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서한3 국민연금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내는 연속공개 서한」 ③
국민연금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국민연금제도의 운영에서 가입자인 국민은 철저히 배제하고
정부 마음대로 운영하겠다고 하는 국민연금법 개정(안)의 속내가
노무현 정부의 슬로건, “참여”의 실상이란 말입니까?

이번 정기국회에 정부가 개정(안)을 마련한 국민연금법개정(안)이 상정되어 있습니다. 정부는 국민연금법개정(안)의 취지를 ‘인구구조의 급속한 고령화에 대비하여 세대간 형평성을 제고할 수 있도록 연금 급여수준과 보험료율을 조정하는 등 장기적인 재정안정화 방안을 마련하고, 기금규모의 급증과 금융환경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하여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를 상설화하여 책임성 전문성을 강화하는 등 현행 국민연금제도상 나타난 일부 미비점을 개선 보완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개정안의 취지에서 밝히고 있는 이 같은 좋은 말들과는 달리 개정안의 구체적인 내용에 있어서는 국민연금의 주인인 국민의 입장에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개악조항들이 눈에 띄어 그것들에 대해 말씀드려야겠습니다.

현행 국민연금법의 운영에 관련하여 <국민연금심의위원회>와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 및 <국민연금실무평가위원회>가 설치되어 운영되고 있는 것은 잘 아실 것입니다. 이들 위원회는 과거 정부가 연금기금을 마음대로 가져다 쓴 결과 기금운용에 손실을 입히고 연금기금운용에 대한 신뢰가 바닥에 떨어진 상황에 직면하여 정부의 마구잡이 기금운용과 유용을 막기 위해 가입자의 참여와 감시기능을 강화하고 보다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기금운용을 하기 위해 만들어지고 보강된 위원회들입니다. 98년 당시 연금제도를 고치면서 가입자 참여와 위원회의 공개적 운영을 통해 다소나마 민주적 통제를 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게 되었고 가입자의 주인의식을 기반으로 내실 있는 운영을 할 수 있는 기초적인 토양을 만들게 된 것입니다. 국민연금과 관련된 위원회는 다른 정부위원회와는 달리 위원실명이 공개되는 회의록을 작성하여 국민에게 공개까지 하고 있습니다. “참여”정부라 할 때는 각 부처에 설치되어 운영되고 있는 각종 위원회도 위원회 운영의 투명성과 신뢰성 제고를 위해 이렇게 가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이번에 국회에 제출된 국민연금법 개정안은 거꾸로 가고 있습니다. 참여의 수준과 투명성의 수준을 더 높이는 것이 마땅한데도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보면 가입자의 참여방식과 내용을 형식화하는 반면 정부와 관료의 통제는 절대적으로 강화시키려고 하고 있습니다. 올해 국회 국정감사에서 보건복지위원회 소속의원 거의 대부분이 국민연금 관련 위원회의 구성과 운영에 대해 가입자의 참여가 제한됨으로써 야기되는 문제에 대하여 심각하게 지적하였습니다. 보건복지부 장관은 의원들의 지적사항이 충분히 반영된 법안을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공언하였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10월 28일 국무회의를 통과하여 국회에 제출된 정부안은 문제의 개선과 보완은커녕 오히려 개악되었습니다.

우리가 개악이라고 단언하는 이유는 국민연금심의위원회,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에 가입자의 참여를 형식화하고 정부주도의 위원회로 관변화하려는 의도를 하나도 고치지 않고 여기에 더하여 국민연금정책협의회라는 뜬금없는 권력기구를 만들겠다고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민연금정책협의회는 말이 좋아 협의회지 국민연금에 관한 무소불위의 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국민연금정책협의회를 정점으로 연금제도운영 전반적 과정에서 가입자의 참여를 배제, 형식화하는 반면 정부, 특히 경제부처의 강력한 통제 하에 국민연금제도를 두려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방향으로 개악하려는 시도에 대해 좌시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국무회의가 대통령을 보좌하면서 올바른 정책을 펼쳐나갈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를 심각하게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통령께서는 이러한 실상을 제대로 인식하시고는 있으신지요?

무엇보다도 우선 먼저 지적할 것은 국민연금정책협의회가 국민연금제도운영에 있어 무소불위의 기관이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 협의회는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여 재경부장관, 기획예산처장관, 보건복지부 장관, 국무조정실장, 대통령 비서실 정책실장,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장, 그리고 총리가 지명하는 2인의 전문가로 구성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 국민연금정책협의회는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의 위원장, 위원 구성문제를 비롯해 국민연금과 관련된 기본정책에서 기금운용에 이르는 모든 문제를 실질적으로 장악, 통제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또 경제논리에 치우친 경제부처와 정치상황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기관의 구성원에 의해 철저히 장악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조건에서 국민연금정책과 기금운용의 독립성, 자율성이라고 하는 것은 허울에 불과한 것이며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를 상설화하는 의미도 상실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국민연금기금이 사회보장으로써의 역할에 최대한 충실하게 하는 일보다는 기금을 형성하고 이를 유용하는 데에만 관심을 가진 구성원으로 짜여지는 협의회를 신설하겠다는 발상은 즉시 철회되어야 합니다.

애초에 시민사회단체와 정부가 공히 연금에 관한 한, 사회적 합의기구의 모습을 명실공히 갖춘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를 만들고 이를 전문화·상설화하자는 가장 본연의 취지에 부합되려면, 가입자 대표가 한사람도 없는 이러한 협의회는 존재해서는 안되며, 비록 가입자대표가 포함된다고 하더라도 이미 기금운용위원회로서 충분하기 때문에 또한 협의회 설치의 필요성과 당위성은 어디서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따라서 어떤 명분으로도 이러한 협의회의 설치는 찬성할 수 없음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국민연금기금운용의 최고 의사결정기구는 가입자 대표로 구성된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입니다. 적립기금이 100조원을 넘어 장기적으로 1천억원 이상이 될 것이어서 현재와 같은 비상설 기구에서 기금운용을 총체적으로 감독하고 투자전략을 만들어 내기에는 역부족이어서 위원회 상설화 필요성이 제기되어 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복지부의 개정(안)에 따른다면 기금운용의 전권은 복지부가 행사하고, 기금운용위원회는 여유자금의 운용만을 담당하는 복지부 산하 위원회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의 심의·의결 권한을 복지부 장관에게 귀속시키고 있고, 복지부와 기금운용위원회의 기금운용계획이 충돌할 경우 이의 협의절차조차도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황입니다. 이는 위원회의 상설화와 독립성 확보를 통해 추구하고자 한 연금개혁의 방향과 다른 것입니다.
게다가 복지부의 개정(안)은 국회의 권한마저도 축소시키고 있습니다. 현재 기금관리기본법을 통하여 모든 연기금은 국회의 통제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복지부의 개정(안)은 국회의 심의절차 없이 복지부 장관이 연간, 중장기기금운용계획을 수립할 수 있도록 되어 있어 국민의 대의기관으로서 국회의 통제를 부인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발상은 국민연금기금의 특성과 장차 국민연금기금이 가입자의 노후와 국가경제 전반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지 못한 속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위원회 구성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입법예고(안)에서는 상설화라는 명분 하에 위원수를 총 21명(가입자 대표 14명, 공무원 6+1명)에서 총 9인으로 대폭 축소하면서 구성에 있어서도 위원장과 상임위원장은 추천위원회의 추천으로 대통령이 임명하고 공무원 3명과 가입자가 추천하는 위원 4명으로 구성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확정된 정부(안)은 이보다 더 어이없는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위원장, 상임위원장을 비롯해 나머지 위원의 추천, 위촉에 있어서도 추천위원회가 아닌 국민연금정책협의회라는 급조된 정부주도의 위원회가 추천권을 갖도록 만들어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의 구성에서부터 관여하고 통제하여 결국 연금기금의 운용을 정부의 의도대로 좌지우지하려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연금기금을 정부 마음대로 사용하여 심각한 국민적 불신을 초래한 과거로 다시 돌아가려는 것입니까? ‘관치기금운용’이 남긴 것은 연금의 손실과 제도에 대한 국민적 불신 뿐이었습니다.

도대체 그동안 국민의 정부에서 국민연금에 관한 최대의 성과라고 평가받아왔던 ‘가입자의 참여민주주의 확립’이란 정신이 ‘참여정부’에 와서 실종되는 이러한 최대의 아이러니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합니까?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퇴행적인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으며 복지부와 경제부처가 적절히 자신들의 부처 이기주의를 관철하기 위해 내놓은 절묘한 타협의 산물로 이러한 ‘제도의 후퇴’가 이루어진다면 참여정부 최대의 실정으로 길이길이 남을 것임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기금운용부문의 퇴행적 내용 외에도 정부가 내놓은 국민연금법 개정(안) 전체를 두고 시민사회노동농민단체의 반대여론이 날로 높아져만 가고 있습니다. 현재 정부의 개정(안) 속에서 적절한 노후소득의 보장이라는 연금제도의 가장 중요한 비젼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납부예외와 보험료미납으로 인한 사각지대를 해소하겠다는 적극적 의지가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국민연금제도의 관리와 운영에 대한 가입자의 정당한 참여의 권한을 박탈하고 그저 가입자는 보험료 징수대상으로 전락시키려고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민들은 “국민연금을 ‘용돈’으로 만들지 않을” 것이고, “가입자의 권한을 확대하겠다”던 대통령님의 약속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대통령 선거 이틀전 마지막 TV 토론 석상에서 확신에 찬 모습으로 국민연금제도에 대해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셨던 대통령께서 그 약속을 지키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2003. 1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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