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을 이용한 혁명?(Revolution by Internet?)
치아파스의 투쟁과 전자적 의사소통의 관계는 두가지 질문을 제기한다. 하나는, 앞부분에서 논했듯이 치아파스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한 정보가 단순화하고 평면화하고 심지어 가끔씩은 인터넷을 통해 재전송되는 과정에서 왜곡돼 전달되는 문제이다. 물론 이 문제는 월드 와이드 웹에서 사람들이 사물에 대해 익히는 방식에 관한 질문과 관련된다. 정보원이 무엇인가? 다른 질문은 우리가 전자적으로 받은 정보에 어떻게 반응하느냐는 것이다. 인터넷 사회에서 우리는 어떻게 ‘정치 활동을 하는가?’ 편안한 안방을 벗어나지 않고 빗속에 서있거나 행진하지도 않으면서 우리가 운동에 ‘참여’ 할 수 있을 때 이는 뭘 뜻하는가?
The relationship of electronic communication to the struggle in Chiapas raises two questions. One, as we discussed in the previous sections, is the way in which the information that circulates about events in Chiapas is simplified, flattened and sometimes, even distorted by its transmission and retransmission on the internet. This problem, of course, is related to the question of how we learn things on the world wide web. What are the sources from which the information comes? A separate question is how do we respond to the information that we receive electronically? . How do we “do politics” as an internet community? What does it mean when you can “participate” in a movement without ever leaving the comfort of your room, without ever standing or marching in the rain?
정보원(Sources)
다양한 네트워크를 통해 번역되고 요약되고 전달되는 것을 세심히 검토해보면, 거의 대부분이 멕시코시티에서 발행되는 좌파 일간지 <라 호르나다>(La Jornada)에서 나왔음을 알 수 있다. <라 호르나다>는 처음부터 사파티스타와 특별한 관계를 맺었으며 사파티스타민족해방군은 여러 측면에서 이 신문에 의지한다. 사파티스타가 인터넷에 직접 연결해 셀바에서 노트북 컴퓨터로 자신들의 소식을 전한다고 대중들이 알고 있지만, 사실은 <라 호르나다>가 그들의 소식을 중계해준다. 린 스티븐(Lynn Stephen)은 이 사실을 이렇게 썼다.
Careful examination of the material that is translated, summarized and distributed through a variety of networks reveals that almost all of this material is drawn from the Mexican leftist daily, La Jornada which is published in Mexico City. La Jornada has had a special relationship to the Zapatistas from the start and the EZLN relies on this newspaper in a number of ways. Although there is a public perception that the Zapatistas are directly wired to the internet and tap out their messages on laptops in the Selva, in fact they count on La Jornada to relay their messages. As Lynn Stephen notes,
“실제로는 사파티스타민족해방군이 전자우편이나 인터넷에 직접 연결하지 않는다. 인터넷 사이트 ‘EZLN.ORG’ 관리자 저스틴 폴슨(Justin Paulson)에 따르면 처음에 라 호르나다를 포함한 몇몇 신문에 팩시밀리로 소식이 전달되며 신문들은 이를 지면에 싣는다. 많은 인터넷 사이트들이 그 다음에 라 호르나다의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 이를 받아간다. 사파티스타민족해방군의 성명이 인터넷에 빠르게 올라오기 때문에 마치 해방군이 직접 인터넷에 올린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내가 사파티스타 지역사회를 방문했을 때 치아파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그들에게 알려준 적도 종종 있다. 심지어는 40킬로미터 밖에 안 떨어진 곳 소식조차도 말이다.”(35)
In reality, the EZLN is not directly connected to E-mail or to the internet. According to Justin Paulson, Webmaster for the website “EZLN.ORG,” EZLN communiques are first faxed to several newspapers including La Jornada which publishes them. Different websites then pick them off La Jornada’s web sites. Because of the rapid publication of the EZLN’s communiques on the internet, they appear to come directly from the EZLN onto the net. In reality, often when I have visited Zapatista communities, I have brought news to them of what is going on in Chiapas – sometimes just 40 kilometres away.35
사파티스타가 자신들의 소식을 세상에 알릴 때만 <라 호르나다>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치아파스에서 인터뷰한 많은 사람들에 따르면, 이 신문은 사파티스타에게 치아파스 경계 또는 멕시코 경계 밖의 사람들이 더 잘 이해하도록 메시지를 다듬는 걸 돕는 핵심 자문역을 수행한다. 게다가 라 호르나다는 사파티스타와 특별한 관계가 있어서, 어떤 이들은 이 특별한 관계가 이 신문의 보도에 영향을 끼친다고 주장한다. 1998년 4월에 만난 치아파스 활동가는 이렇게 말했다.
Not only do the Zapatistas count on La Jornada to transmit their messages to the world, but, according to a number of people I interviewed in Chiapas, the newspaper has played a major role in providing feedback to the Zapatistas on how to craft a message that would be better understood beyond the borders of Chiapas or Mexico. Moreover, La Jornada has a particular relationship to the Zapatistas that some argue effects its coverage of the news. As one Chiapanecan activist told me in April 1998,
“여기서 우리는 농담조로 <라 호르나다>를 ‘치아파스 가제트(관보)’ 또는 ‘오코싱고 타임스’라고 부른다. 이 신문이 어떤 지역 소식보다 치아파스와 사파티스타민족해방군에 대한 소식을 많이 싣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수도 멕시코시티 소식보다 많을 지경이다. 물론 여기 살면서 두개의 ‘지역 신문’을 본다는 점에서 편리하다. 그런데 나는 <라 호르나다>의 기사 가운데 상당 부분을 알아듣지 못한다. 그들이 기사를 조작한다는 말이 아니다. 그들이 아주 편파적으로 보도한다는 거다. 사파티스타 동조자 2명이 협곡에서 주검으로 발견되면 이 사실은 언제나 신문에 난다. 하지만 사파티스타민족해방군 지지자가 아닌 농민 두명이 주검으로 발견됐다고 치면, 이 신문은 가끔은 아예 언급도 하지 않는다.”
Here we jokingly refer to La Jornada as the “Chiapas Gazette” or the “Ococingo Times” because it carries more news on Chiapas and the EZLN than on any other place in Mexico, sometimes even the capital! Of course it’s convenient for us who live here and get to see two “local papers.” But I read La Jornada and I don’t recognize a lot of what I read. I’m not saying that they make things up. But they report things in a very partial way. If two Zapatista sympathizers are found dead in a gully, that’s always reported. But if two peasants who were not EZLN supporters are found dead, sometimes it gets no mention at all.
편집 방향에서 볼 때 이 신문은 몇몇 요소에서 좌파에 가깝고 다른 부분에서는 좌파에 비판적이다. 이 신문이 좌파보다 사파티스타를 더 선호하기 때문에 종종 좌파의 대안적 전망을 도외시하는 일이 생긴다. 예를 들면, 라 호르나다의 의견난에 정기적으로 글을 쓰는 이들은, 자신들의 글이 선거와 관련해 사파티스타보다는 민주혁명당에 더 공감하는 내용일 경우 신문에 실리지 않는 일을 당해 당황한 적이 있다. 그 내용은 구체적으로, 선거는 사기이며 반동적인 이해에 이롭기 때문에 우선 순위를 두지 말아야 한다는 사파티스타의 주장보다 치아파스 지역에서 선거 참여를 촉구하는 민주혁명당의 주장에 더 공감하는 경우이다.
Editorially La Jornada is close to some elements on the left and critical of others. And the newspaper’s preference for the Zapatista position over other left positions has sometimes led to the exclusion of alternative views from the left. For example, regular contributors to the signed “Opinion” sections of La Jornada have been bewildered to find that their columns were not run when they put forward views more sympathetic to the PRD position which called for fostering electoral participation in Chiapas than to the Zapatista position that elections were fraudulent and served reactionary interests and should not be a priority.
1994년 선거 참관인으로 참여했던 나는, 치아파스 선거에서 문제는 선거 부정이 아니었다고 주장하는 마지막 사람일 것이다.(36) 치아파스의 지배계층이 역사적으로 선거를 자신들의 정당성 없는 정치권력 장악을 강화하는 데 이용해왔기에, 사파티스타민족해방군이 1994년 선거에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지지자들의 선거 참여를 독려하지 않은 것을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다. 선거 참여냐 의회 밖 활동이냐의 문제가 좌파의 아주 오래된 논쟁거리이기는 하지만, 이 문제를 논하는 것 자체는 여전히 의미가 있을 것이다. 1996년 사파티스타는 선거에 무관심한 태도를 보였고, 그 때 민주혁명당은 분쟁지역 주민들이 선거에 참여한다면 툭스틀라 구티에레스 지역 의회를 장악할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1998년 5월 나는 민주혁명당 치아파스 지부 지도자인 힐베르토 고메스 마사(Gilberto Gómez Maza)를 인터뷰했는데, 그는 이렇게 주장했다.
Having participated as an electoral observer in Chiapas in 1994, I would be the last to argue that fraud is not a problem in Chiapanecan elections.36 Given the Chiapanecan elite’s historical use of elections to reinforce its illegitimate hold on political power, it is easy to undertand the EZLN’s decision to sit out the elections of 1996, doing nothing to mobilize its supporters to vote. However, even if the question of the electoral road vs. extraparliamentary activity is a very old debate on the left, it would still seem to be a discussion that is worth having. By 1996 the Zapatistas had settled on a position of indifference to electoral activity at the same time that the Chiapanecan PRD thought it stood an excellent chance to take control of the Chamber of Deputies in Tuxtla Gutiérrez, if only people in the conflict zone would show up at the polls to cast their ballots. In May 1998, I interviewed Gilberto Gómez Maza, head of the PRD in Chiapas who asserted,
“민주혁명당은 주 전체 지자체 111곳 모두에서 조직을 갖추고 있다. 우리가 얻은 의석에 사파티스타민족해방군이 장악한 지역의 사람들이 투표했다면 얻었을 의석을 합쳐 계산하면 야당인 국민행동당(PAN) 의원과 공동으로 의회 다수를 점할 수 있었을 것이다.”
The PRD is organized in all 111 municipalities in the state and if you count the seats we did win, plus the seats we could have gained had people voted in the regions controlled by the EZLN, we would have been able to form a majority in the Chamber of Deputies together with the opposition deputies from the PAN.
농촌지역 학교 선생님들의 아들인 고메스 마사는 국립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했고 치아파스 고지대 원주민들을 위해 일하는 몇십년만의 첫번째이자 유일한 소아과 의사가 됐다. 로스 알토스에서 가난과 무시를 목격하고는 정치활동에 뛰어들어 멕시코노동자당과 에베르토 카스티요(Heberto Castillo)의 추종자가 됐고 이어 카스티요가 1988년 대통령선거에서 쿠아우테목 카르데나스(Cuauhtémoc Cárdenas)를 지지하기로 하자 민주혁명당에 들어갔다. 그는 “우리가 싸우는 것은 권력 관계를 바꾸기 위해서”라며 “사파티스타민족해방군의 반 선거적 태도만 아니었다면 이 목표를 달성하는 데 한참 진전할 수 있었을 거다”라고 주장했다.
The son of two rural school teachers, Gómez Maza studied medicine at the National University and became the first, and for decades, the only pediatrician serving the indigenous people of the Chiapanecan highlands. His experience of the poverty and neglect in Los Altos, propelled him into political activity first as a follower of Heberto Castillo and the Mexican Workers Party (PMT), and later, when Castillo decided to support Cuauhtémoc Cárdenas’s bid for the presidency in 1988, in the PRD. “What we are struggling for is to change the relations of power in this state,” he observed, “and were it not for the anti-electoral stance of the EZLN,” he insisted, “we could have gone a long way to accomplishing this goal.”
고메스 마사와 대화하면서 나는 치아파스의 미래를 걱정하는 외국 활동가들은 적어도 이런 주장을 검토하고 논쟁을 벌이고 싶어할 거라고 느꼈다. 그러나 외국의 치아파스 연대 모임들이 선거에 참여하는 것이 적당한지를 대부분의 인터넷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정보를 바탕으로 충실히 논의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선거참여를 지지하는 이들은 보통 자신들의 주장을 지면을 통해 드러내지 않으며(37) 그렇게 하더라도 세상에 이 소식을 전하는 <라 호르나다>가 싣지 않기 때문이다.
It seemed to me in speaking with Gómez Maza that foreign activists concerned with the future of Chiapas would at least want to think through and debate these assertions. But a full discussion among foreign Chiapas solidarity groups of the appropriateness of the electoral road would have been difficult based on the information available on most web sites because those speaking in favour of participation in elections generally did not make it into print,37 or, when they did, theirs were not the features from La Jornada that were relayed around the world.
이 문제에 대한 <라 호르나다>의 편파성은, 만약 멕시코 외부의 치아파스 연대 모임들이 비교 분석할 다른 정보원을 갖고 있다면 문제가 안될 수 있다. 그러나 많은 네트워크를 통해 오고 가는 번역물이나 요약물을 세심히 살펴보면, 전자적으로 전달되는 대부분이 <라 호르나다>에서 나온 것들이다. 확실히 이것은 <라 호르나다>의 한계는 아니다. 이 신문은 민주혁명당과 노조, 다른 좌파의 투쟁을 폭넓게 보도한다. 문제는 인터넷을 통해 유통하기 위해 선택되는 정보의 한계다.
La Jornada’s partiality on the subject would not be a problem if Chiapas solidarity groups outside of Mexico had other sources with which to cross check. But, careful examination of the material that is translated, summarized and distributed through a variety of networks reveals that most of the material available electronically is drawn from La Jornada. To be sure, this is a limitation not so much of La Jornada, which does provide broader coverage of the PRD, the unions and other struggles on the left, but of the way that material is selected and distributed and edited for internet distribution.
놀라운 것은, ‘부르주아 언론’의 보도를 의심하고 다른 좌파가 만들어내는 분파적 전망에 대해서는 적당한 조정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보는 것은 비판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이 정보도 특정한 정치적 전망의 렌즈로 거르기는 마찬가지인 데 말이다. 1996년부터 97년까지 캐나다에서 치아파스 연대 활동가 10여명을 인터뷰하면서, 나는 인터넷 사이트 관리자가 누구인지 (이름을 빼고), 그들의 정치관이 뭔지, 또 왜 사람들이 몇몇의 소수가 관리, 감독하는 몇개의 사이트에 의존하면서 불편을 느끼지 않는지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을 찾지 못했다. 세상의 다른 사람들처럼, 나는 텍사스대학의 해리 클리버(Harry Cleaver) 같은 사람들을 존경하며 그에게 감사한다. 그들은 첫 봉기가 일어난 때부터 지금까지 치아파스에 대한 모든 정보를 제공해주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들였다. 그럼에도 놀라운 것은, 우리가 접하는 치아파스와 멕시코의 시민사회 전반에 대한 글은 해리 클리버 또는 우리가 그들의 정치적 전망을 전혀 모르는 다른 몇몇 사람들이 고르고 전달한 것이라는 인식이 너무 약하다는 점이다. 그들의 정치적 전망 가운데 우리가 아는 것은 인터넷의 힘과 인터넷이 ‘사이버공간의 시민사회’를(38) 건설할 잠재력에 대한 열정적인 신념뿐이다.
It is striking that many people who bring a sceptical attitude to anything they read in the “bourgeois press” and who are capable of making the proper adjustment for sectarian perspectives when they read material generated by others on the left, accept what they read on the internet with no further critical thought – although this material is also filtered through the lens of particular political perspectives. In interviews with dozens of Chiapas solidarity activists that I carried out in Canada in 1996-1997, I found no one who could tell me who any of the web masters are, (other than their names), what are their politics or why one would feel comfortable with depending on a variety of sites, all of them monitored by just a handful of individuals. Like others around the world, I feel respect for and gratitude to someone like Harry Cleaver at the University of Texas for the time and effort that he has put into keeping us all informed about Chiapas from the first day of the uprising. But it is nonetheless astonishing that there is so little awareness that most of what we read about Chiapas, and civil society in general in Mexico, has been selected and transmitted by Harry Cleaver or a couple of other people whose political outlook — other than a passionate belief in the power of the internet and its potential to build a “civil society in cyberspace”38– is completely unknown to most.
불공평한 접근 문제(The problem of unequal access)
이는 우리가 진보적인 세계의 견해에 공평하게 접하지 못하는 문제점을 만들어 낸다. 권력과 의사소통에 대한 전통의 지혜는 통신수단에 대한 접근권이 매우 불공평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점이 보통 문제로 제기되는 것은 진보적인 주장이 부자와 권력이 조정하는 보수, 주류 언론에 등장하지 않는 맥락에서다. 이런 문제를 논할 때 인터넷은 동등한 구조를 갖고 있으며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이 부자와 권력자들과 대응하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길을 여는 민주적이고 대중적인 기회로 평가된다. 인터넷이라는 수단을 통해 다른 진보적인 활동가들과 연결 통로를 만들고 가상공간 속에 공동체를 구성할 수 있게 된다고들 한다. 클리버 등등은, 인터넷이 정부의 검열을 피해갈 가능성을 열고, 전자적 장벽을 잘라내고 정보를 기업과 정부의 지배에서 해방한다고 주장한다.(39)
This brings us to the problem of unequal access to progressive world opinion. The received wisdom about power and communication is, of course, that there is very unequal access to the means of communication. But this is usually proposed as a problem by which progressive opinion loses out to conservative or mainstream interests in media controlled by the rich and powerful. The internet, in most of these discussions, is posed as providing a levelling mechanism, a democratic or popular opportunity that opens the way for the poor and marginalised to communicate on the same terms as the rich and powerful. Through this means, we are told, it becomes possible for us to build links to other progressive actors and to construct a community in cyberspace. It provides, as Cleaver and others have asserted, the possibility to circumvent the censorship of the state, to chop down electronic barriers and to liberate information from corporate and state control.39
이것이 전자 통신의 성과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멕시코 내 진보 단체들이 여론에 접근할 전자적 수단 확보에서 공평한 기회를 얻지 못한다는 주장도 있다. 사파티스타가 언론에 능숙한 의사소통 천재라는 당연한 평가를 받고 있지만 다른 좌파 운동이나, 푸에블라(Puebla)와 게레로(Guerrero)와 오악사카(Oaxaca)에서 활동하는 인민해방군(EPR)(역6) 같은 다른 무장혁명세력은 자신들의 웹 관리자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마르코스 같은 돋보이는 대변인이 없어서만이 아니다. 그 결과 그들의 전망은 우리 앞에 컴퓨터 화면을 통해 등장하지 못하며 그들의 활동은 거의 알려지지 않는다.
While this is unquestionably an achievement of electronic communication, there is an argument to be made that progressive organizations within Mexico have very unequal electronic access to public opinion. The Zapatistas have been appropriately hailed as media savvy communications geniuses, but other movements of the left, indeed, other armed revolutionaries like the Popular Revolutionary Army (EPR) that is active in Puebla, Guerrero, and Oaxaca, not only lack an articulate spokesman like Marcos, they have not found their Webmaster. And, as a consequence, their perspectives are not before us on our screens, and their activities are rarely reported.
좌파에서 가장 중요한 당인 민주혁명당에 대해 멕시코의 언론 전문가 한명은 “멕시코의 전통 좌파는 기술을 혐오하며, 전자적 통신수단을 어떻게 활용할지 아이디어도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이유가 뭐든지, 민주혁명당은 인터넷을 활용하는 데 아주 느리며, 그 결과로 이 당이 전자적 자료에 등장하면 그것은 주로 사파티스타민족해방군에서 나오는 자료에 뭔가 부족한 당이라는 맥락으로 등장할 때다. 인터넷에 이렇게 편파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전세계의 동조자들 가운데 두 쪽의 성명에 바탕해서 각각의 상대적 장점, 다양한 전략과 전술의 적합성을 따질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
In the case of the most important party of the left, PRD, one Mexican-based media expert explained, “the traditional left in Mexico is technophobic, and has few ideas how to make electronic communication work for them.” Whatever the reason, indeed, the PRD has been very slow to make use of the internet and as a consequence, the party appears in electronic sources largely in terms of its deficiencies which are highlighted in communications from the EZLN. Because of this unequal representation on the internet, few sympathizers around the world are able to debate, based on statements from both sides, the relative merits of each position and the appropriateness of various tactics and strategies.
대리 참여(Vicarious Participation)
전자적 통신 수단을 정치적으로 활용해 동료 활동가들과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는 기회에 대한 흥분과 만족의 강도가 많은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변치 않고 있다. 글을 올리고 그에 답하는 글을 올리고, 탄원에 서명할 것을 요구하고 항의성명에 동의하고 (시위 등의) 대중적 집결 경험을 나누는 것 모두가 전세계 진보세력에게 ‘연결되어있다’는 느낌을 만들어 줬다. 특히 사파티스타 지지자들 사이에서 더 그렇다. 실로 전자 통신수단이 조성한 정치적 업적에 대한 인식은 사파티스타민족해방군 연대 활동가들 사이에서 가장 민감하다.
The excitement and satisfaction originally inspired by the opportunity to make political use of electronic communication to connect to a “community” of fellow activists continues undiminished for many. The posting and reposting, the calls for signatures on petitions, adhesions to protest manifestos, the sharing of experiences of mobilization have all worked to create a sense of “connectedness” among progessive people around the world and, in particular, among supporters of the Zapatistas. Indeed, nowhere does the sense of political accomplishment fostered by electronic communication seem keener than among EZLN solidarity activists.
하지만 이 연결됐다는 느낌의 상당 부분은 허황된 것인데, 연대행동 차원에서 이뤄지는 전자적 의사소통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정치 참여가 단추를 눌러 이름을 목록에 올리는 것으로 이뤄진다면 이런 행동이 꼭 사람들을 단결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탄원 지지자는 다른 사람들과 얼굴을 맞대게 되고, 아마도 신문광고료를 기부할 수도 있다. 서명을 거부하는 것조차 탄원집회 옆을 지나가는 사람과 잠깐이라도 논란을 벌일 기회를 제공한다. 하지만 이제는 정치적 견해를 거부하는 것조차 삭제 단추를 누르는 것만으로 할 수 있다. 게다가 이런 식으로 참여하기 위해 필요한 극도로 낮은 개입도 상당한 정치적 효과를 만들어낸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이렇게 손쉬운 방법으로 ‘메시지를 보내는 것’도 권력자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한자리에 수천, 수백, 수십명의 활동가가 모여 같은 주장을 펴는 것과 비교해 약하기는 하더라도 말이다.
However, much of this sense of connection is illusory because so much electronic communication takes place as a solitary act. When political participation consists of clicking a reply button that adds our name to a list, this act does not necessarily bring people together. Once support of a petition involved face-to-face encounter with another human being and perhaps a monetary contribution to underwrite the cost of a newspaper ad. Declining to sign-on also involved at least a few moments of debate with the person passing around the petition. Now the rejection of a political position can be accomplished in a stroke of the delete button. What is more, it could be argued that the extremely low level of engagement required to participate in this fashion produces a political effect that is equally modest. That is, “sending a message” in this facile way may create an impression on powerholders that is correspondingly reduced when compared to the same message communicated by thousands, or hundreds or even dozens of activists gathered in the same public space at the same time.
게다가 인터넷을 쓰는 우리는 토론 모임에 들어가고 대화방에 들어가 ‘동지’를 만날 수 있다. 과거에 우리가 정치적 모임에서 일할 때는 꼭 했던 서로의 차이 확인도 필요 없이 말이다. 더 이상 서로 꼭 만나야하는 것도 아니며,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의 주장을 설득할 필요도 없다. 토론 주제에 싫증이 나면 그냥 접속을 끊고 나오면 된다.(40) 이런 정치 참여로 발생하는 익명성, 모임에서 즉각 빠져 나올 수 있는 가능성, 연대를 표시할 때 노력이 거의 필요없다는 점은 인터넷 활동의 매력인 동시에 한계다. 전자적 전투성은, 집을 나서기 위해 인체공학적으로 설계된 컴퓨터 의자에서 일어나는 노력조차 없이 운동에 참여하고, 우리가 기억하는 세상의 탄압받는 사람들과 통신할 수 있는 수단을 준다! 치아파스 주변의 연대활동조직에서 널리 존경받는 린 스티븐은 전자적 통신의 또 다른 한계를 지적하면서 이것이 실로 “풀뿌리 활동의 걸림돌”이 아니냐고 묻는다.
Moreover, as internet users we enter discussion groups and chat rooms with “compañeros” with whom we will never really need to work out our differences as we once had to do in political groups. We are no longer required to encounter each other, nor to work to persuade others of our position. We can just log off when we tire of the terms of debate on a particular list.40 The anonymity that is provided to us in this form of political participation, the potential for instant withdrawal from the group, the small degree of effort that is required to express solidarity through these means constitute both the attraction and the limitation of internet activism. Electronic militancy offers a means to be part of a movement and to communicate to downtrodden people around the world that we have them in mind without actually having to bestir ourselves to climb out of our ergonomically correct computer chair to leave the house! Lynn Stephen, a widely respected figure in the organization of solidarity activities around Chiapas, has noted another limitation of electronic communication and asks if it is not, in fact, “a roadblock to grassroots activism.”
“매일 수천명의 미국인들이 치아파스에서 최신 소식을 받고 다른 이들과 대화방에서 만나면서 뭔가 하고 있다고 느낀다. 그들은 상황파악을 하고 있다. 그러나 통신에서 이끌어낸 것 같은 행동은 중요한 정치적 압력을 형성하는 전술과는 거리가 멀다. 통신에 연결됐다는 느낌은 높은 수준의 지속적인 정치적 압력 같은 것이 생기게 하지 못하는 일이 잦다. 이런 지속적인 압력은 미국 의회에 장기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인데 말이다… 교회 지하실에 모여 지역 의원을 찾아가 전달할 자료를 만드는 것은, 상원의원에게 치아파스의 군국화에 미국이 참여하는 것과 관련해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전자우편 첨부파일을 보내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니다.”(41)
Every day, thousands of Americans receive updates from Chiapas, chat with others and feel that they are doing something. They are informed, but the kinds of actions elicited on the net are far from the tactics which often produce major political pressure. Feeling connected on the net does not often inspire the kinds of high level, continual political pressure that can have a long-term impact on the United States Congress. …Meeting in a church basement to work on an information packet to distribute to local congressmen in visits is not the same as sending an attachment to a senator’s aid about U.S. participation in the militarization of Chiapas.41
스티븐은 인터넷을 통해 협력하는 활동 가운데 어떤 종류는 실제로 “풀뿌리 조직활동을 제한”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Stephen stresses that some types of activity coordinated through the internet can actually “limit grassroots organizing efforts.”
“인터넷에서 시민 불복종 운동을 벌이고 팩시밀리를 보내고 전자우편으로 사파티스타 투표에 참여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얼굴을 마주 대하고 풀뿌리 조직화를 하는 것의 대체물은 아니다. 치아파스에 강력한 기반을 갖추고 있는 멕시코 내 모든 단체가 참여하는 광범한 전국적 집회를 개최하는 데 4년 이상이 걸렸다는 것은, 인터넷의 정보 과잉이 전국적 네트워크 형성의 시급함을 약화시켰음을 내비친다. 사람들은 서로 연결되어있다고 느낀다. 그러나 이것은 장기적인 계획 수립으로 이어지지 않는다.”(42)
Civil disobedience campaigns on the net, sending a fax, or voting on a Zapatista ballot by e-mail are important, but are not substitutes for face-to-face interaction and grassroots organizing. The fact that it took more than four years for a wide-ranging national meeting to be called of all groups involved in Mexico organizing with a strong basis in Chiapas suggests that the glut of information on the internet may have slowed down the urgency for creating a national network. People felt connected, but this did not result in long-term planning.42
전자적 정치운동의 가장 열성적인 제안자인 해리 클레버조차 인터넷에 의지하는 것의 한계 몇가지를 인정한다.
Even Harry Cleaver, one of the most enthusiastic proponents of electronic political movement, acknowledges some of the limitations of reliance on the internet:
“(인터넷의 힘)의 한계는 인터넷 범위의 한계 (모든 사람이 인터넷에 연결되어 있지 않음을 우리가 주지하듯이), 연결 방식 이 두가지에 있다. 인터넷에는 많은 종류의 투쟁에 대한 정보가 널려 있는데, 이 각각의 투쟁은 사파티스타와는 물론이고 서로간에도 연결되지 않은 상태다.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연결 수단이 있다는 것은, 실제로 연결될 것을 보장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정보와 연결수단이 보완적인 행동을 유발하는 데 효과를 발휘한다는 보장도 없다. 인터넷에 널려 있는 사회투쟁에 대한 모든 정보원에 접근할 수 있는 정치 활동가조차도 주기적으로 그 정보의 양에 압도당한다. 인터넷이 확대되면서 또 인터넷을 투쟁에 이용하려는 집단이 늘어나면서, 이 문제는 빠르게 늘어날 것이다…”(43)
The limits to [the power of the Net] lie both in the limits of the reach of the Net (as we have seen it does not connect everyone) and in the kinds of connections established. There is already an enormous amount of information in The Net about all sorts of struggle which have not yet been connected, not to the Zapatistas, not to each other. The availability of information and a vehicle of connection does not guarantee either that a connection will be made or that it will be effective in generating complementary action. Even political activists fully capable of tapping all the sources of information about social struggles available on the Net are regularly overwhelmed by the sheer amount of information. As The Net grows, and as the number of groups involved in struggle that are capable and willing to use it grows too, this problem will grow apace…43
결론(Conclusions)
치아파스 연대 활동가들이 지속적으로 정보를 얻고 자신들의 정치적 행동의 안내를 받기 위해 인터넷에 의존하게 된 것을 다양한 방식으로 점검했다. 이 새로운 기술은 자신들의 권리를 위해 투쟁하는 용감하지만 아주 취약한 사람들을 지원하는 국제적 노력을 상당히 쉽게 만들어 준다. 인터넷 행동주의는, 벌어지는 사건에 영향력을 강화하도록 사람들을 연결하기보다는 거의 존재하지도 않는 연결됐다는 느낌과 정치적 효과에 대한 환상을 만들어낸다. 인터넷을 통해 전달되고 다시 중계되는 사건의 모습은, 연대 활동가들한테 정보의 양에 압도당한다는 느낌을 남긴다. 이와 동시에 그 정보는 종종 너무나 편파적이어서 잘못해석하게 한다. 치아파스에 대해 돌아다니는 너무나 단순화한 사건의 모습은 억압받는 사람쪽에 비중을 더 두는 결정을 상대적으로 쉽게 하게 만든다. 그러나 거기서 어떻게 진전할 것인지, 또는 무엇을 할 것인지의 문제는 아주 어렵다.
We have seen that in a variety of different ways, Chiapas solidarity activists have come to depend on the internet to keep themselves informed and to guide their political activities. To a great extent, this new technology has facilitated the international effort to support courageous and highly vulnerable people who are struggling for their rights. However, rather than linking people in ways that strengthen their capacity to influence events, internet activism sometimes creates an illusion of connectedness and political effectiveness where little exists. The version of events that is transmitted and forwarded over and over may leave solidarity activists feeling overwhelmed by the quantity of material at the same time that the information conveyed is often so partial as to be misleading. The highly simplified version of events communicated about Chiapas makes the decision to weigh in on the side of the oppressed relatively easy, but the question of how to proceed from there, or what is to be done, very difficult.
전세계 상당한 숫자의 사람은 치아파스에서 벌어지는 투쟁을 지지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여할 준비가 되어 있다. 문제는 그들이 치아파스의 복잡함을 이해하고 치아파스가 멕시코에 속해 있는 방식을 이해하고 또 멕시코가 국제 질서 속에 자리잡고 있는 방식을 이해하는 데 더 시간을 투여할 것이냐 여부다. ‘신자유주의의 돌진’과 ‘신자유주의에 대항한 대중적 투쟁’을 전세계 운동 세력들을 묶는 조직화의 개념으로 활용하려는 의지는 아주 강하다. 그러나 이런 환원주의적 접근은 과거의 환원주의적 모형들이 그랬던 것과 똑같은 좌절과 실패를 불러오는 경향이 있다. 오늘날 치아파스에서 펼쳐지는 것은 ‘신자유주의적 약탈’로 축소될 수 없으며, ‘원주민 정체성 문제’로 축소될 수는 더욱 없다. 우리는 이렇게 주장하는 접근법을 조심해야 한다.
A remarkable number of people around the world are prepared to devote a great deal of their time to support the struggle in Chiapas. The question is whether they might better spend some of that time working to understand Chiapas in all its complexity, the way Chiapas fits into Mexico, and the way Mexico fits into the international order. The impulse to use the “onrush of neoliberalism” and the “popular struggle against neoliberalism” as organizing concepts by which to grasp the forces at play in the world is very strong. But these reductionist approaches are bound to lead to the same frustration and failure as the old reductionist models. What is unfolding in Chiapas today is not reducible to “neoliberal predations” nor even to “indigenous identity issues”. And we must be wary of approaches that claim this is the case.
인권을 존중하라는 아주 근본적인 호소는 상황의 특수성을 깊이 이해하지 않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보다 원대한 기획이라면 진지한 분석이 필요하다. 치아파스에 대한 특정 이념 몇가지만을 계속 전달하고 반복함으로써 생기는 인식 및 준비 부족은 그 대가를 치르게 마련이라는 점은, 1998년 5월에 134명의 이탈리아 연대 활동가 가운데 108명이 추방당한 이후 발생한 반발에서 잘 나타난다. 이탈리아인들의 “우리는 모두 원주민이다”는 식의 접근법의 모순은 포위된 사파티스타 여성들에 대한 우려와 지지를 표현하기 위해 그들이 타니페를라스(Taniperlas)에서 행진했을 때 금방 명백해졌다. 이탈리아인들이 나타나자 인디오들이 그들을 공격하고 난폭하게 밀어붙인 것이다. 그들은 원주민 칼과 몽둥이를 휘두르는 인디오들이었는데, 제도혁명당 지지자들이며 “우리는 모두 원주민이다”는 말이 제시하는 모두를 포괄하는 개념에서 한참 먼 이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어쨌든 인디오인 것도 분명하다.(44)
Very basic appeals to respect human rights can be launched with no deeper understanding of the specifics of the situation. But any project that is more ambitious requires serious analysis. That a lack of awareness and preparation created by the constant circulation and repetition of a small number of superficial ideas about Chiapas has its costs, is illustrated in the backlash that has followed the expulsion from Mexico in May 1998 of 108 of 134 Italian solidarity activists. The contradictions of the Italians’ “somos todos indios” approach quickly became apparent when they marched into Taniperlas where they were anxious to express their concern and support for beleaguered zapatista women. The Italians were set upon, pushed and shoved by indios upon their appearance in the town. These were machete and stick wielding indios who, as PRI supporters, may fall outside of the all-embracing category that the “somos todos indios” construction proposes – but they were indios nonetheless.44
혁명 이후의 멕시코 민족주의의 깊이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 이탈리아인들은 덫에 걸렸다. 결국 이 사건은 외세의 침략을 잘 아는 나라에 대한 ‘외세의 침략’으로 그려졌으며, 세디요 정권이 민족주의적 방식을 써먹고 외국인 혐오를 강화할 수 있게 했다. 이 정권은 치아파스 주민들에 대한 국제적 우려와 관심에 오직 이런 식으로만 대응했다.(45) 이 불행한 결과는 멕시코와 치아파스에 대한 아주 편파적이고 표피적인 이해에 바탕한 연대활동 곧 가상공간의 치아파스만 아는 연대활동이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For lack of knowledge and appreciation of the depth of postrevolutionary Mexican nationalism the Italians fell into a trap. In the end, the event was portrayed as a “foreign invasion” in a country that has known foreign invasion, and it gave the Zedillo regime a nationalist card to play, reinforcing the zenophobia that has been the regime’s only reponse to international concern for Chiapanecans.45 This unfortunate outcome was the inevitable result of a kind of solidarity work that is based on a very partial and superficial knowledge of Mexico and Chiapas. It is the kind of solidarity work that comes out of acquaintance only with virtual Chiapas.
단언컨대, 사건에 대한 심하게 단순화하고 평면적인 설명을 유포하는 것은 방어할 수단이 없는 이들을 향한 전쟁 와중에 차이점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어떤 이들은 주장할 것이다. 인터넷에서 차이에 대한 공개 토론이 벌어지면 멕시코 정부가 외국 진보세력의 압력을 물리치는 데 이를 악용할 것이라고 우려할 만한 측면은 있다. 과거 세대의 좌파 가운데 많은 이들이 소련 또는 중국 밖으로 차이를 노출시키면 악용될 수 있다고 걱정한 것과 똑같이 말이다. 연대활동가들이 좌파 세력간 또는 원주민사회 내부 또는 치아파스의 비정부기구간 분열과 분쟁을 거론하지 않으면, 멕시코 정부가 이를 모를 것이고 분노와 분열을 악용해 상황을 장악하고 운동을 해체하려 하지는 않을 거라고 정말 믿는 한 좌파의 오랜 문제점은 더 심해지기만 할 것이다.
To be sure, some may argue that the circulation of a highly simplified or flattened version of events is necessary to avoid the airing of differences while war is being waged on defenceless people. To some extent they may fear that open discussion of differences on the internet may be exploited by the Mexican state to dismiss progressive pressure from abroad, just as many on the left of earlier generations feared that airing differences over the USSR or China would be misused. This old problem for the left is exacerbated insofar as solidarity activists actually believe that if we do not speak of the conflicts and cleavages among forces on the left, or within indigenous communities, or among NGOs in Chiapas, the Mexican state will not learn of these disagreements and will not have the opening to exploit resentments and schisms in its effort to control the situation and disarm the movement.
이 주장을 평가할 때 우리는 세디요 정부의 대중 동원 및 반란 진압 전술의 핵심 고안자가 아돌포 오리베 베를링게르(Adolfo Orive Berlinguer)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1970년대에 오리베는 고지대에서 대중을 정치적으로 동원하고 전도사들의 의식화 활동과 마오주의자들의 조직화 노력을 조율하는 데 있어서 개인으로서는 아마 가장 중요한 인물이었을 것이다. 파리에서 샤를 베틀랭(Charles Bettleheim)과 함께 공부한 오리베는 멕시코로 돌아와 대중정치 성향의 지도자가 됐고, 이어 마오주의적인 프롤레타리아전선의 지도자가 됐다. 이 운동에는 마르코스도 참여했다. 오리베는 사무엘 주교의 직접적인 요청에 따라 치아파스에 와서는 농민 중심의 운동을 조직했는데, 이 운동은 마오주의자, 급진적인 교사, 해방신학자, 노동운동가가 뭉친 것이었다.(46)
In weighing this argument, we must consider that the chief architect of Zedillo’s counter-mobilization/counter-insurgency strategy in Chiapas is Adolfo Orive Berlinguer. Through the 1970s Orive was perhaps the single most important figure in the political mobilizations in the highlands and in the coordination between the conscientization activities of the catechists and the organizational efforts of maoists. Having studied with Charles Bettleheim in Paris, Orive returned to Mexico and became the leader first of the Popular Politics tendency and later the maoist Proletarian Line — the same movement in which Marcos was formed. Orive came to Chiapas at the behest of Bishop Samuel himself, to organize a peasant based movement that would bring together maoists, radical school teachers, liberation theologists and labour organizers.46
1980년대말에 오리베는 카를로스 살리나스를 위해 일했는데, 분쟁지역의 물리적 지형과 정치적 지형을 상세히 아는 점 때문이었다. 또 1994년에는 세디요가 치아파스의 민중봉기 대응을 이끄는 데 그를 기용했다. 오리베가 역사적인 것이든 현재의 것이든 간에 모든 분열을 알고 있기에, 치아파스의 수많은 활동가들의 전망 차이를 우리끼리 솔직하고 공개적으로 논하지 않으면 이런 불일치가 정권에게는 비밀로 유지될 거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By the end of the 1980s, however, Orive was working for Carlos Salinas and, based on his detailed knowledge of the physical and political geography of the conflict zone, was recruited by Zedillo in 1994 to direct the counter-insurgency in Chiapas. Given Orive’s knowledge of every schism, historical or current, it is unconvincing to argue that if we do not discuss frankly and openly among ourselves the differences in perspective among assorted actors in Chiapas, then these disagreements will remain a secret from the regime!
국제 연대는 목숨을 걸고 정의를 요구하는 수천명의 생존에 아주 중요하다. 그러나 지원은 상황을 완전히 파악하고 있는 외부인이 할 때 가장 효과적인 것이다. 치아파스를 수사로 여기는 이들이나 심한 단순화로 실제 상황을 아주 어렴풋이 닮았을 뿐인 가상의 사건과 인물에 그냥 만족하는 이들이 지원에 나설 때 효과적인 것이 아니다. 치아파스에 대한 국제적 우려 표명은 의문의 여지없이 사파티스타와 그 지지자들에 대한 공격을 억제하고 제한하는 일을 했으며 물론 많은 목숨을 구했다. 그러나 효과적인 인권 운동에는 무엇보다 옳고 믿을 만한 정보가 필요하다. 그렇게 되면 마침내 우리는 우리의 ‘매력 회복’을 덜 생각하고 대신 남부 멕시코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일을 더 생각하려 할 것이다. 비록 그 껄끄러운 현실의 일부는 매혹적이지 않더라도 말이다. 그렇지 않다면 위기에 빠진 사람들의 인권을 보호하는 데 외국인이 할 수 있는 중요한 구실을 위태롭게 만들 것이다.
In the end international solidarity is crucial to the survival of the thousands of people who are risking their lives to demand justice. But support is most effectively given by outsiders who grasp the situation at hand, not by those for whom Chiapas is a trope, or those who content themselves with a virtual rendering of events and actors that oversimplifies reality to the point that it bears only a very vague resemblance to the situation on the ground. International concern about Chiapas has, unquestionably, worked to restrain and contain aggression against the Zapatistas and their supporters, undoubtedly saving many lives. But effective human rights work requires, among other things, good and reliable information. In the end we might want to think less about our own “re-enchantment” and more about what is really happening in southern Mexico — even if some of the gritty details are less than enchanting. To do otherwise compromises the crucial role that foreigners can play in protecting the human rights of people at ris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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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아 고메스 타글레(Silvia Gómez Tagle), 스티브 헬먼(Steve Hellman), 피터 아이브스(Peter Ives), 콜린 레이스(Colin Leys), 리오 파니치(Leo Panitch), 스콧 로빈슨(Scott Robinson), 에미코 살디바르(Emiko Saldivar), 시드 태로(Sid Tarrow), 찰스 틸리(Charles Tilly)의 조언에 감사한다. 더글러스 찰머스(Douglas Chalmers), 루인 골드링(Luin Goldring), 론 헬먼(Ron Hellman), 켄 사프(Ken Sharpe)에게는 이 생각을 세미나에서 펼칠 기회를 준 것에 감사한다. 또 스티브 헬먼과 피터 아이브스의 지속적인 격려와 자료 제공에 감사한다. 이 연구에 재정적인 지원을 해준 캐나다 사회과학 및 인문학 연구 협의회에도 감사한다.
I would like to thank Silvia Góomez Tagle, Steve Hellman, Peter Ives, Colin Leys, Leo Panitch, Scott Robinson, Emiko Saldivar, Sid Tarrow, and Charles Tilly for their helpful comments; Douglas Chalmers, Luin Goldring, Ron Hellman, and Ken Sharpe for the opportunity to try out these ideas in seminars; and Steve Hellman and Peter Ives for steady encouragement and the materials they collected for this article. I would also like to acknowledge the support of Social Science and Humanities Research Council of Canada for financial support of this research.
주석
1… See Lynn Stephen, “In the Wake of the Zapatistas: U.S. Solidarity Work Focused on Militarization, Human Rights, and Democratization in Chiapas,” Paper presented at a Conference titled, “Lessons from Mexico-U.S. Bi-National Civil Society Coalitions,” 9-11 July 1998, University of California, Santa Cruz.
린 스티븐, “사파티스타를 쫓아: 치아파스의 군사화, 인권, 민주화에 집중한 미국의 연대 활동”, “멕시코와 미국 두나라간 시민사회 연합의 교훈” 회의에 제출된 논문 1998년 7월 9-11일, 캘리포니아대학, 샌타 크루즈.
2… Il Manifesto, 28 March 1998 . The debates appeared in this issue and in Il Manifesto, 10 February 1998, and 1 March 1998.
일 마니페스토, 1998년 3월28일. 논쟁은 이 지면과 1998년 2월10일치, 1998년 3월1일치에 실렸다.
3… Michael Lowy, “Sources and Resources of Zapatism,” Monthly Review,, Vol.49, No.10, March 1998, p. 1-2.
마이클 로위, “사파타주의의 원전과 자료”, 먼슬리 리뷰, 1998년 3월 49권 10호, 1-2쪽.
4… Throughout this article, I am using the term “internet” to refer to the most commonly-accessible sites that people interested in Chiapas would be most likely to find while surfing the world wide web. For example, using “Chiapas” as a keyword on various search engines provided in the most common web browsers (e.g. Excite, Infoseek, Lycos, or Yahoo), I found that a semi-systematic survey of the materials available tends to produce the same sites – and links – over and over. Therefore, the material to which I refer throughout this analysis, would be found on the following sites, or by following the links provided in them.
이 글에서는 “인터넷”을 치아파스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 월드 와이드 웹을 돌아다니는 동안 가장 찾을 가능성이 높은 사이트들을 지칭하는 데 쓸 것이다. 예를 들어, 흔한 검색 사이트에서 (익사이트, 인포시크, 라이코스, 야후 등) “치아파스”라는 검색어를 넣고 찾으니, 똑같은 사이트나 링크를 보여줬다. 그래서 내가 이 분석에서 근거로 삼은 자료들은 다음의 사이트에 나타나거나 이들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링크에 나타나게 될 것이다.
Accion Zapatista (http://www.eco.utexas.edu/faculty/Cleaver/zapsincyber.html#Accion Zapatista)
AMDH Bulletin (http://www.lanic.utexas.edu/la/region/news/arc/amdh/1995/0000.html)
Chiapas 95 (http://www.eco.utexas.edu/faculty/Cleaver/chiapas95.html)
Chiapas 1997 (http://mac.theramp.net/Domcentral/justice/chiapas.htm)
Chiapas Index (http://www.ifconews.org/chorgndx.html)
Chiapas Menu (http://www.indians.org/chiapas/)
FZLN (http://www.eco.utexas.edu/faculty/Cleaver/zapsincyber.html#Frente)
Mexico Solidarity Network (http://www.mexicosolidarity.org/index.html)
SIPAZ Servicio Internacional para la Paz(International Service for Peace) (http://www.nonviolence.org/sipaz/sipazf.htm)
IYA BASTA! (http://www.ezln.org/)
Zapatistas in Cybertspace (http://www.eco.utexas.edu/faculty/Cleaver/zapsincyber.html)
5… Thomas Benjamin, A Rich Land, A Poor People: Politics and Society in Modern Chiapas, (Albuquerque: University of New Mexico Press, 1996); and George A. Collier with Elizabeth Lowery Quarantiello, Basta! Land and the Zapatista Rebellion in Chiapas, (Oakland, CA: Food First, 1994), pp. 16-7; Neil Harvey, Rebellion in Chiapas: Rural Reforms, Campesino Radicalism and the Limits to Salinismo, (La Jolla, CA: Center for U.S.-Mexican Studies, UCSD, 1994); and Adolfo Gilly, Chiapas: la razón ardiente, (México, D.F.: Ediciones ERA, 1997).
토머스 벤저민, 부유한 땅, 가난한 사람들: 근대 치아파스의 정치학과 사회, (알부케르케, 뉴멕시코대학 출판부, 1996); 조지 A. 콜리어 및 엘리자베스 로웨리 콰란티에요, 바스타! 치아파스의 땅과 사파티스타 반역, (오클랜드, CA: 푸드 퍼스트, 1994), 16-17쪽; 닐 하비, 치아파스의 반역: 농촌 개혁, 농민 급진주의와 살리나스주의의 한계, (라 호야, CA: 미국-멕시코 연구센터, UCSD, 1994); 아돌포 히이, 치아파스: 열정적 이성, (멕시코, D.F.: ERA판, 1997).
6… Harvey, pp.10-14; John Womack Jr. Rebellion in Chiapas: An Historical Reader, (New York: The New Press, 1999), pp. 20-9; John M. Whitmeyer and Rosemary L Hopcroft, “Community, Capitalism and Rebellion in Chiapas, Sociological Perspectives, Vol 39, No. 4, pp. 517-38, p. 528-33); and Richard Stahler-Sholk, Neoliberalism and Democratic Transition: Looking for Autonomy in the Jungles of Chiapas, paper presented at the Annual Meetings of the Midwest Political Science Association, Chicago, 23-25 April 1998, p. 1.
하비, 10-14쪽; 존 워맥 주니어, 치아파스의 반역: 역사적 독자, (뉴욕: 뉴프레스, 1999), 20-29쪽; 존 위트메이어 및 로즈머리 L. 호프크로프트, “치아파스의 공동체, 자본주의, 반역, 사회학적 전망, 39권 4호, 517-538쪽, 528-533쪽); 리차드 스톨러숄크, 신자유주의와 민주적 이행: 치아파스 정글에서 자치권을 찾아서, 중서부 정치과학학회 연례회의에 제출된 논문, 시카고, 1998년 4월23-25일 1쪽.
7… Womack, pp. 29-43; Carlos Fazio, Samuel Ruíz: El Caminante, (México, D.F.: Espasa Calpe Mexicana, 1994), pp. 101-113. Xochitl Leyva Solano, “The New Zapatista Movement: Political Levels, Actors and Political Discourse in Contemporary Mexico,” in Valentina Napolitano and Xochitl Leyva Solano, eds, Encuentros Antropológicos: Power, Identity and Mobility in Mexican Society, (London: Institute of Latin American Studies, 1998), pp.41-2.
워맥, 29-43쪽; 카르롤스 파시오, 사무엘 루이스: 나그네, (멕시코, D.F.: 에스파사 칼페 메히카나, 1994), 101-113쪽. 쇼치틀 레이바 솔라노, “새로운 사파티스타 운동: 현재 멕시코의 정치적 수준, 활동가들, 정치 논의”, 발렌티나 나폴리타노 및 쇼치틀 레이바 솔라노 편 인류학적 접촉: 멕시코 사회의 권력, 정체성, 유동성 중에서, (런던: 라틴아메리카 연구소, 1998), 41-42쪽.
8… Collier, p. 62-3; Womack, pp 39.
콜리어, 62-63쪽; 워맥, 39쪽.
9… Collier (p. 63) juxtaposes the demands presented in Chol, Tojobal, Tzeltal and Tzotzil to the 1974 Congress with the EZLN’s Thirty-Four Point Agenda for negotiation proposed in 1994 and shows that they are almost identical. Ibid., pp. 64-5.
콜리어는 (63쪽) 1974년 촐, 토홀라발, 첼탈, 촐칠에서 의회에 제기한 요구를 1994년 사파티스타민족해방군이 협상을 위해 제시한 34항의 의제와 대비시켜 둘이 거의 똑같음을 보여준다. 같은 책, 64-65쪽.
10… Neil Harvey, The Chiapas Rebellion: The Struggle for Land and Democracy, (Durham, NC: Duke University Press, 1998), pp. 86-88.
닐 하비, 치아파스의 반역: 땅과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 (더햄, NC: 듀크대학 출판부, 1998), 86-88쪽.
11… La Botz, pp. 26-38 provides an especially clear and useful summary of this extraordinary period of organizational activity. A particularly useful aspect is his explanation for the great enthusiasm for maoism among radical Mexican leftists.
라 보츠, 26-38쪽은 조직적 활동의 이 특별한 시기를 아주 선명하고 유용하게 요약해 제시한다. 특히 유용한 측면은 급진적인 멕시코 좌파 사이의 마오주의 열광에 대한 설명이다.
12… See the debate around the “postmodern” nature of the movement, especially Roger Burbach, “Roots of the Postmodern Rebellion in Chiapas,” New Left Review, 205, , 1994, pp. 113-24; and Daniel Nugent’s critique of Burbach, “Northern Intellectuals and the EZLN,” Monthly Review, Vol. 47, No. 3, July-August 1995, pp. 124-38. Also see Sergio Zermeño, “State Society, and Dependent Neoliberalism in Mexico: the Case of the Chiapas Uprising,” in William C. Smith and Patricio Korzeniewicz, eds., Politics, Social Change and Economic Restructuring in Latin America, (Miami: University of Miami, North-South Center Press, 1997) pp. 123-49; Whitmeyer and Hopcroft, Lowy, and Susan Street, ” La palabra verdadera del zapatismo chiapaneco,” Chiapas, Vol 2, 1996, pp. 75-94.
운동의 “포스트모던”적 본성을 둘러싼 논의를 보라. 특히 로저 버바크, “치아파스의 포스트모던적 반역의 뿌리”, <뉴레프트 리뷰>, 205호, 1994, 113-124쪽; 다니엘 누전트의 버바크 비판, “북반구의 지식인들과 사파티스타민족해방군”, <먼슬리 리뷰>, 47권 3호, 1995년 7-8월, 124-138쪽. 세르히오 세르메뇨, “국가 사회, 멕시코의 의존적인 신자유주의: 치아파스 봉기 사례”, 윌리엄 스미스 및 패트리시오 코르제니위츠 편, 라틴아메리카의 정치학, 사회 변화, 경제 재편 중에서, (마이애미: 마이애미대학, 남북센터출판부, 1997) 123-149쪽; 위트메이어 및 호프크로프트 및 로위 및 수산 스트리트, “치아파스 사파티스타의 진짜 발언”, 치아파스, 제 2권, 1996, 75-94쪽도 보라.
13… Lynn Stephen, “Mexico’s New Zapatismo: A Culturally and Historically Embedded Critique of Neoliberalism,” Paper presented at the Annual Meetings of the American Anthropological Association, Philadelphia, 2-6 December 1998, p. 3.
린 스티븐, “멕시코의 새 사파타주의: 문화적으로, 역사적으로 뿌리깊이 박힌 신자유주의 비판”, 미국 인류학회 연례회의에 제출된 논문, 필라델피아, 1998년 12월 2-6일, 3쪽.
14… See EZLN, Crónicas intergalácticas: Primer encuentro intercontinental por la humanidad y contra el neoliberalismo, (Chiapas: Planeta Tierra, 1996).
사파티스타민족해방군, 은하계사이의 연대기: 인류애와 반 신자유주의에 의한 첫번째 대륙간 접촉, (치아파스: 플라네타 티에라, 1996)을 보라.
15… See Harry Cleaver, “The Zapatistas and the Electronic Fabric of Struggle,” in John Holloway, ed., The Chiapas Uprising and the Future of Revolution in the Twenty-First Century, html version from Chiapas95 webpage, 1996; María Elena Martínez Torres, “The Internet: post-modern struggle by the dispossessed of modernity,” Paper prepared for the 1997 Annual Meeting of the Latin American Studies Association, Guadalajara, 17-19 April 1997; and Manuel Castells’s section titled “Mexico’s Zapatistas: the First Informational Guerrilla Movement” in his book, The Power of Identity, (Oxford: Blackwell, 1997), pp. 80-1.
해리 클레버, “사파티스타와 투쟁의 전자적 구조”, 존 홀로웨이 편, 치아파스 봉기와 21세기 혁명의 미래, 치아파스95 웹페이지의 인터넷판 중에서, 1996; 마리아 엘레나 마르티네스 토레스, “인터넷: 근대성을 빼앗긴 이들의 포스트모던 투쟁”, 라틴아메리카학회 1997년 연례 회의를 위해 준비된 논문, 과달라하라, 1997년 4월17-19일; 마누엘 카스텔스, “멕시코의 사파티스타: 첫번째 정보 게릴라 운동”이란 제목의 장, 그의 책 정체성의 힘 중에서, (옥스포드: 블랙웰, 1997), 80-81쪽.
16… Under the provisions of the agrarian law in place until 1993, this land would have been distributed to landless petitioners in the form of “ejido parcels” that they would be free to cultivate and pass along to one of their offspring, but that would not be available to rent, sell or mortgage.
1993년 이후 시행된 농지개혁법 조항에 따라, 이 땅은 땅 없는 청원자에게 ‘집단 농지’ 형태로 분배되었어야 했다. 받은 이들은 경작을 하거나 자식에게 줄 수는 있는데 남에게 빌려주거나 팔거나 저당잡힐 수는 없다.
17… Until the reform of Article 27 of the Constitution in 1993, a landholding was only afectable or available for expropriation and distribution to petitioning peasants when it exceeded a maximum size established in accordance with the type of agricultural production pursued on that parcel.
1993년 헌법 27조항의 개정이 이뤄지기까지는 경작물 종류에 따른 기준치를 넘을 경우만 땅을 수용해서 탄원하는 농민에게 분배해줄 수 있었다.
18… That is, illegally large landholdings created out of the concentration of holdings that fall within the legal maximum. Typically, a neolatifundio is comprised of a number of holdings that have been put into various family members’ names, although in the commercial export agricultural zones of Mexico it has also been common for individuals to pay trusted prestenombres, or namelenders, to act as the owner of record for a “neighboring farm” that is, in fact worked as part of a single large estate. Salinas’s alteration of Article 27 of the Constitution made this kind of subterfuge unnecessary, to the great delight and relief of large landowners everywhere in Mexico. See Judith Adler Hellman, Mexican Lives, (New York: The New Press, 1994), pp .139-41.
그러니까, 불법적으로 대규모 땅을 소유한 경우는 법정 최대치의 땅을 여러 군데에서 확보한 경우다. 신 대토지 소유자는 전형적으로 여러 곳의 땅을 가족 이름으로 분산하는 방식으로 넓은 땅을 확보한다. 물론 수출용 경작 지대에서도 실제로는 일정한 대가를 치르고 ‘이웃 농장’의 주인들을 서류상 땅 주인으로 해놓는 방식으로 법을 피해 넓은 땅을 확보하는 것이 흔하다. 살리나스의 헌법 27조 수정은 이런 식의 장치조차 필요없게 해줬다. 대규모 땅 소유자들로서는 신나는 조처인 것이다. 주디스 애들러 헬먼, 멕시코인의 삶, (뉴욕: 뉴프레스, 1994), 139-141쪽을 보라.
19… Collier, p. 48-50.
콜리어, 48-50쪽.
20… The minimum size of an ejido parcel differs from place to place in Mexico according to the quality, fertility and access to water of the land that is distributed. On the sub-division of land parcels into ever smaller holdings under pressure of population growth, see María del Carmen García A. and Daniel Villafuerte Solís, “Economía y sociedad en Chiapas,” in María Tarrío and Luciano Concheiro, eds., La sociedad frente al mercado, (México, D.F.: Ediciones La Jornada, 1998), p. 352.
할당되는 집단 농지의 최소치는 지역에 따라 다른데, 분배된 땅의 질, 비옥도, 물 공급 상태에 따라 결정된다. 인구가 늘면서 땅을 더 쪼개 나눠줄 수밖에 없던 것에 대해서는, 마리아 델 카르멘 가르시아 A. 및 다니엘 비야푸에르테 솔리스, “치아파스의 경제와 사회”, 마리아 타리오 및 루치아노 콘체이로 공동편, 시장에 직면한 사회 중에서, (멕시코, D.F.: 라 호르나다 출판부, 1998), 352쪽을 보라.
21… Collier writes, “Before 1974, the Catholic Church had already begun extensive grass roots evangelizing in eastern Chiapas, in part to ward off the advance of Protestantism.” p. 62. Also see Womack, pp.36-43 on this Catholic response to the spread of Protestant conversions.
콜리어는 이렇게 썼다. “1974년 이전에 가톨릭교회가 이미 동부 치아파스를 복음화하기 위한 강력한 풀뿌리 운동을 시작했다. 이는 부분적으론 개신교의 진출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개신교로 개종이 확산되는 것에 대한 가톨릭의 대응에 대해서는 워맥, 36-43쪽을 보라.
22… INEGI, Censos Generales de Población y Vivienda, 1990, cited in García A. and Villafuerte Solís, p 364.
국립 통계, 지리, 정보학 연구소, 인구와 주거에 대한 총조사(센서스), 1990, 가르시아 A. 및 비야푸에르테 솔리스, 364쪽에서 재인용.
23… Ibid., p. 365.
같은 책, 365쪽.
24… In interviews conducted in May 1998, the explanation offered to me for the increase in Mormon and Islamic conversions was the appeal to men of religions that — as interpreted in the Chiapanecan contest — not only tolerate, but sanctify polygamous relationships. Now, instead of having an official wife, married in Church plus a second mujer, and her children “on the side” in the classic casa chica, men can have all their wives and children living with them under one roof.
1998년 5월에 실시한 인터뷰에서 모르몬교와 이슬람교 개종이 늘어나는 것에 대해 내가 들은 설명은, 일부다처제를 단지 용인할 뿐 아니라 신성화하는 교리가 종교적인 남성들에게 먹혀 들어 갔다는 것이다. 이제 개종 덕분에, 교회에서 결혼한 공식 부인 외에 두번째 여인과 아이들을 전통적인 작은 집에 따로 두는 대신, 남성들은 한 지붕 아래 여러 부인과 아이들을 두고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25… María del Carmen García A., “Las organizaciones no gubernamentales en Chiapas: algunas reflexiones en torno a su actuación política,” in Centro de Estudios Superiores de México y Centroamérica, Anuario 1997, (Tuxtla Gutiérrez: Universidad de Ciencias y Artes de Chiapas, 1998), p. 50.
마리아 델 카르멘 가르시아 A, “치아파스의 비정부기구: 정치적 활동에 대한 어떤 반영” 멕시코와 중앙아메리카 고급 훈련 센터, 1997년 연감 중에서, (툭스틀라 구티에레스: 치아파스 과학 및 예술대학, 1998), 50쪽.
26… The National Institute of Statistics, Geography and Informatics, INEGI reports only 6.5 million because the standard they use is that a person must speak an indigenous language to be counted as an indigenous person. Meanwhile, the National Indigenous Institute, INI, which has good reasons to avoid undercounting indigenous people, estimates 10 million. See INEGI, XI Censo general de población y vivienda, México, D.F.: INEGI, 1992.
국립 통계, 지리, 정보학 연구소(INEGI)는 그 숫자가 650만명뿐이라고 보고했는데, 그들이 원주민 언어를 쓰는 사람만 원주민으로 분류하는 기준을 이용했기 때문이다. 반면 원주민 숫자를 줄일 이유가 없는 국립 원주민연구소(INI)는 원주민 숫자를 1000만명으로 추산한다. 국립 통계, 지리, 정보학 연구소, 11차 인구와 주거 총조사, 멕시코, D.F: 국립 통계, 지리, 정보학 연구소, 1992를 보라.
27… Cynthia Hewitt de Alcántara, Anthropological Perspectives on Mexico, (London: Routledge, 1984), p. 53.
신시아 에위트 데 알칸타라, 멕시코의 인류학적 전망, (런던: 루틀리지, 1984), 53쪽.
28… Guillermo Bonfil Batalla, México Profundo: Reclaiming a Civilization, (Austin: University of Texas Press, 1996); and Luis Villoro, Los grandes momentos del indigenismo en México, tercera edición, (México, D.F.: Fondo de Cultura Económica, 1996).
기예르모 본필 바타야, 멕시코 깊은 곳: 문화를 개척하기, (오스틴: 텍사스대학 출판부); 루이스 비요로, 멕시코 원주민의식의 위대한 순간, 3판, (멕시코: 경제사회재단, 1996)
29… Neil Harvey, “La autonomia indigena y ciudadanía étnica en Chiapas,” paper presented at the XX Meetings of the Latin American Studies Association, Guadalajara, Mexico, 17-19 April, 1997, p. 10.
닐 하비, “치아파스의 토착민 자치와 인종적 시민권”, 라틴아메리카연구학회 20차 회의에 제출된 논문, 과달라하라, 멕시코, 1997년 4월 17-19일, 10쪽.
30… Ibid., p. 18. Héctor Díaz-Polanco, La rebelión zapatista y la autonomía, (México, D.F.: Siglo Veíntiuno Editores, 1997); Luis Hernández, “Ciudadanos iguales, ciudadanos diferentes: la nueva lucha india,” Este País, febrero, pp. 38-39; Marco Rascón, “Autonomía para la integración,” La Jornada, 16 febrero, 1998, pp. xiii-xvi; Gilberto López y Rivas, “Los significados de San Andrés,” La Jornada, 16 febrero, 1998, p. xii; Carmen Lloréns Fabregat and Rosa Albina Garavito Elías, “Esencia de los acuerdos de San Andres,” Coyuntura 84, enero-febrero, 1998, pp. 33-40.
같은 책, 18쪽. 엑토르 디아스폴랑코, 사파티스타 반역과 자치, (멕시코 D.F: 시글로 베인티우노 에디토레스[21세기출판사], 1997); 루이스 에르난데스, “평등한 시민, 다른 시민: 새로운 인디언 투쟁” 에스테 파이스, 2월, 38-39쪽; 마르코 라스콘, “통합을 위한 자치” 라 호르나다, 1998년 2월16일, 13-16면; 힐베르토 로페스 및 리바스, “산 안드레스 협정의 의미,”; 라 호르나다, 1998년 2월16일, 12면; 카르멘 요렌스 파브레가트 및 로사 알비나 가라비토 엘리아스, “산 안드레스 합의의 핵심”, 코이운투라 84, 1-2월, 1998, 33-40쪽.
31… The rule of strong men or caciques.
강한 남성 또는 두목(토후)의 법칙.
32… This quote is drawn from an interview with Juan Pedro Viqueira, one of the few analysts who spoke for attribution. He later elaborated these views in “Los peligros del Chiapas imaginario,” Letras Libres, enero 1999, pp. 20-8; 96-7.
이 인용은 인터뷰에 응한 몇 안되는 분석가 가운데 하나인 후안 페드로 비케이라(Juan Pedro Viqueira)의 인터뷰에서 따온 것이다. 그는 나중에 이런 관점을 “치아파스의 가상의 위험”, 레트라스 리브레스(자유 학문), 1999년 1월호, 20-28쪽; 96-97쪽에서 가다듬어 제시했다.
33… Alison Brysk, “Turning Weakness into Strength: The Internationalization of Indian Rights,” Latin American Perspectives, Issue 89, spring 1996, Vol. 23, No 2., p. 46.
앨리슨 브리스크, “허약함에서 힘으로 전환하기: 인디언 권리의 국제화”, 라틴아메리칸 퍼스펙티브스, 89호, 1996년 봄, 26권 2호, 46쪽.
34… John Gledhill, “Liberalism, Socio-Economic Rights and the Politics of Identity: From Moral Economy to Indigenous Rights,” in Richard Wilson, ed., Human Rights, Culture, and Context: Anthropological Perspectives, (London: Pluto Press, 1997), summarized in Xochitl Leyva Solano, p. 50.
존 글레드힐, “자유주의, 사회경제적 권리와 정체성의 정치학: 도덕 경제에서 원주민 권리까지” 리차드 윌슨 편, 인권, 문화, 배경: 인류학적 전망에서, (런던: 플루토 프레스, 1997), 쇼치틀 레이바 솔라노, 50쪽에서 인용.
35… Lynn Stephen, “Mexico’s New Zapatismo,” p. 6-7.
린 스티븐, “멕시코의 신 사파타주의”, 6-7쪽.
36… Judith Adler Hellman, “The Mexican Elections: Rush to Judgement, ” Globe & Mail, Toronto, 2 September 1994, p. 8; On the 1994 elections, see Silvia Gómez Tagle and Ma. Eugenia Valdéz Vega “Chiapas,” in Gómez Tagle, ed., 1994: Elecciones en los estados, (México, D.F.: La Jornada Editores, 1997), pp. 179-209.
주디스 애들러 헬먼, “멕시코 선거: 평가를 위한 질주”, 글로브 앤드 메일, 토론토, 1994년 9월2일, 8쪽. 1994년 선거에 대해서는, 실비아 고메스 타글레 및 마 에우헤니아 발데스 베가 “치아파스”, 고메스 타글레 편, 1994: 국가의 선택, (Mexico, D.F.: 라 호르나다 출판부, 1997), 179-209쪽을 보라.
37… It is ironic that on the subject of elections in Guerrero State, La Jornada’s position is quite different and the view that the electoral road might be usefully pursued at the same time as armed struggle has gained the approval not only of the Popular Revolutionary Army, that is, the guerrillas themselves, but also of La Jornada. See Blanche Petrich’s interview with Arnaldo Bartra, “En Guerrero, armas y urnas no se excluyen,” Sunday 13 February 1999, p. 8.
게레로주 선거 문제에 대해서는 <라 호르나다>의 태도가 상당히 다르다는 것이 아이러니다. 무장투쟁과 선거 참여 전술을 동시에 구사하는 게 유용할 수 있다는 견해를, 대중혁명군 곧 그 지역 게릴라들과 이 신문이 한 목소리로 지지했다. 블랑체 페트리치의 아르날도 바르트라 인터뷰 “게레로에서는 무기와 투표함이 모두 배제되지 않았다,” 1999년 2월13일 일요판, 8면.
38… See Cleaver, and Martínez Torres.
클레버, 마르티네스 토레스를 보라.
39… Ibid. Also see Castells, pp. 72-83.
같은 책. 카스텔스, 72-83쪽도 보라.
40… A similar point was made by Benjamin Barber with regard to democratic participation in U.S. politics in “Internet: A Place for Commerce or a Place for Us?,” a presentation to the Columbia University Seminar on the Political Economy of War and Peace, 28 January, 1999.
유사한 관점을 벤저민 바버가 “인터넷: 상업의 장소 또는 우리의 땅?”에서 미국 정치의 민주적 참여와 관련해 제기했다, 1999년 1월28일 컬럼비아대학의 전쟁과 평화의 정치경제학 세미나에서 제시함.
41… Stephen, “In the Wake of the Zapatistas,” pp. 14-15.
스티븐, “사파티스타를 쫓아서”, 14-15쪽.
42… Ibid., p. 13.
같은 책, 13쪽.
43… Cleaver, p. 19.
클레버, 19쪽.
44… In the detailed coverage given to the event in the pages of the Italian daily, Il Manifesto, indigenous people who support the PRI and oppose 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