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의 욕구 존중 vs 공공의료 강화에 주력
[지상중계] 쟁점토론 <난장> ‘경제특구 내 의료시장 개방’
이강현 기자
경제특구 내 의료시장개방 어떻게 볼것인가 (PD 이정미, 작가 이강현)
동북아경제중심국가로의 도약을 위해 정부가 마련한 경제자유구역법.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된 인천, 부산, 광양 등의 지역에서 행해지는 국내외 모든 경제활동에 대해 규제가 대폭 완화될 예정이다.
이번주 ‘황상익의 쟁점토론 난장’에서는 경제자유구역법에 명시된 내용 중에서도 국민의 건강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의료시장 개방과 관련한 내용을 중심으로 사안에 밝은 여러 전문가와 시민단체 대표 등과 함께 논란이 되고 있는 점들을 짚어봤다.
이번 토론에서는 “국민의 기본적인 건강권 보호를 위해 의료시장개방만은 저지해야 한다”는 의견과 “선진적 의료기술 및 경제제도 도입을 위해 과감히 개방해야 한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서 시종일관 긴장된 분위기가 연출됐다.
토론에는 의료시장개방 저지를 주장하는 박주영 경제자유구역법폐지 및의료시장개방저지공동대책위원회 공동위원, 이재호 가톨릭대학교 의과대 교수와 개방을 찬성하는 정영호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보건경제연구팀 박사, 오중협 인하대학교 의과대 교수가 패널로 참석했다.
경제자유구역법 관련 규정에 따르면 자유구역 내 개설되는 외국인 전용 의료기관 또는 약국은 국민건강보험법에 명시된 규정과는 달리 요양기관으로 보지 않게 된다.
자유구역내 유치되는 외국계 의료기관은 영리법인으로의 허용이 가능하다는 것. 의료기관에 대한 영리법인 허용은 국내최초인 만큼 이에 대한 국내 논란은 끊이질 않고 있으며, 오늘 토론에서도 이 부분에 대한 집중적인 논의가 이뤄졌다.
국내 의료계 발전 위한 돌파구 VS 돈 되는 치료만 하는 사태 생길 덧
정영호 박사는 “선진의료기술이 국내로 진출하게 되면 국내외적인 의료시장 경쟁으로 국내 보건의료서비스가 보다 향상될 것”이라며, “이를 위해선 의료시장 개방과 함께 영리법인이 인정돼 시장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인하대 오중협 교수도 “의료시장개방은 우리나라 의료 선진화의 계기가 될 것”이며, 아울러 “영리법인의 허용으로 비영리법인과 영리법인간의 차별화 된 보건의료정책시행 등의 변화는 의료분야의 고른 발전을 가져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박주영 위원은 “라식수술을 해야한다는 이유로 수차례 눈병 진료를 거부당한 사례를 작년 신문기사에서 접했었다”며, “현재도 일부 병원에선 돈 되는 치료를 우선해 진료를 하려는 경향이 강한데, 영리법인이 허용되면 이런 경우는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료의 질은 우리국민들이 보편적으로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는 것”이라며, “영리법인이 합법화되면 보편적이고 기본적인 서비스마저 사라져 버리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이재호 교수 또한 “시장경제 논리를 앞세워 의료시장 개방을 도모하려는 것은 일반국민의 건강권을 도외시하는 것”이며, “특권층이나 의료 과소비계층의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행위로밖에 볼 수 없다”고 반박했다.
공공의료기관 부재 등 내부 문제부터 VS 소비자의 다양한 욕구 충족
정영호 박사는 이에 대해 “주한 외국기업 임직원의 한국생활 환경조사에 따르면 의료서비스 개선이 두 번째로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특권층이든 외국인이든 모든 고객의 기호를 고려, 국내 소비자들의 다양한 욕구도 정부가 확보해 줘야 하는 것”이라고 발언했다.
또한 “개방은 경쟁을 도입하는 것”이라며, “비영리법인과 영리법인간의 자율적인 경쟁은 무엇보다 법인들간의 의료서비스 개선을 부추기게 될 것”이며, “1차 의료기관 개념의 공공기관의 부재 등은 정부가 다각도에서 프로그램을 강화하면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중협 교수 역시 “우리나라는 신기술에 대한 규제 정도가 심하다”며, “이런 현실을 실감한 다수의 한국인들이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받기 위해 미국 등 외국으로 가고 있다”며, “의료시장개방은 이런 부분에 있어 국민들에게 보다 긍정적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10년전보다 훨씬 발전된 의술이 현재 우리 국민들에게 미치고 있는 직접적인 영향들을 다시금 생각해봐야 한다”며, “의료시장이 보다 선진화되는 길은 개방과 함께 의료시장 내부의 활발한 경쟁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재호 교수는 “미국인들이 판단하는 자국의 의료체계 만족도는 바닥수준”이라며, “그런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미국의 제도를 쫒아가는건 위험한 발상”이며, “공공의료기관의 부재 등 국내에 곪아 있는 여러 문제점들부터 치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주영 위원도 “영리법인이 합법화되면 병원이 서서히 주식회사로 전환될 것은 자명한 일”이라며, “의료서비스가 주주의 성향에 따라 불안하게 운영되는 최악의 상황도 생각해봐야 하는 것”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영리법인이 허용되면 민간의료보험의 도입여부도 피해갈 수 없는 문제이다. 민간의료보험 도입에 대한 의견도 의학적,경제적 논리가 양 패널간 뚜렷했으며, 이견은 좁혀지지 않았다.
사보험 도입은 부익부, 빈익빈 초래 VS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의 경쟁필요
우선 박주영 위원은 “민간의료보험이 도입되면 건강보험의 미진한 부분 때문에 현행 건강보험이 오히려 축소, 붕괴될 위험”이 있고, “의료보험체계의 양분화로 사보험의 부익부와 건강보험의 빈익빈을 초래, 국민건강의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요인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위원의 발언에 공감은 한다는 전제하에 오중협 교수는 “의료시장에도 여러종류의 퀄리티를 부여해 부족한 부분에 대한 보충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며, “사보험을 도입해서라도 모든 국민에게 여유 있는 진료와, 질 좋은 서비스의 기회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반박했다.
천편일률적으로 한 종류의 제도만 두는 건 구태의연한, 시대에 떨어진 발상이라는 것이다.
매번 돈을 빌려 진료를 받다 스스로를 비관, 자살에 이른 한 인천시민의 사례가 있다. 이재호 교수는 당시의 사례를 예로 들며 “한국의 기본의료체계는 이 정도로 부실하다”며, “국민들이 현 의료체계에서조차 건강권 보장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의료시장 개방은 물론 사보험 도입 운운까지 하는 건 시기상조”라고 주장했다.
정영호 박사는 이에 “그런 부분은 물론 중증 질환 등을 앓고 있는 환자들에겐 공공적 차원에서 정부가 커버해 주면 되는 것”이고, “의료시장의 선진화를 위해 보험도 공공부문과 민간부분이 연계한 시점에서의 경쟁을 제도화 해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정부당국은 의료시장 개방에 따라 경제자유구역내에 유치되는 외국계 병원에 대해선 당초 외국인만 진료할 수 있도록 정했었다. 하지만 미국의 존스홉킨스 등 유명 병원들이 특구 내 외국인이 적다며 입주를 꺼리자 정부의 방침도 최근 내국인 진료를 허용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고 있다. 내국인 진료 허용에 대한 패널들의 견해도 팽팽하게 맞섰다.
내국인 진료 허용하면, 부유층만 모여들어 계층간 위화감만 조성할 것
VS 매년 1조원의 의료비 해외로 빠져나가는 것 감안, 비용 절감 될 것
이재호 교수와 박주영 위원은 “정부는 우리나라 의료계의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며, “내국인 진료를 허용하면 부유층들만이 대거 몰려들게 돼 계층간의 위화감을 심화시킬 것”이라며, “의료시장개방은 서민 건강권을 위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 공공의료 기반이 현재 10%정도 수준에 그치는 것도 모자라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며, “공공의료기반 부족 문제와 아울러 내국인 진료까지 허용되면 상하위 소득층간의 형평성의 문제가 심각해 질 것”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영호 박사는 반박 논리를 폈다.
“암 진료의 경우 미국은 58%, 한국은 18% 생존한다는 통계가 있다”며, “이 외에도 여러 이유로 한국민들이 외국으로 나가 진료를 받고 있다”며, “그 비용이 매년 약1조원인 것을 감안, 내국인 진료까지 허용된다면 여러 각도에서 많은 비용이 절감될 것”이라는 것이다.
오중협 교수도 “일부가 우수하면 다른 부분에도 영향을 미치고 함께 발달하게 된다”며, “선진 병원이 들어오면 국내의료계도 더 노력하게 될 것이니 결국 우리 국민의 삶의 질이 개선되는 것”이라며, “모두가 발전할 수 있는 계기로 생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재호 교수는 “우리나라 공공의료 취약성이 세계적인 수준”이라며, “국내 공공의료부문이 선진국 수준에 도달한 다음이 아니고서 의료시장개방이란 있을 수 없다”며,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정부는 의료시장개방 정책을 재고하기 바란다”고 강하게 주문했다.
박주영 위원도 “의료는 상품이 아니라 공공적으로 보장돼야 할 부분”이라며, “공공의료부분이 강화되는 방향으로 사회복지 차원에서 제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영호 박사와 오중협 교수는 “어느 한 부분에만 치중한 정책은 위험하며, 소비자와 공급자의 측면에서 다양한 선택의 폭을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국내의료계의 발전과 국민에 대한 서비스 개선을 위한 방안으로 의료시장의 개방은 필연적인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2003년12월10일 ⓒ민중의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