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막농성이 여의도 국회를 점거하다˝
△ 7일 오후 여의도 국회 앞을 가득 메운 시민사회단체들의 천막농성텐트. 현재까지 국가보안법 폐지, 사립학교법 개정, 과거사 청산, 언론개혁 등을 요구하는 17개의 천막이 들어선 상태지만, 국회는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김미영 기자
[현장] 한겨울 길바닥에서도 식지않는 여의도 천막농성 열기
국회의사당이 마주 보이는 서울 여의도 국민은행 앞. 지난 6일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내린 뒤 쌀쌀한 날씨가 연일 이어지고 있지만, 이 곳에는 비바람에 쓰러질 것 같은 천막들이 줄지어 서 있다. 특히 이날은 열린우리당이 5일 국회 법사위에 기습 상정했던 국가보안법 폐지안의 연내 처리를 유보하기로 한 탓인지 여의도를 가득 메운 천막 농성장의 열기와 농성자들의 결의는 오히려 뜨겁다.
‘입법기관인 국회에 대한 기대 때문일까’. ‘민주화의 진전 때문일까’ 언제부터인가 명동성당 들머리를 메웠던 천막들이 이곳 여의도로 옮겨졌다. 명동성당 쪽의 ‘천막농성 불허’ 방침 탓도 있겠지만, 여의도에서 천막농성을 해도 강제철거 등의 탄압(?)이 예전만큼 가혹하지 않은 점도 한몫 거들었다. 이 곳에서 36일째 단식농성을 진행하고 있는 송현석 한국청년단체협의회(한청) 정책위의장은 “1년 전만해도 여의도 농성은 상상할 수 없는 권역이어서 명동성당이나 조계사 등 종교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며 “민주주의 발전과 시민의식이 높아져 천막농성의 공간이 넓어졌지만 여전히 국회의 벽은 높다”고 말한다.
입법기관인 국회를 압박하기 위해 여의도에 천막을 쳤지만, 시민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국회의원들의 모습은 찾기 힘들다고 한다. 참여민주주의가 안착되지 않은 탓이다. 요즘처럼 수백여 개의 시민단체들이 13동의 천막을 보호막 삼아 국회가 있는 여의도를 ‘점거’하고 있는 진풍경은 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다. ‘국가보안법 폐지’, ‘언론개혁’, ‘사립학교법 개정’, ‘과거사 청산’ 등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4대 입법안’을 비롯해 ‘비정규직 차별철폐’, ‘장애인이동권 보장’, ‘성매매여성 생계보장’ 등 요구사항도 다양하다.
국회를 기준으로 왼편으로는 ‘전국공무원노동조합’, ‘한총련 단식농성단’, ‘한청 농성감옥’, ‘언론개혁 3대 입법 제·개정 쟁취 언론개혁국민행동’, ‘비정규노동법 개악저지와 노동기본권 쟁취를 위한 공대위’, ‘장애인이동권보장 법률제정과 장애인 교육예산 확보를 위한 공동농성단’, ‘민주노동당 시국농성단’, ‘사학법 개정을 위한 국민운동본부’,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민주노동당·한총련 등이 참여하는 ‘국가보안법 폐지 농성단’,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의료연대회의’, 통일연대·민중연대·미군기지평택평생대책위·민주노동당·평통사·민변이 참여하는 ‘용산협정 국회비준 반대·평택미군기지 확장반대 평택주민·시민사회단체’, ‘국가보안법 폐지 기독교운동본부’ 등 모두 13동의 천막이 자리 잡고 있다.
△ 국가보안법 철폐를 요구하며 36일째 모의감옥 안에서 단식농성을 진행하고 있는 송현석 한국청년단체협의회 정책위의장. 그의 몸무게는 현재까지 20킬로그램이나 빠져 건강에 적신호가 켜진 상태다. 김미영 기자
오른편 옛 한나라당 당사 앞에는 ‘과거사청산범국민회의’와 성매매여성종사자모임 ‘한터’, 7일부터 천막을 친 국가보안법 사수를 주장하는 ‘무한전진’ 등 3동의 천막이 위치해 있다. 또 우리당 당원모임의 ‘중단 없는 개혁을 위한 전국당원연대’의 천막도 들어섰다.
이 곳에서 300여 미터 떨어진 여의도공원에는 지난달 15일부터 한국노총과 전국택시노동조합·농협중앙회민주노동조합·하나로통신노통조합·한국통신산업개발노동조합 등 한국노총 비정규직연대회의 참여단체 공동천막이 서 있다.
이들의 요구내용은 각각 차이가 있지만 하루 일과는 비슷하다. 아침에 일어나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진행하거나 여의도역·천막 주변에서 시민 선전전을 진행한다. 매주 금요일 저녁 7시에는 촛불시위를 함께 진행하며, 장기농성을 하고있는 서로를 격려한다.
◇ 천막농성의 유래
천막농성의 시작은 1995년 7월19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5·18부상자회와 5·18유족회’ 소속 회원 20여명은 “5·18 관련자 처벌”을 주장하며, 서울 명동성당 입구 한쪽에서 천막농성에 들어갔다. 이들은 해를 넘겨 1996년 1월9일까지 무려 6개월간(175일) 차가운 시멘트 바닥 위에 있었고, 결국 ‘5·18특별법’ 제정을 이끌어냈다.
이후 천막농성은 봇물 터지듯 이어졌다. 명동성당은 예나 지금이나 사회적 약자들이 한계상황에 몰렸을 때 찾는 마지막 피난처 노릇을 톡톡히 했다. 1998년 5월부터는 퇴출은행노조, 만도기계노조, 전국건설일용직노조연맹, 한총련 등 10여개 단체가 여섯 동 천막 안에서 장기농성을 벌였다.
이처럼 한총련과 민주노총이 주축이 된 학생과 노동자들이 명동성당 들머리에 세운 천막은 성당의 부속품처럼 여겨질 정도였고, 명동성당이 ‘부당한 권력으로부터 약자를 지켜온 한국 사회의 보루’이자 ‘민주화의 성지’로 인정받는데 한몫했다. 1998년에는 영화인들이 한국 영화 사상 처음으로 명동성당 천막농성도 있었다.
하지만 천막농성을 바라보는 명동성당의 인식이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인 1998년부터 달라지기 시작하면서 시련을 맞기 시작한다. 당시 김성만 부주임신부는 “각종 단체들이 관행적으로 성당을 투쟁거점화하려고 해 문제”라며 “천막농성을 허락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정식허가를 요구했다. 실제 1998년에는 명동성당 평신도대표기구인 사목협의회(회장 김영철) 소속 신도 50여명이 농성중인 천막을 강제 철거한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 국가보안법 폐지를 촉구하는 기독교인들이 세운 천막. 뒤편으로 중단없는 개혁을 요구하는 열린우리당 전국당원연대의 농성천막이 보인다. 김미영 기자
이 때문에 1998년 이후 천막농성장의 중심이 명동성당과 조계사에서 소속 학교나 해당 사업장, 국회 주변(한나라당사 앞)으로 장소를 옮겨가기 시작한다. 그렇다고 ‘천막 아파트촌’을 방불케 했던 명동성당에서 천막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2000년에는 총선시민연대가 낙천·낙선운동의 일환으로 천막을 쳤고, 축협노조 역시 이 곳에서 천막농성을 진행했다.
2001년에는 수배해제를 요구하며 단병호 민주노총 위원장이, 2002년에는 보건의료 노조원 80여명과 발전노조 조합원이 파업에 대한 경찰 투입에 항의해 천막농성을 벌였다. 2003년에는 불법체류 외국인 강제추방과 정부의 파견근로제에 항의하는 이주노동자들과 건설연맹 산하 경기서부건설노조 조합원 등이 명동성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천막을 설치해 올해까지 농성을 이어갔다.
여의도에 처음 똬리를 튼 곳은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다. 이들은 1998년 11월4일부터 다음해 12월29일까지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특별법’과 ‘의문사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422일간 천막농성을 벌였다. ‘주5일(40시간) 근무제’와 ‘국가보안법 폐지’ 등을 요구하는 민주노총, 고용승계를 요구하는 150여명의 삼미특수강 노동자, 공기업 해외매각과 민영화에 반대하는 노동자, 근로복지공단 개혁을 요구하는 노동자와 농민 등 17동의 천막이 1999년까지 여의도 천막촌에 입주했다.
특히 올해는 여의도가 ‘천막농성장’으로 크게 각광받고 있다. 쌀 개방에 반대하는 농민들의 천막도 이곳에 세워졌었다. 10월25일 장애인이동권연대가 최초로 이곳을 불법점거(?)한 이후 국보법 철폐, 전교조, 비정규직 연대 등이 세운 천막이 입주하기 시작해 최근까지 10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세운 13개 천막이 여의도를 장악하고 있다.
이외에 덕성여대는 2000년 10월11일부터 2001년 12월31일까지 447일간 정문 앞에서, 2003년 4월 네이스(NEIS) 강행 철회를 요구했던 전교조는 청와대 앞에서, 올 7월과 9월에는 이라크 파병과 농산물 수입개방 반대하는 시민·사회단체들이 광화문 열린시민공원에 천막을 쳤다.
이와 별도로 환경단체들은 노무현 정부의 도롱뇽 소송 공사착공금지 가처분 신청 기각으로 공사 재개, 기업도시특별법 법사위 상정, 계룡산 관통도로 허가, 골프장 최소홀수기준과 면적기준 폐지 등에 맞서 지난 2일부터 광화문 열린시민공원에서 천막농성을 진행하고 있다.
◇ 천막농성의 이유
천막농성은 이들에게 있어 최선이 아닌 마지막 보루다. 농성자들이 한 겹 비닐의 불법건축물 천막에서 바닥에 깐 스티로폼, 가스난로 따위로 찬바람과 한기를 피하며 하루하루를 버틸 수 있는 힘은 ‘죽음’을 불사한 의지에서 나오고, 그에 상응하는 빛을 발했다. 때문에 예로부터 천막농성은 살아있는 민주주의, 민주주의 발전의 원동력으로 인정받았다.
참여정부가 들어섰고, 진보정당이 국회에 입성한 2004년. 시대가 변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약자에게 국회의 문턱은 높다. 가진 자, 힘 있는 자, 목소리 큰 자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정치’의 속성은 그대로다. 최근 논란이 되는 국보법 폐지나 언론개혁, 사립학교법 개정, 과거사 청산 등 4대 개혁입법을 비롯 비정규직 법안 역시 ‘가진 자’와 ‘가진 자’를 옹호하는 기득권층 때문에 뚜렷한 성과는 없다. 사상 유례없는 ‘천막촌’이 국회 앞에 진을 친 이유이기도 하다.
‘올바른 과거사법 제정’을 요구하며 지난달 2일부터 천막농성에 들어간 유가협 소속 허영춘 의문사유가족연대 연대장은 “예전에 국민은행 앞에서 400일 넘게 농성을 진행한 경험 때문인지 이곳에서 생활하는 것이 가장 편하다”며 “국회를 압박할 수 있는 공간이 이곳밖에 없더라”고 설명했다.
△ 올바른 과거청산법 제정을 요구하는 유가협 농성장 안. 422일간 천막농성을 진행했던 경험 탓인지 이들의 농성천막 안에는 취사도구가 마련돼 있다. 김미영 기자
김기룡 장애인이동권연대 선전국장은 “우리의 요구안 자체가 관련법 제정이기 때문에 국회 앞이 압력행사를 하기에 가장 적절한 장소라는 것을 알았다”며 “내부적으로도 효율적·즉각적인 상황에 대처해 다양한 전술을 마련할 수 있는 거점장소로서 효과적”이라고 천막농성의 장점을 설명했다.
국회에 대한 압력행사 외에 사안에 대해 의견을 달리하는 단체들의 천막농성 견제라는 두 가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세운 천막도 있다. 7일 국가보안법 사수를 목표로 여의도에 입주(?)한 청년 애국우파의 인터넷 커뮤니티 ‘무한전진(www.koreanist.net)’이 대표적이다. 박창규 무한전진 대표는 “국가보안법 폐지를 요구하는 좌익세력(이들이 말하는 좌익세력은 국가보안법 폐지를 요구하는 단체나 시민임)에 맞불을 놓고, 우리 스스로의 의지와 열정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판단 때문에 천막을 치게 됐다”며 “열린우리당이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겠다는 당론을 없앨 때까지 천막농성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 믿어지지 않는 기록
최장기간 천막농성은 2000년 10월11일부터 2001년부터 12월31일까지 대학개혁과 민주화를 요구하며 서울 쌍문동 학교 정문 앞에서 천막농성을 벌여온 덕성여대다. 이들의 농성은 무려 447일간 계속됐고, 결국 학내 민주화를 이뤄냈다.
△ 10월25일 여의도에 가장 먼저 천막 터를 잡은 장애인이동권연대의 김기룡 선전국장. 김미영 기자
그 다음으로는 민주화운동 유공자 명예회복과 의문사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유가협이 98년 11월4일부터 시작한 여의도 천막농성이다. 민주화운동 유가족 350명과 의문사 유족 50여명의 농성은 442일간 계속됐다. 이들은 비록 천막이 아니었지만 1988년에도 서울 기독교회관 2층에서 153일간 농성을 진행한 경험을 갖고 있기도 하다.
최근에는 이주노동자들의 천막농성이 장기간 이어졌었다. 이들은 작년부터 시행된 노동허가제와 외국인노동자의 불법추방에 항의하며 작년 11월15일부터 지난달 28일까지 380일간 명동성당 들머리에 세운 천막을 지켰다.
1996년에는 5·18 관련자의 처벌을 주장하는 5·18부상자회와 5·18유족회 소속 회원들이 광주에서 상경해 175일간 천막농성을 벌였다. 농성자 대부분이 50∼60대 노인들이지만 정부가 보상차원에서 무료진료 혜택을 주는 광주지역 병원에 내려가 치료를 받고 다시 올라와 농성에 참여하는 등 눈물겨운 싸움을 이어가 눈길을 끌었다. 특히 이들은 농성기간 동안 명동성당 입구에서 시민 20여만 명으로부터 5·18관련자 처벌을 촉구하는 서명을 받았고, 특별법 제정을 이끌어냈다.
여의도에 세워진 천막의 ‘불빛’ 역시 현재로선 언제 사그라지게 될지 기약할 수 없다. 농성자 대부분 요구안이 관철될 때까지 천막을 거두지 않겠다는 의사를 확고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허영춘 의문사유가족연대 연대장은 “노태우 정권 이후 군 의문사까지 거사 청산범위에 포함되는 올바른 과거사법이 제정될 때까지 천막농성을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김기룡 장애인이동권연대 선전국장과 송현석 한청 정책위의장 역시 “장애인등의 이동권보장법률안이 제정되고 국가보안법이 폐지될 때까지 천막을 지키겠다”고 강조했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