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의협 총파업 경고 배경과 전망
한동안 잠잠하던 의료계가 다시 시끄러워지고 있다. 의사협회(회장 신상진)가 의약분업 전면 재검토를 요구하며 의료계 총파업을 선언하고 나선 것이다.
아직 구체적인 총파업 방법과 수위는 결정되지 않았지만 어떤 형태로든 의료계 총파업은 엄청난 국민불편과 혼란을 가져올 것이 분명하다.
그런 관점에서 의료계가 이번 총파업의 명분으로 내세운 `의약분업 전면 재검토’가 일반 국민들의 공감을 얻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왜 다시 총파업인가?
지난해초 건강보 재정위기가 불거진 이후 의료계에는 유무형의 압박이 가해졌다.
정부의 건보재정 관리가 대폭 강화되면서 일부 의사들의 요양급여비 허위.부당청구 등 비도덕적인 사례가 속속 공개됐고 그 결과 우리 사회에서 부와 명예의 상징처럼 인식돼온 의사 집단의 위상도 실추됐다.
또 정부의 다각적이고 강도높은 급여비 지출 억제 대책들이 시행되면서 실제로 의사들의 진료비 수입이 상당히 줄어든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지난해에는 의료계가 이같은 상황을 감수하는 분위기였다. 건보재정 위기가 워낙 다급했고 따라서 의약분업 도입 과정의 대폭적 의료수가 인상과 의사들의 전반적인 진료비 수입 증가가 건보재정 절감의 표적으로 떠올랐던 것이다.
그동안 속으로 불만을 삭여온 의료계가 다시 총파업이라는 극단적 수단을 내세운 것에 대해서는 `감정에 치우친 행동’으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물론 `실패한 의약분업을 바로잡자’는 명분을 제시하고 있지만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의약분업 도입 이전이라면 모를까 이미 시행 2년이 다돼가는 의약분업을 이제와서 처음부터 다시 검토하자는 주장은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다.
또 의료계 내부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의약분업 이후 심화되기는 했지만, 많은 의사들의 실제 수입이 분업 이후 늘어났다는 점을 감안하면 `의약분업 재검토’요구가 과연 의료계 전체의 총의인지도 확실치 않다는 지적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총파업 움직임의 직접적 동인은 대표적 집단이기주의 사례로 의사집회 사진을 실은 최근의 고교 교과서 사건과 의료수가 인하일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과연 총파업까지 갈까?
어쨌든 의료계 내부 정서는 매우 격앙돼 있는 것이 분명하다.
특히 고교 교과서 사건이 `울고싶은 사람 뺨때리기’처럼 이번 총파업 움직임의 기폭제로 작용했다는 것이 의료계 사정에 밝은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그렇다고 해서 의료계의 이번 총파업 결정에 강력한 실행의지가 실려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분석도 있다.
의료계로서도 막상 총파업을 행동으로 옮기기는 부담스러울 것이 자명하다.
의약분업 이후 드러난 일부 부정적 의료행태와 파탄위기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건보재정 등 여러가지 정황들을 고려할 때 의료계 총파업은 여론의 집중포화를 면키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국민 여론으로부터 거의 일방적인 몰매를 맞는 상황에서 `의약분업 전면 재검토’라는 명분만으로 총파업의 동력을 유지할 수 있을 지도 회의적이다.
의협의 한 고위 관계자는 “정부가 전향적인 대안을 제시하면 꼭 총파업까지 갈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상황에 따라 `총파업 경고’가 말그대로 `경고’로 끝날 수도 있음을 시사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때문에 엄청난 국민불편과 사회적 혼란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정부와 의료계가 합리적 자세로 진솔한 대화를 시작해야 할 시점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현실진단이다.
한기천 기자 cheon@yna.co.kr
2002.3.21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