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시장 개방 심각하게 고려해야”
최인순 약사(의료개방저지 공대위 공동대표)
“외국병원의 내국인 진료허용은 민간의료보험 도입은 물론 가뜩이나 부실한 건강보험재정에 악영향을 미치게 될 것입니다. 결국 미국의 비보험 가입자들처럼 맹장수술조차 받지 못해 죽어야 하는 환자들이 발생될 수 있습니다.”
‘경제자유구역법 폐기와 의료개방저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의료개방저지 공대위) 최인순(44·개국약사) 공동대표는 최근 재경부가 국민경제자문회의에 보고한 교육·의료분야 개방에 대한 정책보고 내용에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정부의 경제자유구역내 외국병원의 영리법인화와 내국인 진료허용 움직임에 대해 최 대표가 우려하고 있는 점은 국내 의료체계 및 공보험 체제 붕괴다. 엄청난 규모의 의료비 지출증가 또한 최 대표가 염려하는 부분.
“인천에 외국병원이 생기면 현재 국내병원의 5~7배의 진료비를 받을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런 외국병원과 경쟁하려면 국내병원도 외국병원만큼 고급진료를 실시해야 하고 당장 외국병원과 비슷한 수준으로 진료비를 인상해야 합니다. 건보재정으로 이를 감당할 수 없으니 결국 대체형 민간보험 도입은 필연이며, 정부 또한 이미 민간보험도입을 정책방향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는 부유층이 건보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의미하며, 건보재정의 위축을 가져올 뿐 아니라 현재 의료비의 50%도 못되는 보험혜택은 더욱 축소될 것이라는 게 최 대표의 주장.
실제로 이중적 보험체계를 가진 남미 나라들은 상류층 10~15% 정도는 민간보험에 가입하고 있고, 대다수 서민들은 보험혜택이 훨씬 반감된 공보험에 남아 있는 상황이라고 최 대표는 강조한다.
그는 특히 외국병원 영리법인화 조치가 국내병원의 영리법인화를 불러올 것이며, 결국 의료비의 엄청난 앙등을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최 대표는 이와 관련해 이미 병협이 역차별 논리를 들어 국내병원의 영리법인화 허용을 주장하고 있고, 재경부장관도 이를 정책방향으로 밝힌 바 있다고 지적했다.
또 공정거래위원장이 발표한 “삼성의 기업도시 구상에 맞춰 기업식으로 운영되는 병원을 허용해줄 계획”이라는 방침에도 촉각을 세우고 있다.
“사립의료기관이 90% 이상이나 차지하는 한국은 매년 GDP 상승률의 2배 이상의 의료비 상승률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비영리법인으로 묶여 있는 지금도 돈벌이에 열중하고 있는 병원들이 아예 영리법인으로 전환하면 의료비 지출은 감당할 수 없이 커지게 될 것입니다.”
최 대표는 따라서 “우리나라에 지금 필요한 것은 고급진료나 병원의 경쟁력 강화가 아니라 국민 모두가 빈부에 상관없이 적절한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제도와 정책”이라고 강변했다.
정부는 국민의 의료비부담을 가중시키는 의료개방정책을 철회하고 공공의료강화와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선회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을 제외한 OECD 어느 나라도 의료부문을 WTO DDA의 주요협상대상으로 삼고 있지 않고 있으며, 협상도 없이 일방적으로 의료개방을 추진하는 나라는 오로지 한국뿐”이라고 강조했다.
의료개방저지 공대위는 최근 이 같은 문제점과 우려 등을 정리한 14개 항목의 공개질의서를 이미 청와대와 재정부, 복지부 등 각 정부부처에 전달했다.
공대위는 이번 공개질의서에 대한 정부 측의 답변을 토대로 공청회를 개최해 반의료시장 여론을 조성해 나간다는 방침.
“의료시장개방에 대한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은 아직 밝혀진 바 없습니다. 그러나 각 부처의 업무보고나 경제자유구역법 등에서 간헐적으로 정부방침이 흘러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공청회 등 공개적인 방식을 통한 여론수렴에 적극 나서야 할 것입니다.”
최 대표에 따르면 의료개방저지 공대위는 경제자유구역내 교육·의료분야 개방과 관련한 입법안이 오는 9월 국회에 상정될 것으로 알려짐에 따라 시장개방에 반대하는 농민·교육·문화단체 등과 함께 공동투쟁을 전개할 계획이다.
“이 투쟁은 한국의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파괴시키는 시장개방저지, 반신자유주의적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외국병원의 내국인 진료 및 영리법인화 허용반대를 포함해 우선은 경제자유구역법 폐기가 반대투쟁의 핵심이 될 것입니다.”
최 대표의 주장처럼 공개적인 여론수렴 절차 없이 추진되는 정부의 의료개방 정책이 정당해 보이지만은 않는다.
무엇보다 정부정책에는 ‘외국병원의 상업적 주재’(모드3) 뿐 아니라 어느 나라도 허용하지 않고 있는 ‘외국면허의 국내인정’(모드4)까지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굴욕적 협상”이라는 비난까지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경제위기가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시장개방 이데올로기가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는 가운데 추진되고 있는 정부의 의료·교육개방 정책을 되돌리는 것은 결코 만만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최 대표의 주장처럼 외국병원 영리법인화와 내국인 진료허용이 국내의료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늦기 전에 철저히 따져봐야 할 때다.
최은택기자 (etchoi@dreamdrug.com)
2004.7.26 데일리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