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사설 ‘건강식품 시장’ 병원에 맡길 일인가

‘건강식품 시장’ 병원에 맡길 일인가

병원이 ‘건강식품’을 수입하거나 판매할 수 있도록 관련법을 개정할 움직임이 있다. 그 명분은 병원이 겪고 있는 경영난을 덜어주자는 데 있다. 이는 문제의 ‘줄기’와 ‘가지’를 혼동한 데서 비롯된 그릇된 해법으로 보인다.

우선, 병원에 수익사업을 허용하겠다는 발상은 정도에서 벗어났다. 무릇 의료인에 요구되는 도덕성의 무게는 크다. 특히 이익을 도모하는 것은 ‘인술’의 본령에 어긋나는 것이다. ‘영리’와 ‘인술’은 속성상 양립할 수 없는 터다. 의료법의 법 정신을 다시금 되새겨볼 필요를 느낀다. 의료법은 의료인이 그 품위를 해칠 행위를 할 경우 자격을 정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법은 비도덕적 진료, 과잉 진료행위, 허위 또는 과대 광고, 영리 목적으로 환자를 유인하는 행위 등을 금지한다. 법 정신은 인술을 영리활동에 활용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에 뿌리를 두고 있다.

병원에 식품 거래를 허용하는 것은 상거래 질서를 어지럽힐 수도 있다. 공정한 게임의 원칙을 위협할 수 있는 것이다. 병원이 권유하는 식품에만 절대적인 권위가 따를 것이다. 식품의 효능을 의학적으로 연구하고 검증하는 것은 의료인의 책무다. 그러나 직접 상행위에 개입하는 것은 공신력을 스스로 훼손할 위험성이 크다. 의료계의 공인을 받기 위한 업계의 치열한 경쟁이 또하나의 비리사슬을 빚어낼 가능성도 없지 않다. 공인된 치료제의 채택을 놓고 벌어지는 병원비리를 떠올리면 건강식품 판매허용의 부작용을 짐작할 수 있다. 더구나 수익사업의 속성은 불필요한 부담을 환자에게 전가시킬 개연성도 부정하기 어렵다. ‘건강식품’ 시장은 급속도로 커지고 있다. 이권에 얽힌 혼탁이 예견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병원의 경영난은 사회적 책임이다. 그러나 경영 합리화를 통해서 그 해법을 찾는 게 순리다. 의보체계를 점검할 필요도 있다. 인위적인 ‘수익원’을 배려하는 것은 근본적인 답이 아니다.

2004. 12.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