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LCD 작업장 타이노동자 집단 ‘앉은뱅이병’

LCD 작업장 타이노동자 집단 ‘앉은뱅이병’

화성 제조업체 5명 유해용제에 중독
경기 화성시의 한 엘시디·디브이디 부품 제조업체 공장에서 타이 여성노동자 5명이 세척제로 쓰이는 유기용제에 무더기 중독돼 하반신이 마비되는 ‘다발성 신경장애’(일명 ‘앉은뱅이병’) 판정을 받았다. 특히 이들과 같은 증세를 보인 타이 여성노동자 3명은 발병 뒤 타이로 돌아갔으나, 현지에서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상반신으로 마비증세가 확대되고 있어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산재의료관리원 안산중앙병원 조해룡 원장은 12일 “하반신 마비 증세를 보여 입원한 파타라완(30·여) 추언총(29·여) 등 타이 여성노동자 5명에 대한 근전도 및 신경조직 검사 결과, 이들 5명의 증상이 ‘노말헥산에 의한 다발성 신경장애’로 판정됐다”고 밝혔다.

노말헥산(n-Hexane)은 냄새와 색깔은 없지만 독성을 지닌 유기용제로 세척제나 다른 공업용 접착제의 소재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보호장비 없이 신체가 노말헥산에 직접 노출될 경우 호흡기를 통해 신경조직으로 독성이 침투해 신경장애의 원인이 된다.

이번에 집단으로 다발성 신경장애 판정을 받은 이들은 경기 화성시 향남면 요리에 있는 엘시디·디브이디업체 ㄷ사의 밀폐된 검사실에서 하루평균 15시간씩 마스크나 장갑·안경 등 보호장비를 착용하지 않은 채 7개월~3년 동안 출하 직전 제품을 유기용제로 세척하는 작업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조 원장은 “초기에 근육무력증과 사지지각 상실 증세에 이어 거동이 불편한 하반신 마비를 거쳐 상반신 마비 등 전신마비로 이어진다”며 “최근 국내에서는 시화공단에서 재중동포 3명이 비슷한 증세를 보인 적이 있으나, 이렇게 집단적으로 노말헥산에 중독된 국내 사례는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타이 여성 노동자들이 집단 발병한 것은 지난해 11월 초다. 이들은 “검사실에서 작업을 하던 중 무릎이 아프고 저리다가 점점 다리에 힘어 없어져 일어나기 힘들어졌다”고 밝혔다. 파타라완은 “아침 8시30분부터 밤 10~11시까지 일할 때가 많았다”며 “일요일에도 쉬지 못하고 한 달에 한 번 쉬기가 어려웠지만 한 달 월급은 68만원이었다”고 말했다.

특히 이 가운데 씨리난(37·여) 등 3명은 거동이 어려워 동료들이 가져다준 음식을 먹는 등 어려움을 겪다 지난해 12월11일 회사 쪽이 마련해준 비행기표로 타이로 되돌아갔다. 타이인 근로자선교회 김남숙 선교사는 “씨리난 등 3명과 통화해 보니 상반신으로 마비 증세가 확대된 상태지만 돈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해당 ㄷ사는 “세척용제로 노말헥산을 사용한 것은 사실이며, 노말헥산이 신체에 이런 악영향을 주는지 사전에 몰랐다”며 “정확한 병명을 알 수 없어 일단 이들에게 휴식을 취하도록 조처했으나, 정확한 진단 결과가 나왔으니 회사에서 치료비를 부담하겠다”고 밝혔다.

박천응 안산외국인노동자센터 대표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보호장비도 없이 열악한 근무조건으로 내몬 결과”라며 “현재 전신마비로 확대되고 있는 3명의 타이 여성 노동자들도 데려와 치료받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산/글·사진 홍용덕 기자 ydh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