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병원, 노조에 15억원 손배가압류 제기
병원측 “불법파업”… 민변 등 “합법 파업”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박신용철(redfaith) 기자
‘의료공공성강화’를 요구하며 파업을 지속하고 있는 국립공공병원인 서울대병원 노동조합에 병원측이 손배가압류를 제기해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서울대병원 노조는 지난 달 23일 병원노사가 ‘산별잠정합의’에 가서명한 후 중앙교섭에 이은 지부교섭을 사측에 요구하며 파업을 지속해 왔다. 그러나 사측은 불법파업으로 규정해 성실한 교섭을 해태하는 한편, 시설보호 요청, 노조 집행부 고소고발, 손배가압류를 제기했다.
서울대병원 홍보팀 관계자는 “지난 14일 오후 5시 서울중앙지검에 노조, 지부장, 부지부장, 사무장 지도위원 등 15명에 대해 업무방해 및 의료법 위반, 의료시설 점거 등의 혐의로 형사 고발했다”면서 “민사는 서울중앙지법에 손해배상소송 15억, 채권 가압류 조치를 제기했다”고 밝혔다.
▲ 서울대공대위는 16일 ‘노조탄압 중단, 손배가압류 철회와 장기파업 해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송영섭 변호사(사진 맨 왼쪽)가 파업의 법률적 정당성을 설명하고 있다.
ⓒ2004 박신용철
이에 대해 문문주 민주노총 서울본부 조직부장은 “손배가압류는 작년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몬 탄압 중 가장 악랄한 수법이었다”며 “작년 사측은 노동자들의 죽음 정국이 이어지자 ‘가급적 손배가압류를 자제하겠다’고 약속했는데 올해 국립공공병원인 서울대병원이 처음으로 손배가압류를 걸었다”고 비난했다.
김애란 보건의료산업노조 서울대병원 지부장은 “2004년 금속산업연맹 산별교섭을 통해 금속노사가 손배가압류를 하지 않기로 합의했다”면서 “이번 서울대병원의 정당한 파업에 손배가압류를 제기한 것은 시대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사측은 지부교섭에 응하지 않고 불법파업으로 규정해 손배가압류를 제기한 데 대해 산별기본협약에 노사 양측이 이미 합의했고, 이번 파업에서 찬반투표와 쟁위행위 신고를 하지 않았으며, 산별기본협약 제10조 2항 ‘임금, 노동시간 단축, 연·월차 휴가 및 연차수당, 생리휴가는 지부단체협약 및 취업규칙에 우선하여 효력을 가진다’는 조항을 근거로 들고 있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 법률원 송영섭 변호사(민주사회를위한 변호사 모임)는 “노동부와 병원 측이 지부교섭을 불법으로 규정하는 근거는 파업의 목적이나 방법의 불법성 여부가 아니라 절차를 문제 삼고 있는 것”이라며 “파업 절차는 쟁위 행위 정당성에서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법원 판례에 적시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번 산별교섭에서 중앙노동위원회가 직권중재를 하지 않아 쟁위 행위 정당성은 문제는 해결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송 변호사는 “만약 지부파업이 산별교섭과 무관한 별개의 사항을 가지고 진행되고 있다면 그 파업은 절차를 거치지 않은 파업이 될 수도 있다”면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지부별 파업은 산별교섭으로 이루어낸 잠정합의서의 내용을 구체화하고 완성하는 과정에 있는 것으로 산별교섭과 지부교섭 및 파업은 상호 동일성이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산별교섭과 동일성이 인정되는 지부별 세부사항과 지부현안사항이 종결되야 비로소 산별교섭과 파업이 완전히 종결된 것이라 할 것”이라며 “일부 병원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쟁위행위 재신고, 별도의 찬반투표절차나 조정신청절차를 거쳐야 할 필요가 없고 적법한 파업으로 인정된 산별파업의 연속선상에 있는 것으로 보건의료노조의 위임에 따른 적법한 교섭과 파업”이라고 반박했다.
보건의료산업노조도 지난달 23일 산별잠정합의안에 따라 지부별 교섭과 투쟁으로 전환한다고 선언해 지부단위로 교섭을 일괄 위임했으며 지부단위 교섭이 모두 종결되는 시점에서 조합원의 찬반투표를 거쳐 정식으로 합의안에 서명날인하고 교섭을 완전히 마무리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보건의료단체연합·민주노총·건강세상네트워크·참여연대·민변 등18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공공병원으로서의 서울대병원 제자리 찾기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서울대병원 공대위)는 16일 오전 서울대병원에서 ‘노조탄압 중단, 손배가압류 철회와 장기파업 해결을 촉구하는 시민사회단체 공동 기자회견’을 열었다.
서울대병원 공대위는 “국립중앙병원인 서울대병원의 파업이 37일째 유례없이 장기화되고 있는데도 사측은 사태해결을 위한 성실한 교섭은 제쳐둔 채 노조 간부들에 대한 대기발령, 손배가압류, 고소고발 등으로 일관하고 있다”면서 “특히 많은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간 손배가압류를 신청한 데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현정희 서울대병원 공대위 집행위원장(보건의료산업노조 부위원장)은 “37일이라는 장기파업의 요인은 노동자 투쟁을 우습게 생각하는 서울대병원장, 이를 부추기는 노동부 그리고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일관하는 노무현 정권에 있다”고 비난했다.
최인순 보건의료단체연합 집행위원장은 “한 환자가 서울대병원의 공공성 강화요구를 보더니 ‘TV 시청 무료, 입원환자 주차장 무료이용은 병원측이 당연히 해야하는 것으로 공공성의 기본이 아니냐’고 되물었다”면서 “노무현 정부는 공공병원 30% 확충을 내걸었지만 서울대병원처럼 껍데기만 있는 공공병원을 300%확대한들 뭐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김애란 서울대병원 지부장은 사측의 성실교섭과 노동부·교육부의 사태해결을 위한 개입을 촉구했으며 서울대병원이 공공병원으로서 제자리를 찾기 위한 시민사회단체의 연대를 요청했다.
한편 민주노총은 지난해부터 손배가압류가 ‘신종 노동탄압 수단’으로 악용된다며 노동관계법 개정 등을 통해 원천적으로 일소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민주노총은 실제 사측의 손해가 발생하지 않았는데도 노조가 감당할 수 없는 가압류를 제기하는 것은 정상적인 노조활동을 저해한다며 이같이 주장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