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존스홉킨스 분원에는 미국 의사가 없다?”
위기의 한국의료, 어디로 가야 하나 <3> 동북아 ‘의료허브론’의 진실
2004-11-16 오전 9:09:52
경제자유구역 내에 외국 영리 병원을 유치하고, 내국인도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하는 재정경제부의 ‘경제자유구역법 개정안’이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6일 국무회의에서 통과가 유력시된다. 재경부가 개정안을 추진하면서 가장 즐겨 들었던 사례는 ‘의료허브 싱가포르’와 외국 영리 병원을 유치하고 있는 중국이었다.
그렇다면 싱가포르와 중국에서는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재경부 말대로 싱가포르와 중국에서는 정부가 직접 나서서 해외 환자와 외국 영리 병원을 유치하고, 내국인까지 외국인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을까? 가천의대 예방의학과 임준 교수가 직접 싱가포르와 중국을 방문해 사실을 확인한 결과, 실제는 재경부의 주장과 너무 달랐다. 재경부의 ‘뻔뻔한 거짓말’이 드러난 것이다.
한 가지 더 지적하자면, 재경부도 보건복지부도 우리와 보건의료 환경이 비슷한 대만이 어떻게 의료보험제도를 개혁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었다. 우리보다 전국민의료보험제도의 역사가 짧은 대만은 최근 오히려 보장성을 확대하고 의료보험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정책을 의욕적으로 추진해 전 국민의 신뢰를 받고 있다.
임준 교수가 재경부가 어떻게 국민과 대통령을 비롯한 정책 결정권자를 속여왔는지 <프레시안>에 기고문을 보내왔다. 임준 교수는 “싱가포르나 중국을 따라할 께 아니라 대만이 어떻게 국민을 위하는 보건의료 개혁에 나서고 있는지를 배워야 한다”고 권고했다. 편집자.
재경부의 ‘뻔뻔한 거짓말’, 재경부 ‘동북아 의료허브론’의 진실
경제자유구역법 개정을 둘러싸고 의료시장개방에 대한 찬ㆍ반 양론이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의료시장 개방을 주도하고 있는 재정경제부의 적극적인 행보가 논쟁을 더욱 뜨겁게 만들고 있다. 최근 재경부가 해외환자 유치 전략으로 동북아 허브병원을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고 그 일환으로 내국인 진료와 영리법인 허용을 골자로 한 경제자유구역법 개정안을 밀어붙이고 있는 일련의 상황이 바로 그것이다.
재경부는 경제자유구역법 제정 당시 외국인 편의시설 목적으로 추진되어 온 외국인 병원을 해외 부유층을 대상으로 한 동북아 허브병원으로 재편해야 한다는 주장을 지속적으로 펼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의 근거로 재경부는 싱가포르와 중국의 사례를 들고 있다. 싱가포르와 중국이 해외 환자를 유치하기 위하여 정부가 적극적으로 의료시장을 개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재경부의 주장은 객관적인 사실도 왜곡하고 있을 뿐 아니라 특정 사실을 과장하거나 각 국의 특수한 상황과 조건을 의도적으로 무시함으로써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있다. 그 실체적 진실을 하나씩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의료허브 싱가포르,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환자가 대부분”
먼저, 싱가포르를 살펴보자. 싱가포르 보건부의 연례보고에 의하면 2002년 한 해 동안 1만3천5백76건의 해외 환자 입원과 6천8백5건의 외래수술이 이루어지고, 연간 4천억 원 이상의 수입을 올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결과만 보면 싱가포르가 해외 환자 유치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을 유추해볼 수 있다. 또한 정부가 말하는 의료허브 정책의 긍정성을 살펴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해외 환자의 국가별 분포를 통해 해외환자가 싱가포르에 오는 진짜 이유를 파악해 보면 이러한 현상이 싱가포르에 특수하게 발현되는 독특한 현상이라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2002년 한 해 동안 싱가포르에 방문한 해외 환자의 국가별 구성을 보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인접 국가가 전체의 70.5%를 차지하고 있고, 인접 국가에서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이 나머지를 차지하고 있다. 이것은 싱가포르 해외환자의 대부분이 의료 인프라가 취약한 인접 국가에서 유입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결과이다. 특히 싱가포르는 인접 국가와 오랫동안 문화적 교류가 활발하고 영어, 말레이시아어, 중국어 등이 공용어로 사용되고 있어서 의사-환자 관계에서 가장 큰 장벽이라 할 수 있는 언어 문제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도 해외 환자가 많은 이유이다.
”싱가포르 국립대학병원의 존스홉킨스 병원에는 미국인 의사가 없다?”
더욱이 싱가포르는 우리와 달리 해외환자를 위하여 별도의 시설과 법률적 규정을 두지 않고 있고, 자국민을 치료하는 기존 병원에서 해외환자 진료를 병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와 상황이 매우 다르다. 특정 병원이 아니라 싱가포르 일반 국민이 진료를 받는 모든 병원에서 해외환자를 상대로 진료활동을 수행하고 있고, 싱가포르의 자체 병원과 기술력으로 해외환자를 유치하고 있는 것이다.
재경부는 경제자유구역 내 미국의 유명 병원 유치 필요성을 역설하기 위해 싱가포르 국립대학병원의 존스홉킨스 분원을 예로 들고 있지만 이 역시 실제와 달리 매우 과장되어 있었다. 실상을 보면 존스홉킨스 분원엔 2명의 의사만이 근무하고 있고, 그것도 존스홉킨스의 핵심 의료 인력이 파견된 것이 아니라 싱가포르계 미국인이 파견되고 있을 정도로 기술 이전과 관련이 없으며, 단지 ‘브랜드’를 빌리기 위한 목적에서 설립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해외환자 유치를 위해 외국병원을 유치해야 한다는 주장의 논거로 싱가포르를 드는 것은 적절치 못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재경부만 모르는 싱가포르가 ‘의료허브’가 된 진짜 이유”
여기서 재경부 정책 담당자들이 간과하고 있는 싱가포르의 해외 환자 유치가 가능한 더 큰 이유를 살펴보자. 싱가포르의 강력한 공공보건 의료체계야말로 싱가포르가 인근 국가의 ‘의료허브’로 기능할 수 있는 진짜 이유이다.
싱가포르는 병상수 대비 74%에 달하는 공공병상을 통해 대다수 국민에게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저렴하게 제공하고 있다. 실제로 2002년 의료이용 점유율을 보면, 공공병원이 전체의 84%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공공보건 의료체계가 튼튼하게 자리잡고 있다. 그 결과 해외환자 유치와 민간병원의 영리추구 과정에서 나타날 수밖에 없는 부작용이 크게 부각되지 않는 것이다.
재경부는 이처럼 싱가포르의 공공보건 의료 인프라 수준이 높은 사실을 살짝 빼고, 단순히 해외 환자가 많은 이유만을 내세워 국민을 속이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입맛에 맞는 사실만 뽑아서 정책 결정의 근거로 삼으려는 태도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중국의 외국병원 유치 : 낙후한 의료체계의 불가피한 보완
중국을 보더라도 재경부의 논리가 실체적 진실과 거리가 멀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중국은 2000년 ‘중외합자ㆍ합작 의료기관 관리 실행법규’를 제정한 이래, 의료서비스 부문의 해외자본 및 기관 유치를 본격화하고 있다. 구체적인 사례로 2007년 일차 완공을 목표로 여의도 면적의 4배 규모에 달하는 상하이국제의료단지(SIMZ, Shanghai International Medical Zone)를 조성하기 위해 외국의 유명 병원과 협상을 진행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중국이 해외자본 유치를 통하여 합자ㆍ합작 의료기관을 수립하려는 정책은 중국의 낙후한 의료현실에 기초하고 있다. 현재 10%의 민간병원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병원이 정부가 운영하는 인민병원이다. 최근 이러한 인민병원에 대한 정부의 재정지원이 중단돼 독립채산제 형태로 운영되면서 각 인민병원의 경우 자본투자를 위한 외자 유치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또한 일부를 제외한 상당수 인민병원의 시설이 낙후하여 도시를 중심으로 양질의 의료에 대한 수요 급증을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면서 지방정부 차원으로 외자 유치 병원을 세우기 위한 경쟁적인 움직임이 커지게 된 것이다. 즉 중국의 해외자본 유치를 통한 의료기관 개설 확대는 해외 환자를 유치하기 위한 목적에서 추진되는 것이 아니라 낙후한 인민병원이 급증하는 고급 수요를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목적에서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외국병원이 중국에 관심을 가지는 진짜 이유는?
우리와 보건의료 환경이 전혀 다른 싱가포르와 중국의 예를 들어 해외 영리 병원을 유치하고, 외국인 병원에서 내국인을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하는 재경부의 안은 보건의료의 근간을 뒤흔드는 잘못된 정책이다. ⓒ연합뉴스
다른 국가와 달리 외국의 유명병원이 중국에 관심을 갖는 이유도 중국 내 고급의료에 대한 수요가 상당히 클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실제로 2002년 현재 합자ㆍ합작 의료기관으로 승인을 받은 기관이 18개소에 이르고 있고, 미국, 일본, 홍콩, 싱가포르, 대만 등에서 의료기관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려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특히 초기는 대부분 소규모 의료기관에 대한 투자에 국한되고 중국 거주 외국인이 주고객이었으나, 최근에 들어와서 중국 부유층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합작병원의 설립이 추진되고 있는 추세다.
물론 최근 조성되고 있는 대규모 국제의료단지는 해외환자 유치까지를 목표로 하면서 서양의학과 중의학의 결합을 통한 시너지 효과가 발휘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으나, 의사소통의 문제를 제외하더라도 중국의 의료 수준에 대한 불신이 크다는 점에서 비관적 견해가 지배적이다. 특히 중국에 투자를 확대하고 있는 외국병원의 시각에서 중국 부유층만을 대상으로 하더라도 충분한 시장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해외 환자 유치를 목표로 삼을 이유가 없다는 점도 현실적인 이유다.
이와 같이 중국의 해외 자본 유치를 통한 의료기관 개설은 인구에 비해 의료공급이 양적으로 부족할 뿐만 아니라 질적으로 낙후한 상황에서 급증하는 고급의료 수요에 대처하기 위한 성격이 강하다는 점에서 우리의 상황과 매우 다르다. 따라서 중국 부유층을 염두에 둔 경제자유구역 내 외국병원의 설립은 그 실효성을 거두기 어렵다. 자국민의 고급의료 수요를 위해 해외 자본을 끌어들여 대규모 병원을 짓고 있는 상황에서 경제자유구역이 들어서는 2008년이 되면 대부분의 중국 수요는 자체적으로 해소될 가능성이 크다.
더욱이 전체 인구의 60%가 넘는 농민과 도시 거주민의 50% 이상이 의료보험체계의 붕괴로 인하여 의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중국의 현실에서 과연 고급의료 수요 해결을 위해 외자 유치 병원의 설립이 타당한가에 대하여 근본적인 물음을 던질 필요가 있다. 어찌 보면 이러한 의료시장개방 정책이 중국의 대표적인 정책 오류로 평가될 수도 있는 부분이다. 이러한 측면에서도 중국의 사례는 결코 우리에게 긍정적인 대안이 되기 어렵다.
”싱가포르나 중국보다도 대만을 따라가야”
오히려 싱가포르와 중국과 달리 우리와 사회경제적 수준과 보건의료 환경에서 유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대만에서 최근 전개되고 있는 유의미한 변화는 우리에게 훨씬 더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우리보다 전국민의료보험의 역사가 짧은 대만은 훨씬 더 포괄적인 보장성을 달성하고 국민의 신뢰를 한 몸에 받고 있다. 더구나 대만은 총액계약제 등 의료보험 개혁을 통하여 의료비의 증가를 적정하게 관리하고 있어 신선한 충격을 준다.
공공병원 등 공공의료의 인프라는 아직 우리와 비슷한 수준에 머물고 있지만 의료보험의 보장성이 월등하게 높아 의료의 공공성 수준에서 대만과 한국의 격차가 점차 벌어지고 있는 현실은 우리가 가야할 길이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보건의료체계와 보건의료 환경이 너무나 다른 나라에서 전혀 다른 배경 하에 이루어지고 있는 정책을 근거로 삼기보다 유사한 조건에서 의료의 보장성과 공공성을 지속적으로 강화해 나가고 있는 대만의 사례를 교사로 삼는 것이 우리에게 더 필요한 일일 것이다.
임준/가천의대 예방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