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우병 환자 23명, 적십자사에 10억 규모 손해배상 청구”
’부실 혈액관리’한 적십자사에 집단소송 등 ‘후폭풍’ 시작
2004-07-30 오후 2:52:55
검찰의 대한적십자사 ‘부실 혈액 관리’ 수사 발표 후, 피해 환자들의 집단 소송 등 본격적인 ‘후폭풍’이 시작됐다. 먼저 오염된 혈액, 혈액제제로 인해 C형 간염에 걸린 혈우병 환자들이 집단 소송에 나섰다.
혈우병 환자 10억원 규모 손해배상 청구
혈우병 환우회 ‘한국 코헴회’와 한국질환단체총연합은 30일 오전 11시 안국동 느티나무 까페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그 동안 보건당국과 적십자사는 혈액이 C형간염에 노출돼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묵인하고 제약사에 혈액을 공급해 왔다”며 “이들의 비윤리성을 바로잡기 위해 C형간염에 걸린 혈우병 환자들이 이번에 소송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법률 사무소 ‘정률’의 우광필 변호사는 “혈우병 환자들이 정부, 적십자사, 제약사 등의 혈액관리 책임을 추궁하며 10억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기로 했다”며 “30일 1차로 C형 간염 바이러스에 감염된 혈우병 환자 23명이 10억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내기로 했다”고 밝혔다.
우광필 변호사는 “1차 소송에 이어 8월말 2차 집단 소송도 예정돼 있다”며 “혈우병 환자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지만 혈우병 환자들과 국민들에게 안전한 수혈과 혈액제제의 공급을 보장하기 위해 어려운 소송을 진행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현재 국내 혈우병 환자 세 명중 한 명이 C형간염 바이러스에 감염돼 있다. 또 그 중 1백45명은 C형간염 발병 환자로 파악된다. C형간염은 일반인의 감염률이 0.5~1.5%에 불과하고 C형간염 감염 경로의 80% 이상이 혈액 등에 의한 직접 감염이어서, 혈우병 환자들이 혈액 응고인자를 투여 받는 과정에서 오염된 혈액제제에 의해 C형간염 바이러스에 감염돼온 것으로 추정돼 왔다. 이것은 2003년 기준으로 일본(52.02%), 미국(29.17%), 영국(46.31%) 등도 혈우병 환자의 C형간염 감염 비율이 높은 데서도 알 수 있다.
검찰은 29일 BㆍC형간염에 오염된 혈액이 수혈돼 5명이 C형간염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실을 확인했으며, 보건복지부는 지난 22일 BㆍC형간염에 양성 반응을 보인 혈액이 수혈용으로 2백5건, 혈액제제 원료로 4백80건 유통됐다고 확인한 바 있다.
”혈액제제 감염 책임져야”-”문제 없다” 대립
이번 소송을 맡은 우광필 변호사는 “C형간염에 감염된 혈우병 환자가 집단소송을 낸 것은 세계 최초”라며 “영국, 아일랜드, 캐나다 등에서는 이런 소송이 일어나기 전에 오염된 혈액제제나 수혈에 의한 C형간염 감염에 대해서 보상하기로 결정하거나 대책이 논의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광필 변호사는 “약사법에 따르면 ‘의약품 부작용 구제 사업’을 위해 그 재원을 제약회사로부터 충당하기로 돼 있으나 어떻게 된 이유인지 아직까지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이 마련되지 않았다”며 “보건당국과 제약회사가 혈우병 환자들의 피해에 좀더 적극적으로 나섰다면 소송까지 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소송에 대해서 보건당국과 제약회사는 “큰 문제가 없다”는 반응이어서 향후 귀추가 주목된다.
보건당국과 제약회사 등은 “1989년부터 C형간염 및 AIDS 바이러스를 불활성화 처리하는 방법이 도입돼, 1990년대 이후에 혈우병 환자에 대한 혈액제제로 인한 오염은 사실상 없다”는 것이 공식적인 해명이다. 1990년대 이전에는 C형간염에 대한 존재 자체를 인지하지 못해 불가피한 상황이었고, 그 이후에는 피해 가능성이 없다는 지적이다. 국내 헌혈 혈액에 대한 C형간염 검사가 시작된 1991년에 국내 혈우병 환자의 감염률은 61.5%에 달했으나, 현재는 점점 줄어드는 추세도 이런 논리를 뒷받침한다.
이에 대해서 혈우환우회와 우광필 변호사 등은 “불활성화 처리법이 바이러스를 100% 불활성화할 수 없다는 것이 학계에도 보고되고 있다”며 “2차 소송 때는 2003년에 집중적으로 혈액제제를 투여받아 C형간염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으로 짐작되는 혈우병 환자도 소송에 참여할 예정”이라고 반박했다.
C형간염에 대한 혈우병 환자 외에도 B형간염, 말라리아에 감염된 환자들도 집단소송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부실 혈액 관리’에 대한 ‘후폭풍’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시민ㆍ사회단체들은 제한적인 수사에 실무자만 불구속 기소한 검찰 수사 결과에도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이후 대응이 주목된다.
프레시안 강양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