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억 잔디 깔면서 노숙인은 사지로 내모나”

“50억 잔디 깔면서 노숙인은 사지로 내모나”  
  시민사회단체, 노숙인 의료구호비 지급중단 철회요구

  2004-05-20 오후 1:58:17    
  
  서울시가 노숙인에 대한 의료구호비 지급을 사실상 중단해 시민사회단체의 거센 반발을 사고 있다. 특히 이번 지급 중단 조치는 노숙인 의료구호비 2004년도 예산이 전년도 누적 적자분을 해소하기 위해 1.4분기만에 바닥난 데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노숙인 의료구호비 예산을 확충하는 등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확인됐다.
  
  ”노숙인 의료구호비 지급 중단돼”
  
  보건의료단체연합, 건강세상네트워크, 노숙인인권공동실천단,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등 6개 시민ㆍ사회단체로 구성된 ‘노숙인 의료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ㆍ사회단체 대책모임’(이하 ‘대책모임’)은 20일 오전 서울 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노숙인 의료 문제 해결을 촉구했다.
  
  이번 기자회견은 지난 4월26일 서울시가 공문을 통해 “올해 노숙인 의료구호비 예산 12억원이 2002년 이후 누적 적자분이 이월돼 1.4분기만에 모두 바닥나 노숙인의 입원, 수술비 지원을 중단한다”고 밝힌 이후 사실상 노숙인에 대한 의료구호비 지원이 중단된 데 따른 것이다.
  
  이런 서울시의 조치에 대해 시민ㆍ사회단체가 강하게 반발하자 서울시는 5월12일 “일단 입원을 시키고 의료급여로 처리하라”는 공문을 시립병원에 보내 지원 중단 방침을 일부 철회했다. 하지만 시민ㆍ사회단체는 이런 서울시의 대책이 “본질을 호도한 면피책에 불과하다”면서 근본적인 대책마련 촉구에 나섰다.
  
  ‘대책모임’은 “노숙인들의 입원과 수술을 의료급여로 처리할 경우 전체 진료비의 30%에 해당하는 본인부담금을 노숙인들이 지불해야 한다”면서 “이 30%의 본인부담금을 지원하는 의료구호비를 지급하지 않는다면, 돈이 없는 노숙인들은 의료 이용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시민ㆍ사회단체들은 20일 오전 서울시청 앞에서 노숙인 의료구호비 대책마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프레시안

  서울시, 노숙인 의료구호비 예산 매년 삭감해 와
  
  한편 서울시가 이번에 노숙인 의료구호비 지원을 중단한 것은 절대 액수가 턱없이 부족한 예산과, 그마저도 계속 줄여온 서울시의 ‘사회복지 정신’의 부재에 그 근본적인 원인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인의협에서 추산한 바에 따르면, 서울시가 노숙인들의 최소한의 의료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최소 예산은 20억 이상이다. 이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서울시는 매년 노숙인 의료구호비 예산을 동결하거나 오히려 삭감해와, 2002년 14억여원이었던 예산은 2004년에는 12억여원으로 줄었다. 이런 부족한 예산으로 노숙인 의료구호비 지원을 해오다보니, 결국 적자가 누적됐고 이를 해소하다 올해 예산이 1.4분기에 바닥을 드러낸 것이다.
  
  서울시는 이렇게 예산이 바닥을 드러낸 이후에도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노숙인들보다 더욱 생활이 어려우면서도 열심히 살아가는 분들이 많다”거나 “이미 많은 노숙인 쉼터에서 기초생활 수급자 선정을 통한 의료보호 또는 건강보험으로 의료구호를 하고 있다”는 식의 책임회피용 변명을 언론을 통해 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시 사회과는 이런 내용 일부가 포함된 ‘설명 자료’를 기자회견 자리에서도 배포해 눈총을 샀다.
  
  ’대책모임’은 “노숙인들은 사회안전망이 미비된 상태에서 1997년 IMF 구제금융 사태를 맞아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가족이 해체되고 거리로 내몰린 사람들”이라면서 “이들은 주민등록이 말소되는 등 기존 행정 체계로 편입되기 어려운 부분이 많고, 건강보험 등을 통해 의료서비스를 받더라도 돈이 없어 본인부담금을 낼 수 없는 이들”이라고 서울시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기자회견이 끝난 후 시민ㆍ사회단체 대표들은 요구안을 민원실에 전달하려 했으나, 서울시가 정문을 잠그는 바람에 전달이 무산됐다. 당시는 업무 시간인 오전 10시50분이었다. ⓒ프레시안

  ”잔디 깔 50억은 있으면서, 이명박 시장 좌시하지 않을 것”
  
  기자회견에서 류정순 빈곤해결을위한사회연대(준) 대표는 “서울시가 잔디광장을 조성하는 데 50억을 쓰면서 1년에 노숙인들을 위해서 팔억을 증액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냐”면서 “이번 일은 이명박 시장의 ‘사회복지 의식’의 수준을 알 수 있는 일”이라고 이명박 서울시장을 강하게 비판했다.
  
  류 대표는 “이명박 시장은 큰 ‘정치적 야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사회에서 가장 고통받고 서러운 사람의 눈에서 눈물이 나게 했을 때, 이명박 시장도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대책모임’은 ▲노숙인 의료구호비 예산 확충, ▲노숙인 의료 문제 해결을 위한 민관 협의기구 상설화, ▲노숙인 의료급여 수급을 가로막는 현실 문제 해결 등을 요구했다. 이후 ‘대책모임’을 비롯한 시민ㆍ사회단체는 서울시는 물론 보건복지부를 대상으로 예산 확충 등 근본적인 대책마련을 촉구할 예정이다.
  
  20일 저녁에는 잔디광장이 만들어진 뒤 처음으로 시민ㆍ사회단체 주최로 ‘노숙인 의료구호비 완전해결을 위한 연대 한마당’이 서울시청 앞에서 개최된다.
  
  기자회견 후 시민ㆍ사회단체 대표들은 요구안을 민원실에 접수할 예정이었으나, 서울시가 정문을 잠그는 바람에 청사에 들어가지 못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났다. 이명박 시장 서울시정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강양구/기자  프레시안 2004.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