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시립병원 설립 조례 주민발의

성남시립병원 설립 조례 주민발의
오는 24~25일 시의회에서 의결 예정… 찬반 팽팽히 맞서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석희열(shyeol) 기자    

성남시 수정구 및 중원구의 의료공백 상태가 장기화되고 있는 가운데 시민건강권 확보를 위한 조례 제정을 위해 주민들이 직접 발의하고 나서 입법 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지난해 7월과 9월 인하의료원과 성남병원이 잇따라 폐업하면서 의료공백으로 불편을 겪고 있는 이 지역 주민 1만8595명이 성남시를 상대로 성남시립병원 설립을 위한 조례 제정을 청구하고 나선 것.

이와 관련 성남시(시장 이대엽·한나라당)는 22일 “성남시립병원 설립을 위한 주민발의 조례 제정 청구서를 지난해 12월 29일 성남시립병원 설립을 위한 범시민추진위원회로부터 접수했다”고 전하고 “조례규칙 심의위원회에서 이를 심의한 뒤 지난 15일 시의회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성남시의회(의장 김상현·한나라당)는 오는 24~25일 이대엽 시장을 출석시킨 가운데 임시회를 열어 주민발의 조례안에 대한 해당 상임위원회(자치행정위원회)의 심의를 거친 다음 본회의에서 최종 의결할 방침이다.

한나라당 의원들의 압도적 반대 속에 의결 불투명…시민들 강력 대응

하지만 이대엽 시장이 조례안 제정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데다 한나라당이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시의회가 4·15총선을 의식, 일정을 연기하거나 심의 자체를 보류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어 입법 여부는 불투명한 상태다.

이런 가운데 ‘성남시립병원 설립을 위한 범시민추진위원회’(공동대표 이재명 변호사)는 지난 15일부터 성남시청 앞에서 성남시립병원 설립 주민발의 조례 제정을 촉구하는 릴레이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이와 함께 범시민추진위는 시의회가 이번 회기 내에 조례안을 처리하지 않을 경우 강력히 대응한다는 방침을 정하고 비상체제에 돌입했다.

▲ 성남시립병원 설립을 위한 조례 제정을 촉구하며 22일 성남시청 앞에서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는 비공스님(무심정사 주지)  

ⓒ2004 서상일

시의원 41명 가운데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열린우리당 소속 의원 전원과 한나라당 소속 의원 3명을 포함하여 모두 20명이 이번 조례안에 대해 찬성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져 찬반 양론이 팽팽히 대립하고 있는 상황이다. 성남시의회 자치법규에는 출석의원 과반수 이상 찬성을 의결 정족수로 규정하고 있다.

시의회는 또 표결방법을 두고 기립 또는 거수, 기명투표로 하자는 주장과 무기명 투표로 하자는 주장이 맞서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소속 의원 대부분이 반대표를 던질 것으로 예상되는 한나라당 내부에서는 정치적인 부담을 줄이기 위해 무기명 투표를 선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보건의료노조 정해선 수석부위원장은 “현실적으로 기명으로 하면 가결, 무기명으로 하면 부결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본다”면서 “한나라당 소속 의원들이 무기명을 고집하는 것은 주민들보다는 시장의 뜻을 받들겠다는 불순한 의도 때문”이라고 비난했다.

민주노동당 김미라 시의원도 “주민발의에 의한 이번 조례안은 의원발의에 의한 것보다 훨씬 의미가 있고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면서 “무기명 투표를 주장하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정치적인 입장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함에도 이를 드러내지 않은 채 시장의 눈치를 살피는 사람들”이라고 비난했다.

이어 김 의원은 “대학병원이나 민간병원보다 시민 세금으로 설립되고 운영되는 병원이 성남시에 하나쯤은 있어야 된다는 것이 대다수 시민들의 의견으로 알고 있다”면서 “성남시민들의 간절한 소망을 받들어 시립병원 건립을 위한 조례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한나라당 정응섭 간사(자치행정위원회)는 “다수의 시민들이 요구하고 있는 만큼 이번 조례안이 통과될 것으로 보지만 표결방식이 관건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며 “시민들에게 떳떳하고 소신있는 표현을 하기 위해서는 무기명이 아닌 반드시 거수나 기명투표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대엽 시장도 적자 등을 이유로 안된다고만 할 것이 아니라 시민들의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강조하고 “1조3000억원에 달하는 성남시의 한해 예산 가운데 불필요한 예산을 줄여 알뜰 재정을 한다면 시민복지를 위한 손실예산을 충분히 충당하고도 남는다”고 말했다.

반면 한나라당 김숙배 사회복지위원장은 “여러 의원들과 의논하고 의견을 조율해서 시민들을 위하는 방향으로 결론이 나올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면서도 “너무 예민한 사안이라 지금으로서는 함부로 말하기가 조심스럽다”고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민주당 윤춘모 간사는 “원칙적으로 시립병원 건립에 찬성하지만 적자 등을 이유로 반대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면서 “중요한 것은 수정구와 중원구의 의료공백 상태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해결 방법에 있어서는 여러 가지 방안이 있을 수 있다”고 말해 성남시가 추진하고 있는 대학병원 유치에 대해서도 찬성 입장을 내비쳤다.

성남시 “선거 공약사항 반드시 지킬 필요 없다” 배짱

▲ 이대엽 성남시장이 22일 오후 집무실에서 자신의 선거 공약사항이기도 한 성남시립병원 건립과 관련하여 주민 대표들과 면담을 하고 있다  

ⓒ2004 서상일

한편 성남시는 낮은 의료 수가에 따른 운영적자와 의사인력 확보의 어려움 등 현실적인 이유를 들어 시립병원 설립에 난색을 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신 대학병원이나 민간 종합병원 유치를 적극 추진한다는 복안이다.

성남시 한창구 문화복지국장은 “시의 공식 입장은 시립병원 건립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주민발의로 청구된 조례안이 시의회의 소관으로 넘어간 만큼 의회의 결정에 따르겠다는 것”이라며 “더욱이 시장이 혼자서 한다 안한다를 결정할 수 있는 사안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시립병원 건립은 지난 선거 당시 이대엽 시장의 공약사항이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그는 “공약했다고 100% 지키라는 법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어 그는 “공약사항을 지키려고 해도 일에는 우선순위가 있고 또한 관련 부서에서 타당성을 검토해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 국장은 또 “수정구에 사는 시민들에게는 시내까지 나오는데 거리가 멀어 다소 불편이야 하겠지만 시내에 나오기만 하면 종합병원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의료 불편이지 의료공백으로 보지는 않는다”며 “어떤 방안이 시민들에게 의료혜택이 많이 돌아갈 것인지를 종합 검토해서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 국장은 “시립병원을 건립하게 되면 운영상의 적자도 문제지만 그 보다는 공기업 보수규정에 따라야 하기 때문에 전문인력 확보가 불가능할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시민들에게 질높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어렵다”고 시립병원 건립 불가 이유를 설명했다.

이같은 성남시의 입장에 대해 범시민추진위원회는 강하게 반발했다. 백승우 공동집행위원장은 “시민을 상대로 공약을 내놓을 때는 현실성과 타당성을 따져서 내놓아야지 지키지도 않을 공약을 왜 내놓았느냐”며 “표를 얻기 위해 선심공약으로 내놓았다가 당선이 되었으니 이제 거둬들이겠다는 것이냐”고 흥분했다.

범시민추진위원회 발기인으로 참여하고 있는 비공스님은 “공약사항인데도 이제 와서 ‘배째라’는 식으로 나오는 이 시장을 이해할 수 없다”면서 “한해 예산이 1조3000억원에 달하는 성남시가 시민의 생명이 걸린 의료사업에 한해 10~20억원 적자를 두려워한다는 것이 납득이 안된다”고 말했다.

범시민추진위 “퇴진·낙선운동 통해 부결 책임 반드시 묻겠다” 경고

이와 함께 범시민추진위원회는 10%에도 못미치는 지금의 공공병원 비율을 지난 대선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약속한대로 30%선으로 끌어올려 저소득층 환자들에게도 제대로 된 의료혜택을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기존에 있는 인프라를 활용할 것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윤영규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부의 수준에 따라 교육의 기회나 수준이 달라져서는 안되는 것처럼 의료도 공공재로서의 역할과 기능을 위해서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공공병원 비율을 30%로 늘려야 한다”고 강조하고 “기존에 있는 병원 가운데 지역 거점별로 몇 개를 지정하여 공공병원으로 전환을 유도하고 비용의 일부를 정부에서 지원하면 된다”고 말했다.

윤 위원장은 “지방공사의료원 가운데 충주, 대구, 포항, 마산, 울산의료원은 이미 흑자로 돌아섰고, 원주, 영월, 서산, 진주의료원의 경우도 적자규모가 1년에 5억원 미만”이라며 “보수규정 또한 원장의 재량에 따라 얼마든지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어 전문인력 확보가 어렵다는 것은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고 성남시의 주장을 반박했다.

조례안이 시의회에서 부결될 경우 시민단체에서는 표결에 참가하여 반대표를 던진 것으로 확인된 시의원들과 성남시장을 대상으로 낙선 및 퇴진운동을 벌이는 한편 시민소환운동을 적극 전개한다는 방침이다.

백승우 공동집행위원장은 “찬성의원들을 중심으로 재발의에 즉각 나서 조례 제정을 위한 불씨를 살려낼 것”이라고 밝히고 “퇴진 및 시민소환운동을 통해 부결에 대한 성남시장의 책임을 반드시 물을 것이며, 무기명 투표를 제안한 시의원에 대해서도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범시민추진위원회는 23일 오전 11시 성남시청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성남시립병원 설립을 위한 조례 제정을 성남시와 시의회에 강력히 촉구할 예정이다.  

2004/03/23 오전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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