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망하게 쓰러진 하청 노동자
[한겨레 2005-04-19 01:03]
지하3층 기계실서 소음 시달리며 3년간 근무 “이제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겠습니다….” 18일 낮 12시10분께 전남대병원 응급실에서 이 병원 하청업체 노동자 한정열(29)씨의 담당 의사가 가족들에게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전남 영광에서 급히 올라온 한씨의 아버지(63)는 ‘약 때문에 생명을 잇고 있다’는 설명을 듣고 넋을 잃은 표정으로 “며칠 전 건강한 모습으로 집에 왔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전남대병원 하청업체 ㅈ사 소속 직원인 한씨는 17일 오전 11시께 응급센터 지하 3층 휴게실에서 쓰러져 의식불명 상태에 있다. 그는 16일 밤 10시부터 지하 3층 의료가스 공급실에서 근무한 뒤 아침 7시께 근무교대를 하고 지하 3층의 두 평 남짓한 휴게실에서 잠을 잤다. 한씨는 낮 12시께 동료들이 “점심 먹으러 가자”며 깨웠으나 의식을 잃어 병원 응급실로 옮겨졌으나 중태다.
전남대병원서 4조3교대 격무 시달려
의식불명 20대아들 보며 아버지 통곡 한씨는 전남대병원 기계실 관리 용역사인 ㅈ사 소속 직원으로 3년째 일해왔다.
송원전문대 토목학과를 졸업한 그는 전남대병원 기계실에서 4조 3교대로 근무하며 한달 평균 100만원 남짓(한해 1350만원)을 받았다. 한씨는 1500만원짜리 전세방에 살면서도 최근 ‘공조냉동기능사’ 자격증을 따려고 1차 시험을 치를 정도로 성실했다.
또 내성적인 성격으로 말이 없는 편이었다. 최근 실시한 종합검진에서 별다른 이상이 없었을 정도로 건강했다. 한씨가 일하는 응급센터 지하 3층 기계실은 모터가 돌아가는 소리 때문에 옆 사람의 말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하청직원들은 ㅈ사가 도급계약을 하기 전 기계실에는 47명이 일했으나 41명으로 줄어 노동강도가 세졌다고 말했다. 동료들은 도급업체 직원 40여명 중 한씨 등 8명을 제외하고는 노조를 줄줄이 탈퇴한 것도 심리적 압박감이 됐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ㅈ사는 다음달 30일 원청회사인 전남대병원과 재계약 결정 여부를 앞두고 있다.
보건의료노조 전대병원 하청지부 관계자는 “밤에 의료가스 공급실에서 혼자 근무할 정도로 근무여건이 열악해 과로로 쓰러졌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도급회사 ㅈ사 관계자는 “동료들의 말을 들어보면 한씨가 화장실에 가서 쓰러진 적이 있을 정도로 몸이 좋지 않았다”며 “다른 대학병원의 기계실과 비교하면 하루 8시간씩 근무할 정도로 여건이 좋은 편이다”고 말했다. 또 그는 “노조에 탈퇴하라고 압력을 넣었다는 것은 터무니 없는 주장이다”고 덧붙였다.
보건의료노조 전남대병원지부는 “지난해 9월 청소용역 위탁업체가 바뀌면서 미화원 63명 중 16명의 고용이 승계돼지 않아 해고됐다”며 윤영규 보건의료노조 위원장 등이 단식을 하는 등 한 달여 째 ‘하청 노동자 해고 철회’ 투쟁을 벌이고 있다.
광주/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