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산업과 건강
김진국(의사·신경과 전문의)
우리 국민들은 건강을 위해 한 해 도대체 얼마나 많은 의료비를 지출할까? 2003년을 기준으로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지출한 진료비는 거의 15조원에 이른다. 그런데 아파서 병원에 한 번이라도 가본 사람이면 누구나 경험한 일이겠지만 우리 보험제도에는 초음파검사를 비롯해서 보험혜택을 받지 못하는 항목들이 지천으로 늘려있어 환자가 직접 부담해야하는 본인부담률은 다른 OECD 국가와 견주어 볼 때 턱없이 높다. 공단에서 지불한 진료비에는 환자의 본인 부담금이 빠져있기 때문에 환자가 직접 부담한 진료비까지 포함하게 되면 보험제도 틀 안에서 한 해 지출되는 의료비는 족히 20조원은 될 것으로 추산할 수 있다.
높은 본인부담률 때문에 의료보험의 보장기능이 취약하다 보니 그 틈새를 노린 민간보험시장이 그 영역을 점점 넓혀가고 있다. 암보험과 같은 건강과 관련된 민간보험의 규모는 지난 해 이미 6조원을 넘어 선 상태이며, 앞으로 그 비중은 갈수록 커져갈 것이다. 게다가 음식과 약을 같이 생각하는 우리 민족의 습속에 기대어 건강기능보조식품 시장도 가파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건강기능보조식품은 그 개념이나 정의조차 불투명하여 시장의 규모를 정확하게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의사협회의 한 관계자는 지난 해 어떤 월간지와 인터뷰 과정에서 건강기능보조식품의 시장 규모를 대략 15조원 규모일 것으로 추정한 바 있다. 그 외 병·의원을 이용하는 과정에서 지출될 수밖에 없는 간접비용까지 더 하면 우리나라에서 의료비로 지출되는 비용이 어느 정도 규모일지는 어림짐작조차 하기 어려워진다.
하지만 이런 고비용 저효율의 낭비형 의료체계가 국민건강에 어느 정도 도움이라도 된다면 다행이겠으나 현실은 정반대다. 국민들이 의료인이나 의료기관을 바라보는 시선은 불만의 차원을 넘은, 체념의 상태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높은 본인부담률 때문에 암이나 뇌졸중 같은 중증질환에 걸린 저소득층은 치료를 포기하거나 치료과정에서 가계파탄을 감수할 수밖에 없고,장기이식술을 비롯한 첨단시술은 소수만이 그 혜택을 누릴 수 있는 특권과도 같은 시술이다. 대학병원 화장실마다 어김없이 장기를 팔겠다는 낙서가 등장하는 것은 우리 의료체계의 불평등구조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 많은 의료비를 의사들이 다 챙겨갔나 하면 그것도 아니다. 의사들 다 굶어 죽게 생겼다며 병원 문 걸어 닫고 정부청사로 몰려간 것이 어디 한두 번인가. 이런 형편임에도 정부는 늘어나는 보험재정을 감당할 재간이 없다며 꽁무니 뺄 궁리만 하면서 엉뚱한 처방을 내놓고 있다. 정부는 우리나라 의료제도가 국민건강에 대한 기여도가 낮은 이유가 “공공성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의료가 고부가가치사업으로 발전 가능성”이 차단돼 왔기 때문이라며, 의료를 “고도 소비사회가 요구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전략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교육도 산업이라고 주장하는 정부가 의료를 이윤창출이 가능한 산업으로 육성시킨다해서 그리 놀랄 것도 없지만, 의료의 공공성을 지나치게 강조했다는 평가만큼은 쉽게 수긍하기 어렵다. 대통령이 후보 시절에는 의료의 공공성을 ‘지나치게’ 강조했을 지는 모르겠으나, 참여정부 출범이후 사회보장제도에 대한 정부의 역할은 ‘지나치게’ 축소되어 왔음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치 앞의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중증환자들에게 의료는 테마여행이나 즐기면서 소비하는 상품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재이다.
그러므로 고도 소비사회가 요구하는 의료서비스란 국민의 건강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졸부들의 건강염려증을 자극하는 건강상품을 팔아 이익을 챙기겠다는 뜻의 세련된 표현일 뿐이다. 정부는 가난 때문에 병든 자식을 방치하여 숨지게 했던 그 아비를 잡아 창살에 가둘 줄은 알아도, 정작 건강권은 정부가 책임져야할 국민의 기본권이란 사실은 무시하고 있다. 의료산업으로 건강상품은 만들 수 있을 지는 몰라도 건강은 만들어서 사고 팔 수 있는 게 아니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동대표
2005.4.30