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리비아 사태의 속사정

볼리비아 사태의 속사정  
  김영길의 ‘남미 리포트’ <63>  

  2005-06-15 오전 9:46:52      

  

  
  빈부의 충돌로 내전 상황으로까지 치닫던 볼리비아 사태가 일단 진정국면에 들어섰다. 그러나 이 평화는 일시적인 것으로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폭발할지 모르는 폭풍전야의 모습과도 같은 분위기다.
  
  메사 대통령의 사임으로 과도정부를 맡은 에두와르도 로드리게스 임시대통령은 지난 12일 이번 볼리비아사태의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고산지대(El Alto) 빈민 대표와 광부ㆍ노동자 대표들을 대통령집무실로 불러 그들의 요구사항을 들어주는 조건을 제시, 과격시위는 일단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볼리비아에 급파된 외신기자들의 관심을 불러모았던 대통령과 시민대표들간의 대화는 비공개로 4시간 가까이 진행이 됐지만 “모든 볼리비아 시민단체 대표들에게 대통령궁을 개방하여 이들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것 외에 합의된 내용은 아무것도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합에서 로드리게스 임시대통령은 “나는 정치가나 선동가가 아니다. 따라서 이행할 수 없는 약속은 할 수 없다”고 이들 시위주동자들의 무리한 요구에 대해 거절의사를 분명히 했다.
  
  시민대표들이 신임 로드리게스 대통령에게 내세운 요구조건이 무엇인지는 즉각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으나 천연가스의 전면국유화와 코카 재배의 합법성 부여, 시민대표들의 국정참여 등이 아니었겠느냐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무능한 역대정권들 에너지자원만 허비했다’
      
  
지난12일 시민대표들과 로드리게스 대통령과의 대화모습, 고산지대의 극빈자 대표 아벨 마마니(왼쪽)가 일어서서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연라 프랜사 <볼리비아>  
  

  이번 볼리비아사태의 표면적인 이유가 된 천연가스와 석유자원의 국영화는 복잡한 내부사정에 그 원인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역사적으로 볼리비아는 칠레와의 5년전쟁(1879~1884년)으로 태평양 연안의 모든 땅을 빼앗겨 내륙으로 고립이 되었다. 무진장한 천연자원을 보유했으나 뱃길이 없어 국가가 발전하지 못한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했던 역대정권들의 최대목표는 항상 태평양으로의 길을 여는 것이었다.
  
  볼리비아의 역대 정권들은 군사적인 힘을 길러 칠레로부터 태평양을 가는 길을 되찾기 위해 군 장비현대화에 혈안이 되었고 무기확보를 위해 그들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자산이었던 석유와 천연가스를 외국기업들이나 국가에 거저 주다시피 했다고 시위대 대표들은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또 “이런 불공정한 계약은 군 장비 현대화는 표면적인 허울이었고 위정자들과 군 고위장성들의 개인호주머니만 채우는 데 급급했다”며 정치권의 전면 퇴진을 외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볼리비아 정부는 지난 90년대 중반부터 군 현대화 계획의 일환으로 외국으로부터 공군 전투기와 지상군무기를 받는 조건으로 석유와 가스를 현물교환형식으로 장기 판매계약을 체결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10여년 전에 체결한 에너지 판매계약은 현 시세의 10/1 수준인 불공정한 거래였으며 그나마 현금거래가 아니어서 볼리비아 경제에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는 게 이번 사태를 주도한 시민대표들의 주장이다.
  
  이들은 또”현실적으로 볼리비아는 칠레를 제압할 군사력을 가질 수 없는데도 군 작전상 별 도움도 되지 않는 구형전투기와 무기를 받고 자원만 허비하는 꼴이 되었다”고 목청을 높이기도 했다.
  
  더욱이 볼리비아 전역의 석유와 가스매장량이 향후 30년을 넘지 못할 것이라는 발표가 나오자 이들은 더 늦기 전에 에너지자원을 전면 전면국유화해야 한다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시위진압 경찰과의 충돌로 사망한 광산노조 지도자의 관을 매고 시위중인 시위대. ⓒ라 프랜사<볼리비아>
  

  ”석유와 천연가스 등 자원이 고갈되기 전에 남미국가들과 서방세계와 맺은 이런 부당한 계약들을 모두 파기시키고 정당한 가격을 현금으로 받아 굶주린 빈민노동자들의 살림을 살찌우게 하자”는 주장이 극빈자들의 귀를 현혹시키고 있는 게 오늘날 볼리비아의 모습이다.
  
  ’코카 재배 안데스문화로 이해해야’
  
  미국정부를 자극하고 있는 볼리비아의 코카 재배 합법화 또한 외부에서 보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이번 볼리비아사태의 주도세력이 코카잎 재배 농장의 농부들이었다는 것은 그만큼 이들이 국민의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들이 점점 정치세력화되고 있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볼리비아 농가에 있어서 코카 농사야말로 전통적으로 가장 중요한 농업 가운데 하나다. 태곳적부터 고산지대에 자리잡은 잉카족들은 고산지대의 산소부족 현상과 무기력증세를 보이는 고산병을 이 코카잎을 통해 견뎌왔다.
  
  다시 말해서 코카잎은 이들의 조상인 잉카제국 시절부터 “신이 준 선물”로 국가적으로 보호하며 아껴온 귀한 잎사귀였고 안데스의 역사와 함께 이 코카는 그곳 주민들과 떼놓을 수 없는 건강식품이었다는 이야기다. 지금도 이곳의 노동자들과 주민들은 이 잎을 씹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따라서 차기 국회는 코카 재배의 합법화 혹은 음성적인 허용을 요구하는 고산지대농부들의 주장을 거절하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코카 재배 농부들은 남미에서 코카잎 상습복용이 마약중독과는 전혀 다른 고산병 극복과 치료차원으로 여기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고산지대와 비교되는 풍부한 에너지자원을 보유한 산타크루스 시 전경. 이 시 주민들과 고산지대의 극빈자들간의 대립이 표면화되고 있다. ⓒ볼리비아 관광자료.

  이들은 “미국을 포함한 어떤 외부세력의 힘이나 경제적인 지원으로도 우리들의 필수식품인 코카 재배를 막을 수는 없다는 현실을 인정해야 된다”고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대량으로 생산된 코카잎이 마약밀매업자들에게 넘겨져 정제된 후 코카인으로 둔갑, 서방세계로 넘겨진다는 데 있다. 미국정부가 경제적으로 과다출혈을 하면서까지 노골적으로 코카 재배를 막는 것은 바로 이점 때문이다.
  
  볼리비아에 있어서 코카 재배문제는 친서방계 혹은 시민대표 등 누가 정권을 잡든지 금지도 허용도 하기 힘든 뜨거운 감자가 될 전망이다.
  
  볼리비아 주요도시 80% 이상의 시민들은 국회의 전면적인 개혁을 바라고 있으며 금년 내로 전체의원들을 물갈이 할 수 있는 총선실시를 희망하고 있다고 현지언론들은 전하고 있다. 볼리비아 국민들은 시민혁명 수준의 정치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볼리비아 현장을 취재하고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돌아온 남미특파원들은 “이번 볼리비아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이 몇 명의 선동적인 서민대표들이 뒤에서 이 사태를 조종하고 있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고 밝혔다. 광부, 농민, 고산지대 극빈자 등의 대표들이 자신의 세 과시를 위해 시위대를 지역별로 동원시켰다는 것이다.
    

볼리비아 빈민들의 상장인 고산지역, 이 고원의 메마른 땅에서는 코카 나무만이 자랄 뿐이다. ⓒ볼리비아 관광청

  이는 국회나 임시정부가 이들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과격한 시위가 다시 재현될 수 있으며 이들의 요구는 끝이 없을 것이라고 진단하기도 했다.
  
  전통적으로 볼리비아 정치권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쳐왔던 가톨릭교회도 정치권의 전면적인 개혁과 개헌을 외치는 성난 군중들을 달래기에는 역부족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시민대표들의 정치ㆍ경제에 대한 강력하고도 실질적인 요구에 대해 제한적이고 허울뿐인 대통령이 된 로드리게스는 총선과 대선 등 정치일정 제시 외에 별다른 대안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과도 내각을 구성할 인재조차 찾지 못해 애를 먹고 있다. 아무도 힘없고 이름뿐인 과도기적 임시장관직을 맡겠다고 나서는 인사가 없기 때문이다.
  
  만일 볼리비아 국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고산지대의 극빈서민들이 국정을 장악, 모든 에너지자원을 국유화시키고 외국기업들을 몰아내기 시작한다면 군부를 장악한 친서방계 부호들과 이들을 지지하고 있는 구 정치권 세력들과의 충돌이 불가피해 내전상황으로 번질 것이라는 설까지 나오고 있어 볼리비아의 앞날이 더욱더 험난해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김영길/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