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 의협, ‘의약분업 찬성’ 회원 징계 파문 ….

의협, ‘의약분업 찬성’ 회원 징계 파문
인의협ㆍ참여연대 비난성명, 논란 확산
2002-10-10 오후 5:59:05

‘대한의사협회’(의협)가 의약분업 등 정부의료정책에 관여하고, 의협의 파업에 반대한 의대교수들에 대해 회원자격을 정지하는 징계를 결정, 파문이 일고 있다.

의협은 9일 윤리위원회를 열어 김용익 서울대학교 의대교수와 조홍준 울산대학교 의대교수에게 ‘실패한 의약분업 입안과 추진에 관여해 국민에게 피해를 준 책임’을 물어 각각 2년과 1년씩의 자격정지를 결정했다.

이같은 결정에 대해 10일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인의협)가 비난성명을 발표하고,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도 이를 비판하는 성명을 내는 등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의약분업 강행’, ‘수가인하 주장’ 이유로 징계회부

지난 7월 ‘대한개원의협회’(대개협)는 ‘의약분업 강행’, ‘수가인하 주장’, ‘사유재산 제도의 부정’등을 이유로 김용익 조홍준 두 교수에 대한 징계를 의협측에 건의했고, 의협은 최근까지 회원의 정책적 판단은 윤리위원회 심의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을 보여 왔다.

하지만 의협은 9일 전격적으로 윤리위원회를 소집, 징계를 결의했고, 10일 상임이사회에서 윤리위의 징계안을 추인했다.

이처럼 의협의 입장이 선회한 배경에 대해 의료계에서는 27일 대규모 의약분업 반대시위를 계획하고 있는 의협이 ‘징계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집회에 참가하지 않겠다’는 대개협의 압력에 굴복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다.

인의협 “징계철회를 위한 모든 노력을 경주 할 것”

한편 두 교수의 징계에 대해 반대 입장을 표명해 온 인의협은 10일 성명을 내고 “대개협의 집요한 ‘징계론’과 윤리위원회의 굴복이 보건의료정책의 합리적인 의견수렴과 결정, 전문가의 정당한 영향력과 권위에 오히려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며, “합리적인 상식을 지닌 동료의사들과 함께 징계철회를 위한 모든 노력을 경주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참여연대는 ‘최소한의 윤리의식마저 저버린 의협’이라는 논평을 통해 ‘의협이 징계 결정까지 내리게 된 이유는 국민에게 피해를 입혔기 때문이 아니라 의사들의 경제적 이해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그 증거로 정부가 부당, 허위청구를 일삼은 의료기관 리스트를 의협에 넘기고 자정을 의뢰하기까지 했으나 의협이 그 회원들을 윤리위원회에 회부하지 않은 점을 들었다.

참여연대는 덧붙여 “건강보험 재정건전화에 협조하지 않는 의협이 국민에게 큰 피해를 입히는 장본인”이라고 지적했다.

시민단체 ‘평등사회를 위한 민중의료연합’의 박균배 사무처장은 인의협의 성명과 참여연대의 논평에 지지의사를 나타내고 “의협은 어떻게든 징계의 당위성을 이야기 하겠지만 그 본질은 의료인들의 음성적인 경제적 이익을 침해하는 제도개혁에 대한 반발 일 뿐”이라며 의협의 각성을 촉구했다.

의협 “징계이유는 명예훼손과 언행 때문”

이같은 인의협과 시민단체들의 주장에 대해 의협의 한 관계자는 “두 사람에 대한 징계 이유는 알려진 것처럼 의료정책에 참여했기 때문이 아니라 논쟁과정에서 명예훼손과 의사로서의 품위를 손상한 발언을 했기 때문”이라며, “이번 27일 집회와 징계시기가 우연히 맞물렸기 때문에 오해가 있는 것 같다”고 언급했다.

이 관계자는 두 교수가 저지른 구체적인 윤리에 어긋난 행동에 대해서는 “자료가 몇 백 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것이고 그것 때문에 조사가 3개월이나 걸린 것”이라며 당장 확인이 힘들다고 밝혔다.

의협이 이번에 취한 회원자격 정지는 의사면허와는 무관한 것으로 의협회원으로서의 활동을 막는 상징적인 것이다.

다음은 인의협 성명서 전문.

김용익, 조홍준 교수에 대한 징계 결정은 철회되어야 한다.

대한개원의협의회(대개협) 등 의협 일각에서 제기한 김용익, 조홍준 교수에 대한 징계 논란이 계속 번지더니, 결국 대한의사협회 3차 윤리위원회 회의는 “두 회원이 실패한 현행 의약분업을 입안, 추진하는데 깊게 개입”했다는 이유로 두 교수에게 각각 2년과 1년 동안의 회원 자격을 정지하는 징계를 결정하였다.

지난 7월 11일, 대개협은 “사유재산제도의 부정”, 시민단체를 통한 “반의료계 행위”, “의료계 매도”, “건강보험 재정파탄”, “의보통합 주장”, “의약분업 강행”, “수가인하 주장”, “건전한 의학교육 왜곡” 등의 책임을 사유로 위의 두 교수의 징계를 건의하였지만, 2차에 걸친 의협 윤리위원회는 “회원의 정책적 판단”은 윤리위원회의 심의 대상이 아님을 표명하였다.

그러나, 대개협은 윤리위원회에서 징계대상자와 동문 관계가 있는 사람은 제외되어야 한다거나, 두 교수에 대한 징계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10월 27일로 예정된 의사결의대회 불참은 물론 현 윤리위 해체를 거론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는 등 압력을 행사하였고, 결국 징계 결정이 관철되었다. 우리는 대개협의 집요한 “징계론”과 윤리위원회의 굴복이 보건의료정책의 합리적인 의견수렴과 결정, 전문가의 정당한 영향력과 권위에 오히려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데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첫째, 대개협이 제기한 두 회원의 징계 사유가 구체적인 사실에 근거하고 있지 않다. 의보통합은 전 국민에게 균등한 보험급여를 제공하고자 하는 국민적 열망을 반영한 것으로 여야합의로 추진되었으며, 명백히 대한의사협회의 요구사항이었다. 의약분업도 이미 95년 입법화된 약사법에 명시되어 있는 것을 법적 절차에 따라 진행된 것이었다. 대개협은 구체적인 사실 확인이나 원인과 결과에 대한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 없이 의보통합과 의약분업을 의료계의 각종 문제점들의 원인으로 돌리고, 나아가 김용익, 조홍준 회원을 이 모든 것의 근원인 것처럼 호도하였다.

우리는 의사란 국민과 함께 할 때 존재의 의의가 있고, ‘의료계의 이익’이란 다름 아닌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의료와 의사의 미래를 생각할 때, 우리는 두 교수의 행위를 반의료계 행위라는 데 절대 동의할 수 없다.

둘째, 인의협과 두 회원이 많은 의사들의 생각과 다르다는 것과 의사로서의 명예와 권위에 손상을 주었는지에 대한 판단은 다른 문제다. 학자적 신념과 양심에 따라 사회가 허용하는 합법적 범위 내에서 사회적 실천 행위를 하는 것은 당연한 시민적 권리다. 의사로서의 사회적 실천 행위가 이해집단의 사회적 이해관계를 넘어서 전체 공동체구성원의 보편적 이해를 추구하기 위한 행위라면 이는 의사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자 하는 윤리적으로 정당한 행위다. 이것을 특정 이해집단의 잣대로 평가하는 것은 의사들이 스스로 자신의 권위와 정당성을 훼손하는 일이 될 것이다.

세째, 두 회원의 근거가 된 대개협의 주장은 우리 사회를 수십 년 전으로 퇴행시키려는 듯 이념적 왜곡이 가득하다. 대개협은 징계 사유서에서 아무런 근거 없이 김용익, 조홍준 회원이 사유재산제도를 부정한다고 주장하였고, 내과개원의협의회는 두 회원이 의료계를 사회주의화 내지 공산주의화하는데 앞장서 왔다고 주장하였다. 견해와 주장의 실체를 공정하게 보려하지 않고 다른 견해와 주장을 가진 개인을 근거 없이 사회주의, 공산주의로 재단하는 것은 이젠 버려야 할 구시대의 악습이다. 이런 악습에 의존하여 다른 견해와 주장을 억누르고 반사적으로 자기 정당성을 획득하려 한다면 의료계에서 합리적인 의견 수렴과 결정은 불가능할 것이며, 대외적으로는 낙후된 폐쇄집단으로 비쳐질 것이다.

다른 생각과 견해를 펼친 개인과 단체에 대한 구시대적 사상 검증적 태도와 근거 없는 정치적 공세는 한국 의사와 의료계가 해결할 문제를 더욱 어렵게 할 뿐이다. 우리는 이번 김용익, 조홍준 회원의 징계 조치에 동의할 수 없으며, 이번 사태가 의료계의 합리적 견해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위한 첫걸음이 될 것임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윤리위의 징계 결정은 의협이 의약분업의 파행에 대해 스스로 져야 할 사회적 책임을 두 회원을 정치적 희생양으로 삼아 전가하려는 행위일 뿐이다. 우리는 우리 사회의 존경받아야 할 모든 의사들을 대표하는 의사단체로서 의협이 의료계의 산적한 문제를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토론을 통해 해결해 나갈 것을 제안한다.

김용익, 조홍준 교수에 대한 징계는 부당하며, 징계는 철회되어야 한다. 우리는 합리적인 상식을 지닌 동료 의사들과 함께 징계 철회를 위한 모든 노력을 경주할 것이다. 우리는 어떠한 난관에도 국민을 위한 의료개혁의 노력을 더 많은 의사들과 더 많은 국민들과 함께 해 나갈 것임을 다시 한번 밝힌다.

2002년 10월 10일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손봉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