을 어겨놓고도 아예 등뼈까지 수입하지 않으면 한미FTA 의회 비준은 없다고 협박하고 있다. 한국 정부의 한심함과 미국 정부의 적반하장에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모를 지경이다.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가는 이러한 조치는 그 뒤에 숨어있는 거대한 힘에 의해 조정되고 있다. 그 힘은 한해 1조 원에 이르는 쇠고기를 한국에 수출해온 미국의 거대 농축산 기업의 이익이다.

거대한 이윤 앞에 상식과 국민의 생명, 국민들의 정책결정권, 이 모든 것들이 단지 ‘비관세장벽’이 되고 철폐 대상이 된다. 아직 한미FTA가 발효되지 않았는데도 기업의 이윤이 사람들의 안전과 생명보다 우선인 것이다.

한미FTA 협정체결의 후속조처는 다른 분야에서도 진행형이다. 정부는 7월 16일 “물산업 육성 5개년 세부추진계획”을 발표했다. 지자체가 맡고 있는 상하수도사업을 2012년까지 공사화, 민영화, 위탁관리를 해 수돗물을 기업에 넘기겠다는 것이다.

기업이 수도를 운영하거나 소유하게 되면 수도관 교체나 유지·보수 등의 기본적 투자를 회피하고 요금을 인상할 것이다. 단기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의 속성상 당연하다.

이것은 물값이 4백 퍼센트나 치솟은 볼리비아의 경우처럼 제3세계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미국 애틀랜타시는 1988년 수에즈 자회사인 유나이티드 워터스와 위탁계약을 맺었으나 80억 원의 부당비용을 청구하고 최소 보수 조처도 하지 않아 결국 2003년 계약을 파기했다.

영국은 물 사유화를 한 후 수도요금 인상은 물론 심각한 수질오염에 시달리고 있고, 프랑스도 물사유화 이후 수도요금이 1백50퍼센트나 인상됐다.

벌써부터 인천시는 3대 물기업의 하나인 프랑스의 베올리아와 상수도 사업 위탁 계약을 맺었다.

애틀랜타시에서는 물 사유화 이후 누수율을 낮춘다고 수압을 낮추는 바람에 소방전 수압이 떨어져 화재진압을 못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앞으로 인천시민들은 정말 화재를 조심해야 할 것 같다.

한미FTA 협정이 발효되면 한국 정부가 물기업에게 최소 의무 부과를 하기 힘들게 된다. 수질이나 수압이 당장 문제가 돼 계약을 파기하려해도 투자자-국가 직접 소송제나 래칫조항 때문에 계약파기가 매우 힘들게 된다. 기업에 대한 특혜다.

이미 한화가 수에즈와, 삼성엔지니어가 베올리아와 ‘인천삼성베올리아환경’이라는 합작회사를 통해 사업에 나섰다.

적반하장

이것뿐이 아니다. 컴퓨터 소프트웨어나 인터넷과 관련한 저작권법도 이미 개정이 진행중이다. 한미FTA가 발효되지도 않았는데 저작권을 70년으로 늘이고 저작권침해를 친고죄에서 비친고죄로 바꾸며, 일시적 저장도 저작권침해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기업이 감시하던 소프트웨어 사용을 이제는 국가가 일상적으로 모든 컴퓨터를 감시하고, 인터넷 서핑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일시적 저장을 불법행위로 간주하겠다는 것이다.

예외를 둔다고 하지만, 결국 인터넷이나 소프트웨어의 정보공유 원칙이 이제는 원칙이 아니라 거꾸로 예외가 된다는 뜻이다. 인터넷 공간에도 이윤에 의해 거대한 벽이 놓이게 된 것이다.

안전한 식품을 먹을 권리, 물을 마실 권리, 인터넷에 자유롭게 접근할 권리. 이 모든 권리가 한미FTA가 발효되기도 전에 이미 기업의 이윤을 위해 무참히 짓밟히고 있다.

한미FTA가 샤일록의 탐욕을 넘어선 기업의 탐욕을 위한 협정이라는 것이 벌써부터 드러나고 있다. 한미FTA, 막아야만 한다.

주간 맞불 (발행일 2007-09-01 / 기사 입력일 : 2007-08-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