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없어서 죽는 게 민주정부인가
한 달 약값만 600만원…인하해야”
[현장] 경찰, 노바티스사 점거 백혈병 환자들 강제해산
강이종행 기자
‘아비규환(阿鼻叫喚)’
“노바티스사는 대화 의지가 있나”
겉으로는 협상 벌이면서, 강제해산 요청
6일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이하 연구소)’는 성명서를 내고 “노바티스는 6일 자사에서 약값 인하에 대한 협상을 요구하는 백혈병 환우들과 협상 종결 뒤 해산을 위한 발표만을 앞둔 채 농성단을 경찰들이 강제 진압할 당시 노바티스 관계자도 함께 있었으나 아무런 제지도 하지 않았다”며 “이로 이해 협상방식에 대한 합의를 통해 대화에 임하려던 환우들은 노바티스사의 대화의지에 대한 강한 불신을 갖게 됐다”고 비판했다.
이어 연구소는 백혈병 환우들을 적극 지지한다고 밝힌 뒤 “노바티스는 백혈병 환우들을 속이고 앞에서는 협상을 벌이고 뒤에서는 강제해산을 요청한 데 대해 즉각 사과할 것”을 요구했다.
또한 “글리벡 약가를 즉각 인하하고, 초기 만성백혈병 환우에게까지 보험적용범위를 확대하라”고 주장했다. / 강이종행 기자
6일 오후 2시20분. 백혈병 치료약 ‘글리벡’ 제조회사 노바티스사 측과 면담을 요구하며 사무실을 점거 농성 중이던 백혈병 환우회와 공동대책위 회원들이 1개 중대의 경찰병력에 의해 강제해산 됐다.
그야말로 아수라장. 백혈병 환우들은 피를 멈추게 해주는 혈소판 수치가 낮기 때문에 상처를 입으면 위험할 수 있음에도 무력진압이 시도된 것이다. “이게 민주 정부야! 못나가!” 병력에 의해 하나 둘씩 실려 나가는 시위자들은 절규에 찬 목소리로 울부짖었다.
4시간 여 동안 진행됐던 이들의 시위는 이렇게 마무리됐다. 특히 시위대 대표와 회사측간의 협상이 진행되는 중 강제진압이 실시돼 논란이 예상된다.
“한 달에 600만원, 너희들은 살 수 있냐?”
ⓒ 오마이뉴스
환자 4명을 포함한 시위대가 여의도 동화빌딩에 모습을 드러낸 시각은 오전 9시 30분. 16층에 자리한 노바티스사에 진입하기 위해 일단 8층 비상구에 모였다. 이들은 10시 경 역시 비상구를 통해 16층으로 급히 자리를 옮긴 뒤 노바티스사 입구를 점거했다. 이들이 입구에 모습을 드러내자 곧 이어 회사측 사설 경호원들이 출입구를 봉쇄했다.
이들이 노바티스 측에 요구하는 것은 “한 알에 2만 3천원 하는 약값의 인하요구”와 “제한돼 있는 보험 적용 확대”. 시위를 이끈 민중의료연합 박균배 사무처장은 “21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약값은 2만 3천원이었다. 이는 보험 적용을 받더라도 한 달에 50만원 정도 개인이 부담해야 한다”며 “하지만 50% 이상의 환자들이 보험 적용을 받지 않기 때문에 한 달에 600- 700만원을 부담해야 한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어 “백혈병에 걸리면 말기 암이라고 판단되는데 총 780여명의 환자 중 발병 뒤 2-3년까지 적용되는 300여명의 초기만성기 환자들은 보험적용을 받지 못하고 있다”면서 “또한 환자 중 10%정도 차지하는 ‘급성 필라델피아 염색체 양성반응 환자’와 ‘소화 백혈병 환자’ 역시 보험 적용을 못 받고 있는 상황”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결국 이들은 노바티스 측과의 면담에서 가격을 인하할 것과 초기만성기 환자들이 보험적용을 받을 수 있도록 식품의약청(이하 식약청)에 증명서를 제출해주는 것을 요구하려던 것이다.
우리나라 보험적용 여부는 식약청에서 미국식품의약청(FDA)에서의 인정 여하에 갈린다. 초기 만성기 환자의 경우 FDA에서 인정을 했기 때문에 5일 노바티스 측에서 식약청에 증명서를 제출한 상태다.
하지만 나머지 환자들의 경우 아직까지 승인이 안됐기 때문에 구제할 수 없는 상황. 예외적으로 임상 실험군으로 묶어 약을 무상공급해줄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이 역시 노바티스 측에서 식약청에 증명을 하면 된다.
“한 달에 600만원… 너희들은 살 수 있냐? 글리벡 약값 인하하라.”
구호를 외치며 시위에 들어간 이들은 동시에 사장과의 면담을 요구했다. 30분이 지났는데도 답변이 없자 시위대는 사무실로 진입했다. 경호원들과의 몸싸움이 벌어졌다. 하지만 사장실이 사무실 안에 없는 것을 확인한 시위대는 다시 입구로 나가 모두 드러누워 시위를 이어갔다.
ⓒ 오마이뉴스
이 때 경찰 병력 1개 중대가 투입, 대기하기 시작했다. 회사측의 빠른 답변이 없을 것을 예상한 시위대는 구호와 참가자들의 격려 발언에 들어갔다.
진보네트워크 오병일 사무국장은 “글리벡과 관련, 1년 이상을 투쟁해왔고 인권위 농성을 시작한 지 15일이 지났습니다. 최근 인도에서는 글리벡보다 몇십 배 싼 약이 만들어졌습니다”라며 “노바티스는 그럼에도 약값 이윤을 위해 고집하고 있는 것은 말도 안 된다”라고 외쳤다.
백혈병 환우회 김상덕 간사는 “투쟁을 시작한 이후 몇 명의 환우들을 하늘나라에 보내야 했다”며 “돈 없어서 죽어가는 현실을 벗어나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협상 중 강제진압 하면 어떡해”
지루하게 회사측 입장을 기다리던 중, 오전 11시경부터 건물 밖에서 농성을 벌이던 시민단체와 환자들을 포함한 50여명의 시위대가 12시에 2차로 건물 진입을 시도했지만 경찰 병력에 막혀 실패했다. 일촉즉발의 순간. 하지만 시위대는 스스로 긴장을 풀고 진입을 포기했다.
같은 시각 노바티스 사무실에서 백혈병 환우회 김상덕 간사와 회사측과의 면담관련 협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긴장감이 도는 가운데 몇 차례 협상을 진행한 뒤 오후 1시50분 경 무거운 표정으로 김상덕 간사가 시위대가 있는 입구로 나왔다.
“협상이 결렬됐다. 우리는 인수위에서 기자포함 환우들과 공대위 모두 함께 회사측과 면담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회사측에서 ‘공대위에게 신변위협을 느낀다’며 공대위와 기자들은 배제한 채 환자 4명만 남산 하얏트 호텔에서 면담할 것으로 제시했다. 의견이 좁혀지지 않아 그냥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어 잠시동안의 회의 끝에 박균배 사무처장이 나섰다. 그는 주먹을 쥔 채 손을 부르르 떨며 외쳤다.
“들어갑시다. (사장이) 안 나오면 우리가 들어가야지. 책임자 나와!”
회사측의 안을 받아들이지 않은 시위자들은 사무실 안으로 진입을 시도했다. 곧바로 15여명의 회사측 사설 경비원들과의 충돌이 벌어졌다. 욕설이 오가고 심한 몸싸움이 이어졌다. 10여분 간 진행된 몸싸움은 환자들에 의해 자진 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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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들의 무력행사에 회사측에서 다시 협상을 요구 김상덕 간사가 다시 사무실로 들어갔다. 그런데 2시 10분 경 갑자기 경찰병력이 농성자들을 강제해산에 들어갔다. 순식간에 농성자들은 밖으로 끌려나갔다.
이 때 협상을 마치고 면담 약속한 채 나오던 김 간사는 아수라장이 된 상황을 보며 외쳤다. “발표하고 내려 갈 거야. 뭐 하는 거야?”
이미 상황은 끝으로 치닫고 있었고 김 간사도 곧 경찰에 의해 실려 나갔다.
농성은 이렇게 끝났다. 경찰에 의해 강제해산 된 농성자 중 여성들은 건물 앞에서 풀려났고 김상덕 간사는 119 구급대의 도움으로 치료를 받아왔던 현대 아산 중앙병원으로 옮겨갔다. 또한 5명의 환자 포함 12명의 남성 농성자들은 여의도 성모병원으로 검사를 받으러 갔다. 이들은 이상이 없을 경우 인수위 농성장에서 추후 대책을 논의한다.
이날 농성에서 무력 충돌 가운데 김상덕 간사가 코피를 쏟는 등 위험한 모습이 여러 번 연출됐다. 특히 면담 과정에서 협상이 결정된 상황에서 강제 진압되는 상황을 막지 않은 노바티스 측의 상황대처와 관련 논란이 예상된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오전부터 노바티스 측에서 농성자들 해산을 요구했지만 상황을 지켜봤다”며 “위험한 상황이 벌어져 강제진압에 나섰지만 회사측의 진압중지부탁은 없었다”고 말했다. 또한 시위를 처음부터 지켜봤던 노바티스 관계자는 “모르겠다”로 일관했다.
119 구조대에 실려 건물을 나서는 김상덕 간사는 “협상이 마무리 돼 합의한 내용을 발표하러 나왔는데 강제진압 하면 어떻게 하라고”라며 흐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