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에 체계적 지원을”

“시급한 것부터 체계적 지원을”

■전문가들이 말하는 지원방식

어린이·모성 보호 더 관심을

피에레트 부 티(사진) 유니세프(유엔아동기금) 평양 주재 북한대표부 대표는 27일 <한겨레>와의 전화통화에서 “이번 용천 폭발사고의 가장 큰 희생자는 어린이들”이라며 “눈을 다쳐 실명하거나 얼굴에 화상을 입은 어린이들이 많이 보고됐으며, 폭발 때의 파편에 맞아 뼈가 부러지거나 금이 간 어린이들이 적지 않다”고 전했다.

그는 유니세프의 현장 조사로는 “용천 시가의 3분의 2가 폐허로 변했고, 이재민들은 폐허 더미를 맨손으로 뒤적거리며 가재도구 등 쓸 만한 물건을 건지기 위해 눈물겨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거대한 폭발이 있었지만 현재 매몰되거나 아직도 잔해에 갇혀 구조를 기다리는 피해자는 없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그는 “거의 10년 동안 북한 경제가 위기 상황에 처해 있어 의료·보건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기 어려운 상황이어서 사태가 더 악화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북한 <중앙텔레비전>이 25일 용천 사고 소식을 뉴스로 전해 많은 평양 시민들도 이 사실을 알고 있지만, 이들의 반응이 어떤지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유니세프 북한 대표부는 24일 유엔, 국제적십자사와 더불어 세 명의 조사관을 용천에 파견해 공동 조사를 벌였으며, 이들은 유니세프 북한 대표부에 사고 원인, 희생자 상황, 피해 상황 등을 간략하게 보고했다.

지난해 10월 평양에 부임한 부 티 대표는 유니세프 북한 대표부가 북한의 어린이와 여성의 보건·건강·교육을 위한 프로그램을 제공해왔다고 전했다. 그는 “북한에서 유아~5살 이하의 어린이와 산모의 사망률이 지난 10년 동안 2배로 증가했으며, 실제 사망률은 공식적인 보고보다 더 높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42%의 어린이가 만성 영양실조 상태이고, 2.7%는 심각한 상황이며, 3분의 1의 어머니가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다”며 이번 사고로 북한의 어린이와 모성 보호를 위한 프로그램에 더 많은 관심이 모이기를 희망했다.

평양에 본부를 두고 있는 유니세프 북한 대표부에는 다국적 요원 11명과 북한 직원 20명이 함께 근무하고 있다. 베이징/이상수 특파원 leess@hani.co.kr

신뢰 쌓이면 의료진협력 열려

“북한이 원하는 응급 물자부터 공급해 충분한 신뢰를 쌓는다면 나아가 남북의 의료진이 함께 진료를 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입니다.”

북한 의료 지원을 위해 2001년 3월 첫발을 디딘 뒤 5차례 북한을 다녀온 황상익(52·서울의대 교수) 남북어린이어깨동무 운영위원은 27일 “북한이 우리나라의 의료진 파견 등과 같은 선의의 뜻을 받아들이지 못하더라도 도움을 요청한 쪽의 사정을 충분히 이해하는 포용력을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 위원이 처음 방문했을 때 북한은 이미 1970~80년대의 화려했던 무상의료 체계 및 의료진만 남겨둔 채 항생제·진통제 등의 기본적인 의약품 및 의료소모품들은 거의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황 위원은 “그러나 북한 관리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도와야겠느냐고 물어도 아무런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고 했다. 어깨동무 등의 국내 구호단체들이 기본적인 필수 의약품을 지원하면서 점차 방문 횟수가 늘어나자 북쪽 관계자들의 반응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신뢰가 쌓이자 평양산원 등 대규모 의료시설에서 시작해 구역 병원까지도 돌아볼 수 있게 됐고 북한 쪽도 구체적으로 부족한 시설 및 의약품에 대해 구체적으로 요구를 해왔다”고 황 위원은 전했다.

이런 신뢰를 바탕으로 자체 의약품 생산이 가능한 시설 지원 활동으로 폭을 넓힐 수 있었고, 지난해부터는 어린이병원 설립에 착수해 오는 6월1일 준공식을 할 예정이다.

황 위원은 “이번 북한의 용천 참사에 우리나라 온 국민이 나서 온정과 구호물품을 보내자는 뜻을 보인 것은 무척 고무적인 일”이라며 “북한 용천 주민의 상황은 촌각을 다투는 응급상황이므로 정부 및 민간단체들이 용천 현장에서 긴급히 필요한 사항을 충분히 파악해 체계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 위원은 “이번 참상 구호 활동이 밑거름이 돼 신뢰가 쌓인다면 멀지 않아 남북 의료인이 함께 일상 진료 활동을 펼치면서 상호 협력관계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himtrain@hani.co.kr

일회성 넘어 꾸준히 도와야

“북한 돕기는 이벤트(일회성 행사)가 필요한 게 아닙니다. 그동안 꾸준히 도왔으면 북한 당국이 항생제 등 의료용 소모품을 비축할 수 있었을 것이고, 용천 사태에 대해서도 더 빨리 대처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북한 결핵퇴치 사업을 벌이고 있는 유진벨재단 인요한 이사는 최근의 용천 주민 돕기 열풍에 대해 또 일과성으로 그치지나 않을까 경계하는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인 이사는 “당장이라도 용천 사고현장에 뛰어가야 도울 수 있는 듯 행동하는 것도 잘못”이라며 “북한도 하나의 엄연한 나라이고 절차와 법이 있는데 이것들을 무시하고 사고현장에 가려고 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인 이사는 특히 “북한에 없는 것은 약품과 의료시설과 장비이지 의료인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연세의대를 나와 세브란스병원 외국인진료소장을 맡고 있는 의사이기도 한 인 이사는 10여차례 북한을 다녀온 경험을 토대로 “북한에도 훌륭한 의료인이 있다”며 “그들의 손에 붕대, 항생제 등 의료용 소모품 하나라도 더 쥐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인 이사는 “북한은 원래 항생제 생산국가였으나 95~96년 수해 때 많은 공장이 물에 잠기고 97년 수해를 겪은 데다 에너지마저 부족해 항생제를 생산하지도 못하고 있다”며 기초 약품 지원이 시급함을 강조했다.

인 이사는 “대형병원이 즐비한 서울만 해도 화상환자가 한꺼번이 100명 이상 발생하면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수액, 화상연고, 붕대, 항생제 등 기초 의약품을 먼저 지원하고 이후 피부이식 등을 위한 의료기술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유진벨재단은 한말 선교차 조선을 방문한 미국인 유진벨 목사 부부를 기념해 1995년에 설립된 이후 북한에 식량을 지원하다 97년부터는 결핵퇴치사업에 전념하고 있다. 이 재단의 스티브 린튼 이사장은 인씨의 친형이다.

안영진 기자 youngj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