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디는 살아도 노숙인은 못 사는가, 시민사회단체 노숙인 의료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 가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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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와 보건복지부는 노숙인 의료 문제 해결을 위한 근본적 방안을 제시하라—————————-

서울시는 지난 4월 26일 공문을 통하여 노숙인의 입원. 수술비 지원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그 이유로는 올해 노숙인 의료구호비 예산이 12억원 정도인데, 2002년 이후 누적 적자분이 계속 이월되어  올 한해 예산이 일사분기만에 모두 바닥났다는 것이다. 더불어 서울시는 꼭 입원이나 수술을 받아야 한다면, 한 달 이상 노숙인 쉼터에 거주한 뒤 주민등록 발급 등의 절차를 거쳐 의료급여 대상자로 지정 받아야 한다고 말하여 문제를 일으켰다.

서울시의 공문이 노숙인 쉼터와 시립병원에 하달된 이후 노숙인의 의료 이용은 곧바로 제한되었다. 입원과 수술이 예정되어 있던 환자에게 무기한 연기 통보가 내려졌다. 그리고 의료 이용이 필요한 노숙인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행려자’로 취급되어 의료서비스를 받아야 하는 편법이 동원되었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많은 노숙인들이 이러한 상황에서 아예 의료 이용을 포기하는 사례가 늘었다는 것이다.

서울시의 지침이 내려진 이후, 우리는 노숙인의 건강권뿐 아니라 생존권마저도 박탈하려는 서울시의 처사에 항의하며, 노숙인의 의료 이용 제한을 즉각 철회하고, 노숙인의 건강권과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한 대책이 마련되어야 함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우리의 항의에 서울시는 자신들의 방침을 부분적으로 철회하는 듯한 공문을 5월 12일자로 시립병원에 하달하였다. 그러나 일단 입원을 시키고 의료급여로 처리하라는 서울시의 공문은 서울시가 무엇이 문제가 되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문제를 호도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줄 뿐이다.

노숙인들의 입원과 수술은 의료급여로 처리되기가 힘들어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도 상당수의 노숙인들은 의료보험이나 의료급여 대상자로 지정되어 입원과 수술을 받아왔다. 문제는 의료보험은 말할 것도 없고 의료급여로 처리되어도 전체진료비의 30%의 본인부담금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노숙인 의료구호비는 이 30%의 본인부담금을 지원하는 예산인 것이다. 결국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의료급여로 지정받을 수 있는 실질적 조치를 취하는 것과 더불어 의료급여로 처리되어도 결국 남는 본인부담분을 지원할 의료구호예산을 증액하는 것이다.

노숙인의 건강할 권리와 생명은 보장되어야 한다. 노숙인은 여러 가지 환경적 요인으로 말미암아 건강이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리고 건강이 나빠졌을 때 조기에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병을 더욱 키우기도 한다. 이러한 노숙인들에게 의료 이용에 대한 권리는 생명에 대한 권리이다. 그러므로 서울시는 노숙인들이 필요한 의료 이용에 제한을 받지 않도록 보장해야 한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에서 추산한 바에 따르면, 서울시의 노숙인들의 최소한의 의료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최소 예산은 투박하게 잡아도 1년에 20억 이상이다(전국적으로는 40억 이상). 그러나 이러한 근거에 따라 적정 수준으로 예산이 증액되기를 요청한 우리의 요구를 무시하고, 서울시는 매년 노숙인 의료구호비 예산을 동결하거나 오히려 삭감하여 왔다(2002년 1,436백만원, 2003년 1,245백만원, 2004년 1,245백만원). 그러므로 올 해 예산이 1사분기에 바닥난 것은 올 것이 온 것뿐이지 노숙인의 의료 이용 과다 때문이 아니다. 더군다나 올 해 1사분기의 지출이 작년 4사분기의 누적 적자를 해소하기 위하여 대부분 지출되었다는 사실로 알 수 있듯이, 현재의 예산 부족은 서울시의 땜질식 행정 운용의 결과이다. 그러므로 서울시는 이번 사태를 거울삼아 노숙인 의료구호비 예산을 대폭 증액하여야 한다. 더 이상 땜질식 처방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이 명백해졌다.

서울시는 노숙인 의료구호비 예산을 증액하는 것에 대하여 다른 의료급여 수급권자들과의 형평성을 문제삼으며 난색을 표명하고 있다. 그래서 서울시는 노숙인들이 정당한 절차를 거쳐 의료급여 수급권자로 등록하고, 그 이후 의료급여 수급권자와 같이 의료급여 체계 내에서 의료서비스를 이용할 것을 종용하고 있다. 다시한번 밝히지만 첫째 이는 노숙인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탁상 행정이다. 노숙인은 다양한 이유로 체계에 편입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노숙인은 주민등록이 말소되어 행정 절차를 밟기 어려운 이들이 적지 않다. 그리고 국민기초생활보장법상 수급권자의 자격이 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이들에게 체계에 편입될 것을 전제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것은 행정편의적 발상이다. 둘째 건강보험이나 의료급여 체계 내에서 의료서비스를 받더라도, 입원시 30∼50%에 이르는 비급여부분, 다시 말해 본인부담금 부분은 여전히 문제로 남는다. 간단히 말해 노숙인들은 돈이 없다. 바로 이 때문에 의료구호비가 필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설사 노숙인 모두가 건강보험 내지 의료급여 체계 내로 포함되더라도 의료구호비 지원은 필요하다. 그리고 노숙인들이 의료급여 수급권자에 비하여 더 많은 의료서비스를 받고 있다는 것도 올바른 지적이 아니다. 설사 백보를 양보하여 노숙인들이 일반 의료급여 수급권자보다 나은 서비스를 제공받고 있다면 이는 노숙인에 대한 의료서비스를 제한하여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 의료급여 수급권자의 의료서비스를 확충하여 해결할 문제이다. 빈곤계층에게 과중한 의료비부담을 강요하여 비판받고 있는 기존 제도를 기준으로 빈곤계층의 의료 제도를 하향평준화할 수는 없다.

1998년 이후 노숙인 수가 크게 증가하면서 이에 대한 대책, 특히 의료대책의 필요성이 강조되어왔으나, 지금까지 보건복지부는 의료구호비 지원이라는 단기 대책으로 일관하고 있으며 지원 예산 규모도 매우 작다. 서울시의 경우에도 30% 정도를 보건복지부가 지원할 따름이다. 정부 차원에서 장기 대책으로 제시되었던 의료급여 수급권자 확대에 관한 진지한 논의나 실천이 있었는지 의심스럽다. 그러므로 보건복지부는 현실로 존재하는 노숙인 의료 문제 해결에 대한 책임을 지방자치단체에만 미룰 것이 아니라, 책임 있는 자세로 관련 제도를 정비하고 중앙 정부의 예산지원을 늘려야 한다.

현재까지 단기적 처방으로 일관하여 왔던 보건복지부는 노숙인 의료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근본적 처방을 내어놓아야 한다. 그리고 서울시는 노숙인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이를 ‘퇴치’하려는 생각을 버리고, 노숙인의 인권과 존엄성을 보장하기 위한 정책을 책임 있게 수행하여야 한다. 그리고 보건복지부와 서울시의 행정을 감시하고 독려하기 위하여 이 모든 과정에 민간이 참여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되어야 한다. 노숙인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였던 이번 사태를 계기로 노숙인 관련 의료 정책이 진일보하여야 한다.

우리의 요구
1. 노숙인 의료구호비 예산을 확충하라!
2. 노숙인 의료 문제 해결을 위한 민관 협의기구를 상설화하라!
3. 노숙인의 의료급여 수급을 가로막는 현실적 문제들을 해결하라!

2004. 5. 20
노숙인 의료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단체 대책모임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건강세상네트워크/노숙인복지와인권을실천하는사람들/노숙인인권공동실천단/빈곤해결을위한사회연대(준)/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