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대받는 빈곤층 건강 ”불평등시대” [환자주권 스스로 찾자]②갈길먼 의료접근권
“빈곤은 질병을 낳고 질병은 빈곤을 낳는다.”
학계와 시민단체는 우리나라 공공의료기관 비율이 8.06%에 그치는 등 공공의료 기반이 취약해 건강상 부익부 빈익빈이 심화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임준 가천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16일 “빈곤이 모든 질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라며 “저소득층은 주거환경이나 영양상태가 처질 뿐 아니라 건강정보 접근성도 떨어져 사회에서 섬처럼 고립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소득 차이에 따른 건강 불평등을 조사 중인 그는 “정부가 하위 소득계층의 의료 접근성을 보장하기 위해 지역거점병원을 중심으로 한 2차 진료기관, 요양병원에 집중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암 사망률로 본 빈부차
지난 2월 발표된 가천의대 예방의학과 정창수씨의 박사 학위논문 ‘소득계층에 따른 암 발생 추이’는 한국인 사망원인 1위로 꼽히는 암 사망률의 빈부 격차를 보여준다. 정씨는 직장건강보험 남성 가입자의 2001∼2002년 자료를 토대로 5개 소득계층군으로 나눠 계층별 암 사망자 수를 비교 분석했다.
자료에 따르면 최하위 계층의 10만명 당 암 사망자 수는 185.2명으로 최상위 계층 153.9명보다 약 32명이 많았다. 최하위 계층은 22가지 암 가운데 15개(68%)에서 사망자 수가 다른 계층에 비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최하위 소득계층은 값이 1을 넘으면 표준인구보다 더 많은 사망자가 발생하는 것을 뜻하는 표준사망비에서도 평균 1.25를 기록, 다른 계층을 앞섰다. 정씨는 이 같은 ‘건강 불평등’을 해결하려면 국가의 암 관리사업이 소득계층별 특성을 고려한 구조적 접근을 벌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1999년부터 저소득층인 의료급여 수여자를 대상으로 5대암 무료검진 사업 등 암 관리사업을 펼쳐왔지만 실제 재정적 도움을 줄 수 있는 혜택은 오히려 줄이고 있다는 지적이다.
보건복지부는 2002년 장기환자를 줄인다는 방침 아래 의료급여 대상자의 급여일수 상한을 365일로 제한하고, 1종 의료급여 대상자의 입원식비 일부를 본인부담으로 돌렸다. 소화제와 영양제 등 1400개 의약품을 보험적용 대상에서 제외했고 지난해 1회 입원일수를 60일로 제한했다. 이어 1종 대상자 자격을 61세 이상에서 65세 이상으로 높였다.
◆냉대받는 의료급여 환자
의료급여 대상자인 이모(65·서울 구로구) 할머니는 최근 골다공증 진료를 받기 위해 병원을 찾았다가 K의원 등 인근 병원 3곳에서 진료를 거부당했다. 병원들은 “골다공증 기기가 고장이 났다”, “수술 받으려면 입원해야 하는데 예약이 밀려 안 된다”는 변명만 늘어놓았다. 한 병원은 골다공증 검사 안내문을 문앞에 붙여놓고도 이 할머니에게 “그런 검사 안 한다”고 둘러댔다. 이 할머니는 결국 복지센터의 도움으로 집에서 멀리 떨어진 병원을 소개받아 치료를 받아야 했다.
괴사로 광주광역시 J병원에 입원한 의료급여 대상자 송모(71)씨는 지난달 중순부터 퇴원하라는 병원측 요구에 시달리고 있다. 한 의료급여환자는 의료급여증으로는 수술과 입원을 할 수 없으니 일반으로 하되 대신 병원비를 할인해 주겠다는 제안을 받았다고 한다. 같은 질병이라 해도 의료급여환자는 일반환자에 비해 질 낮은 서비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들의 한결같은 불만이다.
시민단체 ‘건강세상네트워크’ 김창보 사무국장은 “건강의 빈부격차가 다음 세대로 대물림되고 있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며 “국민의 건강권 확보 차원에서 공공의료서비스의 확대가 시급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