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깔 논쟁, 역사속에 남기겠다”
제주의대 이상이 교수
▲ 최근 색깔론 논쟁에 휘말린 제주의대 이상이 교수
이상이 교수를 만난 건 이날이 처음이었다.
고경화 의원의 이 교수에 대한 ‘색깔론’ 제기로 인해 대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진보의련 사건이 다시 수면위로 떠올랐다. 사건의 중심에 서 있는 이 교수를 만난 건 색깔론 파문이 있은 지 이틀 후였다.
이 교수는 아직까지 충격에서 헤어져 나오지 못한 듯, 그간의 이야기를 조금은 흥분된 억양으로 늘어 놓았다. 그도 그럴 것이 3년간 그를 짓눌럿던, 이제야 겨우 잊혀질만하던 진보의련과 국가보안법의 짐이 그에게 다시 지워졌기 때문이다.
“고경화 의원, 내심 반가웠는데…“
보건복지분야 국정감사의 최대 피해자가 되어 버린 이상이 교수는 다른 무엇보다 고경화 의원이 자신을 겨냥했다는 데 충격과 허탈감이 컸다. 이 교수와 고 의원은 김대중 정부시절, 새천년 민주당과 한나라당에서 보건복지전문위원으로 각각 하면서 일해 온 사이다.
”고경화 의원이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당선됐을때 ‘정책 전문가가 들어가서 잘 됐다’며 내심 반가워했는데 나를 겨누는 저격수가 될지는 몰랐습니다.“ 그래서 서운함이 더 큰 것 같다. 울산의대 조홍준 교수가 이번 사건을 보고 ‘정치가 무상하다’며 보낸 메일까지 보여준다.
한편으론 고 의원의 단독 범행(?)이 아니라 ‘색깔 논쟁’을 국정감사의 전략으로 택한 한나라당의 방침에 초선인 고 의원이 어쩔수 따랐을 것이라며 이 교수는 애처로운 합리화를 펼치기도 했다.
진보의련 사건 3년 되던 날- 악몽이 되살아나다
마침 기자가 이 교수를 만난 날은 진보의련 사건이 터진지 정확하게 3년째 되는 날이었다.
“3년 전인 2001년 10월 8일 오전 8시경, 전날 늦은 연구로 늦잠을 잤는데, 사람들이 문을 두드리더라구요. 잠에서 덜 깬 채로 문을 열자 마자 연행돼 경찰청 서울 홍제동 공안분실로 압송됐습니다.”
이때부터 그의 고초는 시작된다. 법원이 두 번이나 구속영장을 기각했기에 신변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으나 최초의 보건의료관련 조직사건이자 최후의 조직사건인 진보의련에 연루된 그가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이 교수는 재판으로 거의 매달 제주도에서 서울까지 왕복해야 했으며 연구활동에 제대로 전념할 수가 없었다. 특히 경찰에 연행된 당시 공안분실에서 본 자신의 신상에 대한 모든 자료들과 감청 기록들은 그의 행동반경을 축소시켰으며 그의 뇌리를 떠나지 않고 늘 그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재판받는 동안은 공식적 대외 활동을 거의 하지 못한 시기였습니다. 시민단체 활동마자도 그 단체에 부담을 줄까 싶어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못했습니다.”
경희의대 재학 당시 서울 하계동 판자촌 의료봉사를 시작으로 졸업 후에도 전남 순창에 ‘의활’을 다니는 등 꾸준히 사회와 의료의 접점을 찾아온 그에게 진보의련 사건으로 인한 3년은 고통 그 자체였다.
때문에 사회적 논쟁을 겪고 있는 국가보안법에 대해서 그는 ‘폐지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한다. 처음에는 ‘일부 조항을 개정하면 되겠지’라고 막연히 생각했으나 직접 당해보니 무조건 폐지가 맞단다.
“젊은 의사들이 특히 어려운 것 같다”
다른 답이 나올 줄 알고 “요즘 의료계가 어렵다는 데…”라고 질문을 던졌더니 “맞다”는 대답이 튀어나온다. 이 교수는 “다수의 젊은 의사가 특히 어렵다. 한편으론 먼저 자리를 잡은 선배 의사들 중 많은 분들은 부유하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의사들의 빈부격차 심하다는 것. 그는 의사들의 빈부격차가 국가 전체의 빈부격차만큼이나 크다고 단언하다. 최근 그는 이와 관련된 연구를 하고 있단다.
그러나 해결책은 기존 의료계와는 조금 다른 것 같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지금의 ‘파이(국민의료비)’를 합리적으로 나누고 건전하게 관리만 잘 해도 의사의 수입은 도시근로자 평균의 4-5배 수준은 충분히 보장된다. 문제는 적절한 배분이 되지 않고 일부에 지나치게 많이 쏠리면서도 전체적으로 낭비적인 부분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파이를 키우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님을 보여준다.
“앞으로 파이를 일정부분까지 좀 더 키울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합니다. 이제는 동네의원이 질병예방 및 건강증진 활동과 상담까지 수행하는 주치의 제도를 도입하면서 파이를 늘려달라고 요구해야 합니다. 주치의 제도를 도입하면 국민들도 의료비가 조금 더 늘어나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을 겁니다. 그 동안 충족되지 못하던 새로운 서비스가 추가되니까 말입니다”
그는 동네의원들이 주치의 제도를 통해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금처럼 감기환자가 몰리고, 의원 환자의 절대적인 부분을 차지하는 현실은 모순이라는 것이다. 동네의원들이 주치의 역할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고 합리적으로 파이를 키우고 나눈다면, 예방을 통해 전체 비용은 줄고 파이는 더욱 커지는 효과를 낳게 될 것이다. 의원이 인테리어와 의료기기 사는데 몇 억씩 빚을 져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어서는 안된다. 국민건강을 위해서도 이것은 아니다.
진보의련 사건은 상징성이 크다. 국가보안법의 존폐 문제와도 보건의료계의 치열한 이념 및 정책 논쟁과도 무관치 않다. 이에 이 사건은 향후 몇 년 아니 몇 십년 역사 속에 남을 것이다.
이상이 교수를 앞으로 자주 보게 될 것 같다.
장종원기자 (jwjang@medigatenews.com)
기사등록수정 일시 : 2004-1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