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데 돈이 없다구요? 그럼 죽으십시요

아픈데 돈이 없다구요? 그럼 죽으십시요  
보건의료인 비상시국선언 “11/16 국무회의 통과 법안을 원점에서 재논의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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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은영 기자  

의사들이 순백의 의료 가운을 태웠다. 이 땅의 공공의료가 사라지는 상황에 대한 참담함을 가운을 태우는 퍼포먼스로 대신한 것이다. 11월 21일 ‘병원 영리법인화 및 의료시장화 반대, 경제자유구역법 개정 법률안에 반대’하는 50 여 명의 보건의료인들은 국회 앞에서 비상 시국선언을 갖고 “국민적 공론화도 없이 국무회의를 통과한 특구법 개정안에 대해 반대 의사를 천명하고 원점에서 재논의 하라”고 요구했다.

의료가 상품이 되고, 보건의료인이 자본의 하수인이 되고

대회사를 한 최인순 보건의료단체연합 집행위원장은 “공공의료가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하고 보건의료인들이 자본의 하수인으로 전락하게 됐다. 이경해 열사가 쌀개방에 맞서 할복한 그 처절한 심정으로 오늘의 사태를 맞는다”라며 참담함을 표현했다.

규탄 발언을 한 이진석 의사는 “참담한 심정이다. 이 법은 국내 의료 시스템을 완전히 바꿔 놓을 엄청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아니라고 말하면서 국민들을 속이고 있다. 이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작태”라고 꼬집어 말했다.

자리에 참석한 배남순 의사는 “우리는 OECD 최하위 공공의료 시스템, 전쟁참여정부, 공무원 때려 잡는 정부, 공공의료 해체 구역법과 부자들만을 위한 민간병원 설립을 보장하는 비정한 현실과 살인을 허용하는 비정한 정부를 믿을 게 없다. 투쟁은 오늘부터 시작이다”라며 향후 투쟁의 의지를 공고히 했다.

특구지역, 외국인 병원에 내국인 진료 허용

정부는 지난 11월 16일 이해찬 총리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어 수익성 보장을 통해 외국 병원의 경제자유구역 내 유치가 가능해지도록 `경제자유구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을 의결했다. 내용 중에는 외국인 및 외국법인이 주체가 돼 경제자유구역 안에 설립하는 종합병원, 일반병원, 치과병원, 요양병원은 내국인을 대상으로 의료업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추가적으로 △외국인 병원의 영리법인화 △국민건강보험 의무 제외 △의료비 5-7배 인상 인정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외국병원 유치를 이유로 특구 내의 병원에는 국내 병원에게 의무적으로 적용되는 공공의료에 대한 책임 규제 조항들이 완화되는 것이다.

이와 관련 해 최인순 집행위원장은 “정부는 특구 지역에서만 적용된다고 하지만 병원협회가 이 법에 찬성한 이유는 이 법안의 확대 적용이 가능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제 병원들은 너도 나도 차별 서비스를 운운하며 국민건강 보험을 탈퇴하고 고액 손님 유치 작전을 펼칠 것이다. 결국 영리법인 허용으로 의료비 폭증은 민중의 부담이 될 것이고, 건강 보험 탈퇴로 인해 건강보험 재정 위기를 불러 올 것이고 필연적으로 대체형 민간 보험 뿐만 아니라 국내 병원 영리화로 연결돼 결국 의료 시스템이 이분화 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최인순 집행위원장은 “이미 재경부는 지난 5월 재경부와 복지부의 부처간 합의를 통해 외국병원들과 MOU를 체결했다고 했다. 내국인 진료를 전제로 한 이러한 MOU가 국민적 공론화도 없이 어떠한 법적 근거도 없이 체결했는지, 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라고 이의를 제기 하기도 했다.

병원 영리법인화 반대! 의료개방 반대!

시국 선언문 낭독을 마치고 이날 자리에 참석한 보건의료인들은 입고 나온 자신의 의료 가운들을 태우는 상징의식을 가졌다. 하얀 의료 가운이 불타는 가운데 ‘공공의료가 무너지는 망국적 상황에서 자본의 하수인으로 의료인들이 전락할 순 없다. 민중의 생명을 지키고, 공공의료 보건 체계를 지키기 위해 투쟁에 나서자’라고 결의 했다.

이날 보건의료인들은 법안 저지를 위해 △ 22일 3시 결의대회 시작 천막 농성 시작(보건의료 노조와 의료인 연합) △26일 민주노총 총파업 동참 △28일 국회앞 집중 투쟁 (보건의료 노조, 사회보험 노조 연대투쟁) 등의 계획을 밝혔다.

[시국선언 전문]노무현정권은 반인권적 의료 붕괴, 건강파괴행위를 중단하라  
  
지난 11월 16일, 우리는 참으로 참혹한 소식을 접했다. 한국 보건의료 시스템의 붕괴를 막기 위한 우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정권은 이날 국무회의를 통해 경제자유구역 내 외국인 병원의 내국인 진료를 허용했다. 이제 영리병원의 허용, 민간의료보험의 도입 등 의료가 시장 확대는 물꼬가 트이기 시작한 것이다. 어찌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렀단 말인가!

대통령 노무현은 대통령으로서 국민과의 약속을 가지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 선거당시 ‘돈이 없어 치료를 못 받아 죽는 국민이 있는 나라는 나라도 아니라’고 말하며 공공의료를 30% 까지 확대하고, 의료보장성을 80% 까지 확대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러나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와 공공의료를 확대하겠다는 공약은 말만의 약속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지금도 서민들은 아파도 돈이 없어 병원에 못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노무현 정권은 자신의 공약을 충실히 이행하려는 모습을 보이기는 커녕, 한국의 보건의료 시스템을 파멸로 몰아갈 정책을 입안하려 하고 있다. 이번 경제자유구역법 개정안은 외국병원의 내국인 진료를 허용하는 것 분 아니라, 병원의 영리법인 허용, 건강보험 배제를 통한 민간의료보험 도입 등 그나마 우리 의료의 공공성을 유지하여 주던 제도적 장치를 무력화 시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가뜩이나 취약한 우리나라 의료제도의 공공성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인 의료기관 비영리법인제도와 의료기관 건강보험 당연지정제에 예외를 도입하는 것은, 결국 전국적인 의료기관의 영리법인화와 공적 사회보험의 축소, 대체형 민간의료보험의 도입을 불러올 것임이 자명하다. 이미 정부는 기업도시에서도 사실상의 영리법원 허용을 추구하려 하고 있고 의료법 개정도 시도하려 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노무현 정부는 경제불황을 내세워 모든 것을 시장화하고, 국민의 건강을 국내외 자본에게 팔아 넘기려 하고 있다. 노무현 정권은 민중의 생명, 시민의 건강이 아니라 국내외 병원 자본의 이윤과 부유층만을 위한 의료를 추구하고 있다. 무지와 거짓에 기초한 경제자유구역법 개악안을 만들고, 건강을 국민의 권리가 아니라 단순한 상품으로 치부하는 재정경제부, 국민의 건강을 공수표에 가까운 몇 푼의 돈과 맞바꾼 보건복지부, 그리고 의료 뿐만아니라 교육, 문화 등 우리의 삶 전체를 시장화하려는 노무현 정부가, 우리를 다시금 거리에 서게 하였고, 다시 이 거리에서 국민과 함께 투쟁하도록 강제 하고 있다.

우리는 대통령을 지켜냈던 지난 2월을 기억한다. 그러나 정녕 활활 타올랐던 촛불의 그 열기는 초겨울 싸늘히 배신당하고 말았다. 4대 법안으로 개혁 세대의 정서를 볼모로 잡아 두면서, 노무현 정권은 국내외의 자본의 이해를 충실히 대변하는 신자유주의적 정책으로 일관하고 있다. 민주화를 요구하는 우리의 열망을, 헌법재판소의 결정과 4대 법안의 틀거리에 묶어 두려는 노무현 정권의 정략적 술수는 이제 종식되어야 한다.

우리는 건강보험 통합, 건강보험 국고지원 확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민간의료보험 도입 반대, 의료급여 확대 등 민중의 건강권을 지켜내기 위해 쉬지 않고 투쟁해 왔다. 이제 우리는 영리병원 도입과 민간의료보험 도입에 따른 건강보험 붕괴라는 최악의 상황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는 보건의료인으로서 우리의 존재의미를 없애버리는 것이다. 우리는 보건의료인의 소명이 국민의 건강을 지켜내는 것이라고 믿어왔고 지금도 그렇게 믿는다. 보건의료인이 이러한 소명을 저버리고 제도적을 자본의 노예가 되어 서민들의 아픔을 외면할 수 밖에 없게 되는 순간, 우리가 보건의료인이라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의료 공공성의 최후의 보루가 붕괴되려는 지금, 우리는 투쟁의 역사 속에서 지켜온 의지를 다시금 모아 내려한다. 보건의료인으로서 우리는 신자유주의의 구호가 아니라 민중의 인권과 삶의 가치를 믿는다. 우리의 힘은 시장적 경쟁력이 아니라, 인간과 생명에 대한 애정과 연대성에 기초한다. 우리는 국민의 건강한 삶, 건강한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뜨거운 의지로 싸워나갈 것이다. 우리는 오늘의 선언으로부터 시작해 국회 앞 농성투쟁, 대규모 대중집회 등의 방법으로 우리의 의견을 표명할 것이며, 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를 막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실질적 투쟁을 전개해 나갈 것이다. 국민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우리의 싸움에 타협은 없다.

우리의 요구
1. 정부는 경제자유구역법 개악안을 즉각 폐지, 철회하라
2. 무지와 거짓에 기반한 경제자유구역법 개악안을 발의한 경제부총리 이헌재는 즉각 사퇴하라.
3. 국민의 건강을 포기한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은 국민에게 사죄하라.
4. 국회는 우리 의료제도의 붕괴를 초래할 경제자유구역법 개악안을 거부하라.  

2004년11월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